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거대하다.
난쟁이들의 무기고는 화려하고 거대했으며 훌륭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번에 수백 발의 화살을 쏘아 대는 기관연사궁이었다.
"한 번 봤다며? 기관연사궁은 우리가 만들었지만, 정말 무지막지한 살상력을 갖춘 무기라네. 그래서 오크 원정대가 아니면 절대 지급하지 않는 무기기도 하지."
"어? 그런데 비슷한 모양이지만 크기가 작은 것들도 있네요?"
"기관연사궁은 대, 중, 소, 극소의 크기로 구분하네. 자네가 본 게 대짜고, 한 번에 700발의 화살의 연사가 가능하지. 중짜는 300발, 소짜는 100발. 극소는… 자! 손에 차 보게."
암기다.
손목에 차는 팔찌다.
그것도 이들의 세공 기술이 엄청나다는 말과 어울리게 예쁜 게 아닌 아름다운 팔찌다.
"단 한 번에 50발의 작은 침들을 발사할 수 있네."
우모침(牛毛針)이다.
그런데 한 번에 50발?
사천당가의 암기 중 우모침을 장착하여 발사하는 암기가 꽤 유명하다.
그중 가장 뛰어난 것이 7연사가 가능했다고 들었는데, 무려 오십 발의 우모침을 연사할 수 있다니.
역시 드워프의 기술이 무림의 것보다 몇 배는 뛰어남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때? 마음에 드나?"
"네, 엄청나네요. 심장이 다 떨릴 정도로."
"풉. 정말? 겨우 극소 기관연사궁을 보고 그런 반응이라면, 다른 걸 보면 기절하겠네. 하하하. 마음에 들면 가지게."
"정말요? 이렇게 귀한 걸……."
"귀하긴. 자!"
커다란 나무 상자를 열었는데, 극소 기관연사궁이 수백 개 들어 있다.
"사실 그건 실패작이야. 실전에서는 거의 쓸 수가 없어. 그걸로 오크 한 마리 잡으려면, 모르긴 몰라도 3,000발은 명중시켜야 할 거야. 하하. 그래서 우리는 동네 아이들이 마을 밖의 개울이나 산 같은 데 놀러 갈 때, 혹시 모를 동물들이 나타나면 쫓아내라고 주곤 하지. 실전에서는 쓸모가 없다네."
건힐드의 말은 틀렸다.
이곳에서는 맞는 말이겠지만, 무림에서라면 틀린 말이다.
왜?
우리에겐 사혈(死血)의 개념이 존재한다.
50발이 아니라, 단 한 발이면 하나의 고수를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번 쏴 봐도 돼요?"
"그럼. 이게 침창(針倉, 탄창)이네. 이걸 이렇게 끼우면 되네. 간단하지?"
50발의 우모침이 들어간 침창까지 있다.
우모침을 일일이 장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와!
대박이네.
침창 역시 매우 작아서 전낭이나 소매 같은 곳에 수십 개를 넣어 놓고 다녀도 되고.
"한번 쏴 보게."
"네."
심호흡.
조준.
발사!
피우우우우우웅!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탓!
벽을 향해 쐈다.
혹시나 했지만, 극소 기관연사궁의 정확도는 실로 무지막지했다.
암기의 고수가 쏜다면, 50발로 50명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애들 장난감 같은 무기를 한 번 쏘고 뭐 그리 놀라나?"
"아! 아니에요. 감사해요. 정말로 마음에 들어요."
"허허. 원한다면 다 가지게. 우리 마을에서는 애들도 잘 안 차고 다니는 거니까."
"네, 우선 이거 하나만. 하아……."
좋다.
정말 좋다.
최소한 사천당가의 암기는 안 무서워해도 되겠다.
이게 더 세니까, 하하하!
침창까지 넉넉히 챙겼다.
만약 침이 다 떨어지면, 이건 무림에서도 만들 수 있다.
물론 뛰어난 야장이어야만 가능할 것 같다.
"이건 마차네요?"
"전차라고 하네."
건힐드의 설명이 이어졌고.
역시나 턱이 빠질 정도로 놀라운 엄청난 것이었다.
갖고 싶었지만, 이건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이건 그냥 활 아니에요?"
"천궁이라고 하네. 직접 보여 줘야겠군."
건힐드가 직접 무기고 밖으로 나가서 천궁을 쐈다.
한 번에 세 발의 화살까지 쏠 수 있다고 했고, 실제 그는 세 발의 화살을 단번에 쏘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쿠, 이걸 확인하는 게 어렵겠군. 골디야."
"네, 건힐드."
"나중에 시간 나면 태한이 데리고 가서 확인하게 해 주어라."
"네."
뭔 소리야?
내가 물었다.
"뭘 확인해요?"
"십 리 밖에 과녁이 설치되어 있네. 내가 쏜 세 발의 화살 모두 과녁에 꽂혔을 거야. 지금 확인하기 어려우니, 나중에 시간 나면 가서 한번 보라고."
십 리(대략 4km)?
장난해?
응, 드워프는 무기로 장난 안 한다.
머리가 하얘졌다.
십 리 밖의 과녁을, 그것도 무려 세 발을 모두 명중시켰다니.
저것도 나중에 챙겨야겠다.
다시 무기고로 돌아와 많은 무기를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온 첫날 오크들과 싸울 때 드워프들이 던졌던 손도끼 말이다.
역시 고도의 기술력이 스며든 최첨단 손도끼였다.
"이렇게 던지면……."
쉬이이이이이익.
척!
어디로 어떻게 어떤 힘으로 던져도 무조건 내 손으로 돌아온다.
와! 이건 녹림십팔채에 팔면 돈 엄청 받겠다.
이것도 나중에 챙겨야겠다.
"이… 이건… 이건 말도 안 되잖아요!"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와우!
아니다.
이건 무림에서도 들어 봤다.
그런데 이게 그건가?
유령검(幽靈劍)이다.
허리로 거두면, 검이 허리를 감싸 요대처럼 변함과 동시에 사라진다.
다시 검을 뽑으면 이게 나타난다.
이게 말이 되냐고?
작은 손동작만으로 순식간에 하나의 검이 열 개로 변하고, 다시 한 개로 변하기도 하는 것도 있고.
한 자루의 검인데 이게 다시 단검, 중검, 장검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것도 있다.
"이건… 화포(火砲) 아니에요?"
"오! 이건 알아보는군. 맞네, 화포. 우리는 대포라고 하지. 하지만 당장 보여 줄 수는 없어. 마을 사람들이 놀랄 테니까."
"아, 네. 그런데 위력은 얼마나 되죠?"
"작은 산 하나는 금방 무너뜨릴 수 있지. 혹시 모를 마왕이나 드래곤을 상대로 준비한 무기 중 가장 많이 대중화된 것이 바로 대포네."
"오크들은요?"
"오크들 따위에게 대포를 쓸 일이 있겠나?"
"그, 그렇죠."
"이건 뭐죠? 무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윙슈트(Wingsuit)라고 하네. 하늘다람쥐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착안하여 만들었지."
"하늘을요? 정말로 하늘을 난다고요?"
"맞아, 날아. 물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기 때문에, 숙련된 드워프만 이용할 수 있지. 자네도 원한다면, 자네 신체에 맞게 하나 만들어 주겠네."
"아… 이거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괜찮아, 누가 뭐래도 자네는 1,000년 만에 나타난 인간 아니겠나? 그리고 윙슈트 정도는 동네 아낙이 망치질 몇 번 하면 뚝딱 만들어."
"바느질 아니고요?"
"응, 우리는 옷도 망치로 만들어."
"아, 네, 네."
그 외에도 정말 기상천외할 만한 무기들이 가득하였다.
너무 놀라 나중에는 말도 안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자! 여기네. 오래전 드워프와 인간, 엘프들이 쓰던 무기들을 기념적으로 보관하는 곳."
무기고의 가장 깊숙한 또 다른 무기고.
그곳의 문이 열렸다.
지금까지 봤던 것들과 달리, 확실히 인간과 엘프들이 사용했던 무기들이 많아 그 크기가 상당히 컸다.
작은 것만 보다가 일반적인 크기를 보니, 괜히 더 커 보이는 느낌도 들었고.
내가 쓰기에 딱 알맞은 무기들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와! 그냥 가만히 있는데도 빛이 반짝반짝 난다.
은은한 기운들까지 무기고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여기 있는 검과 창들 말이다.
실제 하나하나가 죄다 엄청난 신병이기라 부를 만한 것들이 분명하다.
이 무기들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내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주로 검과 창을 많이 썼네. 엘프들의 주무기는 활이었고, 그들은 굉장한 명사수였다는 기록들이 있다네. 아까 보았던 천궁 역시 엘프들이 만들던 활의 기술을 적용해 우리가 더 발전시킨 것이고."
"건힐드, 그런데 어떤 무기에 성력이 깃들고 마법의 힘이 들어가 있나요?"
"응?"
"네?"
"그게 말이야……."
지금껏 자신들의 무기를 자랑하며 거칠 것 없던 건힐드가, 순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골디?"
골디는 아예 내 눈까지 피한다.
"어험, 미안하네. 난 그게 뭔지 모르네. 수백 년 전과 1,000년 전에 쓰였던 마력과 성력이라는데, 그걸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구분하겠나?"
음, 분명 그러하긴 하겠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제가 이것들 하나하나 다 써 봐도 돼요?"
"직접 써 보고 성력이나 마력이 깃들었는지 확인해 보게?"
"네, 괜찮을까요?"
"안 될 게 뭐가 있나? 지금은 쓰지 않고 그냥 여기 방치해 둔 과거의 무기들인데. 그런데, 태한."
"네, 건힐드."
"왜 성력과 마력이 깃든 무기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아까 말한 언데드 때문인가? 자네가 살던 세상에 나타났다는."
"네."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나?"
"혹시 모르잖아요.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또 언제 어떻게 돌아갈지도 모르니까 준비해 둬서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에서요."
"음, 그래.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야. 그럼 천천히 둘러보게. 아마 여기 있는 무기들 대부분이 기본적인 성력이나 마력은 갖추고 있을 거야. 이곳에 보관한 무기들이면, 당시에도 꽤 대단한 검사들이 썼던 무기였을 테니까."
"보기에도 그래 보이네요."
"혹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게. 나중에 내가 국왕에게 제대로 된 검을 따로 부탁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네. 고마워요, 건힐드. 그래도 일단 이곳에 있는 무기들부터 살펴볼게요."
"그러시게."
* * *
잠을 자지 않고 밤을 고스란히 보냈다.
무기고 안에서 검을 일일이 집어 낙백구검을 펼쳤다.
아쉽게도 타구봉법을 펼칠 봉은 없었다.
이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봉은 쓰지 않나 보다.
왜일까?
사실 검에 비해 봉이란 무기 자체가 살상에 있어서는 비효율적인 게 맞다.
그래서일까?
봉은 없고, 아무튼 검을 모두 써 봤고.
실로 하나하나 대단한 검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 손잡이에 세인트 스워드(Saint sword)라는 글자가 박힌 은빛의 검이 최종적으로 나의 선택을 받았다.
검 자체도 엄청난 보검일뿐더러, 확실히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이 검이라면, 무림에 가서도 최고의 보검이라 불릴 만하다.
또한 나이트 언데드 따위는 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너무 눈에 띈다.
무림에도 화려한 검은 많지만, 생긴 게 너무 무림의 것과 달랐다.
그리고 검의 손잡이가 내가 쓰던 것과 너무 많이 달랐다.
검의 시작은 누가 뭐래도 검의 손잡이에서 시작되고, 그것의 미세한 차이가 검법을 펼칠 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골디가 무기고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말 여기에 있었네요? 밤을 새운 거예요?"
"마침 잘 왔다, 골디야. 이거, 이 검 말이야."
"엇! 세인트 스워드네요?"
"알아?"
"네. 이거 1,000년 전 마왕 세계 대전 때, 성자기사단이 썼던 검이라고 들었어요. 이거라면 확실히 언데드 따위는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제대로 골랐네요, 형."
골디까지 그리 말해 주니 더더욱 이 검이 마음에 들었고, 내 선택이 옳았음에 뿌듯했다.
"혹시 내가 쓰던 검처럼 변형을 시킬 수 있을까? 특히 이 손잡이 부분."
"음, 그건 가능한데, 문제는……."
"문제는?"
"현재 검을 만드는 장인 드워프들의 재주가 1,000년 전보다 확연히 발전했지만, 성력이나 마력을 주입하거나 보존하는 기술은 거의 사라졌어요. 검을 변형할 때 혹시라도 검에 깃든 성력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이에요."
"하아! 그럼 내가 이 검을 선택한 이유가 없어지는 거잖아."
"미안해요, 도와주지 못해서."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잖아."
"형, 그건 건힐드나 다른 원로들과 상의해 보면 답이 나올지 모르니 이따가 물어보죠. 일단 밥부터 먹어요. 벌써 아침이라고요."
"아! 그래, 밥. 밥은 먹어야지. 거지가 밥 준다는데 사양할 수는 없지."
"네? 거지요?"
"아니야, 그런 게 있어. 가자, 밥 먹으러."
"네, 형. 아! 그리고 이거요."
"이건… 윙슈트잖아?"
"네, 어제 건힐드가 슈트렉 아줌마한테 말했더니, 아줌마가 뚝딱 만들어 줬어요. 형 몸에 딱 맞을 거예요. 우리 밥 먹은 다음 윙슈트 타고 어제 천궁으로 쐈던 과녁 확인하러 가요."
"그래, 그러자."
난 그날, 하늘을 날았다.
무려 십 리의 거리를, 땅에 한 발도 딛지 않고 바람과 하나가 되어 하늘을 가로질렀다.
정말 꿈과 같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