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63화 (62/174)

63화

다섯 개들이 달걀 두 줄을 멍석 한가운데에 놓은 후.

"본 방의 9대 방주셨던 행운개 방주님께서 제 꿈에 나타나셔서 전수해 주신 초식이에요."

속리자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빤히 보며 반문한다.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말인가?"

"안 믿으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보여 드린다고 했잖아요."

"……?"

또다시 동작을 맞춘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 사람.

아놔!

육 장로! 당신은 나랑 같은 편이라니까!

됐다.

내가 뭘 바라겠냐?

달걀을 하나 꺼내 들었다.

빈 공기까지 내놓고.

"노른자가 몇 개일까요?"

"지금 뭐 하자는……."

속리자의 말을 육 장로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정말이냐?"

"뭐가요? 노른자요?"

"그건 이미 알고. 행운개 방주님 말이다."

"제가 왜 비싼 밥… 아니, 어렵게 구걸한 밥 먹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더군다나 육 장로님은 제 직속상관이시고, 순화자 장로님과 속리자 장로님은 무림맹에서도 유명한 분들이신데요."

"아니, 두 사람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순화자가 참지를 못하고 물었고.

육 장로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순화자와 속리자를 향해 말했다.

"일단 걸이번이 뭘 하는지 한번 보시게."

육장로가 순화자와 속리자에게 그리 말한 후, 다시 나를 향해 말했다.

"보여 드려라, 걸이번."

"네, 장로님."

음, 같은 편 맞군.

자신감을 얻어 이번엔 세 사람이 아닌 두 사람, 순화자와 속리자를 향해 미소까지 지으며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노른자가 몇 개일까요?"

"한 개."

"두 개가 나올 확률은요?"

"희박하지."

"이 안에 노른자 두 개 있습니다."

"후훗. 어디서 삼류 사술이라도 배웠냐?"

"무림맹의 두 장로님 눈을 속일 사술 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요."

"그래, 해 봐라. 난 노른자 한 개에 걸지."

난 자신 있게 말하는 속리자를 향해 방긋 웃어 보인 후.

탁.

달걀을 깼고.

"오! 두 개야. 진짜로 두 개였어."

속리자보다 순화자가 더 놀라 말했다.

난 다시 달걀을 들었고.

"몇 개일까요?"

인상을 구기며 말하는 속리자.

"한, 한 개다."

탁.

"오! 이번에도 두 개야. 허허. 거참 신기하네."

순화자는 감탄.

속리자의 인상은 더 구겨지고.

다시.

"이번엔 몇 개일까요?"

탁!

"또 두 개야! 이런! 세상에 이런 일이!"

순화자 감탄.

속리자 인상.

다시!

"잠깐! 후훗. 나를 속일 수는 없지. 이번엔 내가 깬다."

속리자가 내 손에 들린 달걀을 가지고 갔다.

그래서 말했다.

"이번 달걀엔 노른자가 한 개일 겁니다."

그러자 속리자가 비웃음을 머금으며.

"연속 세 개의 노른자가 나왔다. 이건 산수라는 거다. 확률이라는 것이고. 두 개다."

"깨 보시죠."

탁.

"오오오오! 한 개야! 노른자가 한 개 나왔어. 허허허. 이봐, 속리자. 자네가 진 것 같은데?"

"아니! 이 인간이 미쳤나! 지금 자네 누구 편을 드는 거야?"

"아! 그, 그렇지. 어험. 어험."

속리자의 호통에 순화자가 정색을 했지만, 여전히 얼굴에서는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연속으로 남은 달걀을 모두 깼고, 당연히 노른자가 두 개씩 나왔다.

곧이어 내 편이었어야 했는데, 술 몇 잔 얻어 마신 걸로 잠깐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던 육 장로가, 행운석과 달걀노른자에 관한 고사를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러게. 신기한 일이군. 사실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이야기야."

속리자와 순화자가 각자 한마디씩 한 후.

"이제 믿으시겠어요? 제 꿈속에 우리 9대 방주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제게 이 무공을 전수해 줬다는 사실을요."

"솔직히 여전히 믿기 힘든 건 사실이다만, 믿지 않을 수도 없겠구나."

결국 그 똑똑하다던 제갈세가 출신의 속리자까지 인정하고 말았다.

됐다.

이번에도 잘 넘어갔다.

"자, 받게."

순화자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건 음……."

"자네와 함께 이번 임무에 투여될 아이들일세."

[예매화(銳梅花) 이백운.

화산파, 검선의 다섯 제자 중 넷째, 칠룡사봉, 24세.]

[소철권(小鐵拳) 궁도산.

무황성, 무존의 세 제자 중 막내, 칠룡사봉, 21세.]

[칠비독우(七匕毒雨) 당우국.

사천당가, 독선의 사남 삼녀 중 여섯째, 칠룡사봉, 19세.]

[포옥검(抱玉劍) 서혜.

아미파, 칠룡사봉, 19세.]

[반후인.

야수궁, 야수왕의 여덟째 아들, 19세.]

[복개.

공동파, 공동파 장문인의 제자, 감숙의 지리 통달, 20세.]

[말추.

팔선문, 팔선문주의 제자, 사술과 술법 그리고 강시술에 대한 깊은 조예, 22세.]

[나태한.

개방, 거지, 19세.]

"음… 장로님들?"

속리자가 곧바로 내 말을 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아네. 변명을 하자면, 자네를 급하게 끼워 넣느라… 어험, 특별 추천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랬네."

"그래도 제 소개가 너무 짧은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애들이 무시할 거 같은데요?"

"자네가 대단한 건 이미 상취개 이 친구한테 들었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면 안 되네. 무공을 말하는 게 아니야. 무림맹 수뇌부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하며 아이들 인성도 파악하지 않았겠나?"

속리자에 이어 순화자도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건 속리자 말이 맞아. 타인을 존경할 줄 알고, 이미 자네가 특별 추천으로 합류하게 된 것까지 아는 아이들이네. 자네를 무시하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염려 말고 다녀오게."

"무시 안 한다는 말이죠?"

"그렇네."

"진짜?"

"진짜로."

"휴우. 그럼 저도 궁금한 거 물어볼게요."

"얼마든지."

"어떻게 알았어요? 혈교가 준동할 조짐을 보인다는 것까지는 뭐 그러려니 하는데, 그 내막을 너무 구체적으로 알고 있잖아요."

나는 순화자와 속리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육 장로가 나서서 답변을 했다.

"250년 전부터 그들 사이에 사람을 심어 놓았네."

"설마… 우리 개방 방도에요?"

"맞다. 비걸개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부터 혈교인들 사이에 사람을 심었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까지 대대로 임무를 수행 중이다."

"저한테는 대선배겠네요."

"물론이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혈교는 마교에 비해 부족한 무공을 강시술과 같은 사술로 대체해 왔어. 그리고 그 역사는 실로 끔찍했지. 아까 좀 분위기가 장난 같았지만, 실제 그들이 제대로 힘을 얻게 되면 무림은 다시금 피의 폭풍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걸 250년 동안 막아 온 가문이 바로 그들이고."

"만나면 잘해야겠네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감사함을 표해라. 개방과 무림을 대표해서. 이건 부탁이 아닌 명령이다."

육 장로가 정말 오랜만에 멀쩡함을 넘어 진중한 모습으로 그리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네, 꼭 그리하겠습니다."

"또 궁금한 게 있나?"

순화자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물론, 내 눈에는 그 미소가 더없이 비열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엮였다.

내 예감이 맞았어.

이들과 더럽게 엮이고 만 거야.

이 문제는 이따가 확실히 해 둬야겠다.

우선…….

"이번 임무를 저와 함께 수행할 이들의 구성이 좀 의아하네요?"

"뭐가 의아한가?"

속리자가 말했고.

"화산파의 이백운, 무황성의 궁도산, 사천당가의 당우국 그리고 아미파의 포옥검 서혜까지는 저도 이해합니다. 귀가 따갑게 들어온 이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친구는 뭡니까? 야수궁의 반후인? 무림맹에 언제부터 야수궁 사람이 있었나요?"

"아! 그 친구? 이번에 야수궁의 궁주인 야수왕이 우리 무림과 화친을 맺기 위해 특별히 무림맹을 방문했다네. 아들 몇 명을 대동해 왔는데, 그중 반후인이라는 아이가 키우는 열랑(烈狼)이라는 개가 능히 천 리의 냄새를 맡는다고 하더군. 그래서 이번 일을 부탁했다네."

"냄새는 왜요?"

"왜긴? 추적에 그만큼 유용한 수단은 없어."

"추적요? 추적을 왜 해요?"

순간.

속리자가 뜨악하는 얼굴을 분명 보았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분명 보았다.

"어험. 뭐, 혹시 모르니 준비한 것이지.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뭐가 문제겠나?"

뭐지?

뭔가 숨기는 것 같은데.

노인네들 멱살을 잡고 물을 수도 없고.

아! 또 예감이 안 좋다.

"말추라는 팔선문의 제자는 왜요?"

"왜긴 왜인가? 상대가 혈교 아닌가? 사악한 술법과 강시술에 있어서 그들만큼 무서운 이들이 또 어디 있겠나?"

"강시도 상대해야 해요?"

이번엔 육 장로가 나섰다.

"강시는 없어. 250년 동안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고, 강시를 제조하는 법 역시 250년 전에 완전히 폐기했어."

"혹시 모르잖아요. 누군가 그 비법을 빼돌렸을 수도 있고."

다시 속리자가 답했다.

"무림맹 사서에 그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네. 강시의 위력을 아는 만큼, 그 일에 대해서는 당시 무림맹에서도 철두철미하게 일 처리를 했다네. 그럴 일은 없으니, 조금도 염려할 필요 없어."

"그럼 팔선문의 제자는 왜 필요한 건데요?"

"그건 혹시 모를 일을… 어험. 어험."

아! X팔.

점점 예감이 더 안 좋아진다.

그런 내 표정을 봤나 보다.

순화자가 나를 달래듯 말했다.

"강시는 없어. 이건 확신할 수 있네. 250년 전 혈교가 마교에게 속절없이 당했던 이유도 그들이 제조했던 강시가 몇 구 되지도 않았고, 그 위력이 과거에 비해 형편없었기 때문이라네. 그리고 그들은 250년 동안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어. 무림맹에서 주기적으로 감시까지 했고. 염려하지 말게나."

"네, 뭐 믿겠습니다. 그리고 공동파의 복개 도사는……."

"감숙의 지리에 능통하다고 써 있지 않나."

"그래서 말이에요. 아까부터 계속 의심이 드는 게, 이건 혈교 애송이들 쓸어 버리러 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추적하기 위해 꾸며진 추격대 같아서요."

"착각이야, 착각. 하하하."

"맞아, 착각. 하하하. 추격은 무슨 추격. 하하하. 하하하하!"

이 노인네들.

웃는 게 너무 어색하다.

뭔가 있는데.

내가 거절할 상황도 아니다.

왜?

거절하면 또 이런 일을 물고 올 테니까.

그래서 확실히 해 둬야겠다.

척!

멍석 위에 하얀 종이 한 장을 올려놨다.

척!

다시 먹과 붓까지.

엄마가 쓰던 거다.

낭만개 아저씨가 잘 관리를 해 놨고.

아무튼.

"이건 뭔가?"

순화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확실히 해 둬야겠어요."

"무엇을 말인가?"

"이번 임무에 참여하는 조건! 육 장로님과는 이미 말이 끝났습니다. 그걸 문서화해 두려고요."

"무슨 조건?"

"앞으로는 다시! 절대로! 결코! 순화자 장로님과 속리자 장로님께서 하시는 일에 저를 끼워 넣지 않겠다는 각서."

"각, 각서?"

"네, 친필 작성에 수인까지. 정확히 기재하시고 날인 하시면, 이번 임무에 참가하겠습니다."

"이게 다 무림과 천하를 위한 일인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싫으시면 마시고요. 저도 개방 탈방하고, 여기 낭만개 분타주 아저씨랑 문파나 하나 개파하려고요. 정파 말고 사파 소속으로요."

순간, 순화자와 속리자의 인상이 크게 구겨졌다.

곧바로 두 사람은 눈짓을 마구 주고받았다.

결국…….

"하지."

"그래, 그게 뭐 어렵다고. 대신, 이번 일은 확실히 처리해 줘야겠네."

"혈교 애송이들 쓸어 버리는 거요?"

"그래."

"그건 칠룡사봉 애들이 할 거라면서요?"

"도울 일이 있으면 확실히 도우라는 말일세."

"뭐, 걔들이 혈교 애들한테 밀리면, 제가 직접 다 쓸어 버리겠습니다. 됐죠?"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자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하하. 그래, 됐네. 아! 혹시 그곳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으면, 좀 돕고. 그건 임무를 떠나 무림인의 의무일세."

"네, 네. 어서 각서 작성하시고, 수인까지 정확히 찍으세요."

그렇게 세 사람의 각서가 완성됐다.

내 품 깊은 곳에 고이 그것들을 간직했다.

이제 됐다.

다시는 당신들과 엮이지 않을 테다.

뭐, 이번 임무가 조금 구린 구석이 있지만.

후딱 해치우고 오자.

"자, 받게."

"이건 뭔가요?"

"임무를 나가려면 임무 수행비가 필요하지 않겠나?"

전낭이다.

그것도 꽤 두둑하다.

은자 한 냥 툭 던져 주는 개방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슬쩍 전낭의 안을 살펴보니.

와!

은자가 무려 스무 냥이나 들어 있다.

부자다!

하하하!

"바로 떠나야 하네."

"지금요?"

"그래. 네가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이미 늦었어. 다른 친구들이 자네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걸세."

"낭만개 아저씨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 하는데."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 바로 출발하시게."

나는 세 노인네의 등에 떠밀려, 그렇게 곧바로 출발을 해야 했다.

아! 이번에도 낭만개 아저씨한테 무공 한 자락조차 전수받지 못했다.

빨리 돌아오자.

혈교 애송이들 싹 쓸어 버리고.

* * *

섬서 서안.

무림맹에서 말까지 준비해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곳에 세 사람이 있었다.

먼저 합류해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세 녀석.

화산파의 예매화(銳梅花) 이백운.

무황성의 소철권(小鐵拳) 궁도산.

그리고 야수궁의 반후인이라는 녀석까지.

아! 하나가 더 있는데.

X팔, 개라며?

이게 개야?

황소만 한 늑대 한 마리가 나를 보며.

"으르르르렁."

됐다.

짐승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반갑소, 개방에서 온 나태한이라 하오."

좀 멋지게 인사를 했는… 썅!

싸늘한 눈으로 나를 보며.

"늦었다. 가자."

뭔데?

저 명령조의 말만 하고 그냥 몸을 돌려 쌩하고 가 버린다.

궁도산이란 놈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뭐야!

인성을 제대로 갖춘 애들이라며!

나를 무시하지 않을 거라며!

대놓고 무시하잖아!

아! 어째 출발부터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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