137화
"웃어?"
고작 딱 한 마디를 뱉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 마디는 무거웠다.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고 있던 성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무치개의 경지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장로님, 조심하십시오. 저자가 신성교의 성존입니다. 방금… 저희를 죽여 살인멸구를 하려고 했습니다."
순간!
무치개가 발끈하는 게 그 뒷모습에서도 고스란히 보였다.
"제자야, 뒤로 물러나 마음 편히 구경하여라. 오늘 이 사부가 삼존 중 한 놈을 몽둥이로 때려잡을 것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
그가 오른손을 뻗었고.
그의 오른손에서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봉강(棒剛), 강기로 만든 몽둥이가 형성된 것이다.
그냥 그렇고 그런 형성강기가 아니다.
내가 지금껏 만들었던 형성강기의 농도나 밀도와는, 또 그 완성도에 있어서 비교도 되지 않을…….
와! 저게 진정한 무치개 장로의 힘이었구나.
대단하다.
어쩌면 무치개 장로가 천하제이인이 아니라, 이미 천하제일인의 경지에 올랐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볼 정도로 엄청난 기운과 기세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성존마저 인상을 와락 구기는 것이, 현재 무치개가 얼마나 엄청난 힘을 과시하고 있는지 증명해 주고 있었다.
"교주님!"
신성교의 고수들도 썩은 동태 눈깔은 아닌가 보다.
다급히 성존을 향해 명령을 내려 주길 바랐고.
성존은 신중히 그들에게 명령했다.
"뒤로 물러나 진세를 유지하라.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아라."
"존명!"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는 무치개와 성존.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가 이미 스무 장 밖으로 물러섰고, 신성교 고수들마저 진법을 유지한 채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잉!
쿠르르르르르르르릉.
두 명의 거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두 절대자가 대치하자, 그것만으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땅이 흔들렸다.
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동시에 전음을 보냈다.
- 단 형님들, 성존과 신성교는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단 형님들은 남궁무검을 지켜보고 계세요. 놈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 넵! 매제 형님.
내 전음이 끝나자마자.
두 절대자가 서로를 향해 몸을 날리려……. 어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인원이 산 아래서부터 땅이 흔들릴 정도의 함성을 지르며 올라오고 있다.
그중 몇몇은 엄청난 신법으로 이미 근처에까지 왔다.
"이 장로!"
"무치개 장로!"
방주다!
우리 방주, 걸왕 귀행개가 왔다.
그 곁에는 일 장로도 있고.
그 뒤를 개방의 제1 무력대인 항룡십팔대가 뒤따르고 있다.
속속들이 현장에 도착하는 수천의 사람들.
죄다 거지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항주로 지원 온 거지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려온 것이다.
그냥 거지가 아니다.
죄다 몽둥이 한번 휘둘러 봤던 거지들이다.
"성존과 신성교도들을 포위하라!"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무치개와 성존이 대치하고 있음을 파악한 방주 귀행개가 사자후를 터뜨려 모든 개방도에게 명령했고.
이미 도착한 수천 명에 더해 꾸역꾸역 계속 산을 오르고 있는 거지들이, 성존과 신성교 고수들을 겹겹에 다시 겹겹에 또다시 겹겹으로 포위를 했다.
"방주님!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인간 불사괴와 접촉한 현장을 제가 포착했습니다!"
내 다급한 외침에 방주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남궁세가 사람들까지 모두 포위하라! 단 한 명도 놓쳐서는 안 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역시!
숫자에서만큼은 어마어마하다.
항주로 지원을 온 1만 명의 거지들과 원래 항주에 살던 거지들까지.
항주가 잘사는 도읍이라 거지도 좀 많겠는가?
아무튼 그 숫자를 대번에 다 세기도 힘들 정도다.
난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남궁무검을 쳐다봤다.
새끼, 하늘이 무너져도 저런 표정은 짓기 힘들 것이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다시 이번에는 성존.
놀라고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성존.
분노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쉬이 손을 쓰지 못한다.
난 곧바로 몸을 날려 방주와 일 장로에게로 갔다.
무치개 장로 역시 이미 그들 곁에 자리한 상태였다.
"방주님!"
"오! 걸이번! 태한아."
"방주님, 신성교가 몰려오면 당장 우리 개방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나는 방주에게 말했으나, 대답은 무치개가 했다.
"제자야, 걱정하지 마라. 신성교 전체가 몰려와도, 이 사부가 다 쓸어 버릴 것이다."
"신성교의 무인만 수만 명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일반 교도들까지 합하면 그 수를 셀 수 없어요. 그 광신도 중에는 노인도 있고, 여자도 있고, 어린아이들까지 있어요. 모두를 다 어쩌지는 못해요."
"그, 그렇긴 하겠구나."
곧바로 방주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상황이냐?"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가 괴이한 불사괴들을 처치한 후 마지막 한 놈. 인간 불사괴를 잡은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남궁무검이 그 인간 불사괴를 죽이지 않고 놓아주었습니다."
순간, 방주와 무치개, 일 장로 모두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그냥 놓아주는 게 아니라, 인간 불사괴에게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하라며 명령하는 것까지 똑똑히 보고 들었습니다."
참담한 얼굴들.
차마 믿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놀란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방주는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내게 물었다.
"성존은? 성존은 왜 이 장로와 싸우려 한 것이냐?"
"저와 남궁무검이 싸우려고 할 때, 성존이 신성교 교도들을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저를 죽여… 살인멸구를 하려고 했는데, 그때 이 장로님께서 나타나 구해 주셨습니다."
방주와 일 장로 그리고 무치개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개방의 방도들에게 겹겹이 포위된 상태로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는 성존을 향해서였다.
그러자 성존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수십 장이나 되는 거리였지만, 그는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똑똑히 들리는 음성이었다.
"오해가 있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강한 의심과 확신의 눈으로 그를 볼 뿐이다.
"남궁무검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은 나도 알지 못했소.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저 나태한이라는 아이가 마공을 익힌 제법 대단한 고수 셋과 함께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를 죽이려는 것을 보았소. 남궁세가와 검제께 받은 은혜가 많은 나는 당연히 남궁무검을 도와 저 아이를 막으려 했을 뿐이오. 결코 죽이려 한 것이 아니오."
난 시선을 가증스러운 성존에게 고정한 채 방주와 일 장로, 무치개 장로에게 말했다.
"심증이지만… 성존과 남궁세가는 한패입니다. 모두 불사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방주가 참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얼마나 확신하느냐?"
"9할."
내 대답에 방주가 정말 찰나의 순간 고민하는가 싶더니.
"일단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만 데리고 가야겠구나."
"네, 방주님. 저도 그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수라고 생각합니다."
곧, 방주가 심호흡을 한 후 세 걸음 앞으로 나갔다.
성존을 향해 자신의 결정을 통보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모두 멈추시오!"
"무량수불. 멈추시오!"
"나무아미타불. 멈추시오!"
무림맹, 무당, 화산, 소림, 다른 오대세가, 거기에 어디 소속인지도 알지 못할 엄청난 사람들이 속속 현장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하나 같이 "멈추시오!"라고 말하며 오는지 모르겠다.
그건 뭐 됐고.
그중 한 명.
"저 분은……?"
내 혼잣말에 무치개가 답했다.
"화산파의 검선이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자이니 똑똑히 눈에 담아 두어라, 제자야."
"네, 장로님."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방주가 목소리에 내공까지 실어 누군가를 불렀다.
"맹주님! 이곳입니다!"
무림맹주까지 등장하였다.
곧, 내가 아는 얼굴까지 보였다.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까지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아!
항주의 경비 태세가 어마어마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마 창궁검무대의 움직임을 포착하였고, 곧바로 나와 단씨 삼 형제의 움직임도 누군가 포착했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개방에서 대규모로 이동했으니, 모를 리가 없을 테다.
인간 불사괴가 출몰하면 곧바로 항주의 모든 고수가 움직여 포위한다고 하더니, 허튼 말이 아니었나 보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 곁으로 날 듯 빠르게 다가온 무림맹주가 우리 방주에게 급히 물었다.
"일단, 맹주의 권한으로 성존과 남궁세가 사람들을 포위해 주시오."
"무슨 일인지 알아야 그러하지 않겠소!"
"급하오! 내 목을 걸어도 좋으니, 일단 포위하란 말이오!"
"흐음. 알겠소, 걸왕."
곧바로 무림맹주가 엄청난 내공을 실어 현장에 몰린 수만에 달하는 무인들에게 명령했고.
순간 주춤하기는 했지만, 무림맹주의 명인지라 성존이 아니라 용이라 해도 뚫기 힘든 포위망이 펼쳐졌다.
곧이어 우리 곁으로 화산파의 검선과 무림맹의 장로들 그리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의 고수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을 향해 방주는 빠르게 내가 말해 주었던 말들을 설명해 주었다.
방주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걸이번, 난 네가 해낼 줄 알았다.
- 대단하다, 걸이번.
- 하아! 너란 녀석은 정말……. 하하.
순화자, 속리자, 상취개가 연이어 나에게 전음을 보내 한마디씩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진짜는 따로 있다.
난 그들의 전음을 무시한 채 고민에 고민에 고민, 다시 고민.
아! 어떻게 하지?
진짜가, 진짜가 따로 있는데.
여기서 말해도 되나?
진짜를 잡아야 하는데.
그래, 지금 말해야겠다.
지금이 기회다.
그렇게 나는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 그 엄청난 반전을 모두에게 털어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성존의 말은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증언은 모두 저 어린 개방도의 말이 전부가 아닙니까?"
답답했다.
울화가 치밀었고.
하지만 지금 자리에 있는 자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무림에서 기라성이라 할 만한 자들이다.
평소라면 내가 이 자리에 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누군가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하였다.
그러자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성존.
그가 기다렸다는 듯 아까 방주에게 했던 변명을 똑같이 늘어놓았다.
맹주와 화산파의 검선 그리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갈등하는 얼굴이 되었다.
방주와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가 가장 영향력 있는 맹주에게 나를 계속 언급하며, 내 뜻에 따를 것을 요구했지만, 맹주는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게 의견이 분분한 얼굴로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 후.
무림 맹주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순간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만큼은 반드시 확보하여 무림맹에서 직접 심문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말에 맹주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아까의 그 노고수, 제갈세가 사람이군.
그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맹주님! 어찌 자꾸 저 어린 거지의 말만을 들으십니까? 정말 신성교와 남궁세가를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일 참입니까?"
전쟁이라는 말에 몇몇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곧바로 한 노인이 그런 제갈세가의 노고수를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린 거지? 제갈 놈아! 이 어린 거지가 탈혼독의 해독약을 만든 나태한이다!"
순화자였고, 곧바로 속리자가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참고로 속리자도 제갈세가 사람이다.
"너! 제갈병참, 이 새끼! 그렇게 어릴 때부터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 하더니, 다 늙어서까지 X랄이냐! 감숙에서 홀로 불사괴 세 구를 처리한 게 바로, 이 친구다. 멸마협 나태한! 정신 좀 차려! 내가 너와 같은 제갈씨라는 게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닌다."
곧바로 상취개가 큰 목소리로 다 들리게 혼잣말을 했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눈을 씻고 찾지 못하던 인간 불사괴를 찾은 것은 물론, 그 인간 불사괴에게 명령하는 배후까지 찾아낸 게 우리 개방의 비걸개 나태한이지. 그동안 그렇게 잘난 제갈병참 대협께서는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는지. 어허, 참나."
세 노인의 비난과 힐난, 조롱에 제갈병참이란 노인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지만, 함부로 대꾸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성존이 다시 은은한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이쪽을 향해 말했다.
"맹주님, 아까 말했듯, 남궁무검 소협이 인간 불사괴를 놓아주고 심지어 명령까지 했다는 사실은 나는 전혀 몰랐습니다. 분명 진상을 밝히긴 밝혀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휴우, 나에 대한 오해는 빨리 풀고 싶군요.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간사하고 교활하다.
성존의 제안은 이랬다.
신성교는 일체의 무력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무력화(無力化)하고, 스스로 감금한다.
신성교의 모든 장소를 동일한 시점까지 무림맹에 양도한다.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의 심문에 관한 모든 권한을 무림맹에 위임한다.
성존은 이 모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성존의 전각에 스스로 연금할 것이다.
성존의 파격적인 제안에 모두가 수긍하였다.
내가 봐도 자신의 많은 것을 양보한 엄청난 제안이 맞다.
당연히 모두는 성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나만이 알고 있지만, 지금은 당장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진실과 반전.
난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시금 치열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