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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이번 여행기-82화 (81/174)

82화

으르렁.

"아니, 이 늑대 새끼는 왜 나만 보면 물어?"

"어허! 열랑, 놔. 놓으라고. 형이야. 안 돼. 놔. 그렇지. 아이고, 착하다."

결국 반후인이 뜯어말린 후에야 열랑이 물었던 내 엉덩이를 놓아 주었다.

역시나 입에서 피를 철철 흘려 댄다.

"나 형, 미안해. 하하."

"근데, 반 형. 이 늑대 새끼 정말 똑똑한 거 맞아? 매번 내 엉덩이를 물 때마다 자기 이빨이 깨지고 피를 뚝뚝 흘리면서. 반복 학습이 안 되네?"

"좋아서 그러는 거야. 정말이라니까?"

"에휴, 됐다. 언제 또 볼지도 모르는데."

"나 형! 정말 우리 야수궁에 꼭 한번 놀러 와."

"기회가 된다면. 근데 내가 좀 바빠야지."

"아! 이대로 헤어지기 정말 싫은데."

"바로 돌아가는 거야?"

"응, 아버지와 함께 왔던 사람들 모두 이미 모두 돌아갔어. 나만 이번 일에 지원해서 남게 된 거야. 일도 다 끝났고, 돌아가야지."

"그래, 잘 가라. 인연이 있으면 또 보겠지."

"나 형, 내가 준 그 대상귀인패(大像貴人牌) 잘 간직해. 중원에서야 쓸모가 없겠지만, 정말 우리 섬라국에서는 어마어마한 물건이니까."

녀석이 조금 전에 건네준 대상귀인패를 들어 보았다.

코끼리 조각이 멋지게 새겨진 신패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그렇다니까. 우리 섬라곡국(暹羅斛國)에 와서 아무에게나 그 신패만 들이밀면, 캬아! 그냥 최고의 대접을 받으면서 우리 야수궁까지 안내해 줄 거야."

"오! 이게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란 말이지?"

"그렇다니까! 그것 말고도 나 형이 오면 내가 신기한 거 많이 보여 주고. 맞다! 우리 야수궁에 열랑 같은 영물이 수백 마리는 더 있어. 나 형이 원하는 녀석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나 형이 가질 수 있게 해 볼게. 약속."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런데 섬라곡국이면……. 어휴, 멀어도 진짜 멀다. 어쨌거나 인연이 있으면 또 보게 될 거야. 난 바빠서 이만 가야겠다."

"나 형!"

"알아. 아니까, 그만해. 남자끼리 그런 눈으로 보는 거 아니다."

"고마웠어."

"그래, 잘 살고. 무운을 빈다."

난 녀석에게 손을 크게 흔들어 주며 자리를 떠났다.

혹시 모르니 대상귀인패도 잘 챙기고.

그렇게 우리 새아빠 만나러 경쾌한 발걸음으로… 아!

쟤가 있었구나.

쩝.

별로 반갑지 않은데.

단문령이다.

외진 곳에 홀로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입이 귀에 걸려 쪼르르 달려온다.

"가?"

"응."

"인사도 안 하고 가?"

"잘 살아."

"그게 인사야?"

"응."

"어디로 가?"

"집."

"거지가 집이 어딨어?"

"분타."

"어딘데?"

"엄마랑 살던 집."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냐고."

뭔가 느낌이 싸하다, 싸해.

"그건 왜 물어?"

"쳇. 물어보지도 못하냐?"

"있어, 그냥 시골."

얘가 아침을 잘못 먹었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가, 이제는 도끼눈을 뜬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진짜 이렇게 그냥 가는 거야?"

"그럼 뭐?"

"아직 안 했잖아."

"뭘 안 해?"

"고백."

미친!

엄마! 나 진짜 얘 한 대만 때릴게요.

진짜로 딱 한 대만요.

아!

참자.

참아.

"문령아."

"어머, 이제는 성 빼고 이름만 부르네? 그것도 자연스럽게?"

"휴우,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나 이미 혼인했어. 실은… 아내가 한 명도 아니고 몇 명이나 있어. 나를 쏙 빼닮은 아이도 주렁주렁 낳았고."

순간!

단문령의 얼굴이 굳어 버렸다.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얘가 진짜 날 좋아했나?

심지어 얼굴이 실룩실룩하는 게, 감정을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러더니 결국.

"풉. 푸하하하하하! 야! 너,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지나가는 개도 안 믿겠다. 푸하하하하하하!"

아! 서혜는 믿었는데.

심지어 거짓말도 아니고.

"진짠데."

"야! 나태한. 너 앞으로 봐도 모독이고, 뒤로 봐도 모독, 옆으로 봐도 모독이야."

"모독?"

"몰라?"

"응."

"모태 독신. 큭큭큭."

젠장!

내 얼굴이 어때서?

아! 또 미인국의 부인들이 그리워진다.

그곳에서는 내가 최고의 미남이었는데.

뭐, 남자가 나 혼자뿐이니 그랬지만.

"됐어, 나 바빠. 갈래, 잘살아."

"야, 나태한."

"또 왜?"

"이 누나가 특별히 너한테만 알려 준다."

"안 궁금해."

"맞아, 사실 나 엄청난 미인이야."

"응, 그래. 알았어."

"진짜야."

"휴우. 네가 네 비밀을 말해 줬으니, 나도 비밀 하나 알려 줄게."

"뭔데?"

"우리 새아빠가 어쩌면 천하제일인일지도 몰라."

"풉. 야! 너 정말 농담 학당이라도 다녀야겠다. 뭔 놈의 농담이 그렇게 어이가 없냐?"

"방금 네가 했던 말보다는 더 현실적이야."

"나 변용한 거야."

"……."

"놀랐어? 많이 놀랐나 보네?"

"알고 있었어."

"그래? 그럼 내가 왜 변용을 했게?"

"응, 안 궁금해."

"맞아,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 내가 너무 예뻐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계속 변용하고 다녔어.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천하제일미니 뭐니 하는 애들보다 내가 더 예쁘다고 그랬어."

"우리 엄마도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됐다. 나 정말 바빠서 가 봐야 해. 잘 살고, 돈도 많이 벌어라. 간다!"

난 그렇게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자리를 떠났다.

뒤로 그녀의 외침이 들렸지만, 깔끔히 무시했다.

"야! 아직 고백 안 했잖아! 고백하면 이 누나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 야! 나태한!"

* * *

"얼마 줄 수 있습니까?"

"얼마를 원하십니까?"

"그쪽에서 가격을 제시해 주십시오. 맞는다면 팔고, 아니면 다른 곳을 알아보고."

금금상단(金金商團) 감숙 경양 지점.

도토리국에서 가져온 보석이 내 전낭에 가득하다.

그중에서 가장 작고 그나마 볼품없어 보이는 것 하나를 꺼냈다.

이걸 다 팔긴 팔아야 하지만, 거지가 보석에 대해 뭘 알겠는가?

처음부터 다 팔 수는 없고, 일단 시세라도 알아볼 겸 이곳을 찾은 것이다.

감숙이 비단길과 이어지는 통로로, 금금상단은 서역에서 들여오는 각종 보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상단이다.

비단길의 교역점으로 변방에서는 보기 힘든 거대한 지점을 갖추고 있어서 이곳을 찾은 것이다.

"볼수록 귀한 보석입니다."

"그래서 얼마 주실 건지요?"

노련한 늙은 점주는 보석을 한참이나 보고 또 보고, 가격은 제시하지 않고 계속 뜸만 들인다.

"다른 상점도 들러보고 오신 겁니까?"

"당연하지요."

응, 여기가 처음이다.

"그럼 대충 시세는 아시겠고… 음, 그런데 이런 보석은 저도 처음인지라……."

"다들 그러더군요. 처음 보는 희귀한 보석이라고. 그래서 부르는 값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긴 한데… 이게 너무… 어허, 보석을 다룬 지 50년이나 됐지만, 이런 귀한… 어험. 쿨럭!"

자기도 모르게 ‘귀한’이란 말을 뱉어 버리고는 연신 헛기침을 해 댄다.

스스로 보석의 값을 높여 버린 것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노련한 상인도 실언을 하기 마련이다.

보석을 보고 냉정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나 보다.

어찌 아니겠는가?

도토리국에서도 최상급으로 꼽히는 보석들을 가지고 왔는데 말이다.

내가 이 대단한 보석들을 가지게 된 전말은 이렇다.

* * *

마왕을 물리치고 도토리국의 수도 몬토의 왕궁으로 돌아왔다.

도토리국 드워프들의 엄청난 환영이 이어졌고.

궁 안에서도 나와 전사들을 향한 찬양과 치하는 끝이 날 줄 몰랐다.

그렇게 뜨거운 환대는 우리를 지치게 했고, 나와 아르네 국왕은 국왕의 집무실에서 잠시 숨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그의 집무실 한쪽에 엄청난 보따리와 상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폐하, 저건 뭔가요?"

"아! 저거… 하하! 우리 도토리국 전 지역에서 자네에게 보내온 선물들이라네. 하나하나 대단한 것들이니, 천천히 살펴보게."

누가 최고의 기술자들 아니랄까 봐, 선물들은 하나같이 기절초풍할 정도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아쉬웠다.

이 많은 것들을 모두 무림으로 가지고 갈 수 없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 그것들을 발견했다.

황금으로 칠이 된 작지만 더없이 화려한 상자.

그리고 그것을 열었더니.

"와아아아아아! 이건… 이건 정말 대단한 보석들이네요?"

"우리 도토리국에서도 최고의 보석 세공사들을 일컬을 때는 남도토리촌의 보석 세공사를 첫 번째로 꼽는다네. 그리고 남도토리촌은 일차 마왕 세계 대전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기도 하지. 이번에 자네가 큰 공을 세워서, 그곳의 보석 세공사들이 작정하고 굉장한 보석들을 세공해 보내온 거라네."

"어마어마한 보석들이네요. 보석에 까막눈인 제가 봐도 막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예요."

"다른 선물들도 보석 못지않게 대단한 것들일세. 천천히 계속 보게."

결국, 내가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은 보석뿐이었다.

최고 중의 최고 보석 세공 드워프들의 작품들이다.

* * *

"50!"

결국 늙은 점주가 50을 외쳤다.

50을 부르고도 조마조마했나 보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이마 위로는 식은땀이 한 방울 흐른다.

근데 은자야? 금자야?

젠장!

시세를 모르니 헷갈리네.

하지만 뭐, 오늘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뭐니 뭐니 해도 시세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대충 가격이 맞으면 팔 생각도 있었지만.

몇 군데 더 다녀 봐야겠다.

그리고 우리 비걸개들은, 심리전을 전문적으로 배웠다.

이럴 때일수록 대담하게, 또 과감하게.

난 보석을 손에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이 양반이 지금 장난하시나? 됐어요. 에잇!"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자…….

"잠깐! 공자님! 공자님! 잠깐만요."

이 노인네가 만년 산삼이라도 삶아 먹은 것처럼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 내 손목을 잡아챈다.

절대 놔줄 수 없다는, 절대로 그냥 보낼 수 없다는 그런 의지가 내 손목을 잡은 그의 손에서 느껴진다.

오! 역시 드워프들의 보석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문제는 이게 금자인자 은자인지 모르겠다는 건데.

일단 더 상황을 지켜보자.

"놔요. 다른 데 갈래요."

"어허, 원래 거래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다 알면서 그러시네. 하하하."

"아니, 그래도 그렇지. 50을 부르는 경우가 어딨습니까? 이게 얼마나 귀한 보석인데."

"하하. 알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일단 다시 자리에 앉읍시다. 네? 이 늙은이가 이렇게 사정하지 않소? 하하. 하하하."

결국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자.

다시 고민하는 늙은 점주.

무슨 생사 대결이라도 앞둔 장수처럼 심각한 얼굴이다.

"한 번만 더 장난치시면, 이번엔 진짜로 갑니다."

으름장을 슬쩍 놓았더니, 두 눈을 보석에 고정한 채 이제는 인상을 마구 구기며 식은땀까지 비 오듯 쏟아 낸다.

"어허, 거래하는 사람 어디 갔나?"

이어지는 나의 재촉.

결국 늙은 점주가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들었다.

"500……."

아! 젠장.

혹시나 했지만, 금자가 아니라 은자가 맞는 모양이다.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보석이 아무리 대단해도 금자 500을 부르는 것은 좀 말이 안 되지 않겠냔 말이다.

그렇게 내가 실망한 표정을 짓자.

응, 이건 심리전이고 뭐고가 아니라 진짜 실망해서 지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550……."

어라?

50 더 벌었다.

앗싸!

"더는… 아무리 대단한 보석이라도 더는 무리입니다. 만약 이보다 더 부르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파십시오, 공자님."

늙은 점주는 마치 자신의 삶 중 가장 큰 거래라도 하는 것처럼 엄청난 의지를 보이며 그리 말했다.

결국.

"휴우. 사실 비슷한 값을 부르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점주님의 의지가 그들보다 더 대단해 보여 점주님께 보석을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돈은 전표로 주십시오."

"정,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공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앞으로 우리 금금상단은 공자님을 최고의 귀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증표까지 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갈 길이 머니, 어서 전표나 챙겨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당장 가지고 오겠습니다."

늙은 점주가 그렇게 뛸 듯 좋아하며, 접객실 뒤편으로 향했고.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이게 제값에 판 것인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다른 상단도 들러 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 말이다.

그렇게 내가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입꼬리가 귀에 걸린 늙은 점주가 돌아왔고.

그의 손에는 전표가 여러 장 들려 있었다.

전표마다 금금상단의 귀빈을 뜻하는 표식까지 새겨 있다.

"확인해 보십시오, 공자님."

"하나, 둘, 셋… 열하나. 정확히 550 맞네요."

"네, 저희 금금상단은 신뢰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언제든 다시 들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리하도록 하지요. 그럼 저는 이만."

그렇게 나는 전표 다발을 품에 넣어 금금상단을 나왔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금금상단의 늙은 점주는 깊이 숙인 허리를 펴지 않았다.

그렇게 나도, 또 늙은 점주도 서로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허거거거거거거거거거거걱! 미친! 미친! 미쳤어! 은자가……. 허거거거거거걱! 금자! 금자! 금자 550냥! 허거거거거거걱!"

태연한 척했지만, 아까 전표 셀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와! 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다.

금자다, 금자 550냥!

나, 완전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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