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25화 (24/174)

25화

번쩍!

또 번쩍였다……. 엇?

데구르르르.

곧바로 땅을 몇 바퀴나 굴렀다.

모래?

"앗! 뜨거워. 모래가 왜 이렇게 뜨겁……. 헉! 헉!"

숨을 쉬는 게 어렵다.

공기가 부족한가?

아니면 날이 너무 뜨거워서?

뭐야?

여긴 어디야?

분명 거대한 호랑이 입 속으로 내 머리가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뜨겁다.

가만히 있어도 살갗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몸은 왜 이리 무겁지?

갑자기 내 체중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난 것처럼 몸이 무겁다.

무엇보다…….

"헉! 헉! 헉!"

숨을 쉴 수 없다.

나는 어쩌면 지옥에 온 걸지도 모르……. 엇?

사람이다.

아니.

사람인가?

타타타타타타타타탓!

쿠쿠쿠쿠쿠쿠쿠쿠쿠!

300명가량의 사람들.

그들은 극한의 환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냥 바람과 같이 달려 나를 포위했다.

"우가쿠가! 붕가차차! 우가쿠가! 붕가차차!"

키가 크다.

나를 비롯한 중원인들보다 머리가 하나도 아니고 두 개를 더 얹어 놓은 것만큼 크다.

그리고 죄다 근육질이다.

팔다리가 모두 긴데, 마치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단단해 보인다.

무기는 없네?

옷… 아!

소인국 사람들보다 더 심각하다.

중심 부위만 아슬아슬……. 앗! 몇몇은 보인다.

그것도 어마어마하다.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사람들인데,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맹수의 눈빛을 뿜어 대고 있다.

무엇보다… 처음이다.

흑인을 본 것이.

푹푹푹.

나를 둘러싼 300명가량의 사람 중, 한 사나이가 푹푹 꺼지는 모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밟으며 다가온다.

체구가 정확히 바위를 부숴라 형님의 두 배다.

"넌 누구냐? 왜 우리 칵뉴족의 땅에 있는 것이냐?"

뭐라고 답을 해야 하지?

차원 이동이다.

차원 이동이 분명하고, 처음도 아니다.

하지만 피부가 검은 사람은 처음 봤고, 이렇게 무시무시한 외모의 사람들은 더더욱 처음이다.

그렇게 내가 잠깐 주저하는 사이.

다른 이들 몇몇도 다가왔다.

"아쿵타! 이 녀석 생긴 게 우리와 완전 다르잖아. 아마 먼 곳에서 온 것 같은데, 우리 말을 알아들을 리 없지."

"자탄봉 말이 맞는 거 같아. 저 봐. 우리가 무슨 얘기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겁에 질려 있잖아."

또 다른 이가 나섰다.

"그런데 이 녀석은 진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직 어려 보이는데? 열세네 살이나 됐을까?"

하아!

더는 들을 수 없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너무 덥고.

몸은 무겁고.

아니, 무엇보다 숨을 쉴 수 없다.

"헉! 헉! 헉! 숨… 숨을 쉬기 어려워요. 헉! 헉!"

순간 나를 둘러싼 그들 몇몇이 흠칫했다.

내가 자신들의 언어를 할 수 있어서 놀란 것 같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행운석의 도움이겠지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숨 쉬는 게 곤란하다.

이대로 가다간 그냥 죽을 것 같다.

하늘이 빙그르르 돈다.

"어라? 이 녀석 우리 말을 할 줄 아네?"

"어떻게 우리 말을 할 줄 알지?"

"모르지. 녀석이 어떻게 우리 말을 할 줄 아는지. 그게 중요해? 얼른 잡아먹자고. 배고파 미치겠어."

"그래, 그러자. 고놈 야들야들한 게 참 맛있게도 생겼다. 후딱 해치우자고."

"그러자고, 큭큭큭."

아! 말로만 듣던 식인종들이었구나.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다.

정신은 더욱 혼미해져 놈들이 잔인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것조차 희미하게 보인다.

부디, 기절했을 때 고통 없이 먹어 주길 바랄 뿐이다.

* * *

들썩들썩.

쿵.

들썩들썩.

조금, 아주 조금 시원해졌다.

왜지?

태양은 여전히 죽을 듯 뜨거운데.

아!

움직이고 있다.

격렬하게, 빠르게.

말을 탄 건가?

말보다 빠른 속돈데?

아니, 그보다.

내가 살았나?

살아 있다.

왜지?

왜 안 잡아먹었지?

아! 말이 아니구나.

한 사내의 등에 업혀 있다.

그리고 그 사내가, 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거냐고!

무공을 익히진 않았다.

내가 삼순산공독 때문에 내공은 운용할 수는 없지만, 만약 이 인간이 내공을 운용했다면 감지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그냥 투박한 달리기다.

살을 태울 것 같은 모래 위를, 말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나를 업고.

슬쩍 옆을 보니, 아까 봤던 그 300여 명의 흑인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다.

어디로 가는 거지?

"깼냐?"

"헙!"

"왜? 안 잡아먹어서 놀랐어? 큭큭큭."

뭐라고 답해야 하지?

이 인간들, 사람을 산 채로 잡아먹는 변태 식인종들인가?

"쫄았냐? 큭큭."

뭐야?

살기나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장난기 가득한 웃음만 계속.

와! 그나저나 이 속도로 달리며 숨을 헐떡이지도 않고 말도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분명 무공을 익히지는 않았는데?

"대답 좀 해. 진짜 잡아먹기 전에."

"아, 네. 넵."

"장난이었어. 네가 심각한 상태인 줄 모르고. 너도 들어 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족에 대해 소문이 이상하게 났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라고. 그래서 이방인인 너한테 장난 좀 쳤던 거야. 그렇다고 기절까지 하고 그러냐? 사내 녀석이. 네가 기절하는 바람에 우리가 더 놀랐다, 야. 하하."

아! 그런 거였구나.

진짜 인생의 끝을 보는 줄 알았네.

휴우.

"그런데 지금 어디를 이렇게 급히 가는 거예요?"

"급히? 그냥 가는 건데?"

말보다 빨리 달리며 급히 가는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는 건가?

뭐, 굳이 숨기려 하는 걸 억지로 캐물을 입장은 아니고.

"그래서 어디 가는 건데요?"

"사냥."

"아, 사냥요? 사냥감을 발견했나 봐요?"

"아닌데?"

X팔!

뭐야?

장난해?

사냥감을 발견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미친 듯 달리냐고?

사람 속 울렁거리게.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인국에 갔을 때 커다란 닭과 병아리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래도 여긴 그런 괴수들은 없지 않겠나?

사람들이 조금 문명에 뒤떨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좋아 보이고.

처음 보는 나를 이 뜨거운 더위에 업고 달리는 것만 봐도, 좋은 사람들이 분명하다.

소인국에 비한다면 그나마 정상적인 곳에 온 것 같다.

"바위산이다!"

"와아아아! 바위산이다!"

뭐지?

사냥한다고 그러지 않았나?

바위산을 보고 왜 이리들 좋아해?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탓!

순간, 나를 업고 달리던 흑인은 물론 다른 이들의 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다.

푹푹 꺼지는 모래밭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바위산을 향해 달렸다.

"이봐, 잠시. 잠시만 여기 있어. 금방 돌아올게."

바위산에 도착하자마자 잔뜩 흥분한 사람들.

나를 업고 있던 흑인마저 모래땅에 나를 내려놓는데, 얼마나 흥분했는지 목소리마저 떨린다.

그러더니 그 수십 장 높이의 바위산을 향해 일제히 달려가.

뭐 하려는 거지?

난 모래땅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 그들의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는……. 허거거거거거걱!

퍽퍽퍽!

퍼퍼퍼퍼퍼퍽!

쾅쾅쾅!

콰콰콰콰쾅!

쿠르르르르르르르릉.

바위산이 무너진다.

300여 명의 흑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바위산을 때렸다.

진짜 그냥 때렸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머리로 들이받고, 몸통 박치기까지!

미쳤나 싶었다.

아! 조금은 정상적인 곳으로 왔다고 좋아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게 뭐야?

퍽퍽퍽!

퍼퍼퍼퍼퍼퍽!

쾅쾅쾅!

콰콰콰콰쾅!

쿠르르르르르르르릉.

계속 때리고, 차고, 부딪히고, 들이박고.

수십만 년 한자리를 꿋꿋이 지켰던 그 거대한 바위산이…….

와르르르르르르르르르.

쿠르르르르르르르르릉.

두 시진이 되기도 전에 모두 무너져 버렸다.

아! 지금 내가 뭘 본 거야?

"하하! 하하하! 오래 기다렸어?"

너무 놀라 대꾸할 수도 없었다.

무언가 개운하고 만족한다는 얼굴로 돌아오는 아까의 그 사람을 보며,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자, 다시 출발하자고! 출바아아알!"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탓!

해가 질 때까지 이들은 달렸다.

아니, 해가 지고도 몇 시진은 계속 달리고 또 달리고, 미쳤다.

* * *

난 비걸개다.

비걸개 후보생도 아니고 비걸개다.

심지어 수석 수료생이다.

정신 차리자!

정신!

이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해야 한다.

깊은 밤이 됐다.

춥다.

무지 춥다.

X알 두 짝이 있는지 없는지, 느낌이 안 날 정도로 춥다.

생각해 보자.

한낮의 더위?

그렇지.

내가 중원에서 한참 비걸개 후보생 수련을 할 때, 이례적으로 교두들이 후보생들의 수련을 멈춘 적이 있다.

살인적인 폭염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그해 여름에 중원을 강타한 살인적 더위는, 실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리고 오늘 낮, 내가 느낀 이곳의 더위는 모르긴 몰라도 그해 내가 겪었던 더위의 두 배? 세 배?

최소한이 그렇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밤이다.

방금 오줌 누고 왔다.

오줌을 갈기자마자, 땅에 떨어진 오줌이 얼었다.

역시나 내가 중원에서 겪었던 최고의 추위보다 두 배나 세 배 이상의 추위다.

미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맞긴 맞아?

기후만 그런 게 아니다.

이곳으로 차원 이동하자마자 느꼈던 내 체중에 대한 변화.

착각이 아니었다.

팔 한쪽 드는 데에도 온몸의 근육을 다 써야 할 만큼 무겁다.

몸무게가 내가 살던 곳의 두 배, 세 배가 된다는 뜻이다.

역시 미쳤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어떻게 몸무게가 차이 날 수 있는 거지?

그래, 그것까지 다 좋다고 치자.

진짜 힘든 건.

"헉! 헉! 헉!"

"아직도 숨 쉬는 게 곤란해? 어디 몸이 많이 안 좋은가? 어쩌지?"

온종일 나를 업고 달렸던 그 흑인이다.

자는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다.

"괜, 괜찮아요. 그래도 낮에 비하면 조금 나아졌어요. 호흡이 거칠지만, 헉헉. 그래도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헉헉. 조금씩 적응 중이에요. 헉헉."

그렇다.

이곳은 심지어 중원과 공기마저 다르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도 무언가 꽉 막힌 느낌이다.

내공.

내공만 되찾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아직 스물다섯 날을 더 기다려야 내공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됐다.

해 보자.

비걸개 수련 때, 극한의 생존 훈련도 받지 않았는가?

물론, 아무리 극한의 생존 훈련이라도 이곳의 환경보다는 몇 곱절 나았지만 말이다.

"이거 먹어."

"이건……?"

"육포. 사람 고기 아니야. 큭큭."

"아, 네."

어른 손도 아니고, 아이 손 절반 크기의 육포 한 조각.

난 그것을 얼른 받아 우걱우걱 씹었다.

온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밥?

당연히 없었다.

사냥한다고 온종일 뛰어다녔지만, 동물은커녕 제대로 자란 풀 한 포기 보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굶어야 했고.

사방이 사막이고 메마른 땅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은 나태한입니다."

"난 에티오야."

"그런데 에티오 님은 안 드세요?"

"사냥을 못 했잖아. 그건 비상식량이야."

이런, 젠장!

내 배가 너무 고파서 그만 에티오의 비상식량을 먹어 버렸다.

"죄송해요."

"괜찮아. 곧 사냥하면 먹을 수 있어."

없다.

없어.

이런 곳에 사냥감 따위가 있을 리가 없잖아!

진짜 여긴 지옥인가?

내가 지옥에 온 거야?

이곳의 환경을 본다면, 이곳은 지옥이 맞다.

하지만.

나에게 자신의 비상식량을 선뜻 건네는 에티오는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사는 곳이 지옥일 리가 없잖아.

그래, 일단 지옥은 아니다.

좋게 생각하자.

소인국 사람들만큼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내가 적응만 잘한다면, 이곳은 또 다른 천국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내가 속으로 결심했을 때였다.

쿠르르르르릉.

지진인가?

"움직이지 마."

에티오가 순간 놀란 얼굴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이미 잠이 들었던 칵뉴족 사람들도 모두 눈을 떴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임이 없다.

촉각만을 곤두세웠다.

뭐지?

쿠르르르르르르릉.

땅의 흔들림이 더 거세졌다.

"온다. 와."

에티오가 다시 속삭였고.

모두는 아주 천천히, 정말 아주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뭐냐고?

지진 아니야?

그리고 그때, 에티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왔다."

곧.

쿠르르르르르르릉.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정확히 우리가 자리하고 있던 그 모래땅이 열렸다.

아니, 솟구쳤다.

곧 그 땅속 깊은 곳에서 하나의 커다란 괴수가!

입이다.

쩍 벌린 입이 수십 명의 사람을 단숨에 삼켜 버릴 듯, 입을 벌려 솟구쳤다.

악, 악어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봤던 악어.

그런데 악어가 원래 땅속에 사는 동물이었나?

아니, 무슨 놈의 악어가 저렇게 커?

벌린 입의 길이만 십 장(30m)이 넘는다.

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악어.

땅속에서 솟구친 악어는 허공에 공허한 입질만을 하고 굉음을 내며 땅에 착지했다.

그 길이가 무려 오십 장(150m)은 되는 듯하다.

악어가 아니라 괴수다.

여기도 소인국 같은 그런 곳인가?

아닌데.

그보다 어쩌지?

다 죽을 것 같다.

저런 괴수 악어를 상대로 무얼……. 어?

"와아아아아아! 악어다!"

"앗싸! 고기다!"

이 인간들.

단체로 미쳤다.

땅 위로 올라온 거대한 괴수 악어를 보며 환호하는가 싶더니.

낮에 바위산을 봤을 때보다 더 흥분해, 괴수 악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이곳 말이다.

지옥 아닌 거 진짜 확실해?

도대체 난 어디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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