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53화 (52/174)

53화

* * *

구넬샤찌국의 궁전으로 왔다.

오는 길에 이 나라의 백성들을 볼 수 있었다.

소문이 얼마나 빠르게 돌았는지, 나를 보기 위해 수만 명에 달하는 구넬샤찌국의 백성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꽃잎이 하늘 가득 날리고, 나를 환호하고 찬양하는 외침은 끝이 없었다.

거짓말 같지만, 그 수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 모두가 절대! 절세의! 초극강의! 무지막지한 미녀들이었다.

심지어 할머니들마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이들이 보이지 않네요?"

궁으로 들어오며 내가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에게 물었다.

그러자 하는 말.

"전대의 성자님께서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후, 21년 동안 성좌님의 자리가 공석이었습니다. 당연히 21년 동안 아이가 태어날 수 없었죠."

그런 말을 하며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이 나를 보는데.

환장할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뭔가 느낌이 싸하다.

그냥 순간 느낌이 정말 그랬다.

하지만 금방 잊고.

그렇게 궁으로 들어왔는데.

"따뜻한 물을 준비해 뒀습니다. 씻으시면 갈아입을 옷까지 모두 준비해 놨습니다."

장난 아니다.

내가 올 줄 알고 준비한 게 아니라, 21년 동안 매일 언제 올지 모를 남자를 대비해 그리 준비해 뒀나 보다.

그나저나 오자마자 씻으라고?

내가 살던 중원과 문화가 달라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금으로 가득 치장된 화려하고 커다란 욕실에 들어갔는데.

와!

절세의 미녀들이.

그것도 반라의 미녀들이.

스무 명이나 있다.

"저… 저 이제 씻을 건데요?"

"네. 저희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성좌님."

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사실 좀 좋았는데, 아무래도 비걸개의 본능이 경계하게 했나 보다.

"혼자 씻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번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앗! 네. 네, 성좌님. 죄송합니다. 다시는 두 번 말씀하지 않게,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스무여 명의 절대 미녀들이 욕실을 빠져나가… 음.

"동작 그만."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모든 신경을 나에게 쏟고 있던 절세의 미녀들은 이를 제대로 들었다.

우르르 욕실을 빠져나가다,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는 시선을 나에게로 향했다.

누군가 그랬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그건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이야기고.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옷에 숨긴 거, 내려놓고 나가세요."

"어멋. 죄송해요, 성좌님. 다 씻으시면, 몸은 제가 닦아 드리려고. 죄송합니다."

한 미녀가 나가면서 슬쩍 수건을 자신의 옷 속에 숨겼던 것이다.

아! 저렇게 순수하고 맑으며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인도, 저런 꼼수를 부리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반라의 절세 미녀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기감으로 주변까지 감지하여 사람이 없음을 확인까지 한 다음에, 나는 옷을 다 벗고 따뜻한 탕으로 몸을 누였다.

차원 이동 후 몇 시진 지나지 않았다.

정말 정신없이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이곳으로 와 처음으로 제대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전대의 성좌.

98세의 나이로 사망.

그때까지 계속 이곳에서… 아!

최소한 이 나라의 젊은 처자들은 모두 그 사람의 딸이라는 거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지금 내가 좋아해야 할 때인가?

아니면 도망을 가야 하나?

아까 궁으로 들어오며 받았던 그 싸한 느낌이, 이젠 현실로 다가온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 그리 두려워할 것도 없다.

아니지.

이건 두려울 게 아니라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펄쩍 뛰며 춤까지 출 상황이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데, 내 미래가 어찌 될지 보이는 것 같다.

매일 수십 명의 절세 미녀에게 둘러싸여……. 큭큭큭.

아놔!

행운석, 그동안 고마웠다.

그런데 미안하다.

널 부숴야겠다.

절대! 절대로 중원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가 이제 내 집이다.

"큭큭큭."

그렇게 혼자 실없이 웃으며 좋아하고 있을 때였다.

음, 사람이다.

기운이…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인데?

"성좌님?"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화려한 천막을 젖히며 욕실로 들어왔다.

"여왕님, 무슨 일……?"

"성좌님께서 시중드는 아이들을 물리셨다고 해서요. 혹시 아이들이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아름다우며, 인자하고, 성스럽다는 느낌까지 들게 하는 미녀가 바로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이다.

그런데…….

뭐야?

왜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로 또 걱정스러운 표정까지 지으며, 은근슬쩍 다가오는데.

그러더니…….

첨벙.

자연스럽게 욕탕으로 손까지 집어넣는다.

와!

와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게 생겨서 서슴없이 이렇게 뻔뻔할 수 있지?

내가 차원 이동을 한 지 고작 두세 시진 지났을 뿐인데, 벌써 세 번째다.

일부러 가련한 모습으로 위장해 홀로 밭을 갈며 내 눈길을 끌려고 했던 절세 미녀가 첫 번째.

내 말에 순종하는 것처럼 하며, 슬쩍 수건을 옷 속에 숨겼던 절세 미녀가 두 번째.

그리고 믿었던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이 세 번째다.

"물 온도가 적당한가요? 조금 뜨겁지 않나요?"

아주 자연스럽다.

그렇게 말을 하며 내 몸을 만지려 한다.

와!

저 표정 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동작 그만."

또 말은 잘 듣는다.

내 중심 부위 바로 1촌까지 다가왔던 그녀의 손이 멈추었다.

"나가세요. 물 온도 적당하고, 시비들 실수한 거 없고. 저는 혼자 목욕하고 싶어요."

"아… 네, 네. 명에 따르겠습니다, 성좌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욕실을 나가는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

그녀의 얼굴 가득 아쉬움이 드러나고 있었다.

휴우.

이곳 말이다.

장난 아니다.

* * *

떡이 눈앞에 있다고 그걸 덥석 집어먹으면 그자는 하수다.

상했는지 살펴야 하고, 독이 들었는지 또 살펴야 한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추론해 봐야 하고,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 정도는 돼야 우리는 그런 사람을 미식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비걸개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함정일 수 있고, 미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만 명의 절세 미녀가 나 한 명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첫날을 홀로 보냈다.

그런데 이것도 장난 아니다.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부터 시작해, 귀족들과 시비들까지.

시시각각으로 나를 유혹해 왔다.

난 내가 이러다 득도해서 신선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인내력으로 그 모든 유혹과 술수를 이겨 낼 수 있었다.

진심이다.

이곳 여인들, 장난 아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 왔고.

황제의 밥상이 내 앞에 차려졌다.

"이건 뭔가요?"

"물개의 그것으로 만든 그것입니다."

해구신(海狗腎)이다.

중원에서 귀한 약재로 쓰인다.

수컷 물개 한 마리가 수십 마리의 암컷 물개를 거느린다고, 그것에 특효라 알려진 그거다.

그걸 이곳에서도 보다니.

"이건 뭔가요?"

"음양초입니다."

여기선 음양초라고 불리나 보다.

음, 이것도 중원에 있는 거다.

음양곽(淫羊藿),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라고도 한다.

수컷 양이 이 약초를 먹으면, 하루에 수십 번 암컷 양들과 그걸 할 수 있다는 그거다.

"이건 뭔가요? 굉장히 길고 크네요."

"말의 거시……."

"그만. 이건 치우세요. 다시는 상에 올리지 마세요."

"네, 성좌님."

음식이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거위 고기, 돼지고기부터 형형색색의 맛나 보이는 과일과 채소까지 한 상 가득하다.

나는 식사를 하며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전대의 성좌께서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우리나라에 오셨습니다."

무려 81년 동안 이곳의 성좌로 있었다고 한다.

"전대의 성좌님께서 백성들을 많이 사랑해 주신 덕분에, 이토록 우리 구넬샤찌국이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백성들을 많이 사랑해 주셨다고요?"

"네. 1년 365일 중 300일 이상, 하루에 두 번씩 만백성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음, 자꾸 생각이 깊어진다.

"그런데 전대의 성좌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새 성좌님께서 오시지 않아 저는 물론 백성들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21년 동안요?"

"네, 주변 나라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는데, 우리나라만 그 긴 기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모두가 침통한 마음이었습니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이었군요?"

"명운을 넘어 나라의 생존, 종족의 생존이 걸린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나라가 곧 쇠퇴하여 망하게 될 줄 알았는데, 성좌님께서 기적처럼 나타나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성좌님."

음, 심각한데?

그런데 그때였다.

맞은 편에 시립한 상태로 내가 식사하는 것을 보기만 하며 대화를 나누던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주변에 있던 수십 명의 시비까지 일제히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왜? 갑자기 왜 이러세요?"

"성좌님, 도와주세요.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 성은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내 머리까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조아리며 간곡히 부탁하는 그녀들이었다.

휴우.

어쩔 수 없다.

이건 사심이 절대 아니다.

종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하지 않나?

나 하나 희생해, 만백성이 행복할 수 있다면.

희생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

이들을 위해 내 한 몸 불사르자.

일단, 행운석부터 부수고.

망치 좀 가져다 달라고 해야겠다.

튼튼한 놈으로.

* * *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저녁 먹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땡땡땡.

이들은 이를 성은(聖恩)이라 하였다.

나는 구넬샤찌국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내 한 몸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에 다섯 번씩 백성들에게 성은을 베풀었다.

더 많은 성은을 베풀 수 있었지만, 놀랍게도 알리사 이바노바 여왕과 대신들이 이를 제지하였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이에 관해 이들의 지식은 매우 과학적이었고 놀라울 정도의 체계가 잡혀 있었다.

1,000년 넘게 연구하고 실험하였으며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라 하였다.

주변국과의 전쟁이나 식량을 얻는 문제보다 더 중시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얻은 성과라고도 하였다.

빠르게 성은을 입을 백성들의 순번이 정해졌고, 이는 구넬샤찌국의 가장 우선하는 법에 의거하여 지켜졌다.

내가 가장 먼저 말을 건 마을의 여인들이 우선권을 가졌고, 그다음으로 나에게 달려왔던 마을의 여인들이 두 번째 차례가 되었다.

나라의 모든 여인이 성은을 입을 수는 없었다.

가임기의 젊은 여성들만이 성은을 입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웠다거나,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을 정도로 훌륭한 일을 한 여인들이 또 우선권을 받게 되었다.

내가 몇 번이고 놀랄 정도로, 성은에 관한 일은 법과 제도가 완벽에 가깝게 정립된 상태였다.

물론, 어딜 가든 꼭 법을 어기는 자들이 있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위중하세요. 흑흑흑. 앞으로 사실 날이 며칠 안 남으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소원이……. 흑흑흑. 성좌님, 저에게 성은을……. 흑흑. 가여운 저희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셔서……. 흑흑흑."

절세의 미녀가 저토록 슬피 우는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난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아니, 막 잡아 주려고 할 때.

쉬이이이이이이이익!

어디선가 어김없이 이단 날아 차기가 날아왔고.

퍽퍽퍽!

퍼퍼퍼퍼퍼퍽!

"이년이 어디서 되지도 않을 수작질을 성좌님께 부려!"

"여봐라! 당장 이년을 끌고 가 뇌옥에 처넣어라!"

"잠깐! 잠깐만요! 지금 이 아가씨의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고……."

"성좌님?"

"네?"

"이년… 앗! 죄송합니다. 이 여인의 어머니는 7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아! 네. 네. 그렇군요."

하루에도 몇 번씩, 엄중한 법까지 어겨 가며 나에게 수작을 거는 여인들이 있었다.

이곳에 와 보름이 지나기도 전.

나는 이제 웬만한 수작질 따위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을 강심장을 갖게 되었다.

* * *

"안마도 해 드릴까요?"

"어, 그러면 좋지. 어깨가 많이 뭉쳤네."

"다리도 주물러 드릴게요."

"고마워."

오늘도 20여 명의 절세 미녀들이 내 목욕 시중을 드는 중이다.

아! 행복하다.

행운석을 빨리 부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몸을 절세의 미녀들에게 맡기고 살짝 잠에 빠지려 할 때였다.

무언가 엄청난 기운.

이곳으로 와 처음으로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강한 경계심이 드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은빛 갑옷을 두르고, 파란 눈을 가졌으며, 은색의 긴 머릿결을 휘날리는 여인.

한 손에 번뜩이는 은빛 광채를 뿌려 대는 날카로운 검까지 쥐고 엄청난 기운을 뿌려 대고 있다.

그녀에 대한 첫 느낌은 그랬다.

‘멋, 멋있다.’

아름다운데 멋있는, 강렬한데 아름다운!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성좌님께서 매일 봉법을 수련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대련 상대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에게 지면 성은을 베풀어 주십시오."

구넬샤찌국의 최강 전사, 실버 로마노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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