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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이번 여행기-59화 (58/174)

59화

젓가락을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달렸다.

사람이 다치기 전에 호랑이를 처치해야 한다.

신법을 펼치지는 않았다.

비걸개는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

신법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충분하다.

2갑자의 내공을 쏟아부은 산백신법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칵뉴족에게서 얻은 외공은 그리 가볍게 볼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기감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는 곳을 향하자, 곧바로 엄청난 크기의 호랑이 한 마리와 맞닥뜨렸다.

살기를 미세하게 풀자.

혼비백산해 달아나는 사람들을 뒤쫓던 호랑이가 멈칫.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한다.

크르르르르릉.

제대로 나를 지목했다.

놈이 한 발, 또 한 발.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자세 그대로 나를 향해 다가온다.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그랬나?

지금 놈이 그랬다.

그리고 내 머리는 살짝 복잡, 갈등 중이다.

스으윽.

주변을 살피니.

그래, 괜찮겠다.

무림인은 없는 것 같고.

설사 있다고 하여도, 나의 샤이닝 라이트(Shining Light)를 알아볼 자는 없다.

한 번 써먹어 보고 싶었다.

실전에서.

그런데 이건 타구봉법만큼이나 조심해야 한다.

다른 차원에서 배워 온 검술을 쓰는 것이니, 최대한 숨기고 아껴야 한다.

미인국에서 무림으로 돌아와 제대로 수련을 하지 못한 이유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함이다.

타구봉법도 그렇고, 샤이닝 라이트와 블랙 스톰, 아이언 스노우까지.

정말 몰래몰래 수련하는 중이다.

그렇게 숨기고 숨겼지만, 정말 너무 써 보고 싶다.

간절했다.

그래, 딱 한 번만 써 보자.

사실 샤이닝 라이트는 1성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블랙 스톰과 아이언 스노우는 1성도 아니고 그냥 입문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실버 로마노프와 아나스타샤 그리고 나타샤 표도르바가 대충 가르쳐 준 건 아니다.

정말 열정적으로 성심성의껏 가르쳐 줬는데, 확실히 세계 최강의 절기답게 배우는 게 쉽지 않았다.

무림으로 따지면 천하제일 신공 뭐 이런 거 아니겠는가.

아무튼…….

호랑이, 너.

오늘 내 대련 상대 좀 해 줘야… 미친, 아직 준비 안 됐는데.

어흐으으응!

놈이 석 장 높이까지 도약하여 나를 덮쳐 왔다.

하지만…….

샤아아아악!

쾅!

피했고, 놈은 헛발질.

어흐으으으응!

샤아아아악.

쾅!

또 헛발질.

와!

확실히 빠르다.

신법과 다르고, 보법과도 다르다.

굳이 무공으로 비교를 하자면, 이형환위(移形換位)와 가깝겠다.

빛이 번쩍이는 것과 같은 속도로 순간 움직임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공수(攻守, 공격과 수비)가 모두 가능하다.

아마 제대로 된 고수라도 쉬이 내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할… 컥!

엿됐다.

깜빡했다.

내 경지가 아직 1성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호랑이 앞발에, 엄청난 놈의 발톱에 왼쪽 어깨를 잡히고 말았다.

응, 내 어깨가 아니라 놈의 발톱이 부러질 것을 염려해야 한다.

됐다.

여기까지 했으면 된 거다.

이제 놈을 잡을 시간이다.

퍽!

퍽퍽퍽!

퍼퍼퍼퍼퍼퍼퍽!

그냥 때렸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머리로 들이받고.

결국 놈이 꽉 잡았던 내 어깨를 놓고 도망치려 한다.

응, 안 돼.

사람 사는 곳에 내려온 호랑이는 위험하다.

어쩔 수 없다.

몸통 박치기.

퍽!

끝.

호랑이 즉사.

그러자…….

짝짝짝!

짝짝짝짝!

"와아아아아!"

"젊은 영웅호걸이 호랑이를 잡았다!"

"와아아아아! 젊은 대협 만세!"

여기저기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한두 명씩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수십 명 수백 명이 뛰쳐나와 나를 둘러싸고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아!

좋긴 좋은데, 이러면 안 된다.

젠장.

주문한 음식 한 점도 못 먹었는데.

호랑이 가죽도 가져다 팔면 비싸게 팔 수 있고.

어쩔 수 없다.

다 포기.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급히 가 볼 곳이 있어서요."

"와아아아! 대협 만세!"

"젊은 영웅 만세!"

"네, 안녕히 계세요."

난 신분 노출을 우려해 서둘러 마을을 떠나야 했다.

* * *

터덜터덜.

다음 마을로 향하기 위해 외진 산길을 홀로 걷는데, 몸이 무겁다.

젠장할!

아까 시킨 음식이랑 술이랑, 은자 한 냥이나 하는 값인데.

무전취식이라고 할까 봐, 먹지도 않은 음식값까지 지불하고 서둘러 마을을 떠났다.

길을 걷는 내내 그 음식들과 돈이 아까워 걸음이 무거운… 뭐야?

쉬이이이이이이익!

쉬이이이이이이익!

갑작스러운 습격.

저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들의 기운을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다.

두 명이다.

그리고 노인들이다.

당황했지만,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난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꽁꽁 싸맸던 검까지 뽑아 반격을 가했다.

쉬이이익.

내 검을, 가볍게 피한다.

쉬이이이익.

쉭쉭!

쉭쉭쉭!

두 노인네, 도대체 뭐야?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하겠다.

내공을 더 꺼내?

아니다.

이미 1갑자의 내공을 쓰고 있는데.

펑!

퍼퍼펑!

한 노인네가 주먹을 내 등으로 날렸고.

쿠당탕탕.

"X팔."

땅바닥을 몇 번이나 굴렀다.

그런데 등을 맞았는데, 코피가 난다.

죽었어, 늙은이들.

샤이닝 라이트!

번쩍!

척!

척!

그대로 두 노인네에게 양팔을 잡히고 제압당했다.

멀쩡해 보이다 못해, 도사 복장까지 입고 있는 노인네들인데.

도대체 왜?

"클클클. 잡았다, 이 간자 놈."

아! X팔.

지금 임무 수행 중도 아닌데, 왜 나를 간자라고 하는 거지?

억울함에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가자, 간자 놈아. 평생 뇌옥에 가둬 끔찍한 고문을 해 주겠다. 클클클."

* * *

태사 헌원문장을 처음 만난 날,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사지가 찢기고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도 비밀을 지키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헌원세가에 온 적도 없고, 헌원이번이 된 적도 없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대인.’

사실이다.

우리 비걸개는 목에 칼이 들어오고, 다시 그 칼이 내 목을 관통해도 비밀을 지키는 훈련을 받았다.

무슨 ‘무림 영웅전’에 나오는 악당들처럼 독단을 입에 물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최악의 경우 혀를 깨물어 자살한다.

우리에게 비밀 엄수는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영문도 모르게 잡혀 끌려가면서도…….

와! 그나저나 이 노인네들 도대체 뭐야?

내가 아무리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도, 1갑자의 내공과 샤이닝 라이트까지 썼는데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무지막지한 고수들이다.

아무튼…….

영문도 모른 채 잡혀 끌려가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웃긴 건.

두 노인네 역시 나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심리 싸움이다.

비걸개인 내가 질 수 없다.

"캬! 맛있게 익었네. 먹자고."

"그래, 어서 드시게."

개울가.

두 노인네가 팔뚝만 한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서 노릇노릇 맛있게도 구워 먹는다.

"술도 챙겼나?"

"자네 건?"

"하하. 미안하네. 진즉 다 마셔 버렸지."

"이번만이야. 다음엔 안 줘."

"고맙네."

와! 술까지 마시고.

꿀꺽.

맛있겠다.

하지만 나는 비걸개.

티 내지 않는다.

꼬르르륵.

젠장!

이건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다.

배에서 나는 소리다.

"저 녀석도 배가 고픈 모양인데?"

"냅둬. 우리가 왜 간자 녀석 밥까지 챙겨 줘야 해?"

"그렇지, 어서 먹고 가자고."

"그래."

하아! 왜 아까부터 간자, 간자 그러는 거야?

내가 어딜 봐서 간자라고?

물론 비걸개가 적들 입장에서는 간자 맞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억울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대비한 전력도 당연히 비걸개 훈련생 때 배웠다.

철면피와 오리발 전략이란 게 있다.

"이보세요들, 벌건 대낮에 사람을 이리 납치해도 됩니까?"

"풉. 저 녀석 뭐라고 그러는 거야? 납치? 우리가? 너를?"

"그럼 밧줄로 꽁꽁 묶고, 혈도까지 제압하고. 이게 납치가 아니면 뭡니까?"

"하아! 저 녀석 뻔뻔한 것 보소. 어디 간자 주제에 우리더러 납치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해?"

"아니, 아까부터 자꾸 간자 간자 그러는데. 그게 뭔 소립니까?"

"됐다, 인석아. 어디 어르신들을 속이려고 그러느냐? 이미 네가 간자인 사실은 두 번이나 확인했다. 할 말이 있으면, 무림맹에 가서 해라."

어?

무림맹?

무림맹 사람들인가?

그럼 같은 편인데?

그래도 말할 수 없다.

내 신분은 아무리 무림맹이고 정파고 뭐고를 떠나, 말할 수 없는 게 우리 비걸개의 수칙이다.

하나를 말하면 둘을 말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열을 말하게 되는 게 사람의 심리다.

왜 이토록 신분에 대해 철저한 비밀을 지켜야 하냐면.

나 하나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나머지 비걸개 동료들의 신분까지 누설하면, 그들까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것이 가장 큰 이유다.

"누구십니까? 무림맹 운운하는 걸 보면, 무림맹 사람인 것 같은… 설마?"

"우리가 누군지 알아보겠냐?"

젠장!

빌어먹을!

하여간 거지새끼들 같으니라고!

나는 비걸개다.

당연히 무림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정보 역시 이미 숙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초상화까지 달달 외웠다.

어렸을 적 잃은 엄마 얼굴보다 더 생생하게 머릿속에 암기한 게 무림의 주요 인사들이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거지새끼들이, 주요 인물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게, 발로 그렸다.

원래 거지들이 그렇다.

다 대충대충.

인물의 특징을 중점으로 그린다고 했지만, 진짜 발로 그린 건지, 수준이 딱 거기까지다.

아!

돌겠다.

이러니 내가 못 알아봤지.

"무림맹의 종남장로 순화자(醇化子) 도사님과 제갈장로 속리자(俗離子) 도사님 아니십니까?"

"어라? 이 녀석 우리까지 알아보네? 간자로 침투하기 전에 정보를 많이 익혔나 보군."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몇몇의 거대한 무문에서 자신들의 뜻을 대변할 대표를 무림맹에 파견한다.

이들은 세력 및 무공의 수위 등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장로 및 주요 직책에 임명되는데.

종남파에서 무림맹으로 보낸 장로를 종남장로.

제갈세가에서 무림맹으로 보내 장로가 된 자를 제갈장로라 부르는 식이다.

특이하게도 제갈세가의 속리자, 원래 이름은 제갈마혜인데 도가에 뜻을 품고 스스로 도사가 되었다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손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 당할 만도 했다.

두 사람은 무림맹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들이다.

그것도 둘이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기습까지 했으니.

심지어 각기 무림맹주의 왼팔과 오른팔로도 유명하다.

괴짜에 단짝이며, 무공은 측량할 길이 없고, 누가 제갈세가 사람 아니랄까 봐 계략에도 능하다고 알려졌다.

휴우.

일진 한번 더럽게 사납네.

아무리 무림맹의 핵심 인사라고 해도, 수칙은 수칙.

내 신분을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다.

"어디서 왔느냐? 역시 마교겠지?"

젠장!

마인 소리를 다 듣네.

"태양궁 아니야?"

"설마 북해빙궁에서 온 건 아니겠지?"

"음, 생긴 걸 보니 어쩌면 혈교나 배교일 수도 있겠어."

X팔!

내 생긴 게 어때서?

"아니! 도대체 왜 나를 간자로 생각하는 건데요? 그 이유나 좀 들읍시다. 뭘 두 번이나 확인했다는 거예요?"

제갈세가의 속리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도사라는 양반이 저렇게 비열하게 웃어도 되는지, 참.

"아까 마을에서 호랑이하고 싸울 때. 그리고 조금 전 우리가 너를 시험했을 때. 두 번 다 정확히 봤다. 중원 무림의 무공과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무공."

곧바로 종남파의 순화자가 말을 이었다.

"맞아, 맞아. 완전히 달라. 내 중원의 모든 무공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네가 보인 무공은 기본 자체가 우리 중원 무림의 무공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었어. 내가 묻고 싶구나. 도대체 넌 누구냐?"

젠장!

결국 그것 때문이었어.

아! 비걸개 훈련생 때 그렇게 배우고 또 배웠는데.

그 한순간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샤이닝 라이트를 쓴 대가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됐다.

오해가 있으면 풀면 된다.

물론, 내 입으로 풀 수는 없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대신, 내 입으로 풀 수 없으면.

몸을 마구 비틀었다.

말을 할 수 있으니 아혈을 점한 건 아니다.

나를 업고 무림맹까지 갈 생각이 아니니, 마혈도 점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를 밧줄로 꽁꽁 묶고, 내공을 운용할 수 없는 주요 혈도만 점혈하였다.

그래서 몸을 마구 비틀비틀.

그런 나를 미친놈 보듯 보는 두 사람.

상관없다.

계속 몸을 비틀비틀.

결국…….

툭.

"어? 뭐가 떨어졌네?"

내가 한 말이다.

지극히 어색한 연기였지만.

걸렸다.

두 노인네가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온다.

큭큭큭.

떨어뜨린 건 전낭이지만, 엄청난 양의 돈을 보고 내 몸을 수색할 거고.

그러면 보게 될 테다.

어디 태사대부패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나 보자, 이 노인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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