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69화 (68/174)

69화

"수류편(手柳片, 수류탄)을 던지겠다. 엎드려!"

한 난쟁이의 외침.

허공으로 석류를 닮은 뭔가를 높이 던졌다.

그런데 그게 허공에서, 펑!

엄청난 폭음과 함께 터지는가 싶더니, 수백 개의 파편이 되어 땅으로 내리꽂힌다.

당연히 몸을 숨긴 난쟁이들은 이를 피했고.

오크들만…….

"끄아아아아아악!"

"꾸웨에에에에엑!"

그게 끝이 아니다.

어느 난쟁이는 허리춤에 달린 수부(手斧, 손도끼)를 연달아 다섯 개를 던졌는데.

그게 오크들의 목을 몇 개나 베고서, 정확히 난쟁이의 손으로 돌아왔다.

어마어마하다.

분명 기를 운용해 손도끼를 조종한 게 아닌데, 어떻게?

손도끼에 무슨 기이한 장치 같은 게 달린 듯하다.

신기하네.

하지만 진짜는, 신기한 무기 따위가 아닌 난쟁이, 그러니까 드워프 그 자체다.

"감히 어디서 드워프의 땅을 넘어오느냐!"

쾅쾅쾅!

"죽어라, 돼지머리 오크들아!"

쾅쾅쾅!

짧고 굵은 망치로, 무시무시한 오크들을 그냥 마구 때려죽인다.

거침이 없다.

그 용맹함은 정말 보는 나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런데, 아!

거의 전멸해 가던 오크들 뒤로, 또 다른 오크 무리… 500마리가 가세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앙!"

트롤.

진짜 한 장 반(4.5m)이 넘는 엄청난 괴수, 골디의 말처럼 한 손에는 커다란 돌 몽둥이까지 들고 난쟁이들을 향해 돌격.

천하에 무서울 게 없을 것 같던 난쟁이들도 주춤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익.

퍼어어억!

선두로 달려온 트롤의 돌 방망이에 열셋 중 열둘이 피했지만, 한 녀석이 오크 세 마리를 죽이느라 피하지 못했고.

쉬이이이이이이잉.

저 멀리,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날아가고 말았다.

"죽어라, 트롤 괴수야!"

"도토리의 후예들은 절대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트롤과 오크들을 모두 도륙하자!"

"와아아아아아아!"

난쟁이들은 용맹했다.

그리고 실제 그 용맹한 만큼 강했다.

하지만…….

휘이이이이이이이익.

퍼어어억!

쉬이이이이이이잉.

난쟁이 또 한 명이 저 멀리로 날아갔고.

밀려드는 오크들은 끝이 없었다.

아무리 난쟁이들이 용맹하고, 그들의 무기가 대단… 아! 무기들까지 망치를 제외하면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오크들과 트롤이, 흔한 말로 몸빵으로 그것들을 다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래도 조금의 두려운 기색도 없이 수백에 달하는 오크들과 혈전을 펼치는 난쟁이들.

대단하다.

하지만 분명 한계다.

아무리 용맹한 난쟁이들이라 한들, 더는 버틸 수 없다.

- 골디, 부탁이야. 나를 풀어 줘.

쉬이이이익.

"꿰웨에에에엑."

오크 두 마리의 머리를 망치로 터뜨린 골디가 갈등한다.

쉬잉이이익.

"꿰웨에에에엑."

다시 한 마리의 머리를 더 터뜨리더니.

몸을 훌쩍 날려 나에게 왔다.

"역사책에… 드워프와 인간은 힘을 합쳐 오크들을 상대했다고……."

"풀어! 어서!"

쾅!

골디가 밧줄을 망치로 끊어 버렸고.

검!

X팔, 내 검이 사라졌다.

그냥 몸을 날렸다.

죽은 오크의 칼을 잡고, 곧바로 트롤을 향해 번쩍 도약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트롤이 그런 나를 향해 돌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아!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살벌하긴 하다.

하지만 이런 방망이 따위에 맞을 내가 아니다.

척!

타타타타타탓!

거대한 방망이를 밟아 재도약, 놈의 기다랗고 울퉁불퉁한 팔을 밟아 빠르게 달려.

쉬이이이이익.

트롤의 목을 베었다.

쿠우우우우웅.

콰아아앙.

놈이 쓰러지며 거대한 충격음을 냈고.

이에 순간 당황한 오크들.

다시 곧바로 움직였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익.

샤사사사사사사삭!

낙백구검과 타구봉법을 동시에 펼치며.

빠르게 오크들을 사살했다.

"뭣들 하세요! 인간이 우리를 도와 싸우잖아요!"

골디의 외침.

그러자…….

"그래! 돌진! 인간에게 질 수는 없지! 가자! 오크들을 도륙하자!"

"와아아아아아아!"

난쟁이들이 힘을 내서 다시 싸웠고.

아! 아까 트롤의 돌 방망이에 맞아 저 멀리 날아갔던 난쟁이 두 녀석들 말이다.

화가 잔뜩 나 씩씩거리며 짧은 다리로 달려와 합류.

퍽퍽퍽!

콰콰콰콰쾅!

"꾸웨에에에에에엑!"

열세 명의 난쟁이들과 나는 한 식경이 되기도 전에 총 800이 넘는 오크들과 트롤 한 마리를 모두 멸살하였다.

"헉헉헉!"

"헉헉! 인간, 너도 꽤 하는군."

"이제 믿어요? 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요? 헉헉."

"그래, 헉헉. 믿는다, 인간아."

오크들과의 싸움으로 지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자로 땅바닥에 누워 버렸다.

"하하. 하하하하! 인간과 함께 오크들을 물리치는 날이 올 줄이야."

"하하하하. 하하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누운 상태 그대로 하늘을 보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도 참 이상한 세상에 왔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그들과 함께 미친 듯한 웃음을 한참이나 쏟아 내야 했다.

그런데 그때.

열세 명의 드워프 중 유일하게 웃지 않고 줄곧 혼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녀석.

아까 그 누트라는 드워프가 고민을 마친 듯, 아주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물었다.

"너… 소드 마스터였냐?"

* * *

서도토리촌에 도착했다.

작다.

집도 작고, 사람들… 아니, 드워프들은 당연히 작고.

말이 있다.

몇몇 드워프들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게 보였는데.

응, 조랑말이다.

아무래도 우리 인간이 타는 커다란 말은 드워프가 타기 힘든가 보다.

저쪽에선 큰 뿔 염소도 타고.

멧돼지를 타는 녀석들도 있다.

작은 집들이 드문드문, 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예쁘기도 하다.

"인, 인간이다!"

"인간이야!"

"정말? 어멋! 정말 인간이네!"

돌아온 원정대.

그 무리에 섞인 나를 보고 서도토리촌의 드워프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무슨 신기한 동물을 보듯 그렇게 나를 보는 드워프들.

휴우.

참자.

뭐, 어쩌랴?

나라도 신기했을 텐데.

아니, 진짜 신기한 걸 봤다.

왜 골디 녀석이 나를 그렇게 불쌍한 눈으로 봤는지 알 것 같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와 애들까지 죄다 수염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외모를 본 드워프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어머, 수염이 없어."

"진짜 못생겼네. 기괴해."

"그러게, 수염이 없느니 그냥 대머리가 되고 말지."

"눈썹을 밀어도 저것보다는 괜찮겠다."

"어휴, 그만들 해요. 불쌍하게. 누군 저렇게 생기고 싶어서 생겼겠어요?"

"그래, 다들 모른 척하자고."

젠장!

다 들리는데 뭘 모른 척해?

아! 갑자기 미인국이 그리워졌다.

잘들 살고 있소, 부인들?

내, 언젠간 꼭 돌아가겠소.

"어머, 우리 얘기 들었나 봐. 울잖아."

"거봐! 조용히 좀 하라니까."

다 들린다고, 난쟁이들아!

그나저나 이곳 드워프 세상에서는 미의 기준이 수염인가 보다.

"태한이 형, 어때요, 우리 마을?"

"예쁘다."

"그렇죠? 저도 작년에 왔는데, 제가 살던 수도보다 예쁘고 아기자기해서 좋더라고요."

"너 여기 사람 아니야?"

"수도에서 지원 왔어요. 젊은 드워프들은 몇 년씩 이렇게 오크들이 난립하는 지역으로 와서 그 지역 사람들을 도와 싸우는 게 의무에요."

징병제 비슷한 건가?

"아! 맞다. 책에서 배웠는데, 1,000년 전에는 우리 드워프들이 땅속에 살았대요."

"땅속에? 왜?"

"뭐, 적들의 침입도 막고 보물도 지키고. 그랬나 봐요. 그런데 마왕 세계 대전 이후 다른 종족들이 멸종하면서, 우리 드워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땅 밖으로 나와 살게 됐대요."

"그렇구나."

"저기! 촌장님도 나오셨네요."

무릎까지 기른 풍성한 수염과 작은 키에 떡 벌어진 어깨의 늙은 드워프.

서도토리촌의 촌장 건힐드다.

* * *

촌장 건힐드와 마을의 원로 몇 명.

그리고 오크 원정대를 이끌었던 누트라는 드워프와 그사이 나와 친해진 골디까지.

촌장의 집에 자리를 잡았다.

당연히 나도 함께했고.

"어디에서 왔다고?"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냥 솔직히 말하기로 결심했다.

행운석만 빼고.

"차원 이동입니다. 중원이란 곳에서 왔어요."

"차원 이동?"

"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 차원 이동이라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때 다른 원로가 나서 촌장 건힐드에게 말했다.

"꼭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어. 어차피 1,000년 전 마왕도 마계에서 차원 이동을 통해 온 거였잖아. 그리고 예전에 마법사란 자들이 있었을 때에는 차원 이동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하지 않나."

"음, 그렇긴 하지. 허어, 살다 살다 인간을 보게 될 줄도 몰랐는데, 차원 이동으로 온 인간이라니."

"믿으시는 거예요?"

"거짓말이야?"

"진짜예요. 저도 제가 겪었지만, 믿기 힘들어서 물은 거고요."

"뭐, 믿지 않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믿어야지. 오크들을 상대로 우리 마을 드워프들과 함께 싸웠다니, 적이 아닐 테고. 됐네."

촌장 건힐드가 그리 말했고, 나머지 원로들도 이를 인정하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그때, 누트가 나섰다.

"소드 마스터."

"아니라니까!"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건힐드와 나머지 원로들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떠 나를 보았다.

"자네… 정말 소드 마스터인가?"

"아니에요."

내가 말했지만, 거의 동시에 누트도 말했다.

"맞아요, 제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오크의 칼을 빼앗아 휘두르는데, 이 녀석이 휘두르는 칼에서 어마어마한 오러 블레이드(Aura blade)가 뿜어져 나오는 걸 봤어요."

건힐드와 원로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다.

놀라도 심하게 놀란 얼굴이다.

"골디, 네가 말해 봐라. 누트의 말이 사실이냐?"

"네, 저도 보긴 봤어요. 분명히 책에서 봤던 오러 블레이드와 흡사한 모양이었어요."

"자네… 자네 정말로 소드 마스터인가?"

건힐드의 목소리가 심지어 떨리기까지 했다.

"휴우. 아니에요. 제가 대충 그 의미를 보아하니, 우리 중원 그러니까 무림에서 말하는 화경의 경지를 이곳에서는 소드 마스터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화경?"

"소드 마스터요."

"아, 그래. 그곳에선 화경이라 부르는군."

"네, 하지만 저는 아니에요. 우리 새아빠가 소드 마스터이긴 한데."

"허걱! 정말인가? 그곳에선 소드 마스터가 흔한가?"

"아니요, 당연히 아니죠. 천하 전체를 뒤져도 몇 명 있을까 말까 한 게 소드 마스터죠."

"그렇지, 아무리 다른 시공간의 차원이라도 소드 마스터가 흔할 리 없지."

"네. 그리고 저는 기연이 있었어요. 그래서 내공, 그러니까 이곳으로 말하자면 마나 비슷한 건데. 그걸 행운이 따라 줘 많이 품게 됐어요. 하지만 소드 마스터인 새아빠가 그러더라고요. 제 경지는 평범하다고. 그게 전부예요."

"드래곤 하트라도 삶아 먹었나 보군."

건힐드의 말에 원로들이 심각한 얼굴로 또 고개를 끄덕인다.

저거 농담 아니었어?

"아무튼 저도 되고 싶어요, 소드 마스터.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다들 믿는 분위기다.

누트 역시 마찬가지.

그래도 누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강하긴 하지. 트롤의 목을 단숨에 베고, 순식간에 수백의 오크들을 물리쳤으니. 태한이 아니었으면, 우리 원정대 모두 오크들 함정에 빠져 죽을 뻔했어요. 태한이는 정말 강해요, 건힐드."

"그래, 그건 분명한 사실이지. 휴우, 난 또 우리 마을에 소드 마스터가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이미 인간이 온 것도 놀랄 일인데 말이야."

"이곳 세상엔 소드 마스터가 없어요?"

"수백 년 전엔 있었다. 마지막 소드 마스터를 내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지. 내가 서른 살쯤 됐을 때였어. 한창 사춘기였을 때 가출을 해서 궁전이 있는 수도로 갔고, 그곳에서 이 세계의 마지막 소드 마스터를 한 번 봤었다. 220년 전이었고. 그 이후로 소드 마스터는 나오지 않고 있… 엇! 왔다."

촌장의 집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드워프 한 명이 들어왔는데, 손에 커다란 무언가를 들고 있다.

"나태한, 자네 이쪽으로 와서 서게."

"네? 왜요?"

"사진 찍어서 국왕에게 보내려고. 1,000년 만에 나타난 인간인데, 국왕에게 보고는 해야지."

"사진이요? 그게 뭔데요?"

"자네가 사는 세상에는 사진기가 없나?"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음, 일단 여기 서게."

"네."

"그림을 빨리 그린다고 생각하면 돼."

뭔 소리야?

저 네모난 상자가 어떻게 그림을 그린다고.

그러자 기이하게 생긴 물건을 들고 온 드워프가 나를 향해 말했다.

"자! 찍습니다, 인간님. 웃으세요. 웃어야지 예쁘게 나와요."

"이렇게요?"

"아니. 음, 따라 해 보세요. 치이이즈으으."

"치이이즈으으."

번쩍!

순간 뭔가 번쩍거렸고, 나는 나를 공격하는 줄 알고 방어 자세까지 취했다.

하지만 다들 그런 나를 미친놈 보듯 본다.

사직을 찍어 준 드워프는 상관없다는 듯.

"처음 찍는 사람들은 다 그래요. 괜찮아요. 사진은 조금 있다가 나올 테니까, 그때 보여 드릴게요."

뭐야?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한 식경이 지났을 때, 그 사진사가 돌아왔다.

손에 두 장의 손바닥만 한 그림을… 아! 이거 그림 아니다.

이게 사진이란 건가?

내 모습이, 아까 그 ‘치즈’를 외쳤던 내 모습이 그대로 그 종이에 박혀 있다.

여기 진짜 뭐 하는 세상이야?

뭐 이런 게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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