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19화 (118/174)

119화

"10년 동안… 고생해서 만든 검을… 부러뜨렸어요? 아저씨가요?"

"실수다. 정말 실수였다."

와!

그 사람 불쌍해서 어떡하냐?

"아! 생각났다. 내가 부러뜨린 검은 역천검(逆天劍)이라고 했어."

역천검?

어디서 들어 봤는데?

반이 부러진 검.

역천검.

아! 생각이 날 듯 말 듯.

분명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이 순천검과 그 역천검을 합쳐서 쌍천검(雙天劍)이라고 했지. 맞아, 맞아. 하하하. 이제 다 기억나네."

"그보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는데요? 자신의 평생을 바쳐 만든 검을 아저씨가 부러뜨려 버린 거잖아요."

"배가 너무 고팠다고 했잖느냐."

"일부러 그런 거죠?"

"어험. 어험. 쿨럭."

"지난 일인데 그냥 다 솔직히 말해 주세요."

"그게 말이다. 정말 배가 고팠다. 사실 오기도 좀 생겼고. 생각해 봐라. 주먹밥 한 덩이 주면서 몇 시진을 자기가 만든 검을 자랑하고 있으니, 맨정신이었어도 미쳐 버렸을 거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거예요?"

"반은 실수고 반은……. 어험, 그게 말이다. 그자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정말 그 검이 그렇게 훌륭한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슬쩍 힘을 주었는데, 역시 단단하더구나. 그래서 내공을 살짝 끌어 올려 힘을 줬고, 역시 꿈쩍도 안 하더라. 결국 나도 모르게 내 무공의 정수를 모조리 끌어 힘을 집중… 툭, 부러졌다."

아! 내가 우리 낭만개 아저씨를 좋아하긴 하지만, 진짜 완전히 정상인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는데요? 부러진 검을 보고서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라. 자신이 평생 노력해 완성한 검이, 내가 힘을 조금 쥐자 툭 부러져 버리니 얼마나 놀라고 실망했겠느냐? 내가 온 힘을 다 쓴 줄은 모르고, 그가 봤을 때는 그냥 살짝 힘을 준 것으로 보였을 테니 말이다."

"휴우. 그 심정을 다 헤아리기도 힘드네요."

"그랬다. 너무 미안해서 나도 뭐라 변명도 못 하겠더구나. 그래서 어쩌겠느냐? 그가 놀라 땅에 떨어뜨린 주먹밥을 주워서 먹었지."

"지, 지금… 그 상황에 주먹밥을 먹었다고요?"

"배고파 죽을 것 같다고 하지 않았냐. 정말이라니까."

와!

진짜 낭만개 아저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 대 쳤다.

"순식간에 주먹밥을 입 안으로 다 집어넣고, 분위기가 싸해서 보니 그 사람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부러진 검을 보고 있더구나. 너무 미안해서 연신 사과를 했는데, 그 사람 귀에는 내 사과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더구나."

"저라도 그랬겠네요. 그 사람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아저씨한테 따지거나 보상하라고 그랬을 법도 한데요."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더니, 벌떡 일어나 갔다."

"그냥 갔어요? 쌍천검을 그냥 두고요?"

"아! 한마디는 하고 갔다. 나에게 한 말은 아니고, 그가 떠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는 했어."

"뭐라고 했는데요?"

"아버지 말이 맞았어. 난 처음부터 재능 같은 게 없었던 거야. 하하. 됐다. 어디 목 좋은 곳에 대장간이나 열고, 농기구나 만들어 팔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야겠다. 그렇게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산에서 내려갔단다."

"그 후 그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는 들었어요?"

"못 들었다. 이런 검을 다시 만들었다면 분명 유명해졌을 텐데, 아마 그가 했던 말처럼 농기구나 팔며 평범한 삶을 살기에 그 사람의 소식이 내 귀에 들려오지 않은 것 같다."

아저씨가 문득 말을 멈추고는 회상에 잠긴 얼굴을 잠시 하다가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어쩌면 내가 그 사람 인생을 바꾸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싶구나."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 인연이 닿으면 그때는 제대로 사과해야겠구나. 허허."

"그래도 쌍천검을 진짜 줍긴 주운 거네요?"

"그렇다니까. 내가 왜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냐?"

"검은요?"

"여기 있잖느냐."

"아니, 순천검 말고. 반으로 부러뜨린 역천검이요."

"다음 마을로 가서 구걸하는데, 전 마을에서 소문을 냈는지 아무도 나에게 동냥을 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배가 너무 고파……."

"팔았어요?"

"그래."

"역천검을요?"

"그렇다니까."

"진짜로?"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은데 그럼 어쩌냐?"

"얼마에 누구한테 팔았는데요?"

"검 한 자루 파는데 무슨 신상 정보까지 묻고 그렇겠느냐?"

"그래서 얼마요?"

"은자 두 냥을 받았나? 세 냥을 받았나? 아무튼 덕분에 며칠 배곯을 걱정은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와! 이 양반 좀 심각하게 정상이 아니네.

"아! 또 생각났다."

"뭘요?"

"내가 검을 판 사람."

"누군데요?"

"이름은 당연히 모르고, 그 생김새가 독특했어."

"어땠는데요?"

"외팔이 검객이었다. 그것도 꽤 대단한 검객이었어. 아니, 그냥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도 부족할 만큼 대단한 검객."

"아저씨를 위협할 정도로 대단했어요?"

"에이, 그건 또 말이 다르고. 아무튼 어디 칼 좀 잡아 봤다는 도사들 있지 않느냐?"

"무당파나 화산파 그런 도사들요?"

"그렇지. 그중에서도 장로라는 작자들 한두 명은 쉽게 쓸어 버릴 정도의 대단한 검객이었어."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아까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던 역천검에 대한 향방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천검은 역천반검(逆天半劍)이다.

원래는 역천검이었을지 모르나, 현재 천하의 모든 이들이 이를 역천반검이라 부른다.

무려 천하 10대 보검 중 하나로, 무황성의 부성주 외팔이 검객 독비검절(獨譬劍絶) 태사경의 애검이 바로 그것이다.

낭만개 아저씨가 은자 두 냥이나 세 냥에 팔았단다.

큭큭큭.

내가 웃겨서 웃는 게 아니다.

지금 내 심정을 과연 누가 알아주겠는가.

"내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었느냐? 웃긴 얘기는 아닌데. 하하하."

아!

얼굴은 웃고 있는데, 갑자기 울고 싶다.

"아무튼 이 검은 이제 네 것이다. 새로운 검을 구할 때까지 쓰다가, 혹시라도 배고프면 팔아라. 난 부러진 검이라서 은자 두세 냥에 팔았지만, 너는 제대로 된 검이니 값을 두 배는 받을 수 있을 거다."

"이거 대단한 검인데 정말 제가 가져도 돼요? 천하 10대 보검에 견줄 수 있는 보검이에요."

"에이, 천하 10대 보검은. 하하하하."

웃는다.

낭만개 아저씨가 정말 웃긴 듯 그렇게 웃는다.

그런데, 아저씨.

이거 천하 10대 보검보다 더 좋은 검이에요.

그래, 이것도 천천히 말해 주자.

지금 내 머리가 너무 혼란스럽다.

"하하. 정말 웃기네. 네가 언제 이렇게 농담이 늘었는지 모르겠구나. 하하. 천하 10대 보검이라니. 하하하. 그래도 가져라. 빈손으로 다닐 수는 없지 않겠……."

쉬이이이이이익!

요대로 변신해 내 허리를 감싸고 있던 우룡검을 뽑아 펼쳤다.

위대한 레드 드래곤의 무지막지한 기운이 순간 산 전체로 퍼져 나갔다.

"태한아……."

처음이다.

낭만개 아저씨가 그냥 놀란 게 아니라 진심으로 놀랐다.

"마치 용의 기운을 담은 듯하구나."

"그렇죠?"

"천하 10대 보검… 아니다. 내 단언하건대,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검은 천하제일 검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휴우, 너는 정말 사람을 끝도 없이 놀라게 하는구나."

"제가 좀 그렇죠. 하하."

"안 되겠다. 순천검을 진짜로 가지고 다녀야겠다. 그 검은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조금 전처럼 그렇게 숨기고 다녀라. 네 경지가 나와 같은 곳에 오르기 전까지는 숨기는 게 너에게 이롭겠구나."

"음… 네, 그럴게요."

난 우룡검을 회수한 후 순천검을 받아 허리에 착용했다.

"그런데 아저씨."

"그래, 태한아."

"순천검은 정말 한 번도 써 본 적 없었어요?"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순천검의 한 쌍인 역천검, 그러니까 역천반감의 주인이 독비검절 태사경이다.

또 순천검 자체가 너무 대단한 보검이라, 이게 세상에 얼마나 알려졌는지 확인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물어본 건데.

"한 번도 없……. 아! 한 번 있었구나. 딱 한 번 썼었다."

"언제요?"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이 검을 얻고 한 1년이나 지났을까? 못된 늙은이가 있어서 그 검으로 좀 혼내 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진심으로 화가 나 전력으로 놈들을 상대했지."

설마……?

"그때, 그러니까 전대의 방주님이랑 장로님들이랑 죄다 달려와서 단체로 날 말렸을 정도로 일이 커졌지. 며칠 동안 잔소리도 무지하게 들었단다. 그 문파 이름이 뭐였더라… 단령 뭐라고 했는데."

딱 한 번 썼다는 게.

단령도문이다.

당시 무림 12대 고수 중 일인이 문주였던 단령도문을 홀로 찾아가 박살 낸 그 사건.

이 이야기는 길게 하지 말아야겠다.

아저씨의 아픈 기억일 테니 말이다.

"아저씨, 이제 그만 내려가죠."

"그럴까?"

"시전에 들러서 맛있는 것 많이 사 가요."

"내가 구걸하면 된다."

"풉. 아저씨가요? 또 동냥 그릇 던져 놓고 잠이나 푹 자려고요? 저도 저지만, 아저씨도 거지랑 너무 안 어울려요. 아! 거지랑은 어울리는데, 소질이 없다는 게 정확하겠네요."

"그래도 하루 한 끼 먹을 양은 구걸한다."

"네, 대단한 거지 납셨네요. 그런데 저 돈 많아요. 알면 까무러칠 정도로 정말 많으니까, 오늘은 일단 사 가지고 가요. 애들 잔뜩 기대하고 있을 거예요."

"부자야?"

"그렇다니까요."

"은자 열 냥 넘게 있어?"

"큭큭큭. 가요. 오늘은 황구 한 마리 잡아요."

"오! 진짜 부자네."

나와 낭만개 아저씨는 그렇게 기분 좋게 산에서 내려갔다.

내려가며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데 태한아, 내가 아까 하려다가 만 말이 있는데."

"뭐요? 제 변한 모습이요?"

"그래, 그거 말이다. 정말 아무리 봐도 믿기지가 않아. 이건 어떤 기연이라고 말을 하기도 뭐하고. 그냥 용이라도 만났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다."

"만났어요, 용이요. 진짜 용을 만나 의형제까지 맺었어요."

* * *

"먹을 거! 먹을 거!"

"양꼬치 사 줘!"

"양꼬치 먹을 거야!"

아!

이 미친 거지새끼들.

아직 해도 안 떴는데, 내 움막으로 우르를 몰려와 나를 깨운다.

아니, 무슨 양꼬치 못 먹은 귀신이 붙었나.

어제부터 웬 양꼬치 타령을 이렇게 미친놈들처럼 해?

"한 시진만, 한 시진만 더 자자."

"양꼬치! 양꼬치 내놔!"

"야! 너희 나한테 양꼬치 맡겨 놨어! 잠 좀 자자!"

버럭 소리까지 질렀지만.

응, 안 통한다.

이 어린 거지 녀석들은 내 호통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양꼬치! 양꼬치 사 줘!"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고.

양꼬치를 사 주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놈들의 지독한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양꼬치 가게가 오시(午時, 낮 11~13시)에 열기에 그때 사 준다고 하니, 이 미치광이들이 침을 폭포수처럼 흘리면서도 단체로 아침을 굶었다.

대단한 집념이다.

저런 집념으로 무공을 수련하면, 20, 30년 후 천하 10대 고수는 죄다 우리 개방에서 나올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오시가 됐고.

나는 우리 분타의 어린 거지 녀석들을 우르르 몰고 시전으로 향했다.

공주 양꼬치(公主 羊肉串)?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름과 달리, 가게는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 정도로 성황이었다.

진짜 공주라도 있나?

아니면 공주처럼 예쁜 여인이 양꼬치를 구워 줘 이렇게 장사가 잘되나?

"줄 서세요! 줄 서지 않으면 안 팔아요! 거기, 아저씨! 새치기하지 마시고! 다들 줄 서세요."

"얘들아, 너희도 어서 줄을……."

벌써 섰다.

말이라면 죽어라 듣지 않는 녀석들이.

아침까지 굶어 침을 마구 흘려 대면서 잽싸게 줄을 섰다.

그나저나 공주같이 예쁜 여인이 양꼬치를 구워 줄 줄 알았는데 아니다.

까치발까지 들어 슬쩍 가게 안을 살피니.

남자만 셋이다.

미녀는커녕 여자는 보이지도 않고.

그럼 미인계로 장사를 하는 건 아니라는 소린데.

이 집 양꼬치가 그렇게 맛있나?

난 우리 어린 거지 녀석들 뒤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한 중년의 사내에게 물었다.

"아저씨."

슬쩍 날 경계하며 무슨 일이냐 눈빛으로 되묻는 사내.

"이거 언제 생긴 거예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요."

"공자는 황천에 오랜만에 온 건가요?"

"네, 몇 달 만에 왔더니, 이 어린 거지 녀석들이 양꼬치 사달라고 하도 X랄을 해서요."

사내는 나와 어린 거지들을 쓱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린 거지 녀석들은 거지가 맞는데, 나는 또 비단옷을 입고 있으니 의아한 모양이다.

"한두 달 됐지요. 열자마자 그 맛이 좋다는 소문이 돌아서, 인근 마을에서까지 찾아와 이렇게 긴 줄을 선답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공주 양꼬치예요? 아까 보니까 가게 안에는 사내들밖에 없던데."

"아! 저 사내들은 숙수. 양꼬치를 굽는 세 숙수가 오라버니고, 여동생이 진짜 가게 주인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도 딱 한 번 봤는데, 예쁘긴 예쁜데. 큭큭. 공주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고. 뭐, 우리 황천 같은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미인이긴 하지요. 하하."

난 이제 경계를 푼 사내에게 이것저것 몇 가지를 더 물었다.

공주 양꼬치 사람들은 사 남매로 외지에서 왔다는데, 딱히 의심할 점은 없었다.

사내의 입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그렇다.

문제는…….

지금 허름한 옷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양꼬치를 굽는 저 세 명의 사내들 말이다.

둘이 초절정 고수고 한 명이 절정의 고수다.

더 심각한 건.

셋 다 마공을 익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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