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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이번 여행기-115화 (114/174)

115화

"네 이놈!"

순간 독선의 온몸에서 무지막지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짖던 당소호가 짖는 소리마저 뚝 그치고 덜덜 떨 정도로 정말 엄청난 기운이었다.

독선이 결국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아, 아버지… 저는……. 커억."

독선의 기운에 당소호는 말을 잇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하지만 살고 싶다는 욕망이 그 두려움을 이기게 했나 보다.

"저는… 아버지, 저는 두 가지 선택 중 사는 길을……. 커억. 제발… 기운을 거두어 주세요. 이러다… 헉헉, 이러다 저 정말 죽어요."

사색이 되어 간절히 애원하는 당소호.

그런 당소호를 향해 독선이 차갑게 말했다.

"너에게 말하려던 두 번째 선택은 개처럼 짖는 게 결코 아니었다. 명예로운 죽음을… 못난 놈. 여봐라! 당장 이놈을 뇌옥으로 끌고 가 가두어라!"

당가의 고수들이 당소호를 끌고 갔다.

"아버지! 아버지! 살려 주세요! 아버지!"

개처럼 끌려가면서도 끝내 목숨을 구걸하는 그였다.

"휴우, 나 대협."

"네, 당 가주님."

"못 보일 꼴을 보였네."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여기서 내가 뭐라고 말하겠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참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고,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당가의 식솔과 고수들 그리고 의원들까지.

모두 침통한 분위기가 되어야 했다.

"몸은… 정말 괜찮은가?"

"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

"네, 당 가주님."

"자네 조금 전 무형지독을 복용했네."

"괜찮습니다."

그의 동공이 떨려 왔다.

다른 이들은 보기 힘들지 몰라도, 내 눈에는 정확히 보였다.

믿기 힘들다는, 그런 놀라움의 반응이었다.

"일 장로!"

"네, 가주님."

"두 해독약을 모두 가지고 오게."

"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당소호가 대결을 펼쳤던 그 탁자 위에 두 가지 탈혼독에 대한 해독약이 올려졌다.

내가 만든 해독약과 당소호가 만든 해독약이었다.

독선은 탁자 위에 두 해독약이 모두 준비되었지만, 좀처럼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한참이나 복잡한 심경으로 나를 보다가, 결국 시선을 나에게서 떼어 탁자로 향했다.

직접 두 해독약을 복용하기까지 한 독선.

그는 두 눈까지 지그시 감으며 긴 한숨을 토했다.

거의 1년 만에 출관했는데, 정말 긴 하루를 보내는 얼굴이었다.

"약룡전 부전주."

"네, 당 가주님."

독선의 부름에 잔뜩 긴장한 부전주가 쪼르르 달려왔다.

"이건 버리고, 이것만 가지고 가시게."

"그래도… 힘들게 만드신……."

"쓰레기네, 내 아들이 만든 건. 이로움보다 그 해가 곱절은 더 큰 쓰레기를 만들었어. 휴우, 어쩌다 내가 저런 것을 낳아 키웠는지. 부전주."

"나 대협이 만든 해독약이면 충분하고도 넘칠 걸세. 나 대협에게 제조법까지 받아 무림맹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면, 탈혼독에 대한 혼란은 순식간에 사라질 걸세. 값이 싸고 쉬이 구할 수 있는 약재들에, 그 제조 방법까지 간단하고 쉬우니……. 흐음,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네, 알겠습니다. 넵!"

그렇게 모든 소란이 마무리됐다.

부전주는 의원들과 무림맹 무사들에게 명령하여, 이미 수레에 실었던 당소호의 해독약을 모두 내려놓았다.

다시 그곳에 내가 가지고 온 해독약을 싣기 시작하였다.

난 바삐 움직이는 부전주에게로 가 제조법까지 건넸다.

나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하는 부전주였다.

곧 모든 해독약이 실리고, 무림맹 무사들과 조금 전 도착한 질풍백호대 사람들까지 떠날 채비를 마쳤다.

질풍백호대주와 부전주가 독선에게 인사를 했고, 나에게도 인사를 하기 위해 왔다.

"그럼 우린 무림맹으로 가 보겠습니다, 나 대협. 꼭 다시 만날 기회가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나 대협 덕분에 혼란에 빠진 천하가 빠르게 안정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무림맹으로 가자마자 나 대협이 준 제조법대로 많은 해독약을 만들고 제조법 역시 배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 대협."

태거충에 이어 부전주가 나에게 작별과 감사 인사를 했다.

"잠시만요, 부전주님."

"네?"

"잠시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난 몸을 돌려 독선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시선을 나에게서 떼지 못하고,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그였다.

"저… 당 가주님."

"말하시게."

"그게… 제가 당가에 돌려받을 게 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뒤에 시립하고 있는 일 장로를 보는 독선.

일 장로는 인상을 한 번 구긴 후, 다시 당가 무인들에게 명령했다.

"남은 붉은 코뿔소의 뿔을… 끄응, 모두 가지고 와라."

약왕전에 남은 열세 개의 붉은 코뿔소의 뿔이 모두 나에게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어렵게 구한 건데.

당연히 돌려받아야지.

열세 개의 뿔을 모두 손에 쥔 나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다.

아무튼 그렇게 기분 좋게 웃으며 다시 부전주에게로 갔고, 붉은 코뿔소의 뿔 한 개를 내밀었다.

"자, 받으세요."

"이, 이건……?"

"뭐가 이거예요? 붉은 코뿔소의 뿔이지. 잘 아시겠지만, 엄청난 영약이에요. 웬만한 영물의 내단보다 더 강력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요."

"이 귀한 걸 어찌 저에게……?"

"아까 절 위해 몇 번이고 나서 주셨잖아요. 우리 집 가훈이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아라’거든요. 고마워요.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도와주셔서요."

"하아, 저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어서 가세요. 지금도 탈혼독 때문에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잖아요."

그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게 질풍백호대와 무림맹 사람들이 무림맹으로 떠났다.

나도 여기 오래 있어야 좋을 일 없다.

더 있을 이유도 없고.

"당 가주님, 그럼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여전히, 아까의 얼굴 그대로 복잡하기만 한 심경의 독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아들의 무례는 내가 대신 사과하겠네. 물론 녀석을 크게 혼을 내 가르치겠고.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게."

"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당소호 대협에 대한 미움보다, 어려울 때 함께 싸워 준 당우국이란 친구를 얻은 뿌듯함을 기억하고 떠날 테니까요."

순간, 저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를 지켜보던 당우국 녀석이 울컥하는 게 고스란히 내 눈에 들어왔다.

"고맙네, 나 대협."

독선은 진심으로 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진심으로 보였다.

난 그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한 후 당가를 떠났다.

* * *

"나 대협! 나 대협!"

한참을 기다렸다.

멋지게 떠나야 했는데, 당가를 벗어난 후 녀석을 계속 기다려야 했다.

"당 소협!"

"헉헉. 오래… 오래 기다렸어요?"

"조금요. 우모침은요?"

"하아! 그게 말이죠. 아버지한테 걸렸어요."

"네? 걸려요? 독선께요?"

"네."

"아! 그러면 어떻게 해요? 못 만드는 거예요?"

내 물음에 당우국이 숨을 헐떡이면서도 환하게 웃는다.

"아니요. 헉헉."

"그럼……?"

"제대로 된 우모침을 만들어서 보내라고, 최고의 우모침을 만들어 보내라고 사 장로 숙부에게 명령하셨어요.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하하."

"아! 다행이네요. 휴우, 10년 감수했네. 하하. 고마워요, 당 형."

"당… 형?"

"됐어, 너도 이제 나한테 편하게 말해. 생사고락까지는 아니어도, 힘들 때 함께한 친군데."

녀석,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 그래. 그러자, 나 형. 하하하! 하하하하하!"

우모침은 황천 분타로 보내 주기로 하였다.

제대로 된 최고의 우모침을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아! 헤어지기 전, 당우국 녀석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나에게 해 주었다.

내가 떠난 후에도 독선은 그 자리에 한참이나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 시진을 넘게 그렇게 홀로 서서 많은 생각을 한 후, 당소호를 뺀 모든 자식을 소환했고, 다시 장로들과 당가의 핵심 고수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고 했다.

그런 후 독선은 모인 이들에게 한마디를 했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우리를 모두 불러 놓은 후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무슨 말이요?"

"우리 당가는 소림사도, 무당파도, 남궁세가도 두렵지 않다. 무황성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신성교를 두려워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당가는… 거지들을 대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건 당부가 아닌 명령이다."

사천 성도의 거지들 배 터지는 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것 같다.

* * *

집으로 가자.

가고 싶다.

정말 간절하게 가고 싶다.

엄마와 함께 자던 그 작은 움막이 너무 그립다.

낭만개 아저씨도 보고 싶고.

꼬맹이 거지 녀석들도 빨리 만나고 싶다.

그런데…….

그전에 할 일이 있다.

젠장.

아는 게 많으면 먹고 싶은 게 많다고.

가진 게 많으니 할 일도 많다.

붉은 코뿔소의 뿔 열두 개.

이걸 처리해야 한다.

이미 어떻게 할지 생각은 모두 해 두었다.

이걸로 은혜를 갚을 생각이다.

받은 은혜가 태산과 같이 높고 대해와 같이 깊지 않은가.

가훈을 지키려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리고 연주언 말대로, 죽을 줄 알면서 이 붉은 코뿔소의 뿔을 빼앗기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들 미친놈들이 차고 넘치는 게 무림이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귀찮아질 수 있다.

휴우, 정말 집으로 가서 며칠 푹 잠만 자고 싶은데.

어쩌겠는가.

할 일은 해야지.

일단, 말부터 한 마리 사자.

나도 진짜 제대로 된 말 좀 타 보자.

다들 잊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내 수중에 황금 2,000관 있다.

* * *

자양 마시장.

일부러 사천당가가 있는 성도를 빠르게 벗어나 인근 도읍인 자양으로 왔다.

마시장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다랗다.

차마고도를 통해 새외에서 들어오는 말들의 상당수가 이곳을 거쳐 중원 전역으로 팔려 간다고 한다.

그 규모가 실로 입을 쩍 벌어지게 할 정도다.

내가 말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여기 말들 대부분 상태가 매우 좋다.

아니, 지금은 나보다 말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말들의 기운이, 그 성격과 힘 그리고 인간을 대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난 천천히 걸으며 커다란 마시장의 말들을 훑어보았다.

훌륭한 말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다 갖고 싶었다.

그만큼 좋은 말들이 많았다.

마시장을 한 바퀴 도는 데에만 반 시진이 더 걸렸다.

그사이 내 눈에 들어온 말들은 100마리가 넘고.

아! 어느 놈을 고르지?

푸르릅(야!).

어라?

저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건다.

명마다.

아니, 명마 중의 명마다.

나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훌륭한 말이다.

푸르르르릅(건초 좀 줘). 푸룹(당근은 더 좋고)!

하아!

명마인 줄 알았더니, 멍청한 녀석이다.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말을 거는 놈이다.

확실히 이 세상의 동물들은 지능이 많이 단순한……. 오! 찾았다.

진짜 명마 중의 명마.

수백 수천 마리의 말 중에 유독 빛을 발하는 명마.

그 말에 서린 기운마저 어마어마하다.

영물은 아니지만, 준영물… 음, 준영물에도 조금 부족하긴 하다.

그래도 엄청난 건 분명하다.

마시장에 있는 수천 마리의 말 중 단연 저 말이 최고다.

확실하다.

그리고 이거 말이다.

운명인가?

상서로운 기운에 스스로 빛까지 발하는 말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운명처럼 터벅터벅,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마치 당신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처럼.

태어나기 전부터 우린 한 쌍의 절대적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명마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나 대협."

뭐지?

명마를 끌고 온 사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이 역시 운명인가?

"저를 아십니까?"

"물론이죠. 만리상단에서 왔습니다."

"만, 만리상단이요?"

"네, 말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저희 만리상단의 모든 계열 분점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 그건 아는데……."

"나 대협께서 자양 마시장에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급한 대로 이곳에서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명마를 한 필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죠?"

"공짜입니다. 무료요."

"저 돈 많아요. 돈 드리고 살게요."

"파는 말이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값을 매길 수 없는 명마입니다. 그냥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신세 지기 싫은데."

"타시는 곳까지 그냥 타시고 갔다가, 버리시면 됩니다. 천하에 만리상단 분점이 없는 곳이 없고, 그곳에서 알아서 회수할 겁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이 녀석이건 다른 말이건 다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음……."

아! 젠장.

이건 만리상단의 선전포고다.

내가 이럴 것 같아서 일부러 만리상단 쪽으로 안 간 건데.

만리상단에서, 그러니까 연주언의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해서든 사위로 삼겠다는 각오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준비를 엄청나게도 한 모양이다.

난 만리상단의 사위가 되지 않으려면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패배는 곧바로 만리상단의 사위가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피 튀기며 싸우는 전쟁은 자신 있어도, 이건 솔직히 무섭다.

무릇 개방의 방도가 가장 두려워할 것은, 전장에서 날아드는 칼과 화살이 아닌 안락함과 포근함이기 때문이다.

이히히히히잉(새꺄, 탈 거면 빨리 타고, 말 거면 남자답게 제대로 거절해)!

명마… 맞다.

젠장.

딱 이번만이다.

이번만 만리상단의 호의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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