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우가쿠가! 붕가차차! 우가쿠가! 붕가차차!"
괴수 악어가 죽었다.
한 시진 동안의 사투?
아니다.
일방적인 구타였다.
칼 한 자루 없이.
돌 몽둥이 따위도 쓰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이 없었다.
거대한 입을 벌려 사람들을 잡아먹으려는 악어를 향해, 이 미친 사람들이 일제히 달려들었고.
그때부터 구타가 시작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머리로 받아 버리고, 몸으로 그냥 들이받았다.
그렇게 한 시진을 두들겨 패니, 괴수 악어가 거짓말처럼 죽었다.
사상자?
단 한 명도 없다.
괴수 악어가 죽자 칵뉴족 사람들은 이를 둘러싸고 그 요상한 구호를 연이어 외쳐 댔다.
"우가쿠가! 붕가차차! 우가쿠가! 붕가차차!"
칵뉴족 사람들은 악어의 피와 생고기를 밤새도록 즐기며 축제 분위기를 냈다.
날이 밝아진 후에야 우리는 그 거대한 괴수 악어를 통으로 질질 끌며 다시 움직였다.
사냥에 성공했으니 부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칵뉴족의 땅에 산 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아! 아직도 적응이 안 되네.
다른 건 다 적응됐다.
이제 숨도 제대로 쉴 수 있다.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이들의 생활과 문화까지 모두 파악했다.
내가 괜히 비걸개 수석 수료생이겠는가.
아무튼 다 적응했는데.
"태한, 이거 먹어. 사자 불알이야."
"응? 어, 고마워."
사자 불알이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자 불알 고기를 생으로 건네는 여인.
야야라는 부족의 여인이다.
열일곱 살.
문제는.
아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진짜 적응 안 되네.
소인국과 달리 이곳의 여인들은 가슴을 가리지 않는다.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래만 아슬아슬하게 가린다.
응, 현재 나도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처음 며칠, 중원에서 입던 옷을 계속 입고 다니다가 더워 뒈질 뻔했다.
아무튼 여인들이 상의를 입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웬만한 건 모두 적응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닷새 전 삼순산공독으로 운용이 불가능했던 내공마저 운용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난 매일 새벽 한 시진 운기조식하는 것을 빼면, 일상생활에서는 내공을 전혀 운용하지 않고 있다.
‘무공에 왕도란 없다네.’
육장로 상취개의 말이 떠올랐다.
또, 행운석이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기 위함이다.
그냥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타 죽을 것 같은 이곳의 환경.
칵뉴족은 이곳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이곳을 지배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고작 20여 명이 1,000마리가 넘는 하이에나라는 맹수들을 맨주먹으로 때려잡아 왔다.
사자라는 것을 들어 보았고 또 그림으로 봤지만, 머리가 세 개 달린 사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다.
고작 열세 살 사내아이가, 그 떠돌이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마을로 돌아오기도 했다.
하마라는 거대한 물속의 괴수도.
치타라는 바람보다 더 빠른 맹수도.
이들에게는 한낱 사냥감에 불과했다.
한 달 동안 지켜본 이들은 실로 그러했다.
외공으로 말하자면, 무림에서는 철사장으로 유명한 철사방을 으뜸으로 쳐 준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 비한다면, 애들 장난 수준일 테다.
행운석이 또 한 번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기 위해 작동한 것이다.
그 기회를 날려 버릴 수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이곳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활하려 노력 중이다.
사실 힘들다.
그냥 힘든 게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죽을 것 같다.
온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를 쉬지도 않고 뛰어다닌다.
바위산같이 단단한 뭔가가 보이면, 냅다 달려가 때려 부순다.
괴수?
괴수는 그냥 사냥감이고.
이들은 온몸이 무기다.
돌 몽둥이며 돌도끼 같은 게 없어서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게 아니다.
이들의 몸이 그보다 더 강하고 단단하기에 그냥 맨손으로 다니는 거다.
그래서 힘들다.
사실 아직 성인들의 사냥은 쫓아다니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동네 어린 녀석들이 놀이 겸 수련 겸하여 부족 주변을 뛰어다닐 때 따라다니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죽을 맛이다.
아니, 매일 죽기 직전까지 뛰어다니다가, 동네 꼬맹이 녀석들 등에 업혀 부족으로 돌아온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수련들.
극한의 수련이라고 생각했던 그 수많은 수련이 모두 장난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자기합리화와 자기 위안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육장로 상취개의 말이 맞다.
무림 최정상에 오른 고수들은, 이 모든 수련을 극복해 그 자리에 이를 수 있었으리라.
행운석이 나에게 이런 깨달음과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행운석이 왜 작동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얼마나 작동하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추론하고 있다.
알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다시 무림에 돌아가면, 그 추론이 맞는지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나의 부족한 것을 완벽히 채워 나갈… 아!
또!
또!
"네 피부는 볼 때마다 신기해. 어쩜 이리도 하얘?"
야야가 아직 가지 않았다.
내가 한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자 불알을 든 상태로, 무공과 행운석에 관한 심오한 상념에 잠겨 있을 때.
그녀가 계속 나를 신기한 듯 보고 있었던 것이다.
"피부도 신기한데. 호호호! 너의 그건 정말 귀여워. 어쩜 그게 그렇게 작고 귀여워? 호호호! 하하하!"
이런 젠장!
내 그게 작고 귀엽다니?
중원에선 평균치를 한참 웃도는, 꽤 괜찮은 물건이라고!
아니, 대물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야!
"귀여운 병아리, 호호호. 쓰담쓰담 가능?"
"안 돼! 안 된다고! 꺼져!"
"쳇. 꼬꼬닭 병아리도 아니고 메추리 병아리 가지고 유세 떨기는. 흥!"
그녀가 토라져 내 움막을 나갔다.
지금 이래도, 저녁에 또 와서 똑같은 말을 할 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에게 농락당하고 있다.
하아!
사실 그녀의 입장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여기 사람들, 아니 여기 남자들 말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것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정도로 놀랍지만…….
무엇보다 그거.
그거 말이다.
세 배?
아니다.
다섯 배는 족히 더 크다.
젠장!
그거 크기로 형 동생 해야 한다면, 난 이 부족의 꼬꼬마 대접 정도 받을 것이다.
"태한."
"왜 또 왔어? 절대 안 된다고! 나가!"
"그게 아니라, 비가 와."
"어? 비?"
이곳에도 비가 오긴 오나 보… 와!
움막을 나서자마자 엄청난 걸 보고 말았다.
이걸 비라고 해야 하나?
그냥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물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큰일이다.
이곳은 끝도 없는 평지다.
곧 사방에 물이 넘쳐서 잠길 것 같은데?
"어서! 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부족 이곳저곳에서 난리가 났다.
특히 아이들을 안고 달리는 어른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먼저 살리려는 건 우리네나 이곳이나 똑같은 모양이… 어라?
저쪽은 고랑이 있는 곳인데?
곧 물이 저곳부터 차 흐를 텐데 왜 저리로 가지?
"태한, 우리도 빨리 가자."
"어? 어."
야야가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살인적인 더위는 좀 잠잠했지만, 여전히 몸은 무겁고 숨쉬기도 힘들다.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정말 순식간에 사방이 물바다가 됐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사람들이 몰린 지점.
우리가 도착한 곳.
메말랐던 그 고랑에 지옥으로 빨아들일 것 같은 급류가 몰아치고 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철썩!
철썩!
설마 여길 건너려는 것은 아니겠지?
이건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도 살아남기 힘들 것 같은데.
말려야 한다.
어떻게든 말려야 해.
"야야! 대전사는? 족장은?"
"저기. 저기 있잖아. 왜?"
"말려야 해. 지금 이곳을 건너려는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여길 왜 건너?"
"그, 그럼?"
"휴우, 넌 처음이라 잘 모르겠구나."
"뭔데? 뭘 하려고 이곳에 온 건데?"
"엇! 시작했다. 그냥 봐."
곧이어, 나는 악마를 보고 말았다.
"살아남아라, 아들아!"
아는 녀석이다.
탕탕카라는 다섯 살 부족 꼬맹이.
그 어린아이를, 제 어미와 아비가 환히 웃으며 급류로 던져 버렸다.
"우리 예쁜 딸 아주시아! 곧 보자!"
아주시아는 여아다, 일곱 살이고.
첨벙!
그 부모가 아주시아를 급류로 던졌다.
곧이어.
"빨리 돌아와야 한다!"
"우리 아들 최고!"
"우리 딸! 사내 녀석들에게 지지 마라!"
사방에서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사이의 아이들을 지옥의 급류로 던져 버렸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미친 거 아닌가?
그 착했던 사람들이 왜?
"놀랐어?"
야야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런 야야마저 악마로 보였다.
"어머, 너 울어?"
"악… 악마……."
"어머, 얘 진짜 우네?"
"악마! 살인자!"
"야! 울지 마. 아무도 안 죽어."
"그걸 말이라고 해?"
화를 냈다.
아까 내 똘똘이를 농락할 때보다 더 강하게 화를 냈다.
하지만 화를 내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한 명이라도.
난 줄곧 단전 안에 갈무리했던 내공을 단숨에 끌어 올… 어?
"전통이야. 시험이며, 놀이기도 해."
"무슨 그따위 전통이 있어? 저렇게 어린아이들을!"
"말했지? 아무도 안 죽는다고. 나도 여섯 살 때 저것보다 더한 급류에 던져졌고, 지금 봐.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잖아. 우리 칵뉴족의 아이들은 저런 급류 따위는 애들 장난 축으로도 취급하지 않아."
설마?
그러고 보니…….
맞다.
저기 저 아이들.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아이들.
그 꼬맹이 중 누구 하나 두려워하는 아이가 없다.
아무도 울지 않는다.
심지어 머리가 좀 큰 녀석들은 급류에 쓸려 가면서도 웃으며 장난까지 치고 있다.
내가, 내가 말이다.
아직 이들을 절반도 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준비해."
"엉? 뭘?"
"울음은 그쳤군."
"아, 미안."
"됐어. 여하튼 준비나 해."
"뭘?"
"온다."
"그러니까 뭐가 온다는… 허거거걱!"
이건 파도다.
급류 따위가 아니라, 성난 파도가 맞다.
갑자기 궁궐만 한 파도가 나와 칵뉴족 전체를 뒤엎어 버렸다.
* * *
석 달 전 생각에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죽을 뻔한 건 둘째 치고.
아직도 그때 일로 야야랑 부족 젊은 여인들이 나를 놀린다.
이곳의 우기는 언제나 그렇단다.
하늘에 구멍이 뚫려 폭포수가 며칠 동안 계속해서 쏟아진다.
메말랐던 대지는 그 기간 바다로 변한다.
거센 파도와 죽음의 급류를 이겨 낸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다섯 살이 넘어가면 그렇게 모두가 지옥 같은 우기를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
야야의 말은 사실이었다.
급류로 던져진 아이 중 한 명도 죽거나 낙오되지 않았다.
무려 보름 동안 바다로 변한 대지를 홀로 헤엄치며 버텨 낸 것이다.
물이 빠지자 부족으로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그리고 다시 보름이 되기 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든 부족원이 돌아왔다.
어린아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비단 우기만이 아니다.
이들은 이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생존율이 9할 9푼 9리에 이른다.
소인국과 비교할 수도 없고, 중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오로지 육체의 힘만으로 대자연을 정복해 버린 것이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유일하게 나.
아이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쏘냐!
집념이고 뭐고가 아니라.
객기였다.
바다로 변해 버린 대지 위를 며칠 동안 발악에 가까운 수영으로 버텼다.
아니, 죽을 것 같았다.
진심으로.
결국 살기 위해 이곳에 와 처음으로 내공까지 썼다.
내공을 쓰고 하루가 다 지나기도 전에, 무려 2갑자가 훌쩍 넘는 내공이 바닥을 드러냈다.
대자연의 힘이란!
나는 결국 시체같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기억을 잃었다.
그걸 야야랑 부족 소녀들이 구한 것이다.
아! 쪽팔려.
아무튼 그때 그 일 때문에 아직도 부족 소녀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중이다.
됐다.
쪽팔림은 계속되지만, 나의 외공은 그야말로 상전벽해.
총 넉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더 이상 부족 꼬맹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당당하게 전사들과 함께 사냥에 참가하는 중이다.
거칠었던 호흡도, 무거웠던 몸도, 살을 태워 버릴 듯한 더위도!
내공을 쓰지 않고 오로지 육체의 힘만으로 잘 이겨 내고 있다.
바위산도 함께 주먹으로 부수고.
괴수를 만나도 도망치지 않는다.
그렇게 이곳의 전사들과 함께.
응, 돌아올 땐 언제나 에티오가 업어 준다.
이곳에 온 첫날 나를 업어 줬던 그 친구 말이다.
확실히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다.
그래도 나의 수련은 계속된… 어?
타그닥타그닥.
타그닥타그닥.
"이히이이이이잉!"
어라?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말이라고?
이곳은 말을 타는 사람도 없고 키우지도 않는데?
뭐지?
나는 서둘러 움막 밖으로 나갔다.
곧, 부족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고작 열두 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움막 안으로 숨어 버렸다.
용맹하기로 우주 전체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칵뉴족의 전사들.
그들마저 낯빛이 어둡다.
수백의 전사들이 고작 열두 명의 기병을 맞이하고 있지만, 분명 그들의 눈에는 항거할 수 없는 절대자를 만난 그런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부족을 찾은 이방인.
말을 탄 열두 명의 기병.
철로 만든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다.
허리에도 철로 만든 검을 차고 있고, 말의 허리에도 역시나 철로 만든 방패가 매달려 있다.
무엇보다 이들… 푸른 눈의 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