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현철 세 덩이를 심안개에게 건넸다.
앞섶 깊은 곳 전낭 안에 있는 금자와 은자는 건네지 않았다.
이미 보고를 받아 알고 있을 텐데, 다른 말이 없었다.
내가 이걸 어디에 쓸지 알고 있어서 그러는 것일 테다.
이건 비걸개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도 원래 거지가 그렇다.
자기가 주운 건 자기가 임자다.
무공 비급이라든지 영약, 신병이기 같이 위험할 수도 있는 것만 되도록 보고하라고 권유하는 정도다.
물론 주인이 없는 물건에 한해서 그렇다.
제왕검처럼 주인이 명확한 물건을 주웠는데, 보고하지 않고 본인이 소유하거나 빼돌렸다가 걸리면 중벌에 처한다.
주운 사람이 임자인 건 비걸개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임무 수행비를 턱없이 적게 주는 것일 수도 있고.
뭐, 이번의 나 같은 경우는 특별한 사례다.
어디 개이번처럼 부패에 찌들대로 찌든 비걸개가 또 있겠냔 말이다.
덕분에 부자다.
그런데 부자면 뭐 하나?
비걸개 잘리면 구걸하러 가야 하는데.
개방의 방도는 돈이 있어도 구걸해야 한다.
왜?
그게 거지니까.
구걸하지 않으면 더 이상 거지가 아니다.
개방은 예로부터 철저하게 거지의 요건을 따진다.
나중에 따로 비싼 밥을 사 먹더라도, 최소한 일정 시간은 구걸을……. 아!
구걸할 생각에 벌써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다 때려치우고 어디 가서 장사나 할까?
하지만 가훈이, 어머니의 유언이 그리고 내 콩알만 한 양심이 개방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구나.
됐다.
이렇게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우울할 때는 수련이 최고다.
언제 빼앗길지도 모르는 타구봉법이니만큼, 수련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해 둬야 한다.
물론 진즉 다 외우긴 했지만 말이다.
* * *
"어서 와 앉게."
타구봉법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니 식사 시간이다.
횡산에서 개방 서안 분타로 가는 길이다.
서안 분타 거지들이 인근 마을에서 구걸해 온 음식을 나누며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여기, 자네 몫이네."
"감사합니다, 심안개 분타주님."
"또 수련했나?"
"네."
"상태가 말이 아니군."
심안개 분타주의 말이 맞다.
고작 반 시진 수련했는데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
내 몸이 2갑자의 내공을 못 받쳐 주는 게 아니다.
애초에 근골 자체가 빌어먹으라고 태어난 근골이다.
남들은 검을 계속 휘두르면 손에 굳은살이 박인다고 하는데, 왜 나는 찢어져 피가 날까?
내공은 쓰지도 않았는데, 온몸의 뼈마디가 부러진 것 같고 근육은 실제 몇 군데 찢어졌다. 아파 죽겠다.
타구봉법 전반결 후초식이 너무 상승의 무공이라 어려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빌어먹을 근골이 문제인 게 맞다.
사실 비걸개 후보생 때부터 알고 있었다.
무슨 수련만 했다 하면 낙오를 하지 않았던가.
갑갑하네.
근데 이놈의 거지들이 먹으라는 밥은 안 처먹고 왜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는 거야?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묻자, 심안개가 기다렸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해 봤나?"
이 인간이! 밥 먹다 말고 뭘 그런 걸 물어?
"다들 궁금해한다네."
심안개는 물론, 서안 분타의 거지들 그리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마른 피딱지가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횡산 분타 거지들까지 모두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다.
아놔!
이 인간들이 단체로 미쳤나?
내가 그걸 해 봤건 해 보지 않았건 뭔 상관인데?
그렇지 않아도 얇은 발목하고 개미허리가 보고 싶어 미치겠는데.
그런데 그때.
심안개 분타주가 더러운 오른손 위에 무언가를 올려 나에게 쓱 하고 내밀었다.
달걀이다.
그것도 두 개.
"우리 녀석 중 한 놈이, 조금 전 구걸을 하다가 달걀을 얻어 왔거든. 혹시 우리 앞에서 보여 줄 수 있나?"
아! 그거였어?
그게 아니라, 달걀?
잠깐 오해했었군.
"행운석 말입니까?"
"응, 행운석. 정말로 달걀을 깨면 노른자가 두 개 나오나?"
"저도 해 본 적 없습니다."
"정말? 안 궁금했어?"
"그게… 지금은 저도 조금 궁금해지네요."
"어서, 어서 해 보게."
될까?
진짜로?
설마.
아니지, 다른 세계로 나를 보내 줬다가 다시 돌아오게 해 주는 행운석인데.
이까짓 달걀쯤은…….
"떨지 말고."
아놔!
자존심 상해.
나도 모르게 심안개에게 달걀 두 알을 받으며 손이 떨렸다.
거지들 모두 숨소리까지 죽이며 내 손 위에 올려진 달걀을 보는 중이다.
진짜 될까?
해 보자.
탁.
첫 번째 달걀.
더러운 빈 사발 위로 달걀을 깼는데.
"오오오오오!"
"와아아아아!"
허걱!
진짜다.
노른자가 두 개다.
"또! 또 해 보시게. 설마 두 개 연속으로 될까?"
"어서 해 보시오."
"그래요, 또 보여 주세요."
탁.
"와아아아아!"
"헐! 진짜였어."
나도 놀랐다.
두 개 연속, 노른자가 두 개 나왔다.
심안개도, 서안 분타의 거지들도, 또 압송 중인 횡산 분타의 거지들까지.
눈알 가득 부러움과 놀라움을 담아 한참이나 나와 노른자 네 알을 번갈아 봐야 했다.
* * *
타탁, 타타닥.
모닥불이 활활 잘도 탄다.
"내일이면 서안에 도착이네."
"네."
이름 모를 야산의 어느 기슭.
거지들은 모두 땅바닥에 잠자리를 청했고, 나와 심안개만이 나란히 앉아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고 있다.
"부럽군."
"며칠 동안 계속 그 얘기만 하시는군요. 원하시면 드린다니까요."
"예끼, 이 사람아. 나도 양심 있는 거질세. 노른자를 두 개 먹을 수 있는 게 부럽긴 하지만, 그래서 보물 아니겠는가? 남의 보물을 탐하면 그건 개방의 방도가 아닐세."
물어봐야겠다.
총타에 가면 알아볼 생각인데,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자.
"혹시 이 행운석에 대해 아는 거 있으세요?"
"비걸개 후보생 때 안 알려 줬나?"
"간략한 정보만 줬어요. 달걀을 깨면 노른자가 두 알 나온다는 거 하고, 구대 방주셨던 행운개 방주가 늘 목에 걸고 다녔다는 정도요."
"음, 그래? 나도 그냥 몇 가지 들은 게 전부긴 한데."
"듣고 싶어요."
"행운개 방주께서 일결제자이셨을 당시 우연히 행운석을 주웠다고 하더군. 그 뒤로 그냥 승승장구해서 곧바로 방주까지 됐대."
"너무 많이 생략하시는 거 아니에요?"
"혁혁한 공을 세웠고, 그만큼 무공도 엄청나게 늘었다고 하더군."
"음, 그래서요?"
"주변 사람들이 물었다더군. 어떻게 무공이 그렇게 갑자기 늘어날 수 있냐고."
"뭐라고 답했다고 하는데요?"
"‘이게 다 행운석 덕분이야!’ 하고 말하며 크게 웃으셨다고 하네."
"그게 끝이에요?"
"응, 왜? 실망했나?"
"조금요."
"뭐,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전해지는 게 많지 않아. 총타에 가서 물어도 대단한 기록을 찾기는 어려울 거야. 자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대단한 기록이 있다고 한들 보여 주지도 않을 테고."
"그렇겠죠."
"아마 뺏지는 않을 거야."
"행운석을요? 왜요?"
"그걸 왜 비걸개 후보생인 자네에게 줬는지 모르지만, 총타에서는 그게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몰랐을 거야. 비걸개 후보생들에게 뭔가 줘야 하는데, 아마 부족해서 이것저것 찾다가 그걸 끼워 넣었겠지."
"버리려던 걸 준 거예요?"
"아마도. 너무 실망하지 말게. 달걀노른자 두 개 나오는 거 확인하지 않았나?"
"아, 네. 뭐, 그렇죠."
달걀노른자 두 개는 확실히 거지들 입장에서는 대단한 거다.
하지만 다른 비걸개들이 가지고 간 신병이기며, 무공 비급이며 비교할 만한 급이 되지 않는다.
물론, 행운석의 진짜 가치를 모른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상하네요. 행운개 방주께서 행운석을 목에 걸고 다닌 뒤로 무공이 갑자기 늘었고, 또 승승장구해서 방주까지 되셨잖아요. 왜 우리 개방에서는 행운석을 신물로 지정하지 않았고, 그게 아니라도 왜 귀하게 보관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말이야. 행운개 방주께서 돌아가신 후, 몇몇 거지들이 행운석을 목에 걸고 다녔었데. 그런데 웬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야. 무공이 늘기는커녕, 눈먼 칼에 맞아 죽은 거지도 있었고, 겨울에 얼어 죽은 거지도 있었고."
"노른자는요?"
"몰라, 그래서 나도 궁금해서 며칠 전에 자네에게 달걀을 깨 보라고 한 거고."
"아, 네."
"실망이 크겠군? 다른 비걸개들은 좋은 보물을 얻었을 텐데."
"뭐, 받아들이기 나름이죠.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이라 좋군."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런 후 심안개가 슬쩍, 다른 거지들이 제대로 잠을 자는지까지 확인한 후 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 자네가 마음에 들어서 해 주는 말일세.
- 뭔데요?
- 이건 확실한 건 아니야. 그런 소문이 전해지긴 하는데, 수백 년 전의 일이고, 제대로 된 기록도 없으니 진실일 가능성은 거의 없네.
- 참고하여 듣겠습니다.
- 행운개 방주께서 한참 활동하시던 당시, 마교 내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고 하더군. 힘을 더 키우고 중원을 침공하자는 교주와 이미 충분히 힘을 키웠으니 곧바로 중원을 침공하자는 부교주 사이에서.
- 그런데요?
- 당시 마교의 교주는 부교주를 두려워했던 모양이야. 부교주가 도전하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것이라 생각했지.
- 부교주가 교주보다 더 강했었나 봐요?
- 아마도. 결국 부교주의 주장을 받아들여 마교는 대대적인 중원 침공을 결정했고, 대신 부교주와 그를 따르는 고수들이 선봉에 서기로 했지. 마교의 최고수 300명이 부교주와 함께 곤륜파가 있는 청해로 진입한 거야.
- 곤륜파 홀로 막기 힘들었을 텐데요.
- 곤륜파까지 가지도 못했네.
- 네? 왜요?
- 본방에서 미리 마교의 정보를 얻었고, 행운개 방주께서 곤륜파를 구하기 위해 미리 움직여 길목을 차단했던 거지.
- 혼자요?
- 응, 혼자.
- 어떻게 됐는데요?
- 행운개 방주께서 부교주와 마교의 고수 300명을 모두 도륙하셨다네. 뒤늦게 마교의 본대를 이끌고 온 교주와 마교의 장로들은, 그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마교로 돌아가 100년 동안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군.
- 아! 정말 전설 같은 이야기네요.
- 훗. 사실 나도 믿지 않는 이야기야. 그래도 이런 이야기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 다른 보물 대신 행운석을 얻은 자네가 덜 억울하지 않겠나?
- 고맙습니다, 심안개 분타주님.
- 됐네. 자네가 횡산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또 어떤 일을 했는지 다 아네. 방규를 어겼지만, 나는 같은 방도로서 자네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네.
거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증거도 없고, 기록도 없다.
심안개도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한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아니, 난 믿는다.
행운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힘을 가져다줄 테다.
그때 갑자기 떠올랐다.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문젠데, 행운석의 위력을 알게 되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바보 걸삼번이 얻은 귀혼석은 뭘까?
그것도 행운석만큼이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보물일까?
"심안개 분타주 님, 혹시 귀혼석에 대해서도 아시나요?"
"귀혼석? 처음 듣는데?"
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군.
비걸개 때 받은 정보에 의하면, 무슨 혼령이 보우하사 어쩌고 한 줄 적혀 있었는데.
쩝.
바보 걸삼번은, 그냥 돌을 얻은 모양이다.
하여간 지지리 복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괜히 미안해지는군.
그나저나 분위기도 좋은데 하나만 더 물어보자.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후훗. 그러시게."
"혹시 낭만개에 대해서도 아시나요?"
처음이다.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내내 여유로웠던 심안개가 놀란 듯 크게 눈을 떠 나를 보는 게.
심지어 바로 답하지도 않고, 고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자네가 신양 황천 분타 출신이지? 낭만개가 분타주로 있는."
"네."
"직접 물어보지 그랬나?"
"어려서 비걸개가 되기 위해 그곳을 떠났거든요."
"음, 미안하지만, 이건 말해 줄 수 없네. 자네가 비걸개였다면 말해 줘도 문제 될 게 없지만, 지금은 비걸개 자격 정지 중이지 않나? 아무리 우리끼리만 있다 한들, 지킬 건 지켜야지."
뭐야?
낭만개 그 인간, 아니 그 아저씨 진짜로 뭐가 있긴 있네?
일반 거지는 접할 수 없는 상급 정보라는 소리잖아?
아! 진짜 뭐야?
찬밥 한 덩이 들고 우리 엄마 뒤꽁무니 졸졸 따라다니는 거만 봐서, 그 어렸을 적에도 참 한심한 거지라고만 생각했는데.
* * *
"자, 이건 다시 받게."
개방 서안 분타에 도착했다.
횡산 분타의 거지들은 이곳에서 심판을 받고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 하였다.
나에 대한 처벌은 총타에서 이루어질 거라고.
"현철을 왜 다시 저에게?"
"총타로 가지고 가야지."
"저 혼자서 가요?"
"그럼? 우리 거지라도 한 명 붙여 줘? 혼자 못 가?"
"그건 아니지만……."
심안개 분타주가 씩 웃는다.
"도망갈 것도 아니잖아."
"당연하죠."
"그럼 됐어. 이거 들고 총타로 가 봐. 별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여기 서신."
"횡산 문제를 보고하기 위한 서류군요?"
"그렇네. 자네에 대해서도 적혀 있고. 보고 싶으면 봐도 되네. 티 나지 않게."
"아닙니다."
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이것도 받게."
찬밥 한 덩이다.
"가다가 먹어."
"고맙습니다."
그렇게 나는 서안 분타를 떠났다.
가는 길, 혹시나 해서 현철을 꺼내 보았다.
역시나 내가 건넸을 당시 그대로다.
작은 흠집 하나 없다.
인간이라면, 특히 무인이라면 손톱만큼만이라도 떼어 가지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심안개는 참 올곧은 거지다.
그렇게 나는 다시 길을 걸…….
아! 젠장.
나는 한참이나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갔다.
"분타주님! 심안개 분타주님!"
소리까지 지르며 서안 분타에 다시 도착했다.
한참 횡산 분타의 거지들을 죄목에 따라 판결하고 있던 심안개와 다른 서안 분타 거지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총타… 헉헉. 총타가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어요. 헉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