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 *
"아쿵타."
"노인네, 뭐? 막상 한 판 붙으려고 하니 겁나? 큭큭큭."
부족의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족장 릴농푼탄과 대전사 아쿵타가 대치 중이다.
부족 원로들의 신성제국 전쟁 참전을 놓고 벌이는 한판이다.
"아니, 너 발밑에 뭐 떨어졌다고. 먹을 거 아냐?"
"어? 뭐가 떨어져?"
아쿵타는 무엇이 떨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고.
"X신 같은 놈."
노련한 족장 릴농푼탄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쉬이이이이이익.
퍼어어억!
쿠당탕탕탕탕탕.
와! 열 장도 아니고 스무 장을 날아가 나뒹구는 아쿵타였다.
"이런 X팔! 비겁하기는. 간다, 늙은이!"
"와라! 애송이!"
퍽퍽퍽!
퍼퍼퍼퍼퍽!
쿠당탕탕탕!
퍼퍼퍼퍽!
쿠당탕탕탕!
진짜 곰하고 호랑이하고 싸우는 거 같다.
그냥 돌진.
냅다 주먹질.
발길질.
머리 박치기.
몸통 박치기.
들어서 메다꽂기.
"우가쿠가! 붕가차차! 우가쿠가! 붕가차차!"
덕분에 부족 사람들만 신났다.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모두 껑충껑충 뛰며 괴성을 지른다.
아, 참고로 ‘우가쿠가 붕가차차’가 무슨 뜻인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별 뜻은 없다고 했다.
그냥 오래전부터 신날 때, 또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을 때 등등의 상황에 외치는 거라고.
"필살기다, 늙은이!"
"나도 간다, 꼬맹이!"
쉬이이이이이익.
퍼어어어어억!
쿠당탕탕탕탕.
이번엔 족장 릴농푼탄이 삼십 장이나 날아가 땅바닥을 구른 후 일어났다.
아니, 막 일어나려던 순간.
휘청.
털썩.
"내가 뭐랬어? 여기서 잠자코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있으라니까! 흐하하하하하!"
"반칙! 이건 반칙……."
털썩.
다시 일어나려다가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재차 땅바닥에 주저앉는 릴농푼탄.
그런 그에게 아쿵타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 그리고 부탁이야, 족장. 우리가 전장에서 마음 놓고 싸울 수 있게, 여인들과 아이들을 지켜 줘."
"빌어먹을! 알았다, 이 녀석아."
"그럼 합의 끝! 모두 들어라! 신성제국의 전쟁에는 우리 젊은 전사들이 참여한다!"
"와아아아아! 우가쿠가! 붕가차차! 우가쿠가! 붕가차차!"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 모두가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는 순간이었다.
살짝 삐친 듯했던 족장마저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가 나설 땐가?
툭툭.
바닥에서 버려진 나무를 하나 주워 묻은 흙을 털어 냈다.
어른 손목 두께보다 살짝 얇고, 길이는 딱 적당하다.
끝이 뾰족하긴 하지만, 검보다는 몽둥이에 가깝다.
괜찮다.
아니, 오히려 더 좋다.
낙백구검이 나의 드러난 성명절기라면, 몽둥이와 봉을 이용한 타구봉법은 나의 비기(祕器)다.
이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냅다 달렸다.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아쿵타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공은 싣지 않았다.
그냥 달려.
쉬이이이이이이익.
도약했고.
퍼억!
양발을 쭉 뻗어 아쿵타의 왼쪽 얼굴을 강타.
쿠탕탕탕탕.
한참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던 아쿵타가 땅바닥을 열댓 바퀴나 굴렀다.
갑작스레 찾아온 정적.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와 아쿵타를 번갈아 본다.
"이런 X팔. 왜 때려?"
"도전."
"뭐?"
"도전한다고."
"풉. 푸우웁. 풉."
또 배꼽을 잡는다.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내 체면을 봐서 억지로 참으려는 것 같다.
"웃지 마. 죽는다."
살기를 슬쩍 흘렸다.
웃음기가 싹 가신 아쿵타.
"진심이구나?"
"그렇다. 나 나태한은 칵뉴족의 위대한 대전사 아쿵타에게 도전한다!"
그 대사를 멋지게 치고, 조금 전 땅에서 주운 나무를 양손으로 잡아 기수식을 취했다.
기수식이 뭔지 모르는 아쿵타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니, 기수식 때문이 아니라 맨손이 아닌 나무 몽둥이를 들고 싸우려는 내 모습이 이해가 안 된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상관없다.
"와라, 아쿵타."
피식.
아쿵타가 웃는다.
"그래, 잠깐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져 있을 거야."
그 말만을 하고는 무섭게 나를 향해 달려온다.
바위를 부숴라 형님이 생각나는 무시무시한 속도와 힘이다.
하지만…….
스으으으윽.
나는 한 발을 내밀며, 오른손을 쭉 뻗었다.
아쿵타의 팔과 다리는 나보다 훨씬 길다.
하지만, 이건 찌르기의 초식.
아! 이건 타구봉법이 아니라 낙백구검이다.
칵뉴족에게 가르칠 게 봉법이 아니라 검법이어야 하니, 검법을 보여 주기로 한 거다.
아무튼!
스으으으윽.
슈우우우욱!
순식간에 날카로운 검이 되어 버린 나의 나무 몽둥이가 아쿵타를 향해 뻗어졌다.
아쿵타가 웃는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달려와 주먹을 내게 뻗었다.
저거 맞으면 죽는다.
괜찮다.
안 맞는다.
검이 된 나무 몽둥이의 길이가 아쿵타의 팔보다 정확히 한 척(30cm)이나 더 길다.
아니나 다를까.
슈우우우욱.
푹.
아쿵타의 주먹이 내 얼굴에 닿기 한참 전.
정확히 나무 몽둥이의 뾰족한 끝부분이 아쿵타의 복부를 찔렀다.
작은 상처는 필요하다.
승리를 위해, 또 검법의 위력을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아쿵타의 복부를 한 치가량 찔러 피를 보여 주려 했……?
빠각.
뾰족한 나무 몽둥이의 끝부분이, 아니 그냥 나무 몽둥이가 통째로 부서졌다.
곧이어.
퍼어억!
내 왼쪽 얼굴을 강타하는 아쿵타의 주먹.
쉬이이이이이이이이잉!
와!
멀리도 날아간다.
순간 나는 내가 새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는데도, 계속 날아간다.
와!
어디까지 날아가는 거지?
이러다 중원까지 날아서 돌아가겠다.
쿠당탕탕탕탕탕탕탕탕탕.
데구르르르르르르르르르.
대략 삼십 장을 날았고.
다시 열댓 장을 더 굴렀다.
하아!
죽는 줄 알았다.
절대, 결코, 기필코 내공은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이건 본능이었다.
내공이 본능적으로 치솟아 호신강기를 둘러서 살았다.
"하하하하하!"
"와아아아아!"
"태한! 괜찮아?"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어머! 적당히 좀 하지! 아쿵타, 짜증나."
야야가 아쿵타를 향해 앙칼진 목소리로 화를 낸 후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태한, 괜찮아? 메추리 병아리 안 다쳤지? 어디 봐 봐. 내가 좀 봐 줄게."
아! 이 상황에서도 야야의 관심사는 내 병아리뿐이군.
그나저나.
다들 이 말도 안 되는 대결의 뻔한 결과를 보고 하하 호호 웃고 있을 때.
아쿵타만이 웃지 않고 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때린 자신의 주먹을 한참 보는가 싶더니.
"일어날 수 있냐?"
"네."
"한 번 더 붙자."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아쿵타 대전사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장난인 줄 알았던 부족 사람들 모두가 웃음기를 지우고 심각한 얼굴이 됐다.
무엇보다 아쿵타가 나를 진심으로 상대하려는 게 보였다.
휴우.
어쩔 수 없다.
내 수련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
진짜 전쟁이 뭔지, 학살이 뭔지, 이들은 알지 못한다.
뭐, 나도 전쟁에 참전해 본 건 아니지만, 이들보다야 잘 알지 않겠나?
어찌 됐건 써야겠다.
내공.
주위를 살핀 후, 적당한 나뭇가지를 주웠다.
내 기를 나무에 주입했다.
무림의 진짜 고수들은 나뭇가지에 몇 갑자의 내공을 불어넣기도 한다는데, 난 그렇게는 못 한다.
그거 엄청나게 세밀한 기의 조절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아직 거기까지는 못 되고.
적당히.
나무가 터지지 않게, 또 아쿵타의 괴력에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네.
"와라, 태한."
"갑니다!"
나와 아쿵타는 동시에 달렸다.
엄청난 속도.
적당한 양의 내공을 쓰자 나의 속도, 파괴력, 기세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쿵타도 이미 감지하고 있다.
그렇게 2차 격돌.
샤아악.
아쿵타의 주먹을 보법을 밟아 피했… 아! X팔.
왼쪽 손목을 잡혔다.
확실히 소인국 전사들과는 다르군.
당황하지 말고.
타탓.
보법을 다시 밟고, 나무 몽둥이를 검처럼.
휘이이이익!
파파파파파팍!
아쿵타의 몸을 다섯 번 연달아 강타했다.
모두 치명적인 혈 자리다.
처음이다.
아쿵타가, 아니 칵뉴족 전사가 고통을 느껴 인상을 구긴 게.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는다.
오히려 반격.
부우우우우웅.
샤아아악.
그의 주먹을 피했는데, 와!
내 머리카락이 한 주먹만큼 터졌다.
말 그대로다.
잘린 것도 아니고, 머리카락이 터져 나갔다.
맞으면 죽는다.
나도 모르게 내공을 더 끌어 올렸다.
쉬이이이익!
퍽퍽퍽!
쿠당탕탕탕!
휘이이익.
타타타타탓!
퍽퍽퍽!
쾅!
단순했다.
처음엔 아니었지만, 그와 계속 격돌할수록 그의 움직임을 모두 간파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을 간파하게 된 후, 검이 된 나무 몽둥이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쉬이이이익.
파파파파팍!
휘이이이익!
퍼퍼퍼퍼퍼퍽!
"이건 찌르기!"
쉬이이이익.
타타타타탓!
순식간에 100합의 공방이 오갔다.
아니, 나의 일방적인 구타.
찌르고 때리고, 내리치고, 다시 찌르고, 때리고, 또 내리치고.
"헉헉헉! 헉헉헉헉!"
와!
내 외공 말이다.
근력과 체력까지.
이젠 상당한 수준까지 오른 줄 알았는데.
때린 건 난데, 돌겠다.
숨 쉬는 것도, 서 있는 것도 힘들다.
반면, 100합의 공방 동안 수백 대나 맞고 찔린 아쿵타는 멀쩡하다.
나도 모르게, 진짜 본능적으로 1갑자의 내공까지 꺼내 썼는데도 말이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아플 거다.
아픈 혈 자리만 골라 때렸으니, 더 아플 거다.
서 있는 것도 힘들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싶을 정도로 아플 텐데.
그는 꿋꿋이 서서 나를 본다.
"헉헉헉! 헉헉헉! 헉헉!"
어째야 하지?
남은 내공까지 꺼내 써?
그때.
"그게 네가 말한 칼을 쓰는 법이란 거냐, 태한?"
"네, 맞아요."
아쿵타도, 또 이를 지켜보는 칵뉴족의 모든 전사들도.
다시 족장과 부족 사람들 모두가 심각한 얼굴이었다.
"다른 나라 병사들은 모두 그렇게 칼을 쓸 줄 안다는 말이냐?"
"아마도요."
이젠 심각함을 넘어 부족 사람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요, 아쿵타 전사님."
"……?"
"제 목을 걸고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지?"
"제 검법, 그러니까 제가 방금 보여드린 칼 쓰는 방법은 이곳에서만큼은 세계 최강이에요. 어때요? 한 번 배워 보실래요? 세계 최강의 검법."
난 그렇게 이들에게 팔무검법(八武劍法)과 삼재진법을 가르치게 되었다.
* * *
"탈탈루 전사님! 왜 칼을 내버려 두고 자꾸 주먹으로 쳐요! 칼을 쓰라고! 웃지 말고!"
"야! 야우코피! 칼을 뽑으라고! 칼! 칼이 장식이야?"
"그래! 그렇지! 그렇게 서로 등을 맞대면 앞에 있는 적만 상대할 수 있게 된다고!"
"자! 이번엔 어제 배운 진법! 다들 꼭 기억해! 내 동료를 믿어야 해! 또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고! 어이! 탈탈루 전사님! 웃지 말라니까!"
"탕탕가! 왜 혼자 앞으로 나가? 후퇴라고, 후퇴! 진을 형성할 땐, 무조건 지휘관의 말에 따라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그렇지! 그거야! 검을 팔이라고 생각해! 내 팔이 더 길어졌다고 생각하라고!"
"하아! 다 좋은데, 왜 다들 찌르기를 안 해? 칼의 가장 큰 위력은 뾰족한 검의 끝날이라고 했잖아요!"
두 달 반이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처음에는 비교적 단순한 삼재검법을 가르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이곳에는 군대도 있고, 검사도 있다고 하였다.
삼재검법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삼재검법의 바로 상위 검법인 팔무검법을 이들에게 전수해 준 것이다.
삼재진은 시간을 고려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모르겠다.
이곳 군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수준이라면, 아마 이번 전쟁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위안 삼을 수 있는 건.
이들이 원래부터 지상 최강의 전사라는 것이다.
최소한 이곳 세계에서만큼은 그럴 것이다.
고작 두 달 반의 시간 동안, 팔무검법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삼재진 역시 소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어 나를 놀라게 했다.
이제 출발이다.
신성제국의 전장으로 지상 최강의 칵뉴족 전사들이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