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촤르르르르르르.
콰르르르르르르.
물이다.
계곡을 마주했다.
등평도수(登萍渡水)!
응,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심지어 물살까지 엄청나게 거세다.
결국, 열랑부터 우리 모두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끼이잉. 깨개개갱!"
덩치가 황소만 한 늑대 열랑이 갑자기 꼬리를 말고 귀를 뒤로 젖히며 깨갱거렸다.
뭔가에 크게 놀라고 겁을 먹은 모습이다.
나는 빠르게 기감을 최대치로 펼치고 안력을 극대화해 계곡 건너편을 봤다.
쉬이이이익!
봤다.
흉수다.
검은 피풍의 같은 것으로 머리부터 온몸을 감춘 무언가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봤어?"
서둘러 다른 녀석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못 봤어?"
"뭘?"
그나마 반후인이 반응을 해 줬고.
"계곡 건너편. 방금 사라진 검은 형체의 사람."
"봤어?"
"넌 못 봤어?"
"난 못 봤는데?"
"너희는?"
이백운과 궁도산이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당우국은 웃는다.
웃어?
비웃음이다.
내가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러 거짓을 꾸며 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너는?"
서혜도 못 봤고.
시선을 단문령에게로 돌렸는데.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아!
X팔, 거짓말쟁이만 되어 버렸군.
됐다.
난 비밀 병기…는 개뿔!
아오, 억울해.
결국 우리는 한참을 돌아 계곡을 건너야 했다.
* * *
천 리의 냄새를 맡는다던 열랑은 계곡을 건넌 후에는 흉수를 추적하지 못했다.
냄새를 맡지 못한 것인지, 맡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꼬리를 잔뜩 말아 가랑이 사이로 끼우기만 했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고, 우리도 추적을 포기하고 노숙을 했다.
"너는 왜 여기까지 따라왔어?"
나와 단문령이 불침번이다.
심심하기도 하고 가만히 있자니 어색하기도 해서 그냥 물어봤다.
"돈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서로를 향해 말을 놓았다.
동갑이다.
"돈?"
"응."
"이번 임무 굉장히 위험해. 돈 때문이면 그냥 돌아가."
"그럴 수 없어."
"죽을 수도 있는데? 뭐, 내가 있으니 실제 죽지는 않겠지만."
"풉."
웃는다.
여전히 변용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자신의 얼굴을 다 보여 주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그녀가 그렇게 웃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너 가끔 되게 웃긴 거 알아?"
"웃으라고 한 말 아니야. 그리고 돈 때문이면 진짜 돌아가. 이번 임무 심상치 않아."
"어차피 돌아가도 죽어."
"……?"
"오빠들이 장사한다고 떠나고, 무관 차린다고 떠나고, 여자랑 눈 맞아서 떠나고. 그러면서 집에 있던 돈 다 들고 갔어. 나 빈털터리야. 그냥 돌아가면 굶어 죽을지도 몰라. 그래서 해야 해. 어차피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뭐, 거저먹기지."
"얼마나 주는데?"
"금자 다섯 냥 불렀어. 주겠대."
"금… 금자 다섯 냥?"
"왜? 넌 얼마 받았는데?"
"임무 수행비로 은자 스무 냥."
"풉. 큭큭."
또 웃는다.
아!
무림맹도 너무하네.
사람을 이렇게 차별하나?
거지라고 괄시하는 거야 뭐야?
아니지?
단문령도 엄밀히 말하면 소속은 우리 개방인데.
"나도 이번 임무 끝으로 여길 뜰 거야. 중원으로 가서 새 삶을 살아 보려고. 방과 맹에서도 허락한 일이고, 그래서 돈이 필요해. 살 집도 사고 그러려면."
"이번 임무 심상치 않다고 말했잖아.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고 봐야 돈도 필요한 거라고."
"네가 지켜 준다며?"
"그래도. 위험하다고."
"걱정 마. 나도 돈 때문에 목숨 걸 생각 없어. 무림맹에 목숨 바쳐 충성할 이유도 없고. 사실 개방도 마찬가지야. 나랑 거지가 어울려? 태어나니까 개방 방도였지만, 이번 임무 끝나면 곧바로 탈방할 거야. 아무튼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팍 도망갈 테니까, 너도 그런 줄 알아. 욕은 속으로 하고."
얘 말이다.
단문령.
은근히 나랑 같은 부류다.
뭐, 나도 가훈과 어머니 유언 아니었으면 진즉 개방을 떠났을 것 아니겠는가.
위험하다 싶으면 곧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이고.
뻔뻔하기까지.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큭큭.
"중원 어디로 갈지는 정했어?"
"아직 몰라. 항주와 소주가 그렇게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곳으로 가 볼까도 생각해 봤고. 낙양도 좋고.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아직 결정하진 않았어."
"그렇구나."
다시 약간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아! 아까 하다 말았던 말."
"뭐?"
"이번 임무 위험하다는 거."
"또 그 소리야? 내가 한 말 이해 못 했어?"
"아니! 내 말은, 위험한 상황이 닥치고 도망가기 여의찮으면, 그때는 내 뒤에 꼭 붙어 있으라고. 그래야 살 확률이 높아."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너… 진심이구나?"
"응."
"왜?"
"뭐가 왜야?"
"너, 나 좋아해?"
이런 미친!
그걸 또 그렇게 오해하다니.
돌겠다.
뭐, 한창 그럴 나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오해를 했으면 풀어 줘야지.
"하하. 뭔가 좀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그런 게 아니라……."
"너 지금 얼굴 빨개졌어."
젠장!
그건 모닥불 열기 때문이야!
휴우.
됐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무튼 기억해. 위험하다 싶으면 내 뒤로 숨어.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너도 참 대단하다."
"이제 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 같군."
"나보다 뻔뻔한 인간은 네가 처음이야.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그리고 내가 숨으면 저기 이백운이나 궁도산 뒤에 숨지, 왜 네 뒤에 숨어? 딱 봐도 말추 술사 빼고 제일 약해 보이는데."
"하아! 난 분명 말했다. 내 뒤에 숨으라고. 너와 네 가문이 250년 동안 무림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고, 또 아직은 같은 개방의 방도라서 말해 주는 거야. 그러니 잊지 마."
"태한아."
"……?"
"그러지 말고, 위험하면 네가 내 뒤에 숨어. 네가 진심으로 날 위해 주는 것 같아서, 이 누나가 한번 인심 쓰는 거야. 어떠한 위험이 도래해도 너는 꼭 살려 줄게. 알았지? 기억해. 위험하면 누나 뒤에 숨는다."
"너… 너도 진심이구나?"
그녀가 대답 대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말이다.
하아!
됐다.
뭐, 위험이 도래하기 전에 내가 흉수건 뭐건 처치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이 허무맹랑한 아가씨와의 대화를 끊고 두 눈을 감아 나만의 상념에 빠지려고 할 때였다.
그녀가 나에게 다가온다.
천천히, 은밀히.
눈을 감았는데, 뜰 수가 없다.
갑자기 이러면 나는 어쩌라고?
아! 오랜만이라 그런가?
심장이 콩닥거리네.
뭐, 처음도 아니고.
그래, 까짓것.
250년 동안 무림을 위해 고생했는데, 이 정도 내가 베풀지 못할까?
해라, 뽀뽀.
결국 그녀의 입술이 내 얼굴의 1촌까지 접근하였고.
"실은… 나 엄청난 고수야. 저기 이백운이나 궁도산보다 훨씬 강해."
음, 뽀뽀는 아니다.
귓속말이군.
그런데 얘…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밤만 되면 미치나?
낮에는 멀쩡해 보였는데.
됐다.
난, 눈은 물론 귀까지 깊게 닫아 버렸다.
* * *
어제 피곤했는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게 아침이 됐을 때,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그때.
채채챙!
아미파의 서혜가 나처럼 곤히 자고 있던 단문령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놀라 눈을 뜬 단문령.
"뭐 하는 거예요?"
다들 놀라 잠에서 깨었고, 곧바로 그녀들 사이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불침번을 섰던 서혜다.
그녀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단문령을 향해 살벌하게 칼을 겨누고 있다.
난 혹시 몰라 출수를 준비하고 있다.
어제 뱉은 말이 있으니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 단문령의 목숨은 구해야 하지 않겠나?
250년 동안 헌신한 가문의 후예고, 또 같은 개방의 방도가 외인에 의해 죽는 걸 보고만 있어서도 안 되고 말이다.
어쨌거나 내가 그리 은밀히 출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서혜가 혼잣말을 하듯 단문령을 향해 말했다.
"숫자가 안 맞아."
뭔 소리야?
그런데 이상하다.
서혜의 말에 단문령이 인상을 구긴다.
모두가 의아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 서혜가 말을 이었다.
"민간 마을에서 서른두 명, 이곳 전사가 마흔한 명, 다시 공동파의 제자 열세 명. 거기에 어제 창족 마을에서 여든한 구가 추가. 총합은 일백예순일곱 명이 되어야 해. 그런데 너는 어제 분명 일백일흔한 명이라고 말했어. 왜지? 어째서 네 명이 추가된 것이지? 우리가 모르는 살인을 너만 알고 있다는 뜻이잖아."
"일단 진정들 하시고. 칼부터 좀 내려놓으시면 안 될……."
반후인이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백운이 그의 어깨를 잡아 제지하였다.
다들 의심의 눈으로 단문령을 바라보고 있다.
난 더더욱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고.
결국 단문령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우. 맹에서 시켰어요. 그들의 존재는 말하지 말라고."
"그들? 누구를 말하는 거지?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맹에서 시킨 일이라니까요. 그들이 이곳에 왔던 일부터 죽음까지, 그들에 관한 모든 일을 함구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겠다?"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데 어떻게 말을 안 해요? 제가 무슨 무림맹의 충렬지사도 아닌데요."
이백운이 나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이 일이 시작된 게 그들이 다녀간 후에 벌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알아요. 네 구의 시체도 모두 그들이고요."
"그들이 누구요?"
"남궁세가. 정확히 말하면 최근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남궁세가의 양자, 소가주가 된 남궁무검. 그가 남궁세가의 신물인 제왕검까지 들고 창궁검무대 100명을 대동해 이 일대에 온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 중 넷이 죽었고. 그렇게 그들이 떠났는데, 그때부터 이 사건이 시작된 거예요.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정, 정말이야?"
반신반의하며 서혜가 물었다.
"나중에 무림맹 등원 대협한테 물어보면 될 거 아니에요. 칼 좀 치우죠?"
서혜는 완전히 단문령을 신뢰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그녀에게 칼을 겨누고 있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남궁무검?
걸사번이 왜 여길?
아!
이건 또 뭔 일이야?
빌어먹을 배신자 새끼.
부잣집에 양자로 들어갔으면 그냥 잘 먹고 잘살지,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아! 돌겠네.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아니다.
놈은 원래 야망이 컸다.
비걸개 훈련생 때도 그랬고, 비걸개가 된 후에 제왕검을 들고 남궁세가로 가서 그곳의 양아들이 됐을 때도 알아봤다.
그래서 놈이 나중에 뭔 짓을 저질러도 크게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나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다른 점은 없소?"
궁도산이 물었다.
서혜에 비해 이백운이나 궁도산 등은 단문령에게 꽤 호의적이었다.
개방의 거지라는 것까지 알고 있음에도, 나를 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예뻐서 그런 거다.
어쨌거나 궁도산의 물음에 단문령이 답했다.
"전혀요. 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예요. 아! 뭐, 이건 이제 다들 알겠네요. 남궁세가에서 뭔 짓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무림맹과 우리 개방에서 그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요."
다들 생각이 깊어졌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나저나 창궁검무대가 넷이나 죽었다.
남궁세가 최고의 정예 고수가 바로 창궁검무대다.
남궁세가의 세가주인 검제(劍帝)의 친위대라고까지 알려진 그들이다.
단언하건대, 여기 있는 잘난 후기지수 중 그 누구도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창궁검무대는 그런 고수들로 조직된 최강의 무력대다.
이거 진짜 위험하다.
애들 데리고 돌아가야겠다.
아니면 전멸일 수도 있다.
가서 새아빠 데리고 와야겠다.
그렇게 내가 막 애들을 향해 그러한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쉬이이이익.
검은색의 무언가가 쉭 하고 빠르게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피해!"
"조심해!"
이백운과 궁도산이 동시에 외치며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검은 형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콰콰쾅!
단 1수에 이백운과 궁도산이 피를 뿌리며 석 장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이백운은 검을 쥐는 오른팔이 잘렸고, 궁도산은 그의 절기인 두 주먹이 송두리째 터져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고통에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러 대는 두 녀석.
그리고 상대는…….
흉수다.
어제 내가 봤던 그놈이 분명하다.
검은 넝마를 입은 흉수.
즐기는 것인가?
가만히 서서 고통에 괴로워하는 두 녀석을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경계 자체를 안 한다.
그런데, 음.
냄새가 고약하다.
아니, 그보다.
사람인가?
사람의 형상이나, 온몸이 썩어 문드러졌다.
나병(癩病, 문둥병)을 앓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다.
젠장!
저건 분명.
시기(屍氣, 죽은 사람의 기운)다.
- 강시?
빠르게 팔선문의 말추 술사에게 물었다.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는 그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 정신 차려! 강시냐고 물었다!
내가 내공까지 기운에 실어 소리를 치자 정신을 차린 말추가 마구 고개를 저었다.
- 강, 강시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죽은 자는 맞지만, 강시하고는 다른… 저건… 저건 사람도 강시도 아닙니다.
- 그럼 뭔데?
- 죽은 사람이요.
미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
비웃기라도 하듯 가만히 썩은 눈깔로 쓰러진 두 녀석을 바라보던 흉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움직였다.
내가 나서서 어떻게든 놈을 막으… 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나보다 빨랐다.
흉수 말고, 단문령.
쟤… 진짜 고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