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100배?"
내가 황당해하며 묻자, 당우국이 더없이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네, 100배."
"100배면……?"
"죽음."
"다른 가능성은……?"
"없어요."
"음……."
미친놈들이다.
은혜는 두 배, 원수는 열 배, 열받을 땐 100배란다.
아놔!
돌겠네.
당가 놈들이 제정신이 아닌 건 알았지만, 진짜 단체로 미친놈들이다.
"진짜로 100배?"
"네, 진짜로 100배. 죽음."
"왜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겠다고 했잖아요."
"나 소협, 아시잖아요. 세상은 그리 순수하지도 또 정직하지 않다는 거."
많은 의미가 포함된 말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일리도 있다.
예를 들어 비무행 같은 걸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우연히 천하제일 신공을 얻었다.
산속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열심히 수련한 후 하산했다.
자신의 수련 성과가 어떤지 확인도 하고, 동시에 자기 명성도 알릴 겸 비무행에 나선다.
다짜고짜 남궁세가를 찾아가 남궁세가주에게 도전장을 날린다 치자.
과연 남궁세가주가 이를 받아 주겠나?
응, 안 받아 준다.
미치지 않고서 뜨내기 무인의 도전을 받아 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또 그에 근접한 무문의 수장은 없다.
단 한 명도.
왜?
그냥 싸워서 이기면 되지 않겠나?
그런데 왜 도전을 안 받아 줄까?
당연한 일이다.
이기면 본전, 지면 손해지 않겠나.
아니, 이겨 봤자 본전도 찾기 힘들다.
전혀 득이 될 일이 없기에 애초에 도전 자체를 받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당소호는?
나도 이제 칠룡사봉이다.
말석이긴 하지만, 천하에 내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당소호는?
차기 가주다.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당가의 확실한 차기 가주.
아니, 현재 절반은 이미 가주 위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노는 세상은, 칠룡사봉과 같은 젊은이들의 세상이 아닌, 소림사의 방장이나 무당파의 장문인, 남궁세가주 같은 거물들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는 천하 무림에 산재한 수십, 수백만 명의 후기지수 중 그냥 이름 좀 더 알려진 애일 뿐일 테다.
그런 나의 도전을 받아 줘 그가 얻을 수 있는 이익 따위는 없다.
정말 그가 천하를 걱정하는 성인(聖人)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내 도발에 도전을 받긴 했지만, 아마 내가 치독전을 벗어난 후 빠르게 머리를 굴렸을 테다.
그가 아니라도, 그의 옆에 있는 늙은 당가의 여우들이 그에게 계산서를 뽑아 줬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그냥 죽이는 게 정식 도전을 받는 것보다 압도적인 이익이라는 값을 받았을 테고.
어디 아니겠는가?
그들 스스로 해독약의 문제점에 관해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고, 이거 괜히 잘못했다가는 개망신당할 게 뻔한데 말이다.
위험은 크고, 이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고.
어쩌면 나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르겠다.
"당 소협."
"네, 나 소협."
"제가 죽으면, 당가도 멸문해요."
당우국이 인상을 구긴다.
그러더니 빠르게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나 소협, 나 소협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아요. 개차반에다 성격마저 지랄맞은 제가 다 존경할 정도면, 나 소협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에요."
이 새끼, 자기 관철만큼은 훌륭한 녀석이네.
자기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어.
"그런데 말이죠, 정말 그럴까요?"
"응, 정말 그래요. 제가 죽으면 당가도 멸문."
"나 소협이 죽는다고, 개방이 우리 당가와 전쟁이라도 할 것 같아요?"
이 녀석, 뭔가 오해하고 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건 개방이 아닌 낭만개 아저씨를 말하는 거다.
그런데 그걸 말해 줘도 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사이, 녀석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수백 명이나 수천 명이 죽지 않아요. 우리 당가와 싸우게 되면. 그리고 만약 그 상대가 개방이라면, 최소한 수십만 명이 죽게 될 거예요."
"음……."
"우리는 무적이 아니에요. 우리도 우리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면 죽게 돼 있어요. 멸문이죠. 그렇다면 상대는 어떻게 될까요? 최소한, 최소한 말이죠. 팔과 다리 하나씩은 잘리게 될 거예요. 우리를 멸문시킨다 하여도, 상대 역시 되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상태가 될 거란 뜻이지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개방은 절대 나 하나 때문에 당가와 싸우지 않을 거란 말이요?"
"네, 맞아요. 나 소협이 죽게 되고, 나 소협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깨닫게 된다면 큰형도 후회할 거예요. 하지만 그게 끝이에요. 개방에 사과와 보상. 다시 몇 년이 지나면 아무도 나 소협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요."
"개죽음?"
"네, 그러니 어서 사천을 떠나요."
"당 소협."
"네, 나 소협."
"왜 나에게 이런 충고를 해 주는 거죠? 조금 전 저는 당가의 미래 가주가 될 당 소협의 큰형에게 도전했는데 말이에요."
"말했잖아요. 나 소협을 인정하고 존경한다고."
"음……."
"그리고……."
"……?"
"약속했잖아요."
"뭘요?"
"불사괴에게 죽을 뻔했을 때, 나 소협이 구해 줬잖아요. 목숨의 빚. 두 배로 갚겠다고."
이 녀석.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좀 이상한 녀석이긴 한데, 은원만큼은 확실하기도 하다.
낭만개 아저씨 얘기는 일단 말하지 말자.
난 죽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대놓고 날 죽이기는 힘들지 않겠어요?"
"밥 먹다가 목에 뭐가 걸려 죽고, 설사로 탈진해서 죽고, 자다가 그냥 죽고, 여자랑 그거 하다가 복상사로 죽고, 길을 걷다가 머리가 띵해 쓰러졌는데 돌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사인(死因)을 알 수 없는 죽음이 어디 한 줄인 줄 아세요?"
"그럼……?"
"우리 당가에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이 제가 아는 것만 최소 1,000개는 넘어요."
하아!
대단하다, 대단해.
이 새끼들 진짜 정파 맞아?
하지만 그래도 난 안 죽는다.
"암기는요?"
"암기는 흔적이 남잖아요. 9할 9푼 9리. 독을 쓸 거예요."
역시, 안 죽는다.
"그럼 됐어요."
"뭐가 돼요? 방금 제가 한 얘기 못 들었어요?"
"독에는 안 죽는다고요."
"나 소협!"
"귀 안 먹었으니까, 소리 지를 필요 없고. 당 소협."
"왜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다시 설명해 줘요?"
"그건 됐고. 은혜 갚는다고 했죠?"
"지금 갚으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잖아요. 나 소협 살리려고."
"다른 걸로 갚아 줘요."
"네?"
"해독약 만들어야겠어요."
"아니, 지금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거예요? 죽는다고요. 나 소협 곧 죽어요. 쥐도 새도 모르게."
"안 죽는다고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도와줘요. 장소와 도움을 줄 보조 의원, 그리고 기본적인 약재를 구해야 해요."
"어느 미친 의원이 사천 땅에서 당가와 척을 진 나 소협을 도와서 그런 걸 내주겠어요?"
"그러니 당 소협한테 부탁하는 거잖아요."
당우국이 인상을 와락 구긴다.
건들면 눈물이라도 쏟을 기세다.
"진심이에요?"
"네, 진심입니다. 도와줘요, 당 소협."
"죽어도……."
"안 죽어요. 그리고 죽어도 내 책임. 당 소협한테는 책임 없어요."
"휴우."
"있죠? 내가 해독약을 만들 장소."
"있긴 한데… 거기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예요."
"어딘데요?"
"혜민각(惠民閣)."
오! 들어 봤다.
사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천하 각지에 있는 게 혜민각이다.
가난한 백성들을 거의 무료로 치료해 주는 곳이다.
"갑시다."
"일단 부탁은 해 볼 텐데. 저도 장담할 수 없어요."
"가요, 당 소협."
* * *
혜민각의 각주와 당우국은 한 시진이 넘게 단둘이 대화를 나눴다.
당우국의 끈질긴 설득과 부탁 끝에 혜민각의 각주는 나를 돕기로 했다.
단, 조건이 붙었다.
"나태한 소협이라고요?"
"네, 각주님."
"탈혼독에 관한 연구를 하겠다는 훌륭한 뜻에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상황을 보아하니 당가와 현재 좋은 분위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아주 조금 그렇긴 합니다."
"우리 혜민각에서 일하는 의원의 7, 8할이 모두 당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의원들입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탈혼독 제조에 관한 연구는 최대한 돕겠으나, 혜민각 내에서라도 저는 나 소협의 안전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네, 네.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몸은 제가 지킬 테니까요. 하하하. 약재나 좀 넉넉히 지원해 주십시오."
그렇게 혜민각에서 탈혼독의 해독약 제조가 시작되었다.
내일모레까지 만들어야 한다.
머릿속의 제조법이 완벽할 수는 없다.
당연히 실험도 해야 하고, 임상 실험도 거쳐야 한다.
나는 먼저 탈혼독을 제조하였다.
그다음 내 머릿속에 있는 해독약의 제조법 중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몇 개의 해독약을 만들었다.
내가 탈혼독을 복용하고, 다시 해독약을 복용해 그 중독과 해독의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길평의경』을 기반으로 자연국에서 깨달은 내 의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훌륭했다.
문제는…….
아놔! 이 미친 새끼들.
의원이란 것들이, 아주 개잡종 놈들이다.
밥에도 독을 타고, 물에도 독을 타고, 차에도 독을 타고, 잠잘 때는 방에다 독연까지 뿌려 댔다.
나에게 그런 시도를 한 몇몇 의원은, 내가 해독약을 만들 때 가장 측근에서 돕던 자들인데.
밥을 먹고도 멀쩡하고, 물을 마시고도 멀쩡하고, 잠을 자고 나서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는 나를 보며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려워하며 식은땀을 흘려 대기도 했다.
당가에서 시킨 모양이다.
뭐, 됐다.
그 독이 나에게는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훌륭한 영양분일 뿐이다.
하지만 나의 해독약은 정말 빛과 같은 속도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 * *
"나 소협, 몸은 괜찮아요?"
하루가 지나 당우국이 찾아왔다.
나는 멀쩡한데, 오히려 녀석의 안색이 안 좋았다.
"큰형한테 혼났어요?"
"아니요, 큰형은 그냥 모른 척하더라고요. 날 보는 눈빛이 곱지는 않은데, 그건 뭐 이미 각오한 일이고요."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한숨도 못 잔 사람처럼."
"여기 오기 전에 이른 아침부터 장례 치르는 술사 알아보고 왔어요. 제가 나 소협 걱정하느라 잠이 왔겠어요?"
"풉. 안 죽는다니까. 걱정도 참 많네요. 하하. 봐요, 멀쩡하잖아요."
"휴우, 살아 있으니 됐네요. 해독약은요? 진전이 좀 있어요?"
"있다마다요."
"완성했어요?"
"내일 보면 알아요. 그보다 당 소협, 하나만 더 부탁합시다."
"뭘요?"
"이거."
난 그에게 연사침탁(극소 기관연사궁)의 침을 하나 꺼내 건넸다.
남만에서 다 썼지만, 당연히 하나를 남겼다.
"우모침이네요?"
"네, 이것 좀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가급적 많이."
당우국이 내가 만든 우모침을 받아 뚫어질 듯 살피고 또 살핀다.
"이거 우리 당가에서 만든 거 아니네요?"
"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못 만들겠는데요?"
"네? 당가에서 만들지 못하는 암기도 있어요?"
"휴우. 나 소협, 이건 그냥 우모침이 아니잖아요. 어디서 구한 우모침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신병이기급인데요? 태어나서 이렇게 정교하고 강도가 높은 우모침은 처음 봤어요. 암왕(暗王)이라 불리셨던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쓰던 우모침보다 더 대단한 물건을 가지고 계시네요. 못 만들어요."
아! X팔.
아껴 쓸걸.
"어쩌면 사 장로원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똑같이 만들지는 못해도,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을지 몰라요."
"사 장로라면, 어제 나한테 삿대질하며 욕지거리했던 그 성격 파탄자 노인네요?"
"네, 숙부들 중에서도 성격이 제일 좀 그래요. 그런데 또 암기는 제일 잘 만들어요. 특히 이렇게 정밀한 암기는 거의 다 사 장로원에서 만들어요. 제가 가서 물어볼게요."
"제가 만들어 달랬다고 말은 하지 마시고."
"알아요, 당연하죠. 하하. 그런데 나 소협."
"네, 당 소협."
"이거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만큼 많이 만들 테니까. 내일……."
"걱정하지 마세요, 당 소협. 살아서 찾아갈 거고, 살아서 당 소협이 주는 우모침을 받을 거니까요."
"네, 그럼 내일 봐요."
"부탁해요."
당우국이 혜민각을 떠났다.
떠나면서도 녀석은 내가 준 우모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워프들이 정말 손재주만큼은 신에 근접한 최고의 장인들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천하의 사천당가에서 저런 반응을 보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내일이다.
내일, 당가의 소가주 천독패 당소호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짖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다.
흥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