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39화 (38/174)

39화

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너무 놀라서 말도 안 나온다.

무림 12대 고수 중 한 명이 있는 단령도문을 혼자서?

하아!

"놈이 제멋대로인 걸 알고, 또 미친놈이란 것도 알고 있고, 거기에 사랑에 빠진 것까지 알았던 본 방에서는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이 사고를 치자마자 당시의 방주님과 장로님들까지 동원할 수 있는 무력대를 다 동원해서 단령도문으로 갔다."

"그래서요?"

"멸문. 문주는 죽고, 단령도문은 멸문. 단령도문을 섬기던 무문에서 무력대가 막 단령도문으로 치닫던 상태에서 본 방이 개입하여 다 죽어 가던 낭만개를 구했다."

낭만개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아! 그런데 지금 듣고 있는 낭만개가 내가 아는 그 낭만개 맞아?

도저히 맞지 않는데?

돌겠네.

"간신히 놈을 살려 데려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무슨 문제요?"

"그 녀석이 사랑하던 여인이 난리 통에 죽어 버린 것이야."

"더 미쳤겠네요?"

"지랄발광을 했다더구나. 방주님과 장로님들이 힘을 합쳐 놈을 제압한 후 뇌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놈이 저지른 일의 뒤처리를 하느라 정말 많은 돈을 쓰고 또 많은 걸 내놔야 했지. 본 방이 진짜 거지가 되는 순간이었어. 그놈 때문에."

"우리 개방에 돈이 있긴 있었어요?"

"흉년이 들면 누가 거지들에게 밥을 나눠 주겠냐? 그런 때를 대비해 쌀이며 돈이며 많이 보관해 둔다. 그런데 그때는 그놈 때문에 그걸 다 써 버렸지. 뭐, 그 후 3년 동안 대풍년이 연이어 들어 별 탈은 안 났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어차피 나쁜 건 단령도문의 문주였잖아요. 또 낭만개가 그렇게 강한 고수면, 숨길 이유가 없지 않지 않나요?"

"세상이 그렇게 딱딱 떨어지고 정의가 되면 얼마나 좋겠냐?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당장에 우리 거지라고 하면 황궁이나 백성들이나 곱게 보지 않는다. 진실이야 어떻게 됐건, 고강한 거지 한 명이 수천 명의 무인을 홀로 때려죽였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거지들 구걸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르겠네요."

"그렇다. 우리 개방은 다른 문파와 다르다. 진실이야 어떻게 되든, 사람들은 우리 거지들을 불쌍히 보지 않고 두려워하게 될 테고. 소문이 퍼지고 며칠 지나지 않아 중원 전역의 거지 중 수백만 명이 굶어 죽게 될 테다. 개방의 방도는 그러한 것까지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 후 낭만개 아저씨는 어떻게 됐어요?"

"뇌옥에 10년 동안 있다가 나왔다."

"10년요? 그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요?"

"원래 석 달만 자숙 좀 하고 나오라고 그랬는데, 낭만개 스스로 나오지 않은 거다. 그놈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으니, 나중에는 전대의 방주님까지 포기했지."

"아! 10년… 그런 다음에는요?"

"하남 신양 황천으로 갔다."

"제 고향이에요. 낭만개 아저씨는 왜 거기로 갔데요?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대요?"

"고향이라고 하더군."

"아! 기억났어요. 매일 우리 엄마 쫓아다니며 첫사랑 어쩌고 했는데, 우리 엄마 꼬시려고 했던 거짓말이 아니라, 낭만개 아저씨의 어렸을 적 진짜 첫사랑이 우리 엄마였었나 보네요."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무튼 낭만개는 그때 그곳으로 갔고, 당시 나이가 고작 서른한 살이었다. 본 방에서는 어떻게든 녀석을 다시 총타로 데리고 와 방의 고수로 키우려고 했지만."

"말을 안 들었겠죠. 더군다나 우리 엄마와 사랑에 빠져 있었으니, 더더욱 말을 들을 리 없겠죠."

"맞다. 당시의 방주님과 장로님들이 몇 번이고 찾아가 설득했지만, 불가능했다고 하더구나. 또 사고를 칠지 몰라서 간신히 설득한 끝에 일결의 매듭과 황천 분타의 분타주 직을 맡길 수 있었단다."

"최소한의 소속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하려 했던 것이었군요."

"그렇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네가 알다시피 나와 우리가 개방을 이끌고 있다. 낭만개는……."

"포기한 거예요?"

"포기가 아니라, 그냥 조용히 있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 놈이 미쳐 날뛰면 막을 사람이 없으니까. 물론 나는 아니다."

"복수를 계획하고 있군요?"

"그렇다."

왜 지금 안 하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아직도 무치개는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첩첩산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이 장로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오랜만이구나. 내가 누군가와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한 것이. 10년도 더 된 것 같다."

속이 다 시원해진 그런 얼굴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계속 서슴없이 물어봐 놓고, 이제 와 예의를 차리려는 것이냐? 됐으니 거지답게 얼굴에 철판 깔고 그냥 물어봐라."

"네. 아까… 이 장로님께서 낭만개 아저씨를 천하제일인이라고 단정 지어 말씀하셨는데, 왜 그러신 거예요?"

이 장로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천하제이인이니까."

방금 나 죽을 뻔했다.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이다.

목까지, 아니 입까지 차오른 웃음을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아놔! 이 인간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음, 그런데 이 장로 얼굴이 너무 진지한데?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 이 장로 본인은 분명 그렇게 믿고 있다는 말인데.

"소문으로 듣기는 엄청나게 듣긴 했는데. 화경의 벽… 진짜로 깼어요?"

"이미 13년이나 됐다."

허걱!

허거거거거거거거거거걱!

갑자기 이 인간이 위대해 보인다.

분명 조금은 그럴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진짜 화경의 고수다.

그것도 무려 13년이나 됐다.

그렇다면 이 장로의 나이 현재 정확히 쉰 살이니까. 와!

서른일곱 살에 화경의 벽을 깼다는 소리다.

내가 더 기겁하고 놀란 건,

서른일곱 살에 화경의 고수가 되고, 그러고도 계속 이곳 석창림에 은거하며 수련만 미친 듯 하는 이 괴물 같은 고수가…….

낭만개를 무서워해 석창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아! 진짜 돌겠네.

뭐야!

뭐냐고?

낭만개 때문에 놀라서, 내가 이러다 내 명에 죽지도 못할 것 같다.

일단 침착하자.

"방에서도 알아요? 방주님하고 다른 장로님들요?"

"알지."

"왜 발표를 안 해요? 본 방에 화경의 고수가 있다는 걸 숨길 이유는 없잖아요. 그것도 거지들 구걸하는 것과 연관 짓는 건 좀 억지 같은데요."

"내가 하지 말라고 했어."

"왜요?"

"쪽팔리잖아."

"화경의 고수가 쪽팔려요?"

"아니, 그거 말고."

"그럼요?"

"천하제이인."

"……?"

"쪽팔리게 천하제이인이 뭐냐? 천하제일인이 될 때까지, 절대 말하지 말라고 방주님하고 다른 장로들한테 잘 말해 놨다."

잘 말해 놓은 게 아니라 협박을 했나 보다.

다들 고분고분 이 장로의 말을 듣는 걸 보면.

"그리고 사실 억지도 아냐. 거지들이 강하다고 하면 무림에서야 우리 개방의 위상이 달라지겠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밥을 주는 백성들은 달가워하지 않겠지. 잘 알아 둬라, 걸이번."

"네, 장로님."

"우리 개방은 그냥 거지가 아니다. 우리 개방은 의를 숭배하고 협을 위해 목숨을 던지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이건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대답을 그리했더니, 무치개가 만족한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처음보다 나를 보는 눈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제자로 삼으려는 욕망이 이글거리는 것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공손히 답을 했지만, 내 머릿속은 사실 다른 생각으로 가득하다.

무치개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적은 것이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치개라면 분명 천하제일인, 천하제이인의 자리를 노려 볼 정도의 능력이 된다.

화경의 고수 아닌가?

그리고 그가 두려워할 정도로 고강한 낭만개라면?

아!

진짜 내 기억 속의 낭만개는 헤헤거리며 우리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닌 것밖에 없는데.

그게 아니면 길바닥이고 아무 데서고 그냥 퍼질러 자는 기억뿐이고.

돌겠다.

쌍둥이인가?

동명이인?

같은 사람 맞냐고!

울고 싶은 심정이지만, 안다.

그가 그라는 사실을 더는 부정하기 힘들다.

어쩌면 내가 알던 그 거지 중의 진짜 상비렁뱅이가, 천하제일인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지."

"……?"

"내가 왜 너를 제자로 삼으려고 했는지, 이제는 좀 알겠느냐?"

"낭만개 아저씨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었군요? 낭만개 아저씨보다 이 장로님께서 저를 훨씬 더 훌륭하고 대단한 고수로 키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고요."

"하하하! 맞다. 네가 내 제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는 순간, 너는 확고부동한 미래의 천하제일인이다. 내가 반드시 그리 만들어 줄 테다."

"삼순산공독을 복용시키신 이유도 알 것 같아요."

"오! 그것까지? 그래, 내가 왜 그랬다고 생각하느냐?"

이제는 나를 보는 이장로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제자 시험의 공정성을 위함이 그 첫 번째 이유겠지요."

"맞다. 맞아.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아무래도 제가 제자 시험에서 떨어지면 낭만개 아저씨를 비웃어 주려고 했던 아닌가요? 형편없는 놈을 키웠다면서 크게 비웃어 주려 하셨겠죠. 물론 그래도 저를 제자로 삼으려 하셨겠지만요."

이제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이러다 사랑한다고 고백이라도 할 것 같다.

"본 적 없는 최강의 외공에 1갑자의 내공까지. 그런데 너는 총명하기까지 하구나. 걸이번. 아니, 태한아! 내 눈이 틀렸다. 인정하마. 너의 무재는 전설 속의 천무지체와 비교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인재 중의 인재다. 나와 함께하자. 내 목을 걸고 너를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 줄 테다. 진심이다."

아! 내가 살다 살다 천무지체 소리를 듣는 날이 다 오는구나.

그것도 화경의 고수에게서.

그런데 아니다.

그럴 수는 없지.

이 장로가 말한 것처럼 내가 바보도 아니고 똑똑한 놈인데.

"말씀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갑자기 꿀이 콸콸 흘러넘치던 이 장로의 눈이 변했다.

동공에 지진이 이는가 싶더니, 화경의 고수가 손까지 떤다.

믿을 수 없다는.

아니, 믿기지 않는다는 그런 얼굴이다.

"비, 비걸개 때문이냐? 그 문제라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다. 내 권한으로 너를 내 소속의 비걸개로 만들 수 있다. 이제 됐느냐, 제자야?"

와!

급하긴 급했나 보다.

서슴없이 제자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온다.

"죄송해요, 이 장로님. 그리고 저도 진심으로 감사해요. 부족한 저를 이렇게까지 좋게 봐주셔서요."

이젠 지진을 넘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크게 흔들리는 이 장로의 눈동자.

온몸이 부들거린다.

아! 이러다 때리는 건 아니겠지?

설마.

"왜! 도대체 왜?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천하제일인을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설마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더냐?"

"아니요, 믿어요."

"그런데 왜?"

"조금 더 빨리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어서요."

이 장로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큰 떨림까지 멈추어 가며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기만 한다.

"떠나야겠어요."

"떠나? 이제 막 제자 시험을 치르고 돌아와 합격했는데, 지금 떠난다고?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냐?"

"갑자기……."

"갑자기 뭐? 왜?"

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갑자기 새아빠가 보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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