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71화 (70/174)

71화

"하지만 자네도 명심하게."

"뭘요?"

"드래곤은 조심해야 해. 우리가 3할의 땅을 오크들에게 양보한 것도, 그곳이 원래 드래곤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야. 오크들이 죽을 줄 알면서도 기를 쓰고 우리 영역을 침범하는 것 역시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를 드래곤들이 무서워 그곳을 벗어나려는 것이고."

"아! 네, 혹시라도 보게 되면 조심할게요."

"그렇다고 또 너무 쫄지는 말고. 말했잖아. 우리는 드래곤이고 마왕이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네, 건힐드."

대단한 자신감이다.

"건힐드,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요?"

"얼마든지."

"제가 이곳으로 차원 이동을 하기 전에, 기괴한 녀석을 하나 만났거든요."

나는 그에게 이곳으로 오기 전 싸웠던 그 죽지 않는 괴인에 대해 설명했다.

내 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건힐드는 긴 수염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언데드(Undead)를 말하는 것 같군."

"언데드요? 죽지 않는 뭐 그런 의미인가요?"

"그렇지, 그리고 자네가 만난 언데드는 아마도 나이트 언데드(Knight undead)일 가능성이 커 보이네."

언데드라…….

역시 행운석이 나를 그냥 보낸 게 아니었어.

고맙다, 행운석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언데드가 존재했었는데, 마법사들과 흑마법사들 그리고 마녀와 강령술사 등이 사라진 후에는 언데드도 사라졌지."

"그럼 이곳에 현재는 언데드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네."

"그럼 놈을 죽일 수 있는 무기 같은 거는요?"

"글쎄, 그래도 수도 궁전에 가면 무기고에 남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중에 국왕을 만나면 내가 한번 물어보지."

"아, 네. 꼭 좀 부탁해요, 건힐드."

"알았네."

"언데드에 관해서 조금 더 알려 주세요. 나이트 언데드는 뭔가요?"

"언데드에도 종류가 있어. 가장 흔하고 약해 빠진 언데드를 과거에는 좀비(zombie)라고 불렀다고 하더군. 정확히는 스피릿티즘 좀비(Spiritism zombie)고."

"스피릿 좀비요?"

"응. 강신술(降神術)에 의해 만들어지는 놈들인데, 강신술사들이 산 사람을 강신술의 약물로 감염시켜 죽이면, 그 사람이 죽었다가 되살아나 좀비가 된다네. 되살아난 좀비는 다시 다른 사람을 물어 감염시키고, 그 모든 좀비가 모두 종주(宗主)인 강신술사의 명령에 따르게 된다네."

"그럼 그 숫자가 한도 끝도 없이 증가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진 않지. 강신술사의 경지에 따라 조종 가능한 좀비의 숫자는 한계가 있거든.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가장 흔하고 약해 빠진 언데드가 스피릿트 좀비라고."

"그것도 죽이기 힘든가요?"

"이지(理智)가 없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물리면 즉시 감염되니 조심하긴 해야 하겠지만, 느리고 약해. 머리를 공격하면 즉시 죽으니 무서워할 필요 없어."

"아, 그렇군요. 그럼 그다음은요?"

"좀비의 상위 언데드는 스켈레톤(Skeleton)이라네. 좀비보다 더 빠르고 강하고, 아! 뼈대만 남은 언데드들이라 보기에 매우 으스스하다네."

"걔들은 어떻게 죽이는데요?"

"뼈를 모두 박살 내면 돼. 좀비보다야 강하지만, 그래 봐야 허접한 녀석들이니 역시 두려워할 필요 없어."

"네, 뼈를 박살."

"스켈레톤 상위 개념의 언데드가 바로 자네가 만난 나이트 언데드(Knight undead)라네. 좀비나 스켈레톤과 달리 상당한 이지가 있고, 약간의 언어까지 구사할 능력이 있는 놈들이지. 그리고 만나 봐서 알겠지만, 안 죽어. 어떻게 해도 안 죽는 놈들이야, 일반의 방법으로는."

"그럼 어떻게 죽여요?"

"자네가 물어보지 않았나? 나이트 언데드를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없냐고."

"어떤 무기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데요?"

"마법의 힘이나 성력(聖力)이 깃든 무기를 써야 놈들을 죽일 수 있다네."

"성스러운 힘이요?"

"그렇지."

항마(抗魔)나 복마(伏魔)의 기운, 그런 힘이 깃든 무공이나 무기를 써야 한다는 말인데.

아! 소림이나 무당, 화산 같은 불가와 도가의 문파에서 왜 그렇게 항마신공이니 복마검법이니 하는 무공과 심법을 열심히 익히는가 했더니.

그게 다 쓸모가 있는 거였어.

그때 옆에서 나와 건힐드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골디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하나 더 있어요."

"그게 뭔데?"

"드래곤 본(Dragon born)."

"드래곤 본? 그거 용의 뼈를 말하는 거야?"

"네, 형."

그때 건힐드가 웃으며 말했다.

"드래곤 본만 있으면 무서울 게 뭐가 있겠나? 하하. 지상 최고의 무기를 만들 수 있지. 그것이라면 언데드 따위가 문제겠어? 드래곤과 마왕까지 죽일 수 있을 텐데. 없어서 못 만드는 게 문제지."

건힐드의 말에 골디가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다.

"틀린 말은 아니니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골디야."

"네, 건힐드."

골디는 부끄러워했지만, 나는 호기심이 들었다.

"드래곤 본이 그렇게 대단해요?"

"강하지. 기록된 역사에 나오는 전설의 무기들은 모두 드래곤 본으로 만들었으니까. 베지 못하는 것이 없고,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또한 죽이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게 바로 드래곤 본이라고 기록되었네."

현철보다 더 강하고 대단한 거잖아?

욕심난다.

"하하하. 표정을 보아하니, 엄청나게 갖고 싶나 보군."

"아, 네. 뭐, 그렇죠."

"없어. 1,000년 동안 드래곤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설사 드래곤이 있다고 해도 누가 드래곤을 죽이고 그 뼈를 가지려 하겠나? 만약 드래곤이 나타나도, 일단은 그들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해. 두려운 건 아니지만, 괜한 희생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나?"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허허허."

"건힐드, 그러면 나이트 언데드가 최상의 언데드에요?"

"그건 아니라네. 그 위로 고스트 언데드(Ghost undead)란 놈들이 있어. 형체가 없는 유령이라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고, 빠르고, 영악하기 그지없으며 잔인한 놈들이지. 당연히 완벽한 언어까지 구사한다네."

"그놈들은 어떻게 죽이는데요?"

"더 강력한 마법의 힘이나 성력이 필요하다네."

"고스트 언데드 다음은요?"

"휴먼 언데드(Human undead)가 있지. 사람과 매우 흡사해 구분하기 힘들고 그 힘과 검술은 소드 익스퍼트의 것과 맞먹는다고 해."

소드 익스퍼트를 무림에 대입하면, 초절정이다.

"휴먼 언데드는 어떻게 죽이는데요?"

"더 강력한 마법의 힘이나 성력. 물론 아무리 강력한 마법의 힘이나 성력이 깃든 무기가 있어도, 일단 휴먼 언데드보다 기본적으로 강한 검사여야만 하겠지."

"휴우, 어렵네요."

"그게 끝이 아니야. 가장 강력한 언데드가 있네."

"또요? 그건 뭔데요?"

"데몬 언데드(Demon undead).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인간과 완전히 똑같아 보통 사람은 구분할 수 없고, 대마법사나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경지의 사람들만이 간신히 그들을 구분할 수 있다고 전해지네."

"힘도 어마어마하겠네요?"

"전설의 소드 마스터들과 대등하게 싸웠다고 하기도 하고, 소드 마스터들보다 우위의 힘을 지녔다는 기록도 있고."

소드 마스터, 젠장!

화경의 고수다.

뭐야?

뭔 놈의 언데들이 이렇게 강해?

"그것도 마법의 힘이나 성력이 깃든 무기를 들고 싸워야 비슷하게라도 싸울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그런데 음……."

"왜요?"

"데몬 언데드는 출현한 적 자체가 거의 없어.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싸웠던 소드 마법사들은 죄다 드래곤 본으로 만든 검으로 데몬 언데드를 상대했다고 기록되어 있네."

"용 뼈요."

"용 뼈 맞아."

"지금 없는 거요."

"없지."

"나타나면 끝이네요?"

"드워프들을 무시하지 말게."

"그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어요?"

"지금은 없지."

"그럼요?"

"만들면 되지."

"어떻게요?"

"뚝딱 만들지. 이 망치로."

장난 같은데.

말이 안 되는 이 소리가 드워프가 한 말이라면, 또 괜한 말로 치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 더 있어요."

골디다.

"뭐가 더 있어?"

"데몬 언데드보다 더 강한 언데드요."

건힐드가 또 웃었다.

그러자 골디가 부끄러워 입을 다문다.

"괜찮아. 얘기해 줘. 뭐, 출현한 적이 없는 상상 속의 언데드기는 하지만, 어차피 다른 언데드들도 나타날 일이 없는데 모두 설명해 줬잖아. 얘기해도 괜찮다, 골디야."

"네."

내가 물었다.

"그래서, 그게 뭔데?"

"갓 오브 언데드(God of undead)요."

"언데드의 신?"

"네."

"신?"

"네."

"음, 그러니까. 마왕 비슷한 거네?"

"맞아요, 형."

나는 시선을 건힐드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실제로 존재는 하는 것 같기도 해. 기록에 따르면 데몬 언데드가 출현했을 때 직접 갓 오브 언데드를 언급했다고 하고, 마왕의 입에서도 한 번 갓 오브 언데드가 나온 적이 있다고 하니.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단 한 번도 출현한 적이 없다네."

"아! 그렇군요. 그럼 갓 오브 언데드가… 뭐, 볼 일이 없겠지만, 만약에 갓 오브 언데드가 나타나면 어떻게 죽여요?"

건힐드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걸 왜 묻나?"

"그냥요, 궁금하잖아요."

"하하. 말 그대로 언데드들의 신이 아닌가?"

"신이라……."

"인간은 못 죽여. 그건 우리 드워프도 마찬가지고. 신은 신만이 죽일 수 있다네. 가장 좋은 방법은……."

"……?"

"놈이 우리 세상에 넘어오는 길을 미리 차단하는 거지. 하지만 일단 넘어왔다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할 걸세. 언데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지. 하하하. 그런데 그럴 일은 없으니, 하하하! 이거 너무 웃기네. 하늘이 무너질 걱정을 하는 게 더 현실적이겠다. 하하하!"

정리해 보면 대충 이렇게 이해된다.

좀비, 스켈레톤은 삼류와 이류.

나이트 언데드는 고수급.

고스트 언데드는 절정급.

휴먼 언데드는 초절정.

데몬 언데드 화경.

갓 오브 언데드는 신이란다.

아! 내가 만약 이곳으로 오기 전에 그 죽지 않는 괴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미친 소리라 치부하고 말았을 텐데.

내가 직접 보고 싸웠지 않겠나.

그나마 다행인 건 무림에 나타난 게 나이트 언데드란 거다.

고수의 경지만 돼도 충분히 상대 가능하다.

나와 단문령 역시 당황해서 그랬지, 결론적으로는 놈을 상대로 몇 번이나 치명타를 남기지 않았었는가.

무기만 있으면 된다.

성력이나 마법의 힘이 깃든 무기.

그것만 얻어 무림으로 돌아가면, 놈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냥 불안해 심장이 계속 콩닥콩닥 뛴다.

남궁무검, 이 새끼는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기에 무림에 나이트 언데드가 나타난 거야?

하아! 나중에 만나면 가만 안 둔다, 남궁무검… 아니, 걸사번 빌어먹을 새끼.

"아! 생각났다.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즉 하지 못했을까?"

"뭔데요, 건힐드?"

"우리 할아버지가 쓰던 망치."

"그게 왜요?"

"마왕 세계 대전 때 우리 할아버지께서 1,000명이 넘는 마귀들의 머리통을 죄다 부셨다고 하셨거든. 그거면 분명 성력이나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을지도 몰라."

"망, 망치요?"

아! 망치를 쓰기에는 좀 그런데?

더군다나 드워프가 쓰던 거라 분명 짜리몽땅할 테고.

"그거 말고도 당시 인간이나 엘프들이 쓰던 검들이 몇 개 남아 있어. 분명 자네에게 어울리는 검도 있을 거야."

"어디에 있는데요?"

"우리 무기고."

"지금 가 볼 수 있어요?"

"물론이지. 바로 볼 텐가?"

"네."

됐다.

마왕의 군대를 상대로 싸웠던 인간과 엘프의 검.

그것이라면 나이트 언데드 따위는 분명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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