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24화 (23/174)

24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심장은 요동을 치다 못해 터질 것 같다.

머리, 가슴 그리고 단전.

소인장기공으로 완벽하게 갈무리했던 내 내공들이 용암이 솟구치듯 터져 나오려 한다.

단지 이 장로 무치개를 보는 것만으로 나의 모든 것이 흔들려 무너지려 하고 있다.

안 된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

빠르게, 빠르게 냉정함을 찾아야 한다.

"광곡개가 이 장로님을 뵙습니다."

- 걸이번입니다.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지를 삼켜 버릴 것처럼 뿜어져 나오던 이 장로의 기운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뭐지?

조금 전 그것은?

나에게 일부러 보여 주려 했던 것인가?

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느끼라고?

만약 그런 의도였다면 완벽함을 넘은 성공이다.

오줌을 지릴 뻔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지?

내 내공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 장로가 일부러 자신의 기도를 모두 개방할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하아! 헷갈린다.

일단 침착하자.

"묘안개(猫顔丐)가 이 장로님께 인사, 인사드립니다."

"저육개(猪六丐)가 인사드립니다."

고양이 상의 여자 거지는 묘안개, 돼지 거지는 저육개였군.

근데 이름이 저육개가 뭐야?

저팔계 따라 한 건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저 두 사람도 엄청 놀랐다.

나보다 더 놀랐다.

이 장로가 저들 앞에서 처음으로 기도를 개방했다는 뜻이다.

확실히 기도를 개방한 건, 나에게 보여 주려 했다는 것인데.

왜냐고?

"따라 들어와라."

"네."

그렇게 나는 이 장로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려…….

멈칫.

그가 멈췄다.

뒤를 슬쩍 보더니…….

"너희도 들어와라."

그 말만을 하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 이 장로.

내가 그 뒤를 따랐고, 묘안개와 저육개는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는 얼굴로 헐레벌떡 뒤따라 들어왔다.

* * *

아! 배고프다.

그래도 먼 길 왔는데, 밥은 둘째 치고 차라도 한잔 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뭔 놈의 장로씩이나 되는 양반이 이렇게 예의가 없어?

하다못해 앉으라는 소리도 안 한다.

앉을 의자도 없다.

"지금부터 내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시험을 치르겠다."

와!

인사고 뭐고 없다.

그냥 직진이다.

외길 인생이야?

뭐가 이리도 화끈해?

제자 자격시험이라는 말에 그렇지 않아도 이게 꿈인지 생신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놀라고 흥분한 묘안개와 저육개의 얼굴이 더욱 상기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스르르륵.

내가 슬쩍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막 다음 말을 하려던 이 장로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나를 노려본다.

"뭐지?"

"저… 저는 이 장로님께서 오라고 해서 온 건데요? 제자가 되려고 온 거 아닌데요?"

순간.

묘안개와 저육개가 동시에 화등잔만 한 눈으로 날 미친놈 쳐다보듯 보았다.

이 장로의 험상궂은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왜지?"

"네? 뭐가요?"

"왜 내 제자가 되는 걸 거부하려는 거지?"

저 인간 화났다.

화경의 고수가 대단하긴 하지만, 아니 진짜 대단한 게 맞다.

그리고 그런 고수의 제자가 된다는 건, 그야말로 기연 중에서도 최고의 기연이라 하겠다.

하지만 아니다.

구걸을 하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다.

"전… 전 그냥 지금이 좋습니다."

슬쩍 옆의 두 녀석 눈치를 본 후 다시 이 장로를 봤다.

이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계속 비걸개로 남고 싶습니다."

비걸개라는 말에 옆의 두 녀석이 흠칫했지만, 차마 이 장로 앞에서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이 장로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와락 구겼던 인상도 많이 펴졌다.

그래 봐야 성난 곰인 건 매한가지지만 말이다.

"무걸개가 되면 비걸개가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무걸개가 더 강하다. 특히 나의 제자가 된다면, 개방 최고의 고수를 넘어 천하제일인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하지만 그냥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전 비걸개가 좋습니다."

"이유. 진짜 이유가 듣고 싶다."

난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야 하나?

그래야 할 것 같다.

"구걸하는 게 싫습니다. 비걸개는 구걸하지 않아도 되지만, 무걸개는 구걸해야 하잖아요. 냄새나고 더러운 누더기를 입는 것도 싫습니다. 저는 지금 제 상황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저육개가 움찔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살다 살다 저런 미친 거지는 처음 봤다는 그런 황당함과 분노의 움찔이었다.

깔끔히 무시했다.

반대로 이 장로는 험상궂은 얼굴로 미미하지만 분명한 미소를 지었다.

별 희한한 거지를 다 봤다는 그런 호기심 어린 미소였다.

응, 여전히 악귀를 맨주먹으로 쳐 죽일 것 같은 인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더니…….

"일단 앉지. 너희도."

"넵!"

저육개와 묘안개가 기합이 잔뜩 들어 대답했고.

의자가 없어서 바닥에 앉았다.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이 장로가, 때려죽일 듯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이 장로가 나를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어 묻지도 않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을 벗어나질 않아. 그냥 계속 여기서 수련하고 살아. 그런데 가끔 방주님이 나에게 이런저런 임무를 주지. 나도 개방의 방도니 방주님의 명을 따라야겠지?"

뭔 소리야?

"한 번은 사천 남충이란 곳에 가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오라고 하시더군. 아마 7, 8년 만에 처음으로 하산을 하는 길이었어. 그렇게 단번에 달려 남충으로 갔는데,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더군. 그럼 어찌해야겠나?"

내가 답했다.

"구걸을 해야겠지요. 거지니까요."

"맞아, 거지가 배가 고프면 구걸을 해야지. 그래서 창녕문이라는 문파를 찾아갔어. 남충은 물론 근방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문파였지."

엥?

거지가 구걸하는데 무림 문파는 왜 찾아갔담?

일단 더 들어 보자.

"살벌한 수문 무사들이 거지 꼬락서니의 나를 당연히 막았겠지? 왜 왔냐면서 흉악한 분위기로 겁을 주더군. 그래서 말했지. 문주 좀 만나 찬밥 한 덩이만 구걸하고 싶다고. 웃더군. 그러더니 냅다 몽둥이로 나를 때리려고 하질 않겠나?"

설, 설마……?

"그래서 쾅! 주먹으로 냅다 땅을 한 대 쳐 버렸지. 사람이 수십 명은 들어갈 구멍이 파이더군. 그다음부터는 설명이고 뭐고 필요 없었어. 창녕문의 문주가 문의 웃대가리들을 죄다 이끌고 나와서 나를 맞이해 줬거든. 그다음은 어떻게 됐겠나?"

이런 신박한 거지를 봤나?

너무나 황당무계한 구걸 방법, 아니 구걸의 범주를 넘어서 협박에 가까운 방법에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창녕문에서 먹고 자고, 편하게 지내다 올 수 있었다. 구걸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 거야. 어때? 이런 구걸이면 자네도 해 보고 싶지 않나?"

하마터면 ‘네.’라고 답할 뻔했다.

목까지 차오른 그 말을, 나는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그러자 이 장로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또 무시무시한 미소를 짓는다.

이 인간,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지하다.

농담하는 게 아니라 진심을 말하는 중이다.

"누더기가 싫다고 했나?"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더니, 자기보다 크기가 몇 배나 큰 장롱을 번쩍 들어서 나온다.

이내 우리 앞에 그걸 놓고는, 장롱의 문을 모두 열었다.

그 안에……. 와!

"이건 하북 팽 가주가 몇 해 전에 선물한 비단옷. 이건 천국 상단의 상단주가 여름에 시원하게 입으라고 보내 준 삼베옷. 이건 백리세가주가 보내온 비단옷. 그리고 이건……."

"잠깐!"

이대로 계속 끌려다닐 수 없었다.

그리고 기회를 포착했다.

이 장로를 궁지로 몰아넣을 절호의 기회다.

"거지는 누더기를 입어야 하는 방규가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그런 기초적인 방규를 어기시면……. 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 장롱에서 한 벌의 옷을 꺼내 그 끝자락을 내가 잘 볼 수 있게 내민다.

"여기 보이나? 기운 자국. 이 옷에도 천을 기웠고. 이 옷 끝자락에도……."

미친!

미쳤어!

저 비단옷 끝단에 보일락 말락, 심지어 멋스러운 문양으로 천을 덧대 기웠다.

"다시 설명해 주지. 이건 하북 팽 가주가 몇 해 전에 선물한 비단 누더기. 이건 천국 상단의 상단주가 여름에 시원하게 입으라고 보내 준 삼베 누더기. 이건 백리세가주가 보내온 비단 누더기. 그리고 이건……."

모시로 만든 누더기.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누더기.

여우 털과 토끼, 담비 털로 만든 누더기.

거기에 명주와 주, 사, 라, 능, 단, 금 등등.

많기도 하다.

황궁 앞에 포목점을 차려도 될 정도다.

"아는 만큼 보는 법이다. 너는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고 했지? 앞으로도 그럴까? 지금 네가 입고 있는 무명옷과 내가 장롱 안에 보관 중인 옷 중, 무엇이 더 나아 보이나?"

안 입는 거면, 하나 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돌아갈 때 내가 주워 가게.

당연히 말하진 않았다.

대신…….

"장로님께서는 왜 이렇게 좋은 옷을 놔두고 허름한 누더기를 입고 계신 건가요?"

"거지니까."

뭐라 대꾸하겠나?

할 말이 없다.

그러자 그런 나를 잠시 기다려 준 이 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진지했지만, 지금은 더 진지한 얼굴로.

"거지에게도 품격이란 게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돈이 있어도 구걸하는 거지와 돈이 없어서 구걸할 수밖에 없는 거지는 눈빛부터 다르다.

천하제일을 꿈꿀 정도로 강한 고수 거지와 사나운 개 한 마리에게 쫓겨 혼비백산 달음질을 해야 하는 거지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 * *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일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이 장로가 돌아와 나와 묘안개, 저육개에게 같은 모양의 작은 병을 건넸다.

"받아라. 삼순산공독(三旬散功毒)이다."

독?

갑자기 웬 독?

아니, 그런데 산공독?

"내 제자 자격시험은 간단하다. 이 삼순산공독을 복용하고 보름 안에 적월산 봉우리의 붉은 돌을 가지고 돌아오면 된다. 물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되고, 순전히 너희 힘만으로 해야 한다."

아직 제자가 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앗!

잠깐.

이건 또 뭐야?

조금 전 분위기로는 누가 봐도 나를 제자 삼으려고 안달이 난 것처럼 하더니, 산공독을 먹인다고?

이 장로의 경지가 화경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지만, 아니 화경이 맞다.

분명 내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와 나에게 산공독을 먹인다고?

그리고 삼순산공독의 삼순(三旬)은 30일을 뜻하는 건데.

한 달 동안 내공을 쓸 수 없다는 말이잖아.

저 인간 뭐야?

병 주고 약 주고, 사람 슬쩍 기대하게 했다가 골탕 먹이는 건가?

아니면, 내가 자신의 제자가 되길 바라지만, 공정함 또한 버릴 수 없다는 뜻인가?

모르겠네.

왜지?

날 콕 집어 부른 이유도 그렇고.

기도를 개방해 자신의 힘을 보여 준 것도 그렇고.

간절히 날 제자로 삼으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그러다 갑자기 나의 외공이 형편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산공독을 먹이려는 건 더더욱 이해가 안 되네.

그때, 묘안개가 슬며시 오른손을 들었다.

"말해라."

"저희 세 사람이 모두 보름 안에 돌아오면 셋 다 제자가 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다."

이번엔 저육개가 물었다.

"이전에 이 장로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온 방도들도 모두 같은 시험을 치렀습니까?"

"그렇다. 결과는 다들 알겠지만, 한 명도 통과하지 못했다. 몇몇은 죽었고, 몇몇은 겁에 질려 그대로 고향으로 도망갔다."

죽고 도망가?

이건 또 뭔 소리야?

"아! 깜빡 잊고 말하지 않을 뻔했군."

"……?"

"적월산으로 가는 길은 하나고, 가는 길에 호랑이며 곰이며 맹수들이 우글거린다. 무서우면 그냥 고향으로 가도 된다."

나는 둘째 치고.

저육개와 묘안개는 삼순산공독을 복용하지 않아도 호랑이는커녕, 늑대 몇 마리도 당해 내지 못할 수준이다.

하지만 가끔 인간의 꿈이란 건 무모한 용기를 북돋아 주곤 한다.

"하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저육개에 이어 묘안개까지 힘찬 목소리로 말했고.

이 장로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졌다.

"휴우. 저도 일단 해 보겠습니다."

이 장로가 나에게 이러는 데에는 분명 뭔가 있다.

무려 화경의 고수다.

웬만하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떠났겠지만, 이 장로 무치개라면 그럴 수 없다.

제자가 되고 말고를 떠나.

그가 왜 이러는지, 우선 시험을 치르고 알아봐야겠다.

* * *

"헉헉헉!"

"조금만 힘내, 걸이번. 함께 이 장로님의 제자가 되는 거야."

"그래, 여자인 묘안개도 저렇게 열심인데, 창피하지도 않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걸이번."

이 새끼들.

내가 그렇게 말했건만, 계속.

"야. 헉헉헉! 헉헉! 내가… 헉헉! 내가 너네한테 형이고 오빠고. 헉헉! 거기다 삼결제자인데. 헉헉, 반말하지 말라고. 헉헉!"

호리호리한 몸매의 묘안개가 걱정이었으나 불필요한 우려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얼굴 때문이 아니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흘 내내 고양이처럼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 줬다.

묘안개보다 걱정이 더 컸던 저육개.

300근에 달하는 몸으로 꾸역꾸역 산을 타고 오르는데, 땀을 비 오듯 쏟으면서도 지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건 나였다.

역시나 빌어먹을 근골이 문제였다.

삼순산공독 때문에 내공은 아예 쓸 수 없고.

죽을 것 같았다.

매 순간 이대로 포기할까 극심한 갈등을 하는 중이다.

그렇게 사흘째 험준한 산을 오르락내리락, 적월산을 향해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 왔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모두 실패다.

나로 인해 이 장로가 말한 보름이란 시간 안에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먼저… 헉헉! 그냥 너희 먼저 가라고. 헉헉헉!"

그때.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묘안개와 저육개가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저육개가 나의 멱살을 잡았다.

"X팔! 너 비걸개라며? 이보다 더 힘든 상황도 다 이겨 내서 비걸개가 된 거 아니었어? 그런데 널 버리고 우리보고 먼저 가라고?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형이라니까. 헉헉."

"저육개 말이 맞아. 걸이번, 조금만 더 힘내. 끝까지 함께하자고. 정 힘들면 내가 부축해 줄게. 그래도 힘들면 업어 줄게."

"헉헉. 내가… 헉헉, 내가 오빠라니까. 헉헉."

하지만 아니다.

한계에 다다랐다.

더는 움직일 수 없다.

"업혀."

"묘안개, 비켜. 내가 업을게."

아놔!

이것들이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네.

내가 형이고 오빤데.

빌어먹을 근골과 체력에 내 자존심마저 끝도 없는 나락으로 처박히는 중이었다.

크르르르릉.

순간, 우리 셋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추었다.

나를 서로 빼앗아 업으려는 묘안개와 저육개도.

또 시체처럼 축 늘어져 그들의 등을 오가던 나도.

숨소리마저 죽이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크르르르르릉.

곧이어 괴이한 소리의 주인공이 수풀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X팔!

호랑이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는 호랑이.

열라 크다.

진짜 커.

어흐으으으으응!

곧이어 포효와 함께 집채만 한 덩치를 가뿐하게 날려 우리를 덮치는 호랑이.

망했다.

이건 빼박이다.

다 죽게 생겼다.

아!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나는 얍삽하고 나만 아는 그런 부류여야 하는데.

어쩔 수 있나?

사흘 내내 말버릇처럼 내가 형이고 오빠라고 했으니.

뱉은 말에 책임은 져야지.

"비켜!"

놀라 얼음이 된 묘안개와 저팔개를 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밀쳤다.

어흐으으으으으응!

곧바로 호랑이의 그 거대한 입 속으로 내 머리가 통째로……. 번쩍!

* * *

번쩍!

"우가쿠가! 붕가차차! 우가쿠가! 붕가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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