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우리가 치독전에 도착했을 때.
당소호는 물론 장로들도 모여 있었다.
약왕전주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자마자 내가 제기했던 의문을 그들에게도 던졌다.
약왕전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 자리에 있던 장로들 모두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약리(藥理)가 잘못되었다고요? 자연의 기운을 역행하는 약리라고요?"
"그런 의문이 든다고 했습니다, 삼 장로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한데……. 음."
삼 장로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소가주 당소호의 눈치를 슬쩍 살핀 후 입을 굳게 닫아 버렸다.
삼 장로만 그런 게 아니다.
여러 말들이 오갔지만, 수염이 허연 노인네들이 당소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두려운 게 아니라, 소가주의 체면을 살려 주고 싶어 하는 마음들로 보였다.
그들의 장조카이며, 곧 가주가 될 그이니 말이다.
"해독약의 약리는 잘못됐고, 애초에 붉은 코뿔소의 뿔도 필요 없고. 탈혼독의 재료만큼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들로 해독약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요?"
"네, 일 장로님."
"그래서, 그 제조법은요?"
"일 장로님, 저는 분명 그러한 의문이 들어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지, 제조법까지 완성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보시오, 약왕전주."
"말씀하시지요, 일 장로님."
"지금도 천하 곳곳에서 탈혼독에 의해 수많은 이들이 무고하게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안도 없이 해독약의 제조를 멈추고, 새로운 해독약을 개발해야 한다니. 어찌 그런 무책임한 말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요! 당장 해독약의 제조를 다시 시작하세요. 사흘 뒤 무림맹에서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약왕전주의 말에 순간 장로들이 뜨끔한 얼굴들을 했다.
그들도 독과 약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다.
상당한 경지의 독공 고수이자 의원이라는 뜻이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나와 약왕전주의 의문이 합리적 의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이 방금 그들의 표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지랄맞은 당가 늙은이들은 뜻을 굽힐 줄 몰랐다.
"내 말이 그것이오! 당장 대안도 없고, 이미 해독약을 완성했다고 천하에 공표했지 않습니까. 거기에 무림맹주까지 먼 길을 와 우리 소가주의 공로를 치하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 해독약에 문제가 있어서 제조할 수 없다고 하면, 천하가 얼마나 우리 당가를 비웃겠습니까?"
"일 장로님 말씀이 맞아요. 천하에 부작용 없는 약이 얼마나 있다고요. 아니, 내 말은 이 해독약이 당장 부작용이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부작용이 생기면 그 또한 치료하면 그만이고. 당장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는 게 우리 당가의 의무입니다."
일 장로에 이어 육 장로, 다시 자리에 있는 노인네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인상을 구기며 뜻을 굽힐 수밖에 없는 약왕전주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때까지 소가주 당소호는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는 한창 논의가 이어지고 있을 때부터 나에게 시선이 꽂혀 있었다.
결국, 약왕전주가 입을 닫고, 장로들의 의견으로 결정될 무렵, 그가 나섰다.
현 가주 대리이자 소가주인 당소호가 입을 열자, 목에 핏대를 세우며 떠들던 당가 노인네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리고 당소호가 입을 연 대상은, 바로 나였다.
"약왕전주님께 해독약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 게 나 소협인가?"
약왕전주가 나를 대신해 당소호에게 답하려고 했지만, 내가 먼저 나섰다.
"네."
약왕전주는 나에게 눈치를 마구 주며 입을 닫을 것을 원했다.
나를 보호하려 함이었다.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소가주님."
"괜찮아, 편히 말해 봐. 무슨 생각인지."
아! 이 새끼 또 반말이네.
한 대 칠 수도 없고.
"실은 약왕전주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한 가지 의문이 더 있습니다."
"그게 뭔데?"
"소가주님께서 만드신 탈혼독 해독약을 복용하게 되면, 서서히 독에 대한 면역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해독약을 복용한 모든 무인이 역설적으로 독의 공격에 취약해진다는 뜻이지요."
순간.
치독전 대청 안의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몇몇 장로는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버리기까지 했다.
일 장로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까스로 나를 향해 말했다.
"나 소협. 지금 나 소협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을 하고 있는지 아시는가?"
"당가를 위해 드린 말씀입니다. 혹여, 잠시는 아무도 모를지 몰라도, 천하에 뛰어난 의원은 당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곧 해독약에 다른 약효가 있음이 밝혀질 것이고, 의원들의 입을 모두 막는다고 해도, 이를 복용한 무인들과 고수들이 스스로 이를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네, 이놈! 지금 우리가 탈혼독의 독을 이용해 무슨 흉계라도 꾸민다는 말이냐!"
사 장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까지 하며 나에게 호통을 쳤다.
"당가를 위해 드리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해독약이라면 빠르게 다른 대안을 구해 보시라 충언을 드리는 것이고요."
"네… 네놈이 정녕!"
그렇다.
해독약을 복용해 독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게 된다면, 이를 복용한 모든 무인은 독의 공격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득은 누가 보는가?
당연히 독으로 무림의 한 세력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사천당가가 될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천하를 중독시키고, 다시 가만히 앉아서 당가 독공의 위력을 몇 배로 끌어 올리는 어마어마한 일이 되는 것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자리에 있는 장로들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알아도 모른 척, 혹은 ‘설마 정말 그렇게야 되겠어?’라며 무책임한 마음으로.
어쩌면 그들 말대로 당장 죽어 가는 백성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들은 그런 나의 의문과 충고를 깊게 고민하는 대신 막무가내식 호통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자 당소호가 다시 나섰다.
"장로님들, 제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어험. 어험. 소가주께서 그럴 필요까지."
"맞소, 소가주. 더 들을 필요도 없는… 어험."
결국 당소호가 눈빛으로 장로들에게 부탁한 후에야, 장로들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당소호가 다시 나를 향해 말했다.
"약에 대해서 알아?"
"조금."
"독은."
"약과 독은 결국 한 가지라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약에 대해서 안다고 말했으니, 독에 대해서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요."
피식 웃는다.
내 대답이 기특하다는 그런 오만한 비웃음이었다.
"스승이 누군데?"
더더욱 오만한, 자신의 아버지가 독선이라는 절대 자부심이 그의 말투와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약선 어르신께 짧지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순간 놈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물론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고, 놈은 곧 원래의 그 오만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장로들의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약선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이번 일이 쉬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심각한 얼굴들을 해 댔다.
당우국 녀석은 내 옆에 서서 식은땀까지 흘리며 연신 눈치만 보고 있다.
"약선은 맞고, 독선은 틀리다? 도전인가?"
"그리 말한 적 없습니다. 무고한 백성들의 희생을 막을 더 나은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자는 뜻입니다."
"훗. 건방진 새끼."
아! 이 새끼가 선을 넘었다.
이건 내가 시작한 게 아니다.
저 새끼가 날 도발한 거다.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렇게 놈을 봤다.
당우국은 안절부절못하고.
장로들도 흉흉한 분위기를 대놓고 흘려 댄다.
여차하면 출수하겠다는 뜻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소호 X새끼.
그냥 비웃고 있다.
내가 지금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안중에 없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방금 했던 말, 취소해라. 그러면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흐흥. 하하하. 하하하하하!"
놈이 대소를 터뜨렸다.
정말 웃겼는지, 눈물까지 찔끔 흘린다.
내 화를 더 돋우는 놈이다.
"용서? 내가? 너한테? 흐흐흐흐흐. 하하하하하!"
어떻게 할까?
혼을 좀 내 줄까?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아!
새아빠가 열렬히 보고 싶다.
정말 간절히 보고 싶다.
하지만 낭만개 아저씨는 없고.
지금의 내 힘으로는 무리다.
턱도 없다.
저 여섯 장로 중 한 명이라도 이길 수 있을까?
방심한다면 한두 명은 충분히 이길 수 있고.
죽을 걸 각오하면, 세 명까지 저승길에 데리고 갈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한계다.
내가 아무리 만독불침이라고 해도, 저들 모두를 상대해 이길 수는 없다.
치독전 밖에도 수천에 달하는 당가 고수들이 있고.
싸우게 된다면 당연히 죽는다.
지금 당장 저들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꼭 힘만으로 놈을 누를 필요는 없다.
"도전한다."
"도전?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정확히 들었다. 도전이다."
"작은 명성을 얻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구나. 그만 가라. 내, 우국이 얼굴을 봐서 이번 한 번만은 용서하겠다."
"도전. 약선 길평 어르신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너에게 도전하겠다."
순간,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약선의 이름은 그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고, 당가에서는 아마도 그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아니겠는가?
평생 독선과 경쟁의 대상인 사람이 바로 그인데 말이다.
"지금 정말로 네가 나와 싸우자는……."
"아니! 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더 나은 해독약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너는 나를 무시했고, 화나게 했어. 돌려 말하지 않겠다. 네가 만든 해독약은 틀렸어. 아니, 그냥 쓰레기야."
"네놈이 정녕… 벌주를 원한다는 말이냐?"
"벌주를 누가 마시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고."
"당가의 벌주는 독하다."
"개방의 벌주도 독해. 아니, 더러워. 거지들의 더러운 때가 둥둥 떠다니거든."
"미친놈."
"반사."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가 만든 해독약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만천하에 공개해 망신을 주겠다. 다시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가주직도 물 건너가게 될 거야."
"갈! 네놈의 목을 걸어야 할 것이다!"
"차마 친구의 큰형을 죽일 수는 없고. 만약 내가 만든 해독약이 네가 만든 것보다 뛰어날 경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짖어라. 난 목을 걸겠다."
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살기까지 대놓고 뿜어 대며 죽일 듯 나를 노려본다.
하나도 안 무섭다.
자연국으로 가기 전의 나라면, 오줌을 지렸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독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같은 초절정 고수라 하여도, 독공으로 초절정에 이른 자들은 나의 먹잇감과 다르지 않다.
내가 바로 그들의 상극이고 그들의 천적이다.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이다.
부들부들 흥분한 놈을 보니, 잔뜩 힘을 줬던 똥꼬가 편하게 풀리며 여유가 넘쳐 났다.
그렇게 나는 놈을 비웃으며 말했다.
"사흘 뒤 돌아오겠다. 무림맹 약용전 의원들이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을 통해 증명해 보이겠다. 네가 만든 해독약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내가 만든 해독약이 네가 만든 것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그날 반드시 증명해 보일 테다."
당소호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본 후.
"좋아, 수락하지. 단! 이는 너와 나의 대결로, 본가와 개방 사이의 문제가 아닌 개인 간의 정당한 대결이다. 동의하나?"
"동의. 난 목을 걸겠다. 만약 네가 진다면……."
"네 앞에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짖을 것이다. 물론, 큭큭,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흘 뒤 오겠다."
난 마지막 말을 끝으로 치독전을 빠져나왔다.
약왕전주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꿈쩍도 하지 못하고, 그저 치독전을 벗어나는 내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장로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그들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와 당소호를 번갈아 보기만 할 뿐, 그 누구 하나 입조차 뻥끗 못 하였다.
단지 당우국만이.
갈팡질팡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냅다 달려 이미 치독전을 한참이나 벗어난 내 곁으로 달려왔다.
* * *
"나 소협!"
대꾸하지 않고 난 빠르게 걸음을 옮길 뿐이다.
"나 소협! 잠시만요. 잠시만요."
녀석이 재차 다급한 얼굴과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목은 내가 걸었는데, 죽을상인 건 당우국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이건 이긴 싸움이다.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내 의술은, 천하제일이다.
독선이 얼마나 대단한 의술을 지니고 있을지 몰라도, 대자연과 이미 하나가 되어 버린 나를 능가할 수 없다.
확신이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당소호가 만든 해독약보다 수천 배 뛰어난 해독약의 제조법이 수백 가지나 들어 있다.
간단한 몇 가지 실험을 한 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재료도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들이고,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하루면 충분하다.
"나 소협!"
"그런 얼굴 할 필요 없어요, 당 소협."
"아니, 제 말은요. 나 소협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
"어디서 만들 건데요?"
"네? 뭘요?"
"해독약. 해독약을 어디서 만들 거냐고요?"
"뭐, 아무 약방이나… 어딘들 못 만들겠어요?"
"네, 어디에서도 못 만들어요."
"네?"
"최소한 사천 땅에서는 나 소협에게 해독약의 재료가 될 약초를 팔 사람은 없어요. 당연히 약을 만들거나 해독약을 연구할 장소도 제공하지 않을 거고요."
"그, 그게……?"
"당장 떠나요. 해독약을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해독약을 만들기도 전에 죽을 수 있어요. 아니, 죽을 거예요."
"설마……."
"설마가 아니라, 우리 형은 그래요. 저도 그렇고. 우리 당가가 원래 그렇다고요. 말했잖아요. 원수는 열 배로 갚는다고."
"그거랑 이거랑 무슨……?"
"은혜는 두 배, 원수는 열 배. 열받을 땐… 100배예요."
아놔! X팔, 뭐 이딴 계산법이 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