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22화 (21/174)

22화

봉사 활동 10일 차.

달걀노른자 덕분에 육 장로는 물론 꼬마 거지들과도 더 친해졌다.

응, 돈 많이 썼다.

아주 많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단다.

어린 것들이 부모도 없이 저러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나의 일과는 똑같다.

매일 아침 일어나, 어제 마신 술에 대한 취정을 운기조식과 함께 모두 날려 버린다.

그다음 마을로 가서 고기만두 50근과 오리구이나 개고기 그리고 술을 한 항아리 사 온다.

들고 오는 게 만만치 않았는데, 요즘은 꼬맹이 거지 중에서도 그나마 머리가 큰 몇 녀석이 도와줘서 편하다.

다리 밑 거지 소굴로 돌아와 먹을 걸 나눠 주고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수련.

밤이 되면 내려와 육 장로와 또 술.

그렇게 열 번째 밤이 찾아왔다.

오늘은 낭만개에 관해 물어볼 참이다.

술이 거나하게 돌고.

분위기도 좋고.

"육 장로님, 혹시 낭만개에 대해 좀 아세요? 제가 살던 신양 황천 분타의 분타주요. 일결제자."

"낭만… 헙! 딸꾹! 딸꾹!"

이 양반 갑자기 왜 이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에 딸꾹질까지?

그냥 낭만개에 관해 물어봤을 뿐인데?

"육 장로님, 괜찮으세요?"

"어? 어. 딸꾹. 딸꾹."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아니야, 괜찮아. 딸꾹."

뭐야?

진짜 왜 이래?

"괜찮으시면 낭만개가 어떤 사람인지 좀 알려 주시겠어요?"

"몰라. 딸꾹. 일결제자만 수만 명일 텐데. 내가 어찌 그 많은 일결제자를 다 알겠……. 딸꾹."

육 장로 이 인간.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분명 놀라고 두려운 얼굴 맞다.

모른다면서 일결제자임을 정확히 말했고.

이는 분명 낭만개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인데.

언급하는 걸 두려워한다.

왜지?

총교두나 서안 분타의 분타주 심안개는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그런 표정과 분위기였다.

그런데 육 장로는 지금 두려워한다.

총교두나 심안개 서안 분타주가 모르는 무언가를 육 장로가 알고 있다는 뜻인데.

"진짜 몰라요?"

"응, 몰라. 모른다고. 난 아무것도 몰라. 정말로. 딸꾹."

확실히 두려워한다.

낭만개 아저씨가 원체 착한 사람인 데다, 그걸 떠나 귀찮아서라도 누굴 때리고 겁주고 그러지 않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그 인간이 그렇게 강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육 장로는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거지?

아!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는데 강제로 입을 열게 할 수도 없고.

더 궁금해지네.

낭만개 이 양반아!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기에 육 장로가 이러는 거야?

* * *

봉사 활동 보름 차.

마지막 날이다.

육 장로와 어린 거지들을 위해 오늘은 거금을 좀 썼다.

마을에 미리 얘기해 누렁이 다섯 마리를 잡았다.

"먹을 거! 먹을 거! 와아아아아!"

꼬맹이 거지들이 환장한 건 두말할 나위가 없고.

그런데, 음.

육 장로의 더러운 움막에 선객이 와 있다.

그것도 네 명.

사결제자다.

육 장로 직속의 비걸개들.

나는 움막 밖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결국.

사결의 비걸개들은, 배때기가 터질 것처럼 부른 꼬맹이 거지들이 깊은 잠에 빠진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육 장로의 움막을 나왔다.

그들은 움막을 빠져나오자마자 신법까지 펼쳐 빠르게 이동……. 멈추었다.

나에게 온다.

대선배들이고 우리 비걸개의 최고수들이다.

살짝 긴장된다.

그리고 그 사결의 비걸개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개고기… 한 그릇만."

결국 그들은 개고기탕을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운 후에야 떠났다.

난 술 항아리와 개고기탕이 든 솥을 들고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 개고기! 개고기! 먹을 거! 하하하. 먹고 싶어 죽겠는데, 체통 때문에 빨리 가라고도 못 하고. 하여간 비걸개란 녀석들이 눈치가 없어요. 어서 와, 걸이번. 빨리 먹자고."

허겁지겁.

누가 보면 며칠 굶긴 줄 알겠다.

나는 양손으로 개고기와 술을 입속으로 들이붓고 있는 육 장로를 향해 무심한 듯 말했다.

"심각한 문제라도 있었나 봐요. 사결 비걸개 선배들이 직접 이 안으로 들어온 건 처음 봐서요."

"응, 좀 일이 있었어. 후르릅. 쩝쩝. 냠냠."

말해 주기 싫다는 뜻이다.

육 장로가 좀 헬렐레해 보여도, 한번 다문 입은 절대 열지 않는다.

스스로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빠르게 포기하는 편이 낫다.

육 장로와 마지막 밤이니 그냥 편안한 대화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다.

"맛있어요?"

"응, 먹다 누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어. 자넨 진짜 안 먹어?"

"전 아까 많이 먹었어요."

"만두 말고. 개고기."

"네, 안 먹어요."

"왜?"

"그냥요."

"거지가 개고기를 거부하다니. 목욕도 매일 하고. 쯧쯧. 거지의 기본이 안 됐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칭찬 아니야."

"네."

"냠냠. 쩝쩝. 후르릅. 냠냠. 쩝쩝. 후르릅."

다시 움막 안에는 육 장로의 이빨 신공 소리만 들렸다.

"왜 안 물어?"

"뭘요?"

"매일 뭐 하나씩 물었잖아."

"궁금한 건 다 물어봐서요."

"그래?"

"네, 아니다. 하나 있긴 있네요."

"물어봐. 개고기가 맛있어서 특별히 다 말해 줄 테니. 말해 줄 수 없는 건 빼고."

"쳇, 그게 뭐예요? 하하."

"그냥 적당한 거 물어보라고."

"음, 사실 여기 올 때 기대 엄청나게 했거든요. 방주님하고 장로님들을 모두 뵐 수 있다는 생각에요."

"실망이 컸겠군."

"아니에요, 육 장로님을 뵐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비걸개가 그렇게 거짓말을 못 해서 쓰나? 입에 침도 좀 바르고. 좀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하라고."

"하하. 제가 거짓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육 장로님의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눈이 뛰어난 거예요."

"네 녀석이 다른 건 몰라도 말 하나는 잘해요. 클클. 끄어어억."

"다 드셨어요?"

정확히 커다란 솥단지가 절반, 술 항아리가 절반이 비워졌다.

"아껴서 먹으려고."

"네."

"그래서 궁금한 게 뭔데?"

"음, 이건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데요."

"……?"

"우리 방주님 말이에요. 평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황궁에 가 있기 때문이에요? 황제의 음식을 만드는 숙방에 숨어서, 황제의 음식을 먼저 냠냠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예요?"

육 장로가 빵빵한 배를 쓰다듬으며 씩 웃는다.

"반은 진짜고, 반은 가짜고."

"헐! 진짜로요?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짠데요?"

"항상 황궁에 가 있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 가. 거기 금의위랑 동창 내에 몇몇 고수들이 만만치 않거든. 방주님께서 할 일도 많고. 그래서 항상 황궁에 있을 수는 없고. 입맛이 없을 때 가끔 가서 별미를 즐긴다고 하시더군."

"하아! 밥 때문에 목숨을 거시는군요. 이번 회의 때도 황궁 가느라 안 오신 거예요?"

육 장로가 입을 닫았다.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묘하다.

평소와 달리,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더니.

"해시(亥時, 밤 12시)가 대충 지난 것 같군. 자네 비걸개 징계도 끝이고."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시는 거예요?"

"자네 동료 비걸개들은 이미 정보를 접했을 거야."

"네? 무슨 정보요?"

"곧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고."

"무슨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아! 아까 사결 비걸개 선배들이 움막까지 찾아왔던 것도 그 일 때문이군요?"

육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놀라지 말고 듣게나."

뭐야?

진짜 무슨 엄청난 일이라도 벌어지는 거야?

"자네 동료 중 배신자가 생겼네. 방주님께서는 그 배신자의 처분을 담판 지으시러 간 거고."

배신자?

좀 많이 놀라긴 했다.

배신자라니.

하지만 나의 놀람은 단순히 내 동료 중 배신자가 생겼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비걸개가 개방의 주요 전력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배신자를 방주가 직접 처리하러 갈 만큼 대단한 존재도 아니다.

"뭔가 더 있군요?"

"클클. 그렇지, 더 있지. 방주님께서 누구와 담판을 지으러 가신 줄 아는가?"

구파나 오대세가 그리고 무림맹.

최소한 그곳의 수장이거나 그와 견줄 만큼 대단한 인물일 테다.

누가 뭐래도 우리 개방의 방주는 구파일방의 일방이니까.

누구지?

누굴까?

설마… 설마 그 새끼가?

"혹시… 천뢰검협(天雷劍俠)을 만나러 가신 건가요?"

"오! 자네. 그렇게까지 똑똑한 줄은 몰랐는데, 마지막 날 나를 놀라게 하는군. 어찌 알았나? 방주님께서 남궁세가의 세가주 천뢰검협 남궁위결을 만나러 가신 것을?"

"그 새끼군요. 걸사번."

재수탱이 걸사번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런데 배신이라.

하아!

제왕검을 남궁세가에 돌려주고 남궁세가의 무공 비급 정도를 하나 얻어 올 줄 알았는데.

놈, 간도 크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곧 천하에 소문이 날 걸세. 딸만 둘밖에 없었던 남궁세가주가 양자를 들였다는 소문이."

"양자로 들어간 거예요? 아무리 제왕검이 대단해도, 그건 너무 심하잖아요."

"남궁세가주가 바보도 아니고, 그렇기야 하겠나? 어쩌면 우리 개방과 척지고 심할 경우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제 말이요."

"자네 걸사번과 한 조였지?"

"네."

"걸사번의 진짜 이름이 뭔지 아나?"

"남궁무검이요."

"그가 무슨 피를 가지고 태어난 줄 아는가?"

"남궁씨의 피겠죠."

"그냥 그렇고 그런 남궁씨의 피가 아니야. 방계가 아닌 적통(嫡統), 그것도 현 가주보다 더 순혈의 피를 가지고 태어났어."

아! 갑자기 혼란스럽다.

"자네 혹시 『대마두가 된 이유』라는 무림 영웅전을 읽어본 적 있나?"

뜬금없이?

갑자기 광고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런 삼류 쓰레기… 어험, 읽어 본 적 없는데요?"

"안타깝게도 시전의 서점에서 안 팔려 먼지만 쌓이고 있더군. 재밌는데."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욕하던데요?"

"어험, 그게 그렇게까지 욕먹을 책은 아닌데……."

"……."

"300년 전 광천마제라는 인간이 요계에서 넘어온 요괴들을 상대로 싸운다는 내용이네."

"요괴전인가요?"

"무협지네."

"……."

"어험. 어험. 그러니까 내 말은, 그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는 말이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시는 거죠?"

"300년 전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비혁이 무림을 배신하고 요괴들의 편에 서서 무림을 공격했지. 결국 죽게 됐고, 남궁세가는 봉문에 들어갔어. 그때 남궁세가의 직계 혈통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네. 남궁세가의 신물이었던 제왕검도 그때 사라진 거고."

"설마… 그중 한 명이 도망을 간 거군요?"

"그렇지, 남궁무검이 바로 그들의 직계 후손일세."

"그걸 어떻게 증명했죠?"

"제왕검일세."

"제왕검은 우리 개방에서 찾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요괴대전 때 제왕검을 들고 도주했던 남궁비혁의 아들은 그것을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숨긴 후 다시 도주했다네. 그러다 죽었고 그 자손들이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지. 그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대로 하나의 유언을 남겼다네. ‘제왕검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쉽지 않았지."

"어떤 실마리가 있었던 거군요?"

"그렇지. 걸사번, 남궁무검의 아버지도 제왕검을 찾지 못해 죽었고. 죽으며 남궁무검에게 자신의 아버지에게 들었던 유언과 함께 제왕검을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함께 알려 줬네. 남궁무검은 똑똑한 놈이야."

"우리 개방을 이용한 거군요?"

"그렇지,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듯, 혼자서는 그 단서만으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본 방을 이용한 거야. 일부러 그 단서를 우리 방에 흘리고, 입방까지 한 다음, 비걸개까지 됐지. 결국 제왕검을 손에 쥐고 남궁세가로 간 거네. 처음부터 계획이 다 있었던 거야."

열받는데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을 만큼 놀랍다.

인정하긴 싫지만, 순간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때마침 당대의 남궁세가주는 아들이 없었고, 방계 중 한 명을 골라 후계자로 정하려는 중이었다네. 그런데 그때 남궁무검이 제왕검을 들고 찾아온 것이지."

"비걸개의 배신은 즉결 처분이잖아요. 걸사번이 아는 본 방의 비밀도 많고. 무엇보다 타구봉법을 10초식까지 익혔어요."

"물론 그렇지. 그래서 남궁세가주가 직접 우리 방주님께 만남을 요청했고, 담판은 잘 마무리됐네. 본 방의 비밀에 대한 함구나 타구봉법의 사용과 전수 모두 금지하겠다는 맹세를 받아 냈고,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의 거지들에게 매년 쌀 10만 섬을 베풀겠다는 약속도 받아 냈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얻었어."

남궁세가는 걸사번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내놓아야 했다.

그만큼 적통을 잇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 개방 입장에서도 걸사번 한 명을 주고, 큰 이득을 챙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방의 입장이고.

내 입장은 다르다.

생각할수록 열받네.

걸사번!

그래서 그날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만 말해 준 건가?

훗날 이 소식을 듣고 놀라 까무러치지 말라고 배려라도 해 준 거냐고?

하아, 새끼!

처음부터 우리 거지들 따위랑은 어울릴 수 없는, 뭐 그런 고귀한 존재라고 암시해 준 거야?

다른 사람이 놈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나에게 놈은 끝까지 재수 없는 녀석이다.

그렇게 세상에서 걸사번은 사라졌고, 이제 남궁무검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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