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12화 (111/174)

112화

육 장로가 당가의 무인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했다.

이내,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당가주의 남은 아들과 딸들이 모두 자리에 모였다.

그들만이 전부가 아니다.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고수들과 혈기왕성한 젊은 고수들까지.

순식간에 200, 300명에 달하는 당가의 핵심 인물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해 놓았던 것처럼 약왕전 마당에 몰려들었다.

이 새끼들, 처음부터 작정한 게 맞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줄 절호의 기회다.

웃으면 안 된다.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난다.

"나 소협, 괜찮으십니까?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면, 제가 어떻게든 선처를 구해 보겠습니다."

무림맹 약룡전의 부전주.

내가 웃음 참는 걸 오해한 모양이다.

괜찮은 사람이군.

아니, 좋은 사람이다.

나중에 이 은혜도 갚아야지.

기분 좋다.

하지만 연기는 끝까지 해야 한다.

아! 웃음이 계속 난다.

"나 소협,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입니다."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끝까지! 끝까지 이 대결을 마무리할 겁니다."

결연한 표정까지 지으며 그리 말했다.

부전주와 무림맹 의원들은 그런 나를 마치 이미 죽은 사람을 보듯 안타까운 눈으로 봤다.

괜찮다.

곧 모든 걸 알게 될 테니.

웃지 말자.

아! 계속 웃음이 난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당가 사람들 분위기는 좋다.

마치 재미난 구경이라도 온 것처럼,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그렇게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 있다.

그래, 언제까지 웃나 보자.

그렇게 독 대결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나 소협. 아니, 나 형!"

당우국 이 녀석.

울려고 한다.

자기의 혈육인 당가 사람들 곁이 아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끝내 내 곁을 지킨다.

"당 소협, 걱정하지 말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

"조금만 버티고 있어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 꼭 살아 있어야 해요. 꼭이요, 꼭."

이 녀석 뭔 소리야?

도망가겠다는 소리를 이렇게 거창하게 하나?

그러더니 녀석이 내 두 손을 꼭 잡는다.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을 오물오물하다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휙 돌아선다.

이내 냅다 뛰어 약왕전을 벗어나 버렸다.

아! 새끼.

좋게 봤는데.

도망가네.

뭐, 됐다.

녀석이 있건 없건, 대결의 승패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준비됐나?"

일 장로가 목소리에 내공까지 실어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나를 향해 말했다.

이미 약왕전 마당의 중심에는 하나의 둥그런 탁자가 놓여 있고, 그곳에서 당소호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난 일 장로를 향해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거만하게 끄덕인 후, 중심의 탁자로 향했다.

비장한 표정, 결연한 분위기, 슬쩍 두려움을 극복하려 애쓰는 연기까지 하며.

그런 내 모습에 당소호의 비웃음이 더 짙어졌다.

"선수를 양보하지."

미친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따로 없다.

나쁜 의미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정말?"

"그래, 얼마든지."

"내가 주는 건 다 먹을 수 있어?"

웃는다.

절대적 자신감이다.

이 새끼, 분명 엄청난 피독약과 만능 해독약 뭐 그런 걸 이미 복용한 게 분명하다.

어쩌면 사흘 전부터 복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양보한다면 사양하지 않겠다."

"그래, 얼마든지. 그런데 가지고 있는 독은 있어?"

없다.

괜찮다.

난 주위를 슥 둘러봤다.

안력까지 극대화해 살피고 또 살폈다.

음, 찾는 게 없… 앗! 있다.

방금 생겼다.

저벅저벅.

모두가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저벅저벅 걸어 약왕전의 한쪽 담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큭큭큭.

마침 개새끼 한 마리가 따끈따끈한 똥을 싸지르고 있다.

나뭇가지를 주워 잘라 기다란 젓가락으로 만든 후.

그걸로 개똥을 집었다.

저벅저벅.

모두가 경악한 눈으로 그런 나를 보고.

나는 당당하게 걸어 돌아왔다.

그리고 그걸…….

척!

탁자 위에 척 하고 올려놨다.

시종일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던 당소호의 얼굴이 급변하였다.

붉으락푸르락,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걸 넘어.

이건 형언할 수 없는 극한의 일그러짐으로 마구 변해 갔다.

이를 지켜보는 모두는 경악하여 숨소리마저 내지 못했고.

나는 그런 당소호를 뻔뻔하게 쳐다봤고.

당소호는…….

"너… 너……."

이 새끼도 진짜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먹어."

큭큭큭큭큭큭.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지 말자.

참아야 한다.

난 진짜 내공까지 운용해 웃음을 억지로 참았고.

당소호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얼굴만 계속 일그러질 뿐.

"먹으라고."

내가 재촉을 했다.

당소호 이 새끼, 이러다 울겠다.

큭큭.

난 정색을 하고, 다시 근엄한 표정까지 지으며 제법 큰 목소리로 말했다.

"너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패배를 인정하고, 나에게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짖는 것이 첫 번째."

"너… 너 이 새끼……."

"두 번째는… 먹어."

아무도, 자리에 있는 수백 명 중 단 한 명도.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저 경악한 얼굴로 점차 악귀처럼 얼굴이 변해 가는 당소호를 볼 뿐이었다.

그리고 당소호는…….

결국 젓가락을 집었다.

내 눈에 자신의 눈을 고정한 채.

그렇게 천천히 젓가락을 집어.

개똥을… 따끈따끈한 개똥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이 새끼도 진심이다.

위기다.

내 웃음이 또 터질 것 같다.

정말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다시 근엄한 얼굴로 놈에게 말했다.

"다 먹어. 하나도 남기지 말고."

놈은 결국, 몇 번이나 주춤주춤하면서도 뜨끈뜨끈한 개똥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뱉으면 지는 거다. 다 먹어."

대단한 놈이다.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큭큭큭.

미친놈.

진짜로 저걸 다 먹네.

아놔!

돌겠다.

웃지 말자.

계속 웃음이 터진다.

참아야 한다.

결국.

"꿀꺽."

놈이 개똥을 통으로 다 삼켜 버렸다.

아! X팔.

저 새끼 입에서 똥 냄새 나는 것 같아.

그래도 정색을 하며 여전히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당소호.

비위가 정말 좋은 놈이다.

당가 놈들은 다 비위가 좋은가?

어떻게 저걸 먹고 저렇게 정색할 수 있지?

와!

대단하다.

이건 인정이다.

"내 차례군."

"후회해?"

"……?"

"나에게 선수를 양보한 거 후회하냐고."

"됐다."

"나라면 후회했을 텐데. 개똥… 우웩."

"내 독을 먹고도 그리 장난칠 여유가 있는지 보겠다. 아니, 살아 있길 바란다. 준비한 독이 많으니."

놈에게서 살기가 마구 피어오른다.

죽일 생각이다.

휴우, 이제 그만 웃고 나도 진지해지자.

"그럴 수… 있을까?"

슬쩍 겁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당소호의 얼굴에서 사라졌던 비웃음이 슬그머니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끼, 방금 똥 먹은 거 벌써 잊은 모양이다.

일깨워 주고 싶은데.

됐다.

이젠 내 차례다.

내가 아무리 만독불침이라고 해도, 상대는 당가의 소가주다.

방심하면… 응, 방심해도 돼.

척!

놈이 탁자 위에 품에서 꺼낸 작은 구슬 크기의 환단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은 설명을 친절하게도 해 준다.

"오혈독(五血毒)을 바탕으로 내가 새롭게 만든 독이다. 오혈독은 너도 들어 봤을 것이다. 꽤 유명한 독이지. 복용하게 되면 인체의 주요 다섯 개의 혈도를 타들어 가게 해 사람을 죽게 만들지. 마치 불에 타 죽는 것과 같은 고통 속에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내가 만든 건, 보통의 오혈독보다 수백 배의 더 강력한 고통이 동반될……."

놈의 설명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놈이 한창 입에 침을 튀기며 설명… 아니, 똥을 튀기며 설명할 때.

내가 냅다 그 독을 집어 입으로 넣었다.

순간 당소호가 놀란 얼굴을 했고.

여기저기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헉! 커어어어어억!"

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다시 배를 잡고 괴로워했다.

"나 소협!"

약룡전 부전주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여기저기서 놀람과 안타까움의 탄성이 또 한 번 크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서슬 퍼런 당소호의 기세 앞에서 나서지는 못했다.

"으으으윽. 끄으으으으으윽."

나는 일부러 내공까지 운용해 식은땀을 마구 흘리고, 또 안색마저 중독된 것처럼 새빨갛게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척!

주저앉은 상태로, 인상을 마구 구기며, 다시 식은땀을 비 오듯 마구 흘려 대며.

탁자를 한 손으로 잡고 힘겹게 일어섰다.

보는 이들 모두가 그런 나를 향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는 얼굴들을 했다.

당소호마저 순간 놀란 얼굴이었으나.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깟 오혈독에 죽으면 안 되지. 큭큭."

"이젠… 끄윽, 이젠 내 차례……."

큭큭큭.

아놔! 이 새끼 곧바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주위를 살폈기 때문이다.

있다.

방금 똥 쌌던 그 누렁이.

난 배를 움켜잡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힘겹게 그 누렁이를 향해 걸어갔다.

모두가 경악한 얼굴을 했지만, 어디 당소호만 하겠는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아니 정말 믿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말문마저 막힌 당소호.

그러거나 말거나.

난 누렁이에게 다가가.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연기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누렁아, 누렁아."

꼬리를 마구 흔들며 나를 반기는 누렁이.

"독… 나에게 독을 한 덩어리만 더 줄래?"

영문을 모르는 누렁이는 그저 계속 꼬리만 마구 흔들어 댈 뿐이었다.

물론 누렁이가 그렇고, 모두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내가 미쳤나 싶은 얼굴도 하고, 똥을 독이라 표현하는 것에도 황당하고.

아무튼 나는 처절한 표정을, 정말 간절함을 담아 누렁이에게 말했다.

"똥… 아니, 독. 독이… 지금 나는 독이 필요해. 부탁이야, 누렁아. 독… 독을 싸 줘. 큼지막한 독이면 좋겠어."

경악에 경악에 경악.

나는 진지에 간절에 처절함.

누렁이는 해맑기만 하고.

- 야! 똥 좀 싸.

누렁이에게 전음을 보냈다.

"멍멍(먹을 거)! 멍멍(먹을 거 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말이 잘 안 통한다.

- 야이, X새끼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멍멍(누군데)? 멍멍멍(먹을 거나 줘, 인간아)."

- 하이, 새끼. 분위기 파악 못 하네. 야! 나 개방의 방도야.

"멍멍(그게 뭔데)? 멍멍(먹는 거야)? 멍멍멍(나 좀 줘, 배고파)."

- 이 새끼가 그래도. 나 거지라고. 거지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 개고기야, 인마! 너 지금 똥 안 싸면, 콱! 펄펄 끓는 가마솥으로 넣어 버린다.

"멍멍(미친 새끼)! 멍멍멍(꺼져, 미친 인간아)!"

누렁이는 그렇게 말한 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 누렁이 주제에 나에게서 도망가려고.

난 곧바로 녀석을 잡았고.

어쩔 수 없었다.

말이 안 통하면 실력 행사를 해야지.

놈을 안아 들고, 잔뜩 겁에 질려 꼬리를 만 녀석을 향해 살기를 슬쩍 뿜어 댔다.

곧.

쉬이이이이이익!

척!

난 산백신법까지 발휘해야 했다.

독 대결을 위해 탁자 위에 놓인 하얀 그릇을 잽싸게 가져와 누렁이의 거시기 아래에 받쳤다.

동시에 살기를 조금 더 강하게 내뿜었고.

기겁한 누렁이는 겁에 질려 똥오줌을 마구 갈겨 대기 시작했다.

쪼르르르르르르.

첨벙첨벙.

누렁이의 똥과 오줌이 일대일의 배율로 정확하게 섞인 훌륭한 독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누렁이를 놔준 후, 누렁이의 똥오줌이 한데 섞인 그 그릇을 들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모두가 경악에 경악을 하는 순간… 와! 당소호 표정 보소.

귀신을 봐도 저런 표정은 못 짓겠다.

아!

내 실수다.

아무리 목숨을 건 대결이라고 해도.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라는 것이 있다.

난 다시 내 주변을 살폈다.

작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런 후 하얀 그릇에 담긴 누렁이의 똥과 오줌을 살래살래, 잘 섞일 수 있게 저었다.

그렇지.

아무리 대결이라도, 이 정도 배려는 해 줘야지.

어험.

나는 중독 증상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 식은땀을 여전히 뻘뻘 흘리며.

동시에 당소호가 분명히 볼 수 있는 비웃음을 슬그머니 머금은 채.

그렇게 놈에게 다가갔다.

척!

다시 탁자 위에 그릇을 올려놓은 후.

놈에게 말했다.

"마셔. 국물까지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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