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너……."
"응?"
"나 좋아해?"
미친!
"진짜야?"
"뭘?"
"진짜로 나 좋아하냐고?"
"야!"
"왜?"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말이 안 돼? 그럼 이것들은 뭔데? 하나같이 엄청난 이 신병이기들."
"말했잖아. 네가 나를 살려 주기 위해 괴인과 싸워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부족해.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
"휴우, 됐다. 그만하자. 싫으면 다시 돌려주고."
돌려줄 생각은 없나 보다.
내가 건넨 것들을 뒤로 숨긴다.
그러면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부터 이상했어."
"또 뭐가?"
"그때 그 계곡에서 말이야. 그때도 네가 분명 그랬어.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네 뒤에 꼭 붙어 있으라고. 네가 나를 지켜 주겠다고. 그땐 왜 그랬는데?"
"야! 그건, 네가 집안 대대로 무림을 위해 혈교에 잠입해 첩보 활동을 한 것에 관한 감사함이었고. 또 같은 개방의 방도로서 지켜 주려고 했던 거지."
"또 있어."
"또 뭐?"
"저기."
"저기 뭐?"
"서혜 말이야."
"쟤는 또 왜?"
"쟤가 그날 계곡에서 아침에 잠자던 나에게 칼을 겨누었을 때. 분명 봤어. 서혜가 나를 공격하려고 하면, 곧바로 출수해서 나를 구해 주려고 준비하던 네 모습. 똑똑히 봤다고. 이래도 발뺌할래?"
"그거야 당연히 같은 개방의 방도로서……."
"분명 말했어. 이번 일 끝나면 나는 곧바로 개방 탈방한다고."
"아직 탈방 안 했으니 같은 개방의 방도잖아."
"그리고 너."
"뭐? 또 왜! 아니라고! 아니야! 나, 너, 안 좋아해! 됐어? 아니라고!"
"지금 얼굴 빨개졌어."
"그, 그건… 네가 지금 나를 화나게 하니까 그런 거잖아!"
"됐어."
미친!
자기가 시작해 놓고, 또 됐대.
아! 돌겠다.
"그런데, 나태한. 나 좋아하지 마. 나, 그렇게 좋은 여자 아니야.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사랑보다는 돈이 더 좋은 그런 속물인 여자야. 그러니 나를 좋아한다면, 마음 접어."
얘는 생긴 건 멀쩡한데 머리가 많이 아픈가 보다.
"됐다. 그만하자."
"실망했어?"
"아니! 아니라고! 실망 같은 거 안 했다고! 됐냐?"
"어머! 뭐야? 내가 속물이라는 것까지 밝혔는데도 괜찮다는 거야? 너, 그렇게까지 날 좋아해?"
때릴까?
참자.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놈이 여자 때리는 놈이라고 했다.
"너, 얼굴 더 빨개졌어."
얘랑 계속 이 이야기하고 있다가는 나도 함께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됐고. 이젠 내가 물을 차례야."
"내 이상형이 궁금해? 아니면 취미? 뭐? 뭐든 물어봐."
진짜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 보다.
"네 무공.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마공이었는데."
"마공이 왜? 우연히 무공 하나를 얻었는데 괜찮아 보여서 익혔어. 그랬는데 한참 익히고 보니 이게 마공이네? 왜? 마공을 익힌 마인이니, 단전을 파괴하고 근맥이라도 자르게?"
"단순히 마공을 익혔다고 그러는 경우는 없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여인이 나를 보며 씩 웃는다.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만족한다는 그런 얼굴이다.
분명 또 내 이야기를 왜곡해 받아들인 것이다.
아!
말하기도 싫다.
"나하고 말하고 싶으면 그냥 말하고 싶다고 해. 괜히 무공이 어떻네 뭐가 어떻네 핑계 대지 말고. 호호호."
"단문령."
"응, 그래. 또 뭐가 궁금한데?"
"아프면 의원을 가 봐. 몸만 아픈 게 아픈 게 아니야. 머리나 마음이 아파도 병이라고."
"왜? 마음이 아파? 나만 보면 막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그래?"
엄마!
나 오늘만 한심한 남자 될래요.
진짜 딱 한 대만 때릴게요.
그때였다.
"저기다! 저곳에 있다!"
저 멀리서 중후한 내공이 담긴 외침이 들려왔다.
나와 단문령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그곳으로 돌렸고.
그곳에서 150에 달하는 무인들이 엄청난 속도로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공동파의 도사들과 무림맹의 고수들이다.
* * *
공동파 일 장로 복마도도(伏魔道道) 혼원 도장과 무림맹 섬서 지부 지부장 추한검사(秋恨劍士) 등원 대협.
그들이 공동파의 2대 제자와 무림맹 고수들 그리고 섬서에서 지원을 온 무인들과 함께 빠르게 다가와 나에게……. 응, 나는 본체만체 그냥 지나간다.
"단 소저, 따라오시오."
"네."
등원 대협이 단문령만 데리고 갔다.
다친 사람들을 먼저 살피는 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이백운과 궁도산의 상태를 우선 확인하는데.
이들이 다친 상처가 중한 것도 중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검선과 무존의 제자이기에 더 그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공동파 제자들의 상세까지 모두 빠르게 확인한 후, 이들은 서둘러 지시를 내렸고.
다친 이들이 임시로 만든 들것에 실려 이송되었다.
그제야 단문령으로부터 보고를 받기 시작하였다.
곧…….
이들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나였고.
곁에 있던 공동파의 제자 한 명이 빠르게 달려와 나를 그들 곁으로 데려갔다.
"개방의 걸이번 나태한이라고 합니다."
"자네가……. 음, 그렇군. 순화자 장로님과 속리자 장로님이 추천한 사람이 자네였어."
섬서 지부장 등원이 많은 생각이 깃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그렇게 했다.
곧이어 혼원 도장이 말을 이었다.
"무림맹의 두 장로가 자네를 그렇게 강하게 추천했다고 했을 때는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역시 그 명성만큼이나 깊은 심계와 높은 안목을 갖춘 두 분이었군. 나 소협, 덕분에 우리 공동파의 제자들이 살 수 있었네. 고맙네. 무량수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혼원 도장과 등원이 나를 보는 눈이 참 별스러웠다.
많은 생각이 담긴 눈빛이었고, 분명 좋은 느낌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물었다.
혼원 도장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얼마든지 물어보시게, 나 소협."
"남궁세가, 정확히 남궁무검이 이곳에 와서 무슨 일을 하고 간 것이죠?"
순간, 혼원 도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곧 혼원 도장과 등원이 눈까지 마주치며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역시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둘은 그렇게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등원이 나에게 말했다.
"보통은 괴인들의 정체를 더 궁금해할 텐데. 그것을 먼저 묻지 않는군. 마치… 이미 괴인들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실수다.
내가 너무 남궁무검에 대해 감정이 실려, 의심 살 말을 해 버렸다.
괜찮다.
큰 문제는 아니다.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가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게 되면, 자연스레 괴인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리 물은 것입니다."
"음, 그렇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다시 혼원 도장이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괴인들을 물리친 것인가? 개방에서 특별히 자네에게 항마의 힘이 실린 무공을 전수한 것인가?"
난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지 우연히 두 자루 검을 얻었는데, 이것들에 항마의 기운이 실려 있어서 괴인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어허. 무량수불. 원시천존께서 도우셨구려. 허허. 나 소협은 잘 알고 계시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는 않겠으나, 혹시라도 이런 괴인들을 다시 만나면, 항마나 복마의 힘으로 처리하여야 한다네."
"네, 이미 깨달은 바입니다."
혼원과 등원이 동시에 만족한 듯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런 두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아까 한 질문에 대해 아직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등원이 옆에 있는 단문령을 향해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겠는가?"
"네, 물론이죠."
단문령은 물론, 두 사람을 호위하듯 지키고 있던 공동파와 무림맹 무사들까지 자리를 비켜 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 소협, 잠깐 걷겠는가?"
"네."
우리 세 사람은 외진 곳까지 자리를 옮겨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뭔가 세상이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등원이 근엄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비밀에 부쳐야 하네."
이해가 안 갔다.
"왜인가요? 이미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사건입니다. 제가 입을 다문다고 하여도 숨기기 힘들 텐데요."
그러자 등원이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번 일은 세상에 알려질 것이네. 이미 소문은 먼 곳까지 퍼진 상태고."
"그럼… 남궁세가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렇네."
등원이 그리 말하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어떤 일이 있어도 함구하겠습니다."
내 대답이 있고서도 등원은 혼원 도장과 눈을 한 차례 마주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검제께서 이번 일에 남궁세가가 관여되었음을 비밀에 부쳐 달라고 부탁하셨네."
검제(劍帝), 남궁세가의 세가주 천뢰검협(天雷劍俠) 남궁위결을 말하는 것이다.
삼존삼성(三尊三星)이며 다시 삼존일제이선(三尊一帝二仙)이고, 이는 다시 무림 6대 고수를 의미한다.
무림 6대 고수의 부탁.
이를 단순한 부탁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유야 어찌 되었건, 검제의 부탁이니 함구해야 했을 것이고, 나 역시 함구해야 하는 게 맞다.
수틀리면 우리 새아빠한테……. 큭큭.
아놔! 지금 웃으면 안 되는데.
다시 진지하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또 저 괴인들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네."
"그럼 남궁세가는요?"
"괴인을 처음 발견한 것이 남궁세가 사람이었네."
"남궁세가 사람요? 남궁세가는 안휘에 있잖아요. 이곳 감숙에서 남궁세가까지 수천 리는 될 텐데요. 감숙에서 벌어진 일을 공동파가 아닌 남궁세가 사람이 먼저 알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내 의구심에 대한 답은 혼원 도장이 직접 해 주었다.
"우리는 도를 닦는 사람들일세. 주변 민간에 어려움이 있으면 나서서 돕기는 하지만, 일부러 도문(道門) 밖의 일을 살피고 그러지는 않는다네."
음, 이건 중원 무림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다.
공동파도 분명 중원 무림의 문파로 분류되지만, 확실히 중원이 아닌 땅에 사는 이들 아니겠는가.
내가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이, 등원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무림의 생리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성삼존의 힘은 천하 그 어느 곳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네. 하물며 남궁세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지."
"그렇군요."
"괴인의 정체는 곧 검제에게 보고되었고, 검제께서는 이를 무림맹에 알리는 대신 직접 처리하기로 결심하셨네."
"검제께서요? 그런데 남궁무검이… 설마……?"
"아마 짐작하는 바가 맞을 걸세. 천하제일 세가인 남궁세가에서 후계를 얻었네. 하지만 그 후계가 양자이고, 이백운이나 궁도산과 같이 이미 천하에 명성을 자자하게 떨치는 다른 후기지수에 비해 무림에서의 활약이 전무하지 않겠나."
"남궁무검이 공을 세워 명성을 떨칠 기회를 주려 한 것이군요."
"그럴 것일세. 그래서 검제께서 남궁무검에게 제왕검을 주고, 남궁세가의 최고 무력대인 창궁검무대까지 함께 보낸 것 아니겠는가."
다시 혼원이 나섰다.
"남궁세가에서 정식으로 우리 공동파에 협조 요청까지 했네. 그때까지만 해도 흉흉한 소문은 있었지만, 괴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우리였고. 남궁세가에서 부탁한 대로, 고작 몇 명의 제자를 그들에게 붙여 준 게 전부였네. 그런데… 허허. 무량수불. 무량수불."
괴인, 그러니까 나이트 언데드의 존재로 공동파에서도 꽤 놀랐었나 보다.
혼원 도장이 그때를 회상하며 씁쓸하면서도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는 실로 대단한 활약을 했다네. 몇 달 동안 감숙 일대를 쥐잡듯 샅샅이 수색하며 스무 구가 넘는 죽지 않는 괴인들을 처리했다네. 정확히는 스물한 구의 괴인들을 죽여 소멸했다네."
바로 등원이 혼원 도장의 말을 이었다.
"괴인들을 모두 처리하였고, 일은 그렇게 마무리됐네. 남궁무검은 창궁검무대를 이끌고 남궁세가로 돌아갔고. 그 사건에 대해 공동파와 우리 무림맹에서 남궁무검의 활약과 공로를 공표할 일만 남았었지. 그런데……."
"다 죽인 줄 알았던 괴인이 더 있었던 거군요."
"그렇지,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도 다시 돌아왔네. 자네들처럼 비밀리에 감숙 일대를 수색하며 혹시 더 남아 있을지 모를 괴인들을 찾고 있는 중이라네."
"아직 많이 남았나요?"
등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없을 거야. 몇 번이고 수색하고 또 하고, 그러다 발견한 게 아까 자네가 처리한 네 구의 괴인들이 마지막이었네. 더는 없을 것이야."
혼원 도장이 나섰다.
"혹시 더 남았다고 해도 나 소협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우리 공동파에서 이번 일을 간과하지 않고, 장문인과 장로들까지 모두 나서서 남궁세가와 공조하여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괴인들을 수색하는 중이니 말일세."
천뢰복마신공(天雷伏魔神功), 복마검법(伏魔劍法), 복마대구식(伏魔大九式), 대복마권법(大伏魔拳法), 복마장법(伏魔章法), 심지어 복마신후(伏魔神吼)까지.
이게 다 공동파의 무공들이다.
모르면 몰랐겠지만.
또 괴인을 간과했다면 모르겠지만.
현 상황에서 공동파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나섰고.
다시 제왕검을 든 남궁무검과 남궁세가 최고의 무력대인 창궁검무대까지 있다면.
이곳은 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무 마리……. 음, 죽었지만 산 자들이니 구(具)라는 말이 맞겠네요.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가 스물한 구의 괴인들을 처리했는데, 왜 비밀에 부치려는 것이죠? 실로 엄청난 공을 세운 일일 텐데요. 남궁무검의 명성 또한 자자해질 테고요."
"무림에 얼마나 많은 마두며 대마두며 악인들이 있는지 잘 알지 않는가? 공을 세울 기회는 차고 넘치네. 이번 남궁무검의 행적은 분명 공이 크지만, 과 또한 적지 않네. 그가 실수로 잡지 못한 네 구의 괴인들이 100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으니, 그 일이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검제께서는 남궁무검이 완전무결한 업적을 세우며 무림에 첫선을 보이길 원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지, 남궁무검은 남궁세가의 미래 그 자체인데, 첫 시작부터 커다란 흠이 존재하길 바라지는 않을 것 아니겠는가."
"음, 그렇네요.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가 빠졌습니다."
등원과 혼원 도장이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본다.
"그 괴인들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나왔냐 하는 문제요."
내 말에 등원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답했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죽이면 재가 되어 사라지고, 산 채로 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말이네. 당장 그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기는 힘드네. 무림맹에서 술사들을 부르거나 이에 관한 고서적을 연구하고, 뭐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알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왜……."
"……?"
"왜 아무도 남궁세가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