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99화 (98/174)

99화

척!

내가 갑작스레 포권을 하자 세 노인네들은 공격하는 줄 알고 움찔했다.

그러더니 성을 낸다.

"뭐 하는 짓이냐? 그런다고 우리가 살려 줄 줄 아냐?"

"대협!"

"대협? 잔머리 굴려도 오늘 네가 죽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이 계집을 바치겠습니다."

"네가 바치지 않아도 우리가 데리고 갈 거야."

"대협!"

"이 새끼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네?"

"저 암상(暗商)입니다."

"뭔 수작이야? 방금 개방의 방도라며?"

"제가 바보도 아니고, 어찌 진짜 신분을 밝히겠습니까?"

"바보같이 보이는데?"

"아닙니다. 이래 봬도 어렸을 적 똑똑하다는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큭큭큭. 바보거나 미쳤거나. 둘 중 하나는 맞는 것 같군."

"현재 무림에 탈혼독이라는 극독이 사방에 퍼져 있습니다."

"탈혼독? 처음 듣는데?"

"사천당가에서 은밀히 제조에 성공한 극독인데, 제조는 쉽지만 그 해독약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 탈혼독의 제조법을 개나 소나 다 익히게 되어, 지금 중원 전체가 난리도 아닙니다."

"쯧쯧쯧. 사천당가 이 찢어 죽일 새끼들. 고상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우리를 멸문시키더니, 결국 중원을 도탄에 빠뜨린 건 자기들이었네."

"맞습니다. 현재 중원은 사천당가의 탈혼독 때문에 지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설마… 붉은 코뿔소의 뿔이냐?"

내 등에 매달려 있는 붉은 코뿔소의 뿔은 이미 그들이 처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네, 사천당가에서 해독약을 제조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발견했는데, 그 약재가 바로 이 붉은 코뿔소의 뿔이고. 현재 붉은 코뿔소의 뿔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그래서? 대충 얼마나 하는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부르는 게 값이라고. 모르긴 몰라도 현 상황에서는 소림사의 대환단보다 더 값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순간.

독곡 노인네들이 조용해졌다.

뭔가 생각이 깊어진 얼굴들이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살기를 피운다.

"만에 하나라도 거짓이 있다면,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울고 불며 죽여 달라고 애원해도 절대 죽이지 않고 영원한 고통을 느끼게 해 줄 테야."

"이거 하나면, 세 분께서 평생 왕처럼 사실 수 있고, 그 콩고물만 남겨 주셔도 저는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왜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웃는다.

노인네들이 이곳 변방에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그러면서도 혹시 몰라 나를 살피고 또 살피고.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구나?"

"네, 나름 이류 문턱에는 다가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는다.

비웃음이다.

나를 삼류라 확신하고 있는 그런 웃음 말이다.

"암상이라고?"

"네."

"물건을 확실히 팔 수 있겠나?"

"사실 저 혼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독곡의 고수들께서 도와주신다면, 안전하게 제값을 다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제게 1할의 수고비만 남겨 주시면,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한 개가 아니다."

"네?"

"음…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지?"

선두에 선 노인네의 말에 옆에 있던 노인네가 답했다.

"죄다 독으로 만들어서 얼마 남지 않았어. 열세 개 남은 게 전부야."

"허거거거걱!"

일부러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러자 더욱 미소가 짙어지는 독곡의 노인네들.

"네가 가진 것까지 해서 열네 개다. 모두 팔 수 있겠냐? 돈이 어마어마할 텐데."

"독곡의 어르신들이시라면, 암상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아시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안 되더라도, 만리상단에 팔 수 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파는 데에는 조금도 문제가 없습니다."

세 노인네들, 이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러더니 나를 완전히 등지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이어 나간다.

"밀독왕이 쉽게 뿔을 내줄까? 붉은 코뿔소 사냥한다고 5,000명이 넘게 죽었잖아."

"저 계집이 있잖아. 보파 공주를 잡아가면 우리를 크게 치하할 거야. 그때 애기를 해 봐야지. 물론 뿔을 판 값의 일부는 밀독왕에게 바쳐야 할 거야. 어쨌거나 우리는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 테니."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러면 밀독왕도 분명 좋아할 거라고. 하하."

"좋아, 그럼 그렇게 결정하는 거다."

"저 새끼는 어쩌지?"

"어험, 이제 함께 일할 친구한테 저 새끼가 뭔가?"

"그, 그래. 하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대협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우리 한번 잘해 보자고. 응! 이번 일 잘 끝내면, 특별히 밀독왕에게 말해서 자네가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부락 몇 개를 내주라 부탁해 줄 수도 있어. 미녀들도 원하는 대로 줄 거고."

"정, 정말이십니까? 그게 가능한가요? 밀독왕은 누군데요?"

"허허! 이 친구 이곳 사정을 전혀 모르는군."

"전 뿔만 필요해서… 헤헤."

"맞다. 자네 그 뿔은 어떻게 얻었나? 붉은 코뿔소가 엄청난 영물인데. 자네 무위로는 힘들었을 텐데……?"

"저기요. 저기에서 엄청난 싸움이 터졌기에 숨어서 봤더니, 글쎄 수천 명의 사람하고 붉은 코뿔소 무리가 싸우고 있더라고요. 한 마리가 그때 죽어서 냅다 뿔만 챙겨 이렇게 도망 오던 중이었습니다."

"음, 운도 좋은 친구군. 거기에 더해 우리까지 만났으니. 하하."

옆에 있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보파 공주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

"아까부터 보파 공주라고 말씀하시던데. 이 계집이 그 공준가 뭔가입니까?"

"자네, 설마 보파 공주의 신분도 모르고 그냥 데리고 온 건가?"

"네, 붉은 코뿔소의 뿔을 훔쳐 냅다 도망치는데, 예쁜 계집이 혼자 울고 있기에 밤도 길고 갈 길은 멀고, 외롭지 않게… 하하. 그거 있잖습니까? 하하하! 말도 안 통하는 이 계집이 공주였나요?"

"그렇네. 매우 중요한 인물이네. 자네 설마 벌써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지?"

"어이쿠. 그럴 시간도 없었습니다. 큰일 날 뻔했네요. 이 계집은 대협들을 만난 기념으로 드리겠습니다. 데리고 가시지요."

"응, 그래. 자넨 볼수록 마음에 드는 친구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늑대는……?"

"개 아닌가요?"

"늑대……."

"아! 다친 저 녀석이 졸졸 따라오기에 개인 줄 알았는데."

"풉. 큭큭. 됐네. 자넨 재미나기까지 하군. 하하하."

"감사합니다, 대협!"

"일단 가지. 보파 공주를 밀독왕에게 바치면, 큰 상이 내려질 걸세. 뿔을 팔러 가는 일은, 일단 밀독궁에 가서 다시 상의하자고."

"넵!"

독곡의 늙은 세 고수.

최소가 절정이고, 어쩌면 초절정의 경지일지도 모른다.

산전수전 다 겪었고, 또 수십 년간 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노장 중의 노장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나를 믿는 것이다.

완전히 신뢰하는지는 모르겠다.

뭐, 만약 진짜로 붉은 코뿔소의 뿔을 팔게 된다면, 나를 죽일 가능성이 9할 9푼 9리임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일 테다.

밀독궁에 가서도 이것저것 중원의 상황을 알아볼 것이 분명하고.

됐다.

그들이 나를 믿고 안 믿고는 중요치 않다.

소인장기공 덕분이다.

믿음은 모르겠으나, 그들은 지금 완전히!

정말 완전히 방심하고 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가 자기들을 어쩔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아! 소인장기공이 이렇게 무섭다.

물론, 나의 연기력과 재치가 크게 한몫했고 말이다.

"뭐 해? 어서 따라와. 그 계집 도망가지 못하게 잘 데리고."

"네, 대협!"

노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셋이 동시에.

나에게 등을 보인 것이다.

하아!

그리고 난.

대성검을 손에 쥐었다.

곧.

이를 뽑았고.

동시에!

대성검에서 2갑자를 훌쩍 뛰어넘는 힘이 실린 검강이 발출되었다.

타구봉법 9초식, 유성충괴(流星衝壞)!

내가 검을 뽑는 순간 이미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은 세 노인.

곧바로 몸을 돌렸지만.

늦었다.

나는 빨랐고.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무지막지한 폭발이 그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호신강기를 끌어 올리고, 어떻게든 방어하려고 했지만.

말했잖은가.

늦었다고.

그리고 난 빨랐다고.

폭발의 여운이 가시고.

둘은 수천 개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런데, 음.

한 놈.

가운데 있던 그 노인네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 또 악귀와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서 있다.

"네… 네놈이… 감히……."

피융.

푹.

힘을 아껴야 했다.

그래서 팔을 들어 놈에게 조준했고.

연사침탁, 극소 기관연사궁을 딱 한 발 발사했다.

"커억!"

정확히 목에 있는 사혈에 명중.

독곡의 후예인 늙은 고수는 그렇게 절명하고 말았다.

"보파 공주님, 아까의 무례에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깜짝 놀랐는데, 나 대협의 기지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어요. 저 세 사람… 이곳에서도 굉장히 위험한 고수들이라, 태양왕인 아버지마저 조심하던 자들이에요. 정말 대단해요, 나 대협."

"그럼, 다시 움직이시죠."

"네."

우리는 다시 빼곡한 밀림을 헤치며 이동하였다.

* * *

밤이 찾아왔다.

습하고 덥고.

모기와 벌레가 극성이다.

불을 피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틀이면 야수궁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공주님."

"저는 괜찮아요. 중원의 기후와 이곳의 기후가 달라 나 대협이 불편하지 않을까 그게 더 걱정입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보파 공주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곱게 자랐을 테다.

태연한 척 애를 쓰지만, 몰려드는 벌레에 벌써 몇 번이나 흠칫하는 것을 보았다.

모른 척했다.

방법이 없다.

공주가 있으니, 적들은 포기하지 않고 우릴 쫓을 것이다.

태양궁을 협박할 엄청난 기회 아니겠는가.

그래서 최대한 조용히, 은밀히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세요."

"네, 나 대협도요."

난 먼저 나무에 기대 몸을 반쯤 누이고 눈을 감았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함이지, 실제 잠을 잘 생각은 없었다.

열랑도 땅에 엎드려 자는 듯하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나 역시 기감을 최대한 멀리 퍼뜨려, 혹시 모를 적들의 공격을 대비하는… 음.

벌써 왔군.

- 열랑, 자는 척하면서 들어. 움직이지 마.

열랑이 순간 눈을 떴다가 그대로 감았다.

- 적들이 오고 있다. 최대한 가까이 접근했을 때, 내가 먼저 적들을 공격할 테니, 너는 보파 공주를 지켜. 보파 공주가 누군지 알지? 반후인이 사랑하는 여자야. 꼭, 지켜 줘.

알아들었나?

눈을 깊이 감은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알아들었을 테다.

열랑은 영물이니까.

그렇게 나는 보파 공주를 열랑에게 맡기고, 최대한 적들에게 집중했다.

오십 장.

300명이 넘는 놈들이 기감에 잡힌다.

사십 장.

500명이 넘는군.

삼십 장.

700… 800명이 넘는다.

이십 장.

1,000명.

십 장.

일천 명이 전부다.

다섯 장까지 놈들이 다가왔을 때.

응, 계속 자는 척.

석 장.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장.

계속 자는 척.

일 장(3m).

계속 자는 척.

그리고 곧.

놈들이 빼든 칼이 내 목을 향해 빠르게 날아올 때.

피욱!

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

쉰 발의 연사침탁을 발사했다.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암기다! 으아아악!"

장전.

다시 발사!

"끄아아악!"

"으아아악!"

"다 같이 공격해!"

장전.

다시 발사!

연달아 다섯 번을 장전, 발사.

이리저리 날뛰며 연사침탁을 발사해, 200명가량의 목숨을 순식간에 없앴다.

하지만 더 이상은 통하지 않았다.

방패까지 든 녀석도 있었고, 놈들은 암기에 집중해 내 공격을 방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대성검을 뽑아 검강을 마구잡이로 뿌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힘을 아껴야 했지만, 여기서 죽은들 남은 힘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포위해 몰려드는 놈들을 죽이고 또 죽이고.

크아아아아앙! 으르렁.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열랑과 보파 공주도 최선을 다해 싸우는 중이다.

놈들이 공주에게 더 접근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죽여야 한다.

콰콰콰콰콰콰쾅쾅쾅!

대성검을 휘두르며, 또 비귀부(飛歸斧, 날아 되돌아오는 도끼)까지 날렸다.

다시 연사침탁을 쏘고, 장전하고, 쏘고.

다시 대성검을 휘두르고.

미친 듯 싸웠다.

죽이고, 또 죽이고.

끝도 없이 몰려드는 적들을 그렇게 모두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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