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뭐야? 돈이 왜 이렇게 많아?"
"임무 수행비를 많이 줬나 보지."
"그러고 보니 우리, 이 녀석 몸수색 안 했지?"
"그러게. 어디 한번 보자고."
큭큭큭.
그래, 그렇게 샅샅이 내 몸을 뒤져라.
"어라? 이건……?"
"『길평의경』? 약선을 말하는 건가?"
"에이, 설마."
맞아!
맞다고, 그 약선!
무림맹의 장로씩이나 된다는 인간들이 그걸 못 알아봐!
왜 표지만 보는데!
내용을 보라고!
아! 말할 수 없다.
됐다.
계속 찾아라.
"어라? 뭔 놈의 돈이 이렇게 많아? 하나, 둘, 셋… 와! 이거 다 합치면 금자 스무 냥은 되겠는데?"
"마교가 아니었나?"
"혹시 모르지. 마교에서 어디 금광을 발견해 임무 수행비를 잔뜩 주어서 보냈을지도."
젠장!
돌아 버리겠다.
제갈세가 사람들이 똑똑하단 거 다 거짓부렁이었어.
됐다.
더 찾아라.
이제 진짜가 나온다.
"헉! 이… 이건!"
둘이 동시에 토끼 눈을 뜬다.
발견했다.
태사대부패.
나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씩 미소를 짓고 어깨를 들썩해 보였다.
순화자와 속리자는 연신 나와 태사대부패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결국…….
"이 녀석… 이 녀석… 마교가 아니었어. 무림에 침투한 간자가 아니라……."
그래! 그거야!
계속 추리해!
"황궁을 노리는 놈이야."
미친!
거기서 황궁이 왜 나와!
"그렇지? 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태사대부패를 봐. 와! 우리가 아니었다면 다들 속아 넘어갈 뻔했겠네."
"맞아, 이 녀석 무림맹이 아니라 황궁으로 끌고 가야겠는걸?"
"어쩔 수 없지. 관무불침이라고 하나, 새외의 간자가 침입했는데."
"어디서 왔느냐? 여진족이냐? 말갈족?"
"거란족이냐? 아니면 몽고에서 왔냐? 그도 아니면 남월?"
"생긴 걸 보면 동경에서 온 간자일지도 모르겠군."
미친!
미친!
무림맹의 장로라는 자들이, 바보들이었어!
결국…….
나는 마지막 수단을 써야 했다.
낑낑대며 다시 몸을 비틀었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계속 몸을 비틀었고.
"이 녀석 또 뭔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지?"
"말을 해. 어차피 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황궁 뇌옥에 끌려가 고문당하니까."
"낑낑. 끄으으응."
난 계속, 두 사람이 뭐라거나 말거나 계속하여 몸을 비틀고 또 비틀었다.
그렇게 간신히…….
종남파의 순화자가 보게 되었다.
"잠깐! 저건……."
"매듭이 있네?"
휴우.
됐다.
성공이다.
비걸개는 일반 개방의 방도들과 같이 매듭을 드러낼 수 없다.
숨겨야 하고, 거지들과 접촉이나 등등의 상황에서만 드러낸다.
그래서 이렇게 꽁꽁 옷 속에 숨겼고, 낑낑대며 몸을 비튼 후에야 일부가 순화자의 눈에 띈 거다.
뭐, 아무리 바보라도 이건 알아보겠지.
"매듭이… 음… 세 개인데?"
"너 개방의 방도냐?"
말할 수 없다.
"이 녀석 왜 말을 안 해. 속리자, 자네 개방 매듭 풀 수 있지?"
"한 개밖에 못 푸는데?"
"그럼 풀어 봐. 한 개만 풀리면, 이 녀석이 진짜 개방의 방도인 거고. 자네가 두 개나 세 개의 매듭을 풀면, 이 녀석은 매듭까지 위조한 간자인 거고."
"그렇지, 그게 맞겠군."
그렇게 제갈세가의 속리자가 내 매듭을 풀었고.
"어? 하나밖에 못 풀겠는데?"
"너 진짜 개방의 방도였냐?"
"왜 말을 안 해?"
"이 녀석 설마……."
또 뭐!
어쩌라고!
이번에도 헛소리하면, 진짜 화낸다.
"비걸개냐?"
"휴우우우우우……."
정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그냥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하지만 충분했다.
"아! 녀석. 진즉 말을 하지."
순화자가 나를 꽁꽁 묶은 밧줄을 풀어 주며 그리 말했고.
"요즘 비걸개들 활약이 대단하다고 하더니, 입만큼은 확실히 무거운 녀석이구나. 허허."
타타타탓.
속리자가 점혈까지 풀어 줬다.
난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 가 봐도 되죠?"
"화났냐?"
"그래도 인석아, 무림의 어른을 만났으면 앉아서 대화도 좀 나누고 그래야지. 버르장머리하고는."
"그래, 아까 그 기이한 무공은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도 듣고 싶고."
이 노인네들이 뻔뻔하기는!
됐다.
이들과 엮이면 좋지 않다.
이건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느낀 가장 확실한 예감이다.
"저, 가 봐도 되죠!"
화난 걸 대놓고 드러내며.
숨소리까지 씩씩거리며 말했다.
"어험. 우리가 언제 너를 겁박하기라도 한 것처럼 들리는구나."
"그래, 잠깐 오해가 있었지만, 다 무림과 나라를 위해……. 어험. 어험."
"갑니다. 그리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요."
난 그 말만을 남기고, 그냥 몸을 휙 돌려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
뒤로 두 노인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석아! 상취개 장로하고 우리하고 절친이야, 절친!"
"내사 상취개 장로한테 사 준 술값만 기와집 한 채 값이다."
"다시 보게 될 거야!"
"잘 가라! 곧 보게 되겠지만! 하하하!"
안 봐!
안 본다고!
아! 재수 옴 붙은 날이다.
* * *
집으로 돌아왔다.
황천 분타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와 엄마가 쓰던 움막도 여전히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엄마의 산소도 역시나 꽃들이 만발해 있다.
그리고 그날.
낭만개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태한아! 너는 기연의 바다에 빠져 있다는 말로도 부족하구나. 아예 기연의 우주를 품에 품고 사는 것 같구나."
낙백구검에 이어 타구봉법을 선보였고.
고민 끝, 미인국에서 얻은 세 가지 절기까지 보여 줬더니 낭만개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이다.
"헉헉! 헉헉! 그런데……. 헉헉!"
"좀 쉬었다가 말을 해도 된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니, 쉬어라."
"네, 헉헉."
낭만개 아저씨 앞에서는 숨길 게 없었다.
어머니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내공을 모조리 끌어다가 전력으로 연이어 검법과 봉법 그리고 절기들을 펼쳤다.
확실히 힘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 나서.
"한 가지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나만 보면 그렇게도 좋은가?
낭만개 아저씨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뭐가 그리도 궁금한데?"
"제 경지요."
"경지라."
또 웃는다.
그런데 이번 웃음인 조금 전의 것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어떤데요?"
사실 오래전부터 궁금했었다.
남들은 일류 무사의 반열에 오르고 다시 고수의 반열에 오를 때 명확한 무언가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내 무위가 엄청나다는 건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무언가 확 와닿는, ‘아! 내가 한 단계 위의 경지에 올라섰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비교하자면 걸십칠번.
그 녀석은 비걸개 훈련생 때 이미 고수의 반열에 올라섰다.
무걸개들 중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하며, 총교두와 교두들의 칭찬이 엄청났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걸십칠번은 내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제는 미인국 최강의 전사들과 싸운 경험과 아직 기초 단계라지만 그녀들의 절기까지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경지는 어디인가?
고수?
고수 끝자락?
아니면 이미 절정의 경지에 올라섰나?
설마… 초절정?
아이씨!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네.
두근두근.
떨린다.
그리고 그때, 낭만개 아저씨의 입이 열렸다.
"대단하구나."
아! 웃는 정도가 아니라 입꼬리가 귀에 걸려 버렸다.
"그 정도예요?"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마지막에 보인 세 가지 절기 있지 않느냐."
"네."
"보아하니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모양인데, 네가 만약 그 절기들을 대성한다면, 천하에 몇 명이나 너의 그 세 가지 절기를 막을 수 있을까 싶다."
입이 찢어져 귀에 걸리다 못해, 이젠 내 머리를 한 바퀴 돌았다.
정말 나 초절정 고수야?
큭큭큭큭.
"그런데, 태한아."
갑자기 낭만개의 얼굴이 아주 살짝 어두워졌다.
평소와 다르게 진지하기도 했고.
"왜요?"
"그 세 가지 절기 말이다. 우리 개방의 무공이 아니구나."
낭만개는 걱정하는 것이다.
방의 허락 없이 외부의 무공을 익히는 건 무문에 따라 중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응, 우리 개방은 아니다.
거지의 숫자만 수십 수백만 명인데, 그걸 어찌 다 관리하겠나?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역시 애초부터 그런 거 신경 쓰는 거지는 없었다.
낭만개가 걱정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다른 세력과 일종의 거래를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건 분명 우리 개방에서도 중죄에 해당한다.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특히 비걸개라면.
[비걸개 수칙 18항, 배신자는 즉결 처분한다.]
괜한 걱정이지만, 나를 걱정해 주는 낭만개 아저씨가 고마웠다.
"새외의 사람에게서 얻었어요. 색목인이요."
"색목인?"
"네."
"그들이 이토록 대단한 절기를 그냥 전수해 줬을 리는 없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겠느냐?"
"믿기 힘들겠지만, 저는 그녀들에게 사랑을 줬어요."
"사, 사랑?"
"네, 사랑이요.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그녀들을 어루만져 줬어요."
"이젠 거짓말도 잘하는구나."
"거짓말 아닌데요?"
"네 얼굴에 써 있다."
"거짓말하고 있다고요?"
"아니, 못생겼다고."
아놔!
"끄응. 진짜… 휴우, 진짜예요. 거짓말 아니라고요. 그녀들도 절 사랑했고, 저도 그녀들을… 됐어요! 말 안 해요. 무슨 이상한 거래를 한 것도 아니고, 우리 개방의 무공을 주고 그녀들의 절기를 받은 것도 아니고. 아무튼 염려할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풋. 알았다. 알았어. 삐지기는, 하하하. 잘생겼다, 우리 태한이. 내 눈에는 네가 천하제일 미남이다. 하하하!"
"됐네요. 흥!"
낭만개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등을 두드려 준다.
어렸을 적부터 자주 그랬다.
이젠 나도 다 컸는데.
그래도 아저씨의 손길이 너무 따스하고 부드러워 거부하지 않았다.
"말해 줘요."
"네 경지 말이냐?"
"네, 정확히 어느 수준에 올라와 있나요?"
낭만개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장이,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제발!
초절정이어라.
"여전히 이류 끝자락에 머물러 있구나."
아!
내공을 너무 썼나 보다.
귀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잘못 들었다.
"잘못 들었어요. 다시 말해 주세요."
"이류 끝자락이라고 하였다."
웃겼다.
이 아저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농담도 할 줄 알았나 싶었다.
"하하! 장난치지 말고요. 진짜로 말해 줘요."
"이류 끝자락이라고 분명 말했다. 장난 아니다."
"……."
어?
낭만개 아저씨 표정이…….
음, 진지한데?
뭐지?
진지한 농담인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입을 꾹 닫자.
낭만개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이런 예시가 옳을지 모르겠지만, 타고날 때부터 장사(壯士)인 사람이 있다. 무공을 한 번도 익혀 본 적은 없지만, 타고난 장사여서 소를 열두 마리를 끌고, 사람 허리보다 두꺼운 아름드리나무를 뿌리째 뽑을 수 있는 장사 말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 주먹을 한 방 맞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맞은 사람 머리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겠죠."
"맞다. 그럼 그 사람이 고수겠느냐? 아니면 삼류라 해야겠느냐?"
"애매하네요. 그 정도 힘이면 능히 이류 무사 정도는 가뿐히 제압할 테고, 일류 무사와도 충분히 비벼 볼 능력을 지녔는데. 그렇다고 무공 한 자락 익히지 못한 사람을 일류 무사로 분류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삼류로 치부하는 것도… 음……."
갑자기 바위를 부숴라 아저씨가 생각났다.
칵뉴족의 전사들도 생각났고.
그들에게 무림의 무공 단계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10갑자의 내공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삼재검법을 전수하기 전의 바위를 부숴라 아저씨라면?
최강의 외공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팔무검법을 전수하기 전의 칵뉴족 전사들이라면?
그들을 과연 무림의 어느 경지로 정해야 할까?
알 것 같다.
지금 낭만개 아저씨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실망할 필요 없다. 분명한 건, 네 경지가 여전히 이류 끝자락에 머물고 있지만, 능히 절정의 고수와 대적할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