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독을 먹은 건 난데, 당소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동시에 살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동공에는 지진이 일어났고.
당장에 나를 쳐 죽일 것 같은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소가주! 정신 차리시오."
뒤에서 일 장로의 안타까운 음성이 들렸다.
하지만 당소호의 분노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 그런 놈을 향해 조금 더 짙은 비웃음을 머금고.
"너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어. 첫째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해 놈을 더 놀려 주려고 했는데, 놈이 한 손을 들어 내 말을 저지했다.
그러더니 이내.
벌컥벌컥. 벌컥벌컥.
와!
이 새끼,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누렁이의 똥과 오줌을 숨도 쉬지 않고 단번에 다 마셔 버렸다.
쾅!
쨍그랑.
국물 한 방을 안 남기고 다 마셨다.
그걸 강하게 탁자 위에 내려놨고.
당연히 그릇은 산산조각이 났다.
놈은 중독되지도 않았는데, 눈의 실핏줄이 모두 터질 것같이 붉어졌다.
나를 노려보는데, 이번엔 진짜로 죽일 기세다.
으르렁거리지만 않고 있을 뿐.
놈의 분노는 이미 한계치를 넘은 듯했다.
"이젠… 내 차례… 끄어어억."
우웩!
놈이 말을 하다가 트림을 했다.
개똥… 우웩!
냄새가 진짜 지독하다.
"이젠 내 차례다."
놈은 눈으로 검강이라도 쏠 것처럼 나를 노려보며, 동시에 손을 뒤로 뻗었다.
약왕전에서 당가의 고수 한 명이 급하게 자기 병 하나를 가지고 와 당소호에게 건넸다.
척!
탁자 가운데 하얀 자기 그릇을 놓더니.
이내 자기 병의 액체를 콸콸콸 그릇으로 쏟아부었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한다.
아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따갑다.
화골산(化骨散) 종류의 독인 것 같다.
화골산은 보통 하독하지 않는다.
그냥 뿌린다.
왜?
그 독성이 너무 강해, 냄새가 지독하고 역겨우며, 그냥 그 증기가 피부에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하독할 수 있는 독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불어 화골산은 그냥 모든 것을 녹여 버린다.
그러니 하독할 필요도 없고, 그냥 뿌리면 상대는 무조건 죽는다.
오죽하면 이름이 화골산이겠는가?
피부와 살은 물론, 사람의 뼈까지 모두 흔적도 없이 녹여 버려 화골산이다.
당소호가 미쳤다.
이건 정상적인 독 대결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 대협! 화골산은 아니지 않습니까?"
약룡전의 부전주가 용기를 내어 나섰다.
하지만 당소호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받자마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당소호는 그렇게 부전주를 한 번 노려본 후, 다시 나를 향해 눈빛 검강을 마구 쏘며 말했다.
"너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럼 다른 독을 준비하지."
응, 말 안 됨.
그런데 말이다.
개똥을 먹이는 것도 역시나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내가 펼친 계책에 내가 빠져 버린 꼴이었다.
난 잠시 멈추었던 식은땀을 다시 쏟아 내기 시작했다.
손끝까지 미세하게 떨며, 동공은 지진을… 아! 이건 노력으로 안 되는군.
동공 지진은 내 연기력이 아직 부족해 할 수 없었고.
그래도 두려움과 극심한 갈등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연기하며, 주저하고 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조금 전 누렁이의 똥오줌으로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당소호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놈은, 내가 했던 말을 되돌려 주려 했다.
"너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
손을 들어 놈을 제지했다.
그런 후 바로!
화골산이 들어간 그릇을 집어, 벌컥벌컥.
"꺄아아악!"
"어허!"
"엇!"
여기저기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몇몇 여인들은 차마 화골산에 녹아내릴 나를 볼 수 없다는 듯, 고개까지 돌려 버렸다.
"커어어어억!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난 다시 극사실주의적 연기.
정말 실제와 똑같은 최고의 연기를 펼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부여잡고.
땀과 침, 콧물과 눈물까지 마구 흘려 대며.
바닥을 기고, 구르고.
"크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당소호가 승리의 대소를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척!
땅바닥을 구르던 내 한 손이 대결의 탁자를 집었다.
척!
다시 다른 한 손까지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당소호의 대소와 모든 이들의 탄성이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끄으으으윽. 끄으으으응."
나는 힘겹게.
정말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힘겨운 모습으로, 또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를 이겨 내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다시 일어섰다.
당소호는 재차 귀신을 본 것과 같은 얼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소호만 그런 게 아니라,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귀신을 본 것과 같은 얼굴로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수백 명이 있지만, 정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한 장내.
내가 고통스러우면서도 힘겨운 얼굴로 당소호를 향해 말했다.
"이젠… 내 차례."
그런 후 주위를 둘러보며.
"누렁아. 누렁아, 어디 갔니?"
순간 당소호가 충격에 휘청였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걸 가까스로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간 상태였다.
동공은 완전히 풀렸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린 당소호.
나는 계속…….
"누렁아! 누렁아! 딱 한 번만 도와줘. 독이 더 필요해. 독 한 덩이만 더 싸 줘. 누렁아!"
곧 죽을 것 같은 초췌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누렁이를 찾았다.
아무도 그런 나를 향해 입조차 뻥끗하지 못했고.
당소호 역시 여전히 혼백이 나간 얼굴로 그런 나를 멍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오! 누렁이 여기 있었네? 착하지. 이리 온."
그렇게 내가 겁에 질린 누렁이를 품에 안자.
"그만! 이번엔 내가 먼저 공격하겠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당소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여전히 누렁이를 품에 안은 채 대결 탁자로 돌아와 그와 마주했다.
"이번엔 내 차례잖아."
"아니! 내 차례다."
"내 차례 맞잖아!"
"아니야! 너에게 두 번이나 선공을 양보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공격하겠다."
당소호 이 새끼.
급하긴 급했나 보다.
억지를 부린다.
그런데 그게 통한다.
약룡전의 부전주가 다시 나서려고 하자, 당소호가 이번엔 진짜로 죽일 것처럼 살기까지 마구 뿜어 대면 그를 눈빛으로 제압했다.
약왕전주와 무림맹 의원들, 고수들 모두 그런 당소호의 눈빛 협박에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놈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꽂혔고.
개새끼도 아닌 놈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부탁하는 거 아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공격한다."
하아! 새끼.
정신이 나갔군.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다.
흘리던 땀을 모두 멈추었다.
시퍼렇던 안색도 모두 원래로 되돌렸다.
두렵고 고통스러워하던 연기 일체를 모두 멈추었다.
그런 후 놈을 향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동시에 하면 되겠네. 슬슬 지겨워지려던 참인데. 끝을 보자. 이번 판으로."
태연하면서도 차가운 나의 한 마디.
놈의 동공에 다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다.
인정하려 하진 않지만, 지금 내 상태가 너무나 멀쩡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내, 당소호가 한 차례 몸을 크게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이번에 널 죽이겠다."
"그럴 수 있으면 그러고."
난 누렁이를 놓아준 후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 당가 일 장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물 한 병만 주실 수 있나요?"
가만히 고민하는 일 장로.
그러더니 당가의 고수 한 명을 불러 귓속말을 했고.
고수는 곧장 물 한 병을 가지고 와 나에게 주었다.
난 그것을 받아 탁자 위 하얀 그릇에 콸콸콸.
물을 가득 따랐다.
"이건… 이건 뭐냐?"
"독."
여전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인 당소호.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고는 싶었는지 의심 가득한 눈을 한다.
그런 놈을 한 번 비웃어 준 후.
"누렁이가 독을 더 만들 수 없다고 해서.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면 안 돼. 이 독은 내가 직접 만든… 그냥 봐라.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 수 없는 독이니. 그게 너와 나의 차이기도 하고."
난 물이 담긴 그릇 위, 한 척(30cm) 허공에 손을 뻗었고, 다시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자연을 향해 말했다.
‘힘을 줘, 나쁜 힘.’
순간 자연의 기운이 나에게 마구 몰려들었다.
모두 나쁜 기운이다.
특히 당가에서 뿜어 대는 온갖 위험한 독의 기운이 혼재되었다.
나는 그것을 모두 내 육체로 머금은 후.
뚝.
뚝.
뚝.
내 주먹에서 검은 액체가 방울이 되어 뚝뚝 그릇의 물속으로 떨어졌다.
모두가 숨죽여 이를 지켜보았고.
"독… 독인(毒人)이다."
어느 늙은 당가 고수의 혼잣말이 마치 천둥 번개처럼 큰소리로 모두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또 누군가는 경악한 얼굴을.
하지만 아무도 말을 내뱉지 못했다.
너무나 큰 충격에 그리된 것이다.
독인이라 함은, 야수궁의 신경에 매우 근접한 경지를 의미한다.
다시 독인이라 함은, 당가의 가주 독선 당태식과 같은 경지를 의미한다.
독이 그 자신이고, 자신이 바로 독인 경지.
독공으로 화경이라는 초인의 경지에 이른 것을 뜻한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두 틀렸다.
난, 이미 그 이상이다.
지금 모두를 놀라게 하는 이 정도는, 나에게 있어서 그저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
장난 수준.
왜?
말하지 않았나.
당우국 얼굴을 봐서, 녀석의 큰형인 당소호의 목숨을 빼앗지 않겠다고.
툭.
툭.
툭.
투명했던 물이 어느새 검게 변해 있었다.
당소호는 검게 변해 버린 물을 보고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계속, 그저 죽일 듯 나를 노려보고만 있다.
놈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다.
제가 마실 독이 어떤 것인지, 또 내 경지가 어떠한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저 나를 죽일 생각뿐이다.
척!
결국 놈이 내 독은 깡그리 무시한 채, 탁자 위로 하나의 작은 병을 올려놓았다.
손가락 크기의 병이다.
놈은 그 병의 마개까지 직접 열어 주었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때.
"소가주! 무형지독은 가주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당가의 이 장로가 다급히 말리려 했다.
하지만 이내 일 장로가 그런 이 장로를 제지했다.
하아!
이 새끼.
결국 그걸 꺼냈군.
무형지독(無形之毒)이다.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아버지인 독선 당태식에게 받은 극독 중의 극독, 독의 왕, 절대지독이라고도 불리는, 다시 현존하는 전설의 독이라는 독.
놈이 정신이 나간 얼굴로, 다시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마셔.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너도 마셔. 한 방울도 남기면 안 돼."
난 놈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작은 병을 집었다.
그러자 놈도 내 독이 담긴 그릇을 손으로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며.
다시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살얼음판이라는 말조차 부족할 엄청난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 속.
나와 당소호는 거의 동시에, 다시 천천히 각자의 독을 들어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런데 그때였다.
"멈추어라!"
어마어마한 사자후.
아!
이건 정말 엄청나다.
아무리 사자후라지만, 단순한 외침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내 심장이 철렁였고, 다리가 휘청였다.
누구지?
설마……?
약왕전으로 통하는 문.
그곳에 모습을 보인 건.
어라?
저 녀석 도망간 거 아니었어?
당우국이다.
아까 눈물까지 글썽이며 도망갔던 녀석이… 하아!
당우국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비걸개 후보생 때 초상화로 수없이 봤던 인물이다.
아니, 초상화를 보지 않았어도 난 그가 누군지 대번에 알 수밖에 없었다.
절대자의 기운이, 초인의 기운이 그에게서 마구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독선 당태식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