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27화 (126/174)

127화

떠나기 전, 상취개가 나를 찾아왔다.

"어이쿠, 무림맹 장로님께서 이 누추한 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비꼬지 마라."

"흥!"

"어허! 어른한테 그 무슨 버릇이냐?"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하셔야죠. 이제 갓 약관에 든 저를 몇 번이나 사지로 몰아넣으셨는지, 왜? 기억 안 나요?"

"어험. 그게… 어험."

"됐고. 무슨 일이에요? 무림맹 안 가고 저는 왜 찾아오셨어요? 이제 비걸개 총괄도 아니시면서."

"무림맹으로 가기 전 마지막 비걸개 총괄로서의 일을 하려고 왔다. 네게 임무만 하달하면, 나도 끝! 곧바로 무림맹 일하러 갈 거다."

"출세하셨네, 누구 덕분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더니. 축하합니다, 무림맹 장로 되신 거요."

"어허, 그래도! 녀석 말본새만 보면 화경급 고수가 따로 없네. 지금 너랑 티격태격할 시간 없다. 상황이 심각하니 잘 들어라."

"방주님이 다 말해 주셨잖아요."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음, 네."

"신성교의 교도, 그것도 핵심 고수를 포함하여 700명이 넘게 죽었다. 단 한 번의 전투로 그리됐어."

"인간 불사괴가 그런 거예요?"

"아니다. 인간 불사괴는 그때까지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있었다."

"그럼 누가……?"

"휴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상취개가 뭔가 난처하고 답답한 얼굴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죽은 시체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더구나. 시체가 살아나 산 사람들을 잡아먹었다고 해."

좀비다.

미친! 좀비까지 등장한 거야?

돌겠네.

"그게 전부가 아니야. 해골… 아! 진짜 나도 믿기 힘든데, 네가 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신성교에서 무림맹으로 보낸 정보를 그대로 너에게 전달해 주는 거니, 참고하고 들어라."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요?"

"해골들이 땅을 뚫고 나와서 사람들을 공격했다더구나. 나도 아직 다 믿기 힘든 일이긴 해. 하지만 신성교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어."

스켈레톤이다.

좀비에 스켈레톤, 거기에 휴먼 언데드까지.

진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마교가 마계의 문이라도 연 건가?

아니다.

남궁무검과 남궁세가, 분명 거기에 단서가 있다.

"그래서요?"

"뭐야? 너는 이 황당무계한 일을 믿는 거야?"

"불사괴도 나오고, 이젠 인간 불사괴까지 나왔다는데, 못 믿을 이유도 없잖아요."

"휴우. 네가 나보다 낫다. 아무튼 그때 그 시체와 해골들이 신성교의 금지(禁地)에 출현, 갑자기 신성교를 공격했고, 그때 700명이 넘게 죽었단다. 처음 보는 그것들에 제법 유명한 고수들까지 당황했고, 죽여도 죽지 않는 그들의 불가사의한 힘 때문에 삽시간에 큰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고 하더라."

"어떻게 해치웠는데요?"

"성존이 직접 나서서 모두 쓸어 버렸다고 하더구나. 성존이 나서서 불사괴를 죽이는 방법까지 알려 줬고, 그제야 신성교 교도들도 제대로 그 죽지 않는 괴물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해."

"인간 불사괴는요?"

"그 싸움이 끝날 무렵, 성존이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단다. 곧바로 공격을 했는데, 심장이 뻥 뚫린 자가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당황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더구나. 그리고 곧 그와 비슷한 자 두 명까지, 총 셋이서 현장을 벗어났고."

"성존이 뒤쫓지 않았어요?"

"성존도 사람이다. 심장이 뻥 뚫렸는데, 자기를 보며 웃는 괴인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느냐? 화경의 고수도 귀신을 보면 놀라긴 마찬가지야."

"그렇긴 하겠네요. 저도 귀신은 무서우니까."

"당분간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왜요? 이런 일은 무림에 모두 알려야 좋은 거 아니에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대비를 하죠."

"일장일단이 있다. 인간 불사괴는 이미 호남에 출현했기에 다들 부족하지만 대비를 하고 있어. 다만 천하 6대 세력 중 하나인 신성교에서, 그것도 성존이 직접 나섰음에도 시체와 해골이 되살아나 신성교도 700여 명을 죽였다고 한다면, 그 여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분명 마교를 언급하게 될 거고."

"음… 큰 혼란이 도래할 수 있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그래서 일을 모두 마무리한 후, 정확히는 세 구의 인간 불사괴를 처리한 후 이번 일을 제대로 공표할 생각이다. 무림맹과 신성교, 남궁세가에서 모두 동의한 일이고, 나도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네요."

"일단 인간 불사괴만 잡으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것 같기도 해. 이번 일의 핵심은 인간 불사괴다. 그래서 네 임무가 더더욱 중요한 것이고."

"알겠어요."

"이번 일로 화산의 이백운과 무황성의 궁도산 그리고 당가의 당우국, 아미파의 서혜, 거기에 공동파의 복개, 팔선문의 말추까지 모두 나설 것이다."

"감숙에서 저와 함께 임무 수행을 같이했던 그 녀석들도 다 와요?"

"그렇다. 모두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할 거다."

"이백운은 오른팔을 잃었고, 궁도산은 두 주먹을 모두 잃었잖아요. 그래도 화산과 무황성에서 그들을 보내 준다고 해요?"

"어쩌겠느냐? 당장 불사괴를 경험해 본 사람이 몇 명 없는데. 그리고 이백운은 검선께서 그리고 궁도산은 무존이 알아서 다 처방을 해 주었다."

"어떤 처방요?"

"직접 보아라. 놀라서 까무러치지나 말고."

"조금 상상은 되네요."

"그들 외에도 엄청난 수의 고수와 술사들이 절강으로 향한다. 신성교와 남궁세가 그리고 무림맹을 위시로 움직이게 되겠지만, 이는 사실 허장성세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하지만, 핵심은……."

"인간 불사괴. 제가 해야 할 일. 알아요."

"그렇다. 우리 개방에서도 1만 명의 거지를 절강으로 추가 파견한다. 그리고 일 장로님과 이 장로님이 그 거지들을 직접 지휘하실 거다."

"이 장로님이요? 무치개 장로님도 이번 일에 나서요?"

"당연하지. 사안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겠느냐. 낭만개도 수호존 자리를 수락했는데, 어찌 무치개 장로라고 산속에서만 계속 지낼 수 있겠느냐. 그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돕겠다고 하였다."

"묘안개랑 저육개도 함께 오겠네요?"

"맞다! 너, 그 아이들에게 무슨 대자연단이라는 영단을 보냈다며?"

"네."

난 무덤덤하게 답을 했는데, 상취개가 놀란 눈을 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왜요? 뭐 문제라도 있어요?"

"그거 어디서 났냐?"

"제가 만들었는데요?"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휴우. 넌 정말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구나."

"그래서 묘안개랑 저육개도 같이 와요?"

"아니다. 그들은 이 장로님이 임무를 맡기 전에 이미 하산해 무림행을 떠났다."

"무림행이요?"

"그래, 네가 보낸 그 대자연단을 복용하고 내공이 엄청나게 증가했다더구나. 당연히 무치개 이 장로님이 도와 빠르게 그 기운을 흡수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두 아이의 무공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해. 이 장로님이 혹독하게 가르친 바탕에 네가 준 영단이 더해져……."

"더해져 뭐요? 왜 갑자기 웃어요?"

"아! 그게… 하하, 무치개 장로가 그렇게 누굴 칭찬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그 생각이 나서 웃었다. 그렇게 실없이 말하고 웃고 할 양반이 아닌데. 허허."

"묘안개랑 저육개가 엄청나게 성장했나 봐요?"

"무치개 장로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자랑을 하더구나. 곧, 우리 개방에서 칠룡사봉이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될 것이라고."

"오! 묘안개, 저육개 이 녀석들. 기대되네요. 하하."

"곧 그들의 활약이 귀에 들어올 것이라고 장담까지 했다."

"뭐, 시간이 지나면 알겠죠."

"다시 임무 얘기를 하자면,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네."

"이번 일은 신성교가 주관한다. 최종 명령권자는 무림맹주도, 남궁세가주도 아닌 성존이다."

"아! 그건 좀……. 제가 사이비 교주 지시를 받아야 해요?"

"네가 성존을 직접 만날 일은 없어. 너는 맡은 임무만 하면 된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만나 그가 너에게 어떠한 명령을 내려도, 정의와 상식 그리고 네 양심에 벗어난 명령이라면 당연히 거부해도 된다."

"알겠어요. 그런데 무림맹주님이랑 검제는 왜 최종 명령권을 성존한테 양보했대요? 사이비 교주 따위에게요."

"사건이 신성교에서 터졌고, 불사괴가 노리는 게 신성교로 추측되기 때문이지. 당사자가 명령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않겠느냐."

"그렇긴 한데, 좀 찝찝하네요."

"성존은 네가 그렇게 함부로 생각할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사이비임에는 변함이 없죠."

"절강을 지배하고 있는 게 신성교고 성존이다. 신성교는 그들을 힘으로 지배하는 게 아니야."

"세뇌당한 거겠죠."

"아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상취개가 설명을 이었다.

"신성교는 많은 돈을 갈취한다."

"뭐예요? 그게 사이비 맞잖아요."

"그 갈취한 돈 대부분을 좋은 일에 쓴단다."

"음……."

"물론, 성존을 비롯한 일부 수뇌부들이 엄청난 부를 쌓는 데에도 사용하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시네요. 뭘 말씀하시려는 거예요?"

"항주를 품고 있는 절강은, 언제나 중원에서 가장 부유하고 사치가 심한 땅이었다. 돈이 넘쳐 나니 당연히 나쁜 놈들도 꾸준히 몰려들었고. 그곳에 사는 백성들이 얼마나 고달팠겠냐? 이놈에게 뜯기고 저놈에게 뜯기고, 다음 날에는 또 다른 놈에게 뜯기고."

"최악보다 차악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그렇다. 절강 사람들에게 신성교는 차악이지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선택이기도 하다."

"휴우. 모르겠네요. 뭐가 맞는 말인지."

"명심해라, 태한아. 성존은 삼존삼성 중 삼성도 아닌 삼존의 1인이다. 천하제일인에 가장 근접한 세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뜻이다. 절대, 절대로 그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상취개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심각한 얼굴로, 항시 술에 취해 흐리멍덩했던 눈이 아닌 불까지 뿜을 기세로 힘을 주어 말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삼존삼성을 무슨 제비뽑기로 뽑은 것도 아니고.

달리 말하면 낭만개 아저씨와 거의 대등한 고수가 그 아니겠는가.

"뭐, 장로님 말씀대로 제가 그자를 만날 일이 있을까는 싶지만,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명심하고 있을게요."

"그래, 그러면 됐다."

"아!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있다."

"뭔데요?"

"네 덕분에 중원 곳곳에서 벌어지던 탈혼독 관련 약탈 사건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무림맹의 예측에 따르면, 늦어도 서너 달 후에는 완전히 탈혼독 도둑놈들을 볼 수 없을 것이라 하더구나."

"오! 잘됐네요. 하하. 다 제 덕분이에요."

"그래, 맞다. 네 덕분이다. 허허! 하여간 뻔뻔하기는. 하하하."

"장로님, 저도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얼마든지."

"걸일번하고 걸삼번은 잘 지내고 있어요? 바보… 그러니까 걸삼번 녀석, 아직 살아 있기는 해요?"

상취개가 피식 웃는다.

"살아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살아 있어. 허허허."

"휴우, 다행이네요. 그 녀석 걱정 때문에 일이 손에 안 잡힌다니까요."

"걱정할 필요 없다. 네가 하는 걱정, 우리도 진즉 하고 있었고. 그래서 걸삼번에게는 항상 쉬운 임무만 맡기고 있다. 지난번 산적들한테 인질로 잡힌 후에는, 쉬운 임무라는 말도 창피할 정도의 임무만 시키고 있어."

"무슨 임무를 명령하셨는데요?"

"지난번 감숙에서는 돼지 농장에서 탈출한 돼지 잡는 걸 도우라고 보냈고."

"그건 좀 심하지 않아요?"

"아! 그 돼지 농장에서 우리 거지들에게 철마다 돼지고기 수백 근을 나눠 주거든. 누군가는 은혜를 갚아야 해서, 녀석을 보냈지."

"뭐, 잘하셨네요. 그다음에는요?"

"그다음에는 산서로 보냈고, 신창양가의 넷째 아들 혼례식의 비밀 경호를 맡겼다."

"무슨 습격 예고라도 있었어요?"

"아니. 다른 곳은 몰라도, 산서 땅에서 누가 감히 신창양가의 넷째 아들을 건드리겠느냐? 하하. 가장 안전한 임무며, 잔칫집 음식도 실컷 먹으라고 보낸 거다."

"하하하. 푸하하하하! 또요, 또. 또 무슨 임무를 보냈어요?"

"그다음은 호남. 동정십팔채의 교룡채 채주가 죽어서 조문을 보냈단다."

"제삿밥이 맛있죠."

"그렇지, 그게 의외의 별미지. 허허허."

"그다음은 또 어디로 보냈어요?"

"항주 기루연합회에서 어린 배수들이(扒手, 소매치기) 조직을 이뤄 활개를 친다며 우리 개방에 도움을 요청했다. 기루에서 좀 많이 거지들에게 먹다 남은 음식을 나눠 주지 않겠느냐. 그래서 돕기로 했고, 기왕이면 생색 좀 내려고 비걸개 한 명을 보내 준다고 했지."

"풉. 크하하하하! 아놔! 제대로 생색내셨네요. 하하."

"그렇지. 비걸개를 보내 준다고 하니, 그날 기루 연합회에서 항주 개방 분타와 소분타들로 고기와 술을 수레에 실어 보내 줬다더구나. 하하."

"어? 잠깐! 항주면 신성교가 있는 곳이잖아요."

"걱정할 필요 없다. 걸삼번 그 녀석도 명줄만큼은 너 못지않게 끈질긴 놈이야. 운이 아주 좋아. 불사괴가 출몰하기 보름 전에 임무를 완수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휴우, 다행이네요. 그래서 녀석이 배수 조직을 잡았나 봐요?"

"웬걸. 큭큭. 신성교에서 싹쓸이했다더구나. 걸삼번 녀석은 수십 명이나 되는 어린 배수 중 한 명도 못 잡았고."

"하아! 녀석도 참. 그래도 그 녀석이 그렇게라도 잘 살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위험에 빠지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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