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우리 야검당은 수백 년 동안 이곳에서 천하제일 야장을 몇 번이나 배출한 대단한 대장간이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쯧. 그렇지. 지금은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
"그래서요? 왜 이렇게 된 건데요?"
"내가 열네 살 때부터 이곳에서 일을 했으니, 반백 년이나 됐구나."
"오래도 하셨네요."
내 말에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본 후.
"그러니까 30년 전, 전전대 가주님께서 돌아가시고 전대 가주님께서 가주 위에 오르신 후부터 조금씩 바뀌었지."
"어떻게요?"
"말하고 있잖아. 그냥 좀 들어."
"네."
"검을 전문적으로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검법을 익힌 검객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전대 가주님께서는 이를 이용해 야검당의 힘을 키우려 하셨다. 야장의 일보다 무림의 일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지."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그렇다. 힘이 세지는 게 어찌 나쁘다고 할 수 있겠냐? 문제는 그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시간이 지나면 다들 잊는다는 게 문제야."
"무슨 말이에요?"
"전대 가주님은 알고 계셨다. 우리 야검당의 힘, 저력, 그 원천이 우리 스스로 만든 검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힘을 무림 문파 쪽에 실으면서도 절대 검을 만드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셨다."
"이번 가주 때부터 바뀐 거군요?"
"그렇지. 20년 전에 현재 가주님이 가주 위에 오르시고, 다시 10년이 지났을 때 전대 가주님이 돌아가셨지. 그런 후 현 가주님께서는 다시는 검을 만들지 않으셨다."
"음… 그렇군요."
"야검당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곯을 대로 곯아 있어. 만드는 검의 질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어서, 어디 내다 파는 것도 창피할 지경이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고수가 한 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대로 쌓았던 부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노야장이 있잖아요. 노야장같이 제대로 된 야장들이 있는데, 왜 검의 질이 형편없어요?"
"그게… 예전의 나는 검을 만드는 야장이었다."
"지금은요? 지금도 매일 검만 만들잖아요."
"지금은 검을 만드는 야장이 아니라, 품삯을 받고 검을 만들어 주는 일꾼이다."
"……."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모두가 그래. 다들 검에 혼신의 힘을 쏟지 않아."
"왜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무엇 하러 받은 돈 이상의 일을 하겠느냐? 영혼 없이 그냥 불을 지피고, 쇠를 두드리고. 그렇게 된 지 꽤 됐다. 여긴 더 이상 야장이 없어. 돈 받고 일하는 일꾼들만 있지."
"저기 있잖아요. 땀을 뻘뻘 흘리며, 무슨 생사 대적의 공격이라도 막을 것처럼 열심히 일하는 세 사람."
"풉. 그래, 그래. 하하하. 인정한다. 너와 함께 온 저 세 친구는, 어딜 가서 무얼 해도 성공할 친구들이야.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노야장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진짜 하나도 없나 보다.
단씨 삼 형제를 보고 무얼 해도 성공한단다. 큭큭큭.
정반대인 사람들인데.
그때였다.
노야장이 허허 웃던 웃음을 뚝 그치고 다시 긴 한숨을 내뱉으며 혼잣말을 했다.
"휴우. 그때 둘째 공자님께서 집을 나가지만 않으셨어도, 우리 야검당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태왕산 녹림 총채에서 만난 도끼 야장.
순천검의 주인.
야검당의 둘째 아들 한화덕.
노야장의 긴 한숨과 주름진 눈에서 그를 깊이 그리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맞다."
"뭐요?"
"너."
"네? 제가 왜요?"
"궁금한 거 다 해결했으면, 이제 짐 싸라."
씩 웃었다.
"에이. 이제부터 제대로 하려고 했어요. 정말이라니까요."
쌍심지를 켜며 나를 노려보는 노야장.
나는 일단 좀 더 생각한 후에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쫓겨나지 않으려고 단씨 삼 형제가 일하는 곳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야검당의 무인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자네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왕삼인가?"
"네."
"같이 왔다던 친구들은?"
"저기, 저기서 일하고 있는데요?"
"부르게. 함께 갈 곳이 있네."
"어디요?"
"가 보면 알아.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
"네."
"단일! 단이! 단삼! 무사님이 부르셔! 어서 이리로 좀 와 봐."
그렇게 나는 단씨 삼 형제와 함께 무사를 따라 어디론가로 향했다.
물론 가기 전 노야장에게 한마디 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어쩌죠?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했는데, 무사님이 따라오라는데요? 헤헤."
노야장은 인상을 구겼다.
"하여간, 뺀질거리는 거는 천하제일이라니까. 어서 다녀와 일해."
"네, 알았어요! 하하하."
* * *
우리를 호출한 무사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걸었는데, 가는 방향이 접객전 방향이었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접객전 바깥부터 이미 야검당의 무인들과 신성교의 무인들까지 겹겹으로 경계를 서고 있고.
기감을 통해 감지한 결과, 그 내부에는 제법 진짜 고수라 할 만한 무인들까지 경계를 서고 있는 게 아닌가.
"무사님, 정말 무슨 일인가요? 분위기가 살벌한데요? 저희 혹시 뭐 잘못한 거 있어요?"
무사는 귀찮은 듯 대꾸했다.
"절차야. 자네들도 들어 봤겠지만, 요즘 불사괴니 뭐니 때문에 항주를 넘어 절강 전체가 난리잖아. 그래서 자네들처럼 처음 온 사람들은 이렇게 신분 확인하는 절차를 걸쳐야 해."
"아, 그렇군요. 휴우, 놀라라."
혹시라도 인간 불사괴를 발견하게 된다면 즉시 대응하려고 저렇게 철통같은 경계를 펼친 모양이다.
물론, 저 정도 무력으로는 턱도 없겠지만, 소란을 일으킬 수 있을 테다.
그러면 항주 전역에 깔린 고수들이 일제히 이곳을 향해 달려들 테고.
그나저나 도대체 누가 인간 불사괴를 구분할 수 있다고 온 걸까?
나는 그렇게 궁금증을 안고 접객당 내부로 들어갔… 오!
아는 얼굴이다.
그것도 반가운 얼굴.
"어?"
상대도 나를 보자마자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제법 고수 축에 끼는 신성교의 교도가 그런 그에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술사님, 아시는 사람입니까?"
"아, 네. 아는 사람이에요. 죄송하지만, 자리 좀 비켜 줄 수 있을까요?"
"혹시 저자가 인간 불사괴라면……?"
"아니에요, 확신해요. 그러니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술사의 말에 접객당 내부에서 경계를 서던 신성교의 고수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바깥으로 나간 걸 확인한 후.
나는 술사 녀석을 보며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오! 말추 술사! 출세했는데? 하하하."
내가 그렇게 웃으며 다가가자, 녀석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놀리지 마세요, 나 대협. 헤헤."
감숙에서 이백운, 궁도산, 당우국, 서예, 반후인 그리고 공동파의 복개 도장과 더불어 함께 작전을 수행했던 팔선문의 말추 술사 녀석이다.
"어떻게 된 거야? 네 말 한마디에, 서슬 퍼런 신성교의 고수가 척척 말을 듣네?"
"아! 그게요……. 헤헤, 불사괴 때문에 요즘 우리 술사들 몸값이 좀 많이 올랐잖아요. 헤헤. 그중에서도 우리 팔선문이 좀 더 유명하고, 저는 직접 불사괴를 경험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대접을 해 주네요. 하하."
몸값이 아무리 올라도, 여전히 많이 부끄러워하는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개방의 비걸개가 이곳에 잠입했다고 해서, 상황 보고를 받으러 온 건데. 나 대협께서 계실 줄은 정말 몰랐네요."
"그래? 하하. 이 몸도 몸값이 조금 올랐지. 그래서 아주 이 일 저 일 하느라 바빠 죽겠어."
"그렇죠? 다들 바쁜 것 같더라고요."
"다들?"
"아! 소식 못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
"이백운 소협하고 궁도산 소협, 당우국 소협, 서예 여협까지 모두 항주에 와 있어요."
"만나 봤어?"
"네."
"그렇구나. 그런데 말추 술사."
"네, 나 대협."
"구분 가능해?"
"인간 불사괴요?"
"응."
"그게… 인간 불사괴는 저도 그렇고 저희 팔선문도 그렇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인간 불사괴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무림맹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저희 팔선문에서 자체적으로 강시나 사술 등에 관한 고서적까지 다 뒤져 가며 많은 연구를 했어요."
"성과가 있어?"
"그게… 확신할 수는 없어요. 이것 보세요, 나 대협."
말추가 자신의 품에서 부적 여러 장과 술법에 쓰는 몇 가지 도구를 꺼내 보였다.
"음… 신비로운 기운을 머금고 있군."
"느껴지세요?"
"응."
"우리 팔선문에서 최대한 공을 들여 만든 것들이긴 한데, 이게 통할지 통하지 않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어요."
부족하다.
나도 확신하긴 힘들다.
부족하지만, 꼭 안 될 거라 단정 짓기도 힘들고, 될 것이라고는 더 말하기 힘들고.
나름 현존하는 최고의 현문이라는 팔선문이 이렇다면, 아마 인간 불사괴는 내가 아니면… 에휴, 피곤해지겠군.
"어때요? 나 대협이 보시기엔 이 부적들과 술법들로 인간 불사괴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르겠네."
"아… 네. 그렇죠?"
"말추 술사."
"네, 나 대협."
"말추 술사는 하는 일이 정확히 뭐야?"
"항주 전역을 감시하고 관찰해요. 저희 팔선문의 문주님과 장로님 세 분 그리고 저까지 다섯 명에게 항주 전역의 총괄 감시권이 주어졌어요."
"오! 대단한데?"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럼 마음먹은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거야?"
"네, 신성교 교주의 안방은 물론, 그곳이 설령 신성교의 금지라 하더라도 갈 수 있어요. 총괄 감시권은 무림맹주와 신성교주 그리고 남궁세가주 세 분의 권한으로 임명된 거거든요."
"오! 멋있어. 아주 좋아! 그래서 말인데, 말추 술사."
"나 좀 도와줘."
"네? 제가요?"
"응."
"아…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역시다.
이 녀석, 착한 녀석이야.
마음에 들어.
아! 근데 내가 예전에도 얘한테 반말을 했었나?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은 녀석인데.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실은, 내가 맡은 임무지가 이곳이야. 야검당."
"없군요?"
"응, 샅샅이 몇 번에 걸쳐 살폈지만, 인간 불사괴는 이곳에 없어. 그래서 다른 곳을 확인해 보려고."
"이건 그냥 제가 돕는 게 아니라, 절강과 항주 무림이 나 대협께 간곡히 부탁해도 모자랄 일이잖아요."
"하하! 하하하! 하여간 너는 참 말도 예쁘게 한다니까. 맞는 말이지, 하하."
"아니에요. 정말 나 대협께서 이렇게 나서 주신다니, 더없이 든든합니다."
"그런데 말추."
"네, 나 대협."
"비밀리에 움직일 수 있을까?"
"비밀리에요? 왜요?"
"모르잖아. 누가 인간 불사괴인지. 그래서 나나 이백운, 궁도산 같은 녀석들도 비밀리에 임무지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거고. 난 그 이상을 노리고 있어. 이번 일의 수뇌부들까지 모르게 움직여서 은밀히 인간 불사괴를 찾을 거야."
"오! 그게 확실히 더 좋은 방법 같네요."
"할 수 있겠어?"
"물론이죠. 제가 내일 아침 일찍 올게요. 순찰패를 들고서요."
"순찰패?"
"네, 제 명령으로 순찰과 수색을 할 수 있는 순찰패가 있어요. 신성교주의 안방까지는 몰라도, 웬만한 곳은 순찰패만 있으면 문을 열지 않는 곳이 없을 거예요. 의심받기 싫어서라도 대문을 활짝 열고 나 대협을 지극정성으로 모실 겁니다."
"오! 우리 말추! 진짜 출세했네. 하하하! 내가 다 기쁘다. 정말이야! 하하하."
"그때 나 대협께서 살려 주신 목숨입니다. 나 대협 덕분에 살아서 제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저야말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 대협."
녀석!
하여간 정말 예쁜 말만 골라 한다니까.
"그럼 순찰패 네 개 부탁해. 뒤에 있는 내 동료들 것까지."
"넵! 내일 일찍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