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자네… 자네 지금 남궁위결 대협을 의심하는 것인가?"
무려 공동파의 일 장로인 혼원 도장이다.
그런 그가 눈동자까지 심하게 떨며 나를 향해 말했다.
"의심하면 안 되나요? 정황이 분명 그러하지 않습니까? 죽지 않는 괴인들을 처음 발견한 것도 남궁세가 사람이고, 이를 소탕한 것도 남궁세가의 남궁무검이고, 공교롭게도 남궁무검은 이번 사건을 통해 무림에 등장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명성을 진동케 할 수 있었습니다."
"말을 삼가시게!"
등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화가 난 얼굴이다.
그 화를 숨길 생각조차 없이 나에게 적대감까지 대놓고 드러냈다.
좀 놀랐다.
등원이 왜 저렇게까지 반응하는지 말이다.
그러자 혼원 도장이 그런 나를 달래듯 말했다.
"검제께서 지금까지 무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일은 며칠을 밤새워 말해도 부족할 정도라네. 모든 무림인이 존경하는 그분을 의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안다.
비걸개 훈련생 때 배웠다.
그게 아니라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그의 협행에 대해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또 남궁세가에서는 남궁무검을 얻기 위해 막대한 돈을 비롯해 엄청난 것들을 우리 개방에 내놓았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중원 한복판도 아니고, 변방에서도 변방인 감숙 땅.
이곳에서 약간의 희생을 치러 남궁세가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남궁무검에 대해 잘 아는 내 예감이 그리 말하고 있다.
"휴우. 이보게, 나태한 소협."
방금 나를 한 대 칠 기세로 분노를 표출하던 등원이 긴 한숨을 쉬며 나를 불렀다.
감정을 추스른 모양이다.
"개방에서 정말 뛰어난 인재를 배출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고, 또 축하하네. 자네는 정말 내가 봐 왔던 어떤 후기지수들보다도 뛰어나군."
"……?"
"그래서 하는 말일세. 자네를 위해 해 주는 말이니, 곡해하지 말고 들으시게."
"네."
"방금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그러니 절대로 다른 곳에서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마시게."
"왜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일이 아닌가요?"
"맞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그런데 자네가 위험해."
"제가요?"
등원이 고개를 정확히 두 번 끄덕인 후 답했다.
"그렇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네. 그냥 허튼 말이라고 듣지 마시게."
"남궁세가에서… 저를 죽일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하나도 안 두렵다.
검제가 직접 나서도 내가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나?
새아빠한테 일러야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키득키득 웃었지만, 겉으로는 진지하게.
뭐, 응.
"아닐세. 검제께서 어찌 자네를 죽이려 하시겠나? 자네가 남궁세가에 무슨 감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제께서는 정말로 훌륭하고 좋으신 분이라네."
"그럼 제가 왜 위험하다는 말씀이시죠?"
"말하지 않았나. 검제께서는 천하 무림인의 절대적 존경을 받는 분이시라고. 그분께 은혜를 입고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과 가문 그리고 문파가 한두 곳인 줄 아는가? 만약 자네가 어디 가서 검제를 모욕하는 말을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중원 전역에서 사람들이 자네를 죽이려 몰려들 것일세."
음.
이건.
아!
많이 위험하겠군.
다시 혼원 도장이 나섰다.
"검제 남궁위결 대협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아니요."
"그분을 만나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게 될 걸세."
"뭐,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새겨듣고 조심하겠습니다."
등원이 다시 말했다.
"약속하겠네. 우리 무림맹에서 이번 일에 관한 진실을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샅샅이 밝히도록 하겠네."
"네. 뭐, 저도 더는 이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본 방에서 받은 제 임무도 여기까지고요."
"그래, 우리에게 맡겨 주시게."
등원의 말을 다시 혼원 도장이 이었다.
"가지. 인근 마을에 임시 본부를 꾸려 놨네. 다친 아이들도 그곳에 있을 것이고. 일단 가서 못다 한 이야기는 천천히 나누자고."
"네, 감사합니다."
나는 혼원 도장, 등원 대협과 함께 임시 본부가 꾸려진 마을로 향했다.
가는 내내 생각이 많았다.
검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더 강한 의심이 들었다.
원래 최종 악당은 끝까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남궁무검이 남궁세가로 간 뒤에 이 일이 일어났고, 현장에 그가 다녀갔으며, 그는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온 상태다.
‘흉수는 반드시 범행 현장에 돌아온다.’
어디서 들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고.
아!
계속, 또 계속.
놈이 의심스럽다.
그래도 혼원과 등원의 말이 맞긴 하다.
언행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만약 혼원이나 등원이 딴마음을 품었다면, 오늘 내 목이 계속 붙어 있었다는 보장도 없다.
앞으로 남궁세가와 관련된 일에는 최대한 조심해야겠다.
* * *
"벌써 떠나겠다고?"
아침 식사를 한 후 혼원과 등원을 찾아가 떠날 것을 말했다.
"네, 임무도 끝났고,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어허. 그래도 이렇게 그냥 가면 너무 아쉬운데."
"어제 두 분께서 저에게 해 주셨던 말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깊이 새기고 항시 언행에 신중해, 무림에 도움이 되는 한 명의 무림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건 진심이다.
진심으로 두 사람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분명 좋은 사람들이고, 아직 무림 경험이 일천한 내가 배울 게 많은 두 사람이기도 하다.
"허허. 무량수불. 감사는 우리 공동파가 나 소협에게 해야지. 우리 공동은 잊지 않을 것일세. 자네 덕분에 스물이 넘는 제자들이 살 수 있었네. 고맙네, 나 소협."
간단한 인사말을 더 나눈 후 나는 그곳을 벗어났다.
그렇게 임시 본부로부터 조금 더 길을 나섰을 때였다.
"으르렁."
소만큼 커다란 개새끼, 아니 늑대 열랑이 길목을 막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녀석들이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형! 어떻게 인사도 없이 그냥 가려고 해?"
반후인이다.
하여간 이 녀석 넉살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언제부터 자기가 나를 ‘나 형’이라고 불렀다고.
마치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만 있는 게 아니다.
잘린 팔 부위를 붕대로 칭칭 감은 이백운.
역시나 터져 버린 두 주먹을 붕대로 칭칭 감은 궁도산.
그리고 뭔가 아직도 내가 두려운지 사정없이 눈치를 살피는 당우국.
여전히 묘한 눈으로 나를 보는 서혜.
복개와 말추는 머리만 긁적이며 수줍어하고.
왜 나를 보며 수줍어하는데?
"나 소협, 잠깐 얘기 좀 나누시죠."
이백운이다.
응, 나 새아빠한테 가 봐야 해.
그냥 가고 싶었는데.
녀석의 분위기가 사뭇 심각했다.
그래서 결국, 녀석과 몇 걸음 걸어 따로 자리를 했다.
어색하다.
한쪽 팔로 뒷짐을 지고는 먼 산을 보며 나에게 등을 보인 이백운.
멋진 척하는 건가?
"내 검기를 머금은 검이 놈의 심장을 찔렀을 때 끝났다고 생각했소. 방심이었지요.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방심이 나를 이 꼴로 만들었네요."
뭐?
어쩌라고?
"제가… 한심한가요?"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영혼 없이 답을 해 주었다.
나, 새아빠한테 가야 한다고.
본론만 말해.
내 말이 너무 진정성이 없었나?
놈이 뒤를 돌아 나를 본다.
따지려는 건가?
그런데 놈이… 음, 뭐야?
나를 보는 눈이 야릇하다.
응, 나 남자 안 좋아해.
"사과하겠소. 미안합니다."
"뭘요?"
"나 소협을 무시했었소."
"됐어요. 다 지난 일인데요, 뭐."
"분명 제가 받은 정보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망보는 역할이라고. 그래서 나 소협은 그냥 망만 볼 줄 알았고……."
이 간악한 순화자, 속리자, 상취개 노인네들!
"휴우, 모두 핑계입니다. 제 부덕함이, 제 알량한 자존심이……. 무량수불. 저란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나 소협 덕분에 깨달았어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아씨! 어색하다.
빨리 떠나야겠다.
"됐어요.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나랑 잠시 이야기 좀 하겠소?"
내가 막 이백운을 피해 자리를 뜨려는 순간, 곰처럼 커다란 덩치의 궁도산이 그 길을 막아섰다.
녀석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결국 몇 걸음 옮겨 따로 자리를 가졌고.
"나 소협이 그렇게 대단한 고수일 줄은 몰랐소. 하하하! 내가! 하하! 내가 원래 좀 멍청해. 그래서 사부님께도 매일 혼난다니까요. 사람 보는 눈을 키우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하하! 나 소협 같은 고수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나, 바보 같았어요?"
"모를 수도 있고. 그런 실수는 누구나 다 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 두지 말아요. 그리고 좋은 검 때문에 괴인을 물리칠 수 있었던 거지, 나도 그렇게까지 대단한 고수는 아니에요."
"하하! 나 소협은 겸손하기까지 하고. 난 정말 나 소협이 마음에 듭니다! 우리 무황성에 같이 가지 않을래요?"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난 서둘러 자리를 피했… 당우국이다.
"나……."
뭐?
"나… 나 소협, 죄송했습니다. 나 소협을 무시하고 그랬던 거,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
"됐어요. 내 정보에 망보는 역할이라고 쓰여 있었다면서요? 이백운 도장이 다 말해 줬어요. 나라도 그랬을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나 소협 덕분에 살았습니다. 목숨의 빚을 졌어요."
"네, 그건 꼭 기억해 둬요."
내가 좀 무서웠는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당우국이었는데, 이젠 슬며시 웃는다.
웃으라고 한 말 아닌데.
"나 소협, 그거 알아요? 우리 당가는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절대로. 은혜는 두 배로, 원수는 열 배로 갚으라는 게 우리 당가의 가훈이지요."
우리 집 가훈하고 뭔가 좀 비슷한데, 또 이상한 계산법이긴 하다.
기왕 갚을 은혜면, 원수같이 열 배로 갚으면 좀 좋냔 말이다.
"진짜 고맙습니다. 나 소협에게 입은 은혜는 꼭 두 배로 갚겠습니다."
"그래요, 그래 주면 고맙고. 바쁜 일이 있어서, 나는 이만. 잘 살아요."
그렇게 가는데, 아! 강적을 만났다.
아미파의 서혜다.
그녀가 내 길을 막고 섰는데.
이거, 안다.
저 눈빛.
저 표정.
저 동작.
미인국에서 터득한 신비로운 능력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능력이 강하게 지금 나에게 경고하고 있다.
얘가 지금 나에게 고백하려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선수를 쳤다.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서혜 여협. 명성이 자자한 아미파의 서혜 여협을 만났다고 하면, 제 아내들과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할 것입니다. 하하."
순간, 서혜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데.
눈동자에 대지진이 났다.
"혼인… 혼인 이미 하셨어요?"
"아!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예쁜 아내들과 저를 닮은 아이들이 이미 여럿입니다. 하하하."
"그, 그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 아니에요.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려고……. 그럼 저는 이만……. 흑!"
저 멀리 뛰어가는 아미파의 여고수 서혜.
큭큭큭.
됐다.
위기를 넘겼다.
이제 새아빠 만나러 고향으로……. 음, 이 녀석들까지.
공동파의 3대 제자 복개와 팔선문의 술사 말추다.
얘들은 거지도 아닌데 왜 자꾸 머리를 긁는 걸까?
"나 소협, 고맙습니다. 목숨을 빚졌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정말이에요."
이 녀석들은 왜 나를 보며 부끄러워할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
"꼭 그래야 해요. 은혜를 잊으면, 절대로 잊으면 안 돼요. 알았지요? 평생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요, 하하하!"
"그럴게요.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하."
농담을 건네고 나서야 녀석들도 긴장이 풀린 듯 함께 웃었다.
그렇게 녀석들과도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고.
응, 반후인이 남았다.
내가 먼저 나를 기다리는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반후인."
"응, 나 형."
"제발 어떻게 좀 해 봐."
"응, 나 형. 이번 무림에 와서 많은 인연을 만났지만, 나 형을 만난 게 최고의 인연인 것 같아. 이건 진심이라고."
"아니. 내 말은……."
"나 형! 나 형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형을 이제 친형제로 생각하기로 했어!"
"그래, 나도 반 형이라고 부를게. 그러니 제발……."
"와! 정말 기쁘다. 정말 기뻐! 나 형과 형제가 되다니, 하하하! 우리 아버지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거야."
"반 형, 부탁인데……."
"나 형! 이거 받아. 우리 야수궁의 최고 귀빈을 뜻하는 신패야. 이것만 들고 오면, 우리 섬라국에서는 모두가 환대하며 야수궁으로 안내해 줄 거야. 나 형이 꼭 우리 야수궁을 방문해 줬으면 좋겠어."
"그전에……."
"온갖 신기한 동물들과 또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약초들이 가득한……."
"야!"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놀란 얼굴을 하는 반후인.
"이 개 새끼… 이 늑대 새끼 좀 어떻게 해 보라고!"
그렇다.
빌어먹을 늑대 새끼 열랑이 아까부터 계속 내 엉덩이를 물고 있는 중이다.
으르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