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깨어났어, 태한아?"
"자연아."
"응, 태한아."
"이제 나도 자연이야."
순간,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자연이들의 미소가 더없이 짙어졌다.
나도 자연이 되었다.
나태한이 아닌 자연이다.
내가 저들이고, 저들이 나이며,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우리는 하나였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제야 모든 것이 보이고 들렸다.
그리고 느껴졌다.
자연이, 내가, 어떻게 숨을 쉬고 미소 지으며 포효하는지.
"나는 처음이네. 반가워, 자연아."
바람이 내게 속삭였다.
"자연아, 안녕. 반가워."
바람과 나는 하나다.
"꿈쩍도 안 하고 오랫동안 있었는데, 목마르지 않아? 어서 나를 마셔, 자연아. 갈증이 해소될 거야."
"고마워, 자연아."
물 자연이가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난 그런 물 자연이를 손으로 떠 마셨다.
더없이 시원했다.
그리고 내 몸속에 들어온 물이 살아 움직이는 게, 또 내 몸을 치유하고 하나가 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자연이다.
"인간은 처음이야, 자연아. 너와 하나가 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햇살이 내 몸에 들어와 말했다.
그 따스함이, 포근함이, 또 부드러움과 동시에 강렬함이.
햇살 자연이는 나에게 강인한 생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는 그날 내 자신인 자연이들과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 *
반후인의 동생 반구삭이 했던 말 기억하는가?
야수궁의 무공은 동물들과의 교감을 어디까지 이루어 내느냐에 따라 그 경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초입은 자신이 키우는 단짝 동물과의 작은 교감이라 했다.
중입은 자신이 키우는 단짝 동물과의 완벽한 대화라고 했다.
상급은 모든 동물과의 완벽한 소통.
야수궁의 무공으로 화경의 경지에 오른 야수왕이 그렇다 하였고, 또 많은 야수궁의 고수와 원로가 이와 비슷한 경지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신경(神經).
야수궁에서조차 전설의 경지라 알려진 신경이다.
신경에 오르면 동물들은 물론 대자연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이루었다.
노력한 것은 아니다.
일부러 하려 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냥 됐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섭리를 따라 그들의 삶에 녹아들었더니 그렇게 됐다.
단지 그것뿐이다.
무슨 엄청난 깨달음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제 대자연과 소통할 수 있다.
내가 자연이다.
신경의 반열에 오르자 다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놀라운 변화다.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었으며,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말은 사실 생소한 게 아니다.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나는 물아일체를 깨달은 게 아니라, 스스로 물아일체가 되었다.
물아일체는 다시 또 다른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아니, 이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 역시 하나였다.
신검합일(神劍合一).
자연과 내가 하나이고, 내가 자연이며, 자연이 다시 나인데.
어찌 내 검과 내가 다를 수 있겠는가?
검이 나요, 내가 검이 되었다.
절정의 벽을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
호흡을 했다.
자연이 내게 들어왔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연의 기운이 샘솟았다.
선 상태로, 걸으며, 다시 웃으며, 밥을 먹으며 운기조식했다.
할 수 있었다.
혼원귀일신공(混元歸一神功)을 운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운기가 됐다.
기운과 나 역시 처음부터 하나였을 뿐이다.
음, 그런데…….
무공은 조금 다르겠군.
다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한 후 망부석이 되었다.
그렇게 선 상태로 오랜 시간 깊은 상념에 잠겼다.
무공과 자연은 다르다.
무공은 인위적인 힘이다.
자연은 자연이다.
나는 현재 자연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애초에 내 것이고 내 마음이었던 것을 이제 깨달아 그리할 수 있게 됐다.
한 마디로, 무림으로 돌아간다면 내공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내 또래 중 최고가 아니라, 그냥 천하제일이라는 뜻이다.
그건 낭만개 아저씨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대자연의 기운을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지 않은가?
화경의 고수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극한의 한계를 넘는 힘을 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대자연의 기운을, 상식을 벗어난 거의 무한대의 양까지 끌어다 단전에 품는 것이다.
기운을 끌어 단전에 쌓는 시간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였다.
거의 실시간으로 기운을 쓰고 다시 쌓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는 절반의 자연이다.
고작 절반일 뿐이다.
한없이 지고해 보였던 화경의 경지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가?
누가 보면 나를 미친놈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만을 놓고 본다면 조금 실망이다.
아니, 많이 실망이다.
애초에 자연과 하나가 되면, 단전 자체가 필요 없다.
지금의 나처럼.
내공을 쌓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나는 단전이 사라졌다.
비웃을지도 모르고, 말도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욕을 마구 퍼붓겠지만.
내공의 개념만을 놓고 본다면, 나는 이미 현경(玄境)의 반열에 이르렀다.
휴우, 아찔하군.
그렇지만 방금 말했듯, 또 오래전 낭만개 아저씨가 말했듯, 다시 내가 몇 번이고 언급했듯.
이게 좀 기이하게 발전했다.
중원의 무학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내공으로만 놓고 본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천하제일인데.
무학을 놓고 본다면?
신검합일이 한계다.
절정의 반열.
거기까지다.
하긴, 그렇다.
내 무공 자체가 무림에서 얻은 게 절반도 안 되니, 어찌 그러하지 않을 수 있겠나?
지금의 내 상태를 무림의 기준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나, 이제 만독불침(萬毒不侵)이다.
당연한 결과다.
독과 약도 나와 자연이 처음부터 하나였듯, 처음부터 하나다.
독도 자연이고, 약 역시 자연이다.
내가 자연이니, 내가 독이고 내가 자연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 *
자연과 하나가 된 후, 잊었던 시간을 알게 되었다.
오늘이다.
오늘이 내가 이곳으로 차원 이동한 지 정확히 1년째가 되는 날이다.
나는 읽고 있던 『길평의경』을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자연이 되고 나서, 두 달여 동안 계속 『길평의경』을 읽었다.
치경을 다시 봤는데, 계속 볼 필요가 없었다.
내가 자연이 됨과 동시에,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치경의 문장들이 자연스레 내 것이 되었다.
빠르게 치경을 훑어본 후, 곧바로 『길평의경』의 선경(仙經)으로 넘어갔다.
선경은 약선 길평이 말했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 약선 길평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양반도 살짝 맛이 간 게 분명하다.
아주 정상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선경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었는데.
약선이 처음 내게 말했던 것처럼, 죄다 의문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의문이라는 것들이, 역시나 죄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의문들이었다.
‘개는 왜 똥을 싸는가?’
‘무식한 놈들은 왜 목청이 큰가?’
뭐, 계속 나열하지 않겠다.
대충 이런 식이다.
처음엔 이걸 계속 봐야 하나 싶었는데.
그래도 약선의 의서 아니겠는가.
그래서 읽고, 또 읽고, 계속 읽었더니.
하아!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길평의경』의 선경에 적힌 질문 중 절반에 해당하는 답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약선의 의술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이 역시 모든 것은 자연에 있었다.
아직 절반에 달하는 질문의 답은 찾지 못했고, 그건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약선 길평과 이시초가 말했듯, 내 무학의 깨달음이 『길평의경』 선경의 나머지 의문도 함께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됐다.
그건 천천히 알아 가고.
이젠 정말 갈 시간이다.
"자연아."
여전히 내 주위에는 수많은 자연이가 함께하고 있다.
내가 부르자 일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 자연이들.
"나, 갈 시간이야. 곧 떠나."
"어디로?"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미소를 짓는다.
이곳에서는 죽음도, 탄생도, 만남과 이별 역시 모두 순리일 뿐이다.
그렇게 함께 미소 지으며 작별을 고하고 있을 때였다.
피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하늘에서 뭔가 떨어진다.
커다란 불의 꼬리를 그려 가며 하늘, 아니 우주에서 이곳 지구로 추락하는 물체다.
과거 이곳에 살던 인류가 말했던 UFO라는 것인가?
그런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 세상은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자연이다.
그런데 또 다른, 고도의 발전된 기술을 가진 다른 생명체가 이곳에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신법을 발휘해 몸을 날렸다.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쳤지만, 기운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넘쳐 난다.
대자연이 끊임없이 나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멀다.
아주 먼 거리, 그곳에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대기가 송두리째 진동할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렸음에도, UFO가 도착한 곳은 굉장히 먼 곳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 음.
"와! 지구다! 땅이야!"
"땅이다! 흙이야, 내가 흙을 밟고 있다고!"
"드디어 돌아왔다. 우리가 해냈다고!"
"이렇게 상쾌한 공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야. 흑흑."
"와아아아아아!"
인간이다.
인간들이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인간들이, 우주선에서 내려 땅을 밟으며 감격하고 있다.
누군가는 환호를 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가만히 몸을 숨긴 채 그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때.
"자연아, 이번엔 네가 해 볼래?"
원숭이 자연이가 은색의 상자를 내게 건넸다.
내가 처음 이곳에 온 날, 내 앞에 굴러온 그 상자.
신조의 인류 멸망 보고서가 담긴 그 상자다.
난 그것을 원숭이 자연이에게서 받아, 인간들을 향해 던졌다.
쉬이이이이이잉.
툭.
데구르르르.
"어? 이거, 이런 게 굴러왔어."
"뭐야? 누가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주위를 봐 봐.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곳이야."
"그럼 이건?"
"몰라."
쿵!
인간은 내가 던진 상자를 발로 차 버렸다.
"저기! 저기 봐 봐! 사슴이야."
"토끼도 있고. 닭이다! 닭이 있어. 진짜 닭고기라고!"
"우릴 피하지 않는데?"
"일단 잡자. 가짜 고기가 아닌 진짜 고기가 먹고 싶다고."
"그래! 뭐 해! 다들 잡아!"
인간들은 불을 피웠다.
인간들은 총이란 무기를 들었다.
그리고…….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퉁!
자연이들에게 총이란 것을… 젠장.
난 곧바로 인간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동시에 간절하게 그들을 향해 외쳤다.
"자연을 해치지 마!"
그렇게 인간들에게 뛰어들어… 번쩍!
* * *
번쩍!
행운석이 작동했다.
무림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젠장!
하필 그때!
어쩌지?
자연은?
인간들은?
젠장할!
지금 그걸 생각할 틈이 없다.
밀독왕이, 나를 죽이려 한다.
"밀림독선 이 새끼는 뭐 하느라고 이놈을 여기까지 보낸 거야! 죽어라, 중원의 오랑캐야!"
밀독왕의 손에서 무지막지한 독의 강기가 뻗어 나왔다.
당연히 나를 향해서다.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그냥 어마어마하다.
화경의 고수를 직접 상대하는 건 처음이다.
떨렸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나는, 만독불침이다.
곧바로 우룡검을 뽑았다.
이곳의 자연, 대자연, 그것의 기운.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의 대자연과 곧바로 하나가 되었다.
‘나에게 힘을 줘.’
순식간에 땅과 하늘 그리고 대기의 기운이 일시에 나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 모든 것을, 이제는 나와 하나가 된 우룡검에 집중하였다.
우룡검에 무지막지한 강기가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그것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가 발출해 보지 못했던 최고의 검강이 되어 뻗어 나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대단하고, 대단하고, 다시 대단했다.
단 한 번의 격돌로 숭불사의 3분의 1이 터져 나갔다.
그런데…….
"끄으으윽."
나는 30장이나 뒤로 날아가 땅을 다시 수십 바퀴나 굴러야 했다.
왜지?
내 기운이 훨씬 더 대단했는데.
독에 중독되진 않았다.
내공에서도 내가 앞섰다.
심지어 밀독왕은 방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당했다.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화경의 고수는 원래 다 저런 건가?
밀독왕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너진 숭불사의 잔해 위에 고고히 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놀란 감정은 숨기지 못하고 있다.
"너는… 뭐냐?"
한참이 지나 묻는다는 게 딱 저 한 마디였다.
툭툭.
수십 개의 상처에서 난 피와 땅을 구르며 엉겨 붙은 흙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밀독왕을 향해 답했다.
"니 애비다, X발 놈아."
홧김에 평소 안 하던 욕지거리까지 한번 해 봤다.
인상을 와락 구기는 밀독왕.
좋게 말할 걸 그랬나?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었을까?
입을 꾹 닫아 버린 밀독왕의 두 주먹에 검회색의 강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이번엔 진짜 완전히 엿됐다.
원래 차원 이동하고 돌아오면, 압도적으로 적들을 물리쳤는데.
이번엔 다르다.
밀독왕은 내 상대가 아니다.
혹시 누가 도와주기라도 한다면… 음.
주위를 둘러봤다.
나를 구하려고 오던 파스라 스님과 몇몇 숭불사의 스님들은 밀독궁 고수들에게 막혔다.
구하러 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인 것을 넘어, 나보다 먼저 죽게 생겼다.
수천에 달하는 밀독궁 병사들이 숭불사 전체를 겹겹으로 포위해 공격 중이고.
숭불사의 힘만으로는 버티는 것은 물론, 도망갈 길을 뚫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전멸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나는…….
아!
저벅저벅.
밀독왕이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며 그냥 막 걸어오는데.
그의 손에 맺히는 강기는 더욱 강해져만 가고.
아무리 살피고 살펴도 빈틈은 보이지 않고.
대자연의 기운이 내 의지에 따라 어마어마한 힘을 나에게 불어넣어 줬다.
그런데도 떨렸다.
나는 지금껏 내가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무지막지한 힘을 얻었는데.
내 예감이, 조금 전의 격돌이, 밀독왕이 나를 죽일 것이라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랴?
그래도 끝까지 싸워야지.
생명의 은인인 파스라 스님과 숭불사 스님을 두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갈 수는 없지 않겠나.
난 우룡검을 양손으로 꼭 쥐었다.
대자연의 기운과 나의 기운, 레드 드래곤 오니푸네의 기운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우룡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본 밀독왕은 웃었다.
비웃음이다.
세상을 파멸시킬 것만큼 거대한 기운이 우룡검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 밀독왕은 그것을 비웃은 것이다.
X팔, 진짜 화경의 고수는 다 저런 건가?
낭만개 아저씨가 말했던 것처럼, 밀독왕의 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빈틈이 수도 없이 보이는 걸까?
돌겠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우룡검을 들고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걸음을 멈춘 밀독왕이 양손을 뻗었다.
검강과 독강의 격돌.
안다.
이번엔 밀독왕도 진심이다.
장난이 아니고, 방심도 하지 않았으며, 나를 죽이겠다는 확고한 그의 결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안다.
내가 이 한 방에 죽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곧, 나의 검강과 밀독왕의 독강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땅이 터져 나가고, 대기가 찢어지는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죽었… 어?
나, 안 죽었네?
어흐으으으으으으으으으응!
무지막지한 크기의 호랑이.
그것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와 동시에 한 사나이의 등도 보였다.
눈에 익은 등이다.
그리고 그 등은, 밀림을 지배하는 절대자의 것이다.
"내가 좀 늦었네, 나 소협. 이젠 나에게 맡기게."
야수왕이다.
그런데 그만 온 게 아니다.
지옥과 같은 전장을 미소까지 지으며 여유롭게 걸어오는 한 사내.
온 세상을 뒤덮을 강렬한 빛을 사방에 뿌리고 있다.
"자네로군, 내 딸을 구했다는 게."
태양왕과 야수왕이 함께… 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