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0화 (9/174)

10화

"검은 돌… 엉엉엉. 내 새끼, 검은 돌, 엉엉. 내 새끼. 엉엉엉……."

언제나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같이 놀자고 조르던 녀석이었는데.

더 많이 놀아 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마구 울었… 아!

분위기가 많이 이상하다.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같이 놀라 나를 쳐다보는 총교두와 교두들.

얼마나 놀랐는지 입만 쩍 벌리고 숨도 제대로 못 쉰다.

뭐?

어쩌라고?

미친놈 처음 봐?

아니다.

이러다 진짜 미친놈 취급받겠다.

"흑흑. 쿨럭.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조카 녀석이 생각나서……."

아! 이게 아닌가?

더 미친놈 보듯 본다.

"그 조그만 돌이… 자네 조카인가? 커다란 바위는 자네 형이고?"

휴우.

총교두 저 인간, 지금 진심이다.

그건 진짜로 나를 미쳤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오해가 있으십니다."

교두들이 그저 놀란 눈으로, 또 불쌍한 눈으로 보기만 한다.

확실히 해 둬야겠다.

이러다 비걸개 최종 결정에서 떨어질라.

사유는 정신 이상.

"제가 하남 신양 황천 분타 출신이지 않습니까?"

"알고 있네. 그곳 분타주가 낭만개 아닌가? 그는 잘 지내고 있나?"

어라?

총교두가 우리 분타주를 어떻게 알지?

낭만개는 수십만 명이나 되는 개방의 일결제자 중 한 명일 뿐인데.

"네? 어, 뭐 늘 그렇지요. 구걸도 설렁설렁 잘하고, 매일 더러운 멍석에 퍼질러 낮잠도 잘 자고. 그런데… 총교두께서 어떻게 우리 낭만개 분타주를……?"

"쯧쯧. 그런 시골에서 그렇게 썩을 사람이 아닌데. 휴우."

진짜 뭐야?

구걸한 찬밥 한 덩이 들고 우리 엄마 꽁무니 졸졸 따라다니던 그 인간이 뭐라도 있는 사람이었어?

아닌데.

그냥 딱 봐도 거지고, 뒤로 봐도 거지고, 앞으로 봐도 거지인데.

아!

뭐냐고?

"낭만개 이야기는 됐고. 자네 분타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단 말인가?"

"의형 별명이 바위입니다. 얼굴도 보지 못했고 서신으로만 들은 제 첫 조카 녀석 별명이 검은 돌이고요. 그런데 최근 낭만개 분타주가 보낸 서신에, 그 둘이 사라졌다고… 그 생각만 하면 울컥하는 마음에… 죄송합니다, 못 볼 꼴을 보여 드려서요. 미친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그렇게 된 일이군."

총교두가 내 어깨까지 두드려 준다.

됐다.

내 말을 믿고 있다.

"너무 염려 말게. 다른 이도 아니고, 낭만개가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을 듣게 될 걸세."

아니, 낭만개가 뭐라고 이러는 거지? 진짜 이해 안 가네.

"조금 전 하다만 구변단 이야기가 듣고 싶군. 자네 정말로 총타에 인맥이 있나? 장로급 인사라 하여도 쉬이 구변단을 빼돌리기 힘들 텐데. 아니, 구변단 한두 알로는 지금 자네의 내공을 입증할 수 없어. 어떻게 된 건가? 설마… 낭만개가 개입했나?"

또!

또!

또 낭만개다.

아! 그 아저씨 뭐야?

진짜 그냥 시골 거지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총타에서 구변단을 빼돌릴 정도로 거물이었어?

그런데 왜 우리 고향 그 촌구석에서 구걸이나 하고 있는 거지?

돌겠네.

그 인간에 대해서는 나중에 꼭 알아봐야겠다.

일단 이 고비부터 넘기고.

"총타의 구변단이 아닙니다. 제가 비걸개 후보 최종 36인에 든 후, 제 성적이 거의 최하위권이었지 않습니까?"

"서른여섯 명 중 늘 35등이었지. 물론 무공 성적은 언제나 꼴찌였고."

"네, 그래서 낙오도 많이 했잖아요."

"맞아, 그래서 자네와 계속 함께 가야 하나 우리도 여러 번 회의를 하며 고민했었네."

아! 그런 일이 있었던 건 몰랐네.

"그날 홀로 낙오했다가 기연을 만났습니다."

"기연?"

"네, 아마도 만년 산삼쯤 되는 걸 먹었나 싶었습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 대며 죽어 가는 개가 있었습니다."

"그, 그래서?"

"그때가 엄청나게 추웠었는데, 개가 덜덜 떨고 있기에 물을 끓이고 거기에 넣어 줬습니다. 따뜻하라고요."

"아… 꿀꺽."

교두들이 입맛을 다신다.

"뭐, 배도 고프고 그래서… 그랬습니다."

"맛있……. 어험, 그게 전부인가?"

"개가 죽어 가던 자리에, 먹다 남은 만년 산삼 반 뿌리가 있었고, 그걸 품에 품고 다니며 매일 조금씩 뜯어 먹었습니다. 거의 한 달 넘게 나누어서요."

"구변단을 직접 복용한 게 아니고, 구변단의 탄생 설화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말이군."

"네, 그렇습니다."

"내가 자네 맥을 좀 짚어도 되겠나?"

기다리던 순간이다. 내 소인장기공을 제대로 시험할 시간이다.

"그러시죠."

나는 선뜻 왼팔을 내밀었다.

내가 너무 쉽게 맥문을 내주자 오히려 총교두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곧 신중한 모습으로 또 조심스레 내 맥문을 잡았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어허! 축하하네. 또 우리 비걸개들에게도 경사라 할 만한 일이군."

"걸이번의 내공이 얼마나 되기에 그리 말씀하십니까?"

한참을 기다린 다른 교두가 참지 못하고 총교두에게 물었다.

"정확히 1갑자의 내공을 보유하고 있다네."

"허걱!"

"어허!"

총교두의 말에 교두들이 크게 놀란 반응을 보였다.

사실 가장 놀란 건 나다.

설마설마했는데, 총교두라는 엄청난 고수에게 소인장기공이 완벽하게 통한 것이다.

"그런데 걸이번, 어떻게 된 일인가? 무려 1갑자나 되는 내공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다니."

"가전무공입니다."

"가전무공?"

"네."

"자네 본방에 입방하기 전, 무가 출신이라고 했지?"

"네, 시골의 평범한 무관 정도의 무가였습니다. 다만,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소인장기공만큼은 그 어떤 장기공에 뒤지지 않을 만큼 대단하다고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을까?

믿는다.

직접 보고 만지지 않았는가?

그 외 달리 설명할 길이 없으니 믿을 수밖에.

이후에도 몇 가지 질문이 더 있었지만, 가뿐히 넘길 수 있었다.

됐다.

의심은 모두 풀었고, 분위기는 더없이 좋다.

"그런데 걸이번, 당분간 자네 내공에 관해서는 함구하도록 하게."

"네, 그러하겠습니다."

"왜인지 묻지 않나?"

"무림에서는 3할의 힘을 숨기라고 수련할 때 언제나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잘 알고 있군. 분명 그것도 있지만, 1갑자의 내공은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네. 특히나 자네 나이를 고려하면 말일세. 총타에 보고해야 할 일이니, 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동료들에게 말하지 말도록."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총교두님, 후공마를 어떻게 처치했는지 다른 동기들이 물으면 어찌해야 합니까?"

"자네… 아직 못 들었나?"

"무엇을 말입니까?"

"어험, 어험."

이 인간, 뭔가 난처할 때만 되면 저렇게 헛기침을 한다.

"그게… 그게 말일세. 이미 비걸개 후보생들 사이로 소문이 돌았네. 후공마가 걸삼십육번을 비롯한 구조 후보생들과 싸우다가 내공이 고갈됐고, 크게 다친 상황이었다고. 거기에 걸일번과 걸사번이 필사의 각오로 그에게 치명상을 남겼고, 자네는……. 어험, 어험."

또 헛기침. 그나저나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군.

"그러니까… 그냥 솔직히 말함세. 자네가 마구잡이로 휘두른 검에, 이미 죽은 것이나 거의 진배없던 후공마가 얻어걸려 죽었다고 소문이 돌았네. 우리는 모른 척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고. 걸일번과 걸삼번, 걸사번에게는 이미 함구령을 내렸으니 자네만 입조심하면 된다네. 이것도 총타에서 따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만일세."

"네, 뭐. 사실 완전 거짓말도 아닌데요."

맞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후공마를 물리친 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 번이나 생각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2갑자의 내공을 사용해 그와 싸웠다면?

필패다!

죽는 건 후공마가 아닌 내가 됐을 테다.

내공은 2갑자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내 무학과 무리는 소인국을 다녀오기 전과 비교해 이렇다 할 발전이 없다.

여전히 이류 무사 끝자락.

아니, 이제는 일류 초입 정도 되려나?

산전수전 다 겪은 후공마가 그렇게 어이없이 내 2갑자의 내공을 정면으로 맞받아쳤을 리 만무하다.

아마도 형편없던 나를 철저히 무시했었고, 그렇게 완전히 방심한 상태에서, 소인국에서 돌아온 내가 갑자기 2갑자가 넘는 내공을 쏟아내니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리라.

이후 다시 이런저런 몇 마디가 더 오갔다.

그렇게 나는 면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냄새나는 더러운 움막을 막 빠져나오려다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나, 걸이번?"

"총교두님, 걸삼십육번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망했으니… 안타깝지만 최종 시험 탈락 처리될 걸세."

결국 그렇게 되는군.

"그럼… 그가 받은 타구봉법 전반결 후초식은 어떻게 되나요?"

"이미 회수했네."

"그게 끝입니까?"

총교두가 살짝 눈썹을 꿈틀거린 후 답했다.

"당연히… 비걸개 수료 및 임명식 때 수석 수료생에게 줄 걸세."

* * *

아!

갖고 싶다.

진짜 미치도록 갖고 싶다.

타구봉법 전반결 후초식!

사실 천재였던 걸삼십육번이 온갖 신병이기와 보물들을 다 제치고 타구봉법의 전반결 후초식을 선택했던 이유가 다 있다.

타구봉법은 우리 개방의 조사가 구걸하는 거지들이 개에 물리지 않도록 만든 봉법이다.

때릴 타(打), 개 구(狗), 말 그대로 개를 때리는 봉법.

처음에는 그저 그렇고 그런 봉법이었지만, 엄청난 고수라 알려진 3대 방주가 이를 상승의 봉법으로 개조시켰다.

그런 후에도 역대 방주들에 의하여 계속 변조되고 발전하였다.

방주만 익힐 수 있는 항룡십팔장과 달리, 모든 개방의 방도들이 익힐 수 있기에, 방주 외에도 뛰어난 개방의 역대 고수들이 또 이를 더더욱 강한 봉법으로 탈바꿈시켜 현재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일천 년 개방의 모든 무리와 무학의 정수가 타구봉법에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는 거지들의 봉법이라 우습게 보고, 또 누구는 개를 때리는 봉법이라 경시한다.

하지만 모르는 이들이나 그리 말하는 것이고.

내가 개방의 방도라서가 아니라, 누가 나에게 천하제일 신공을 묻는다면 진심에 우러러 타구봉법이라 말할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타구봉법의 전반결 후초식을 이토록 간절히 원하냐 하면.

무결제자와 일결제자는 1초식과 2초식.

이결제자는 3, 4, 5초식.

삼결제자는 6초식에서 10초식까지.

사결제자는 11초식에서 15초식까지.

오결제자가 16과 17초식.

육결제자와 칠결제자가 전반결 마지막 18초식을 익힐 수 있다.

개방의 육결제자라 하면, 장로들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팔결제자인 방주가 타구봉법의 후반결을 익힐 수 있다.

비걸개 최종 후보생의 경우 정식 비걸개가 되자마자 임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나도 10초식까지 익힐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더더욱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이토록 욕심내는 것이다.

타구봉법의 전반결 후초식을.

물론 최악의 상황이 아닌 경우 신분 노출 때문에 타구봉법을 쓸 수 없다는 규정이 있고, 이에 관해선 모든 후보생이 맹세까지 했다.

어쨌거나!

아!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산다고 생각했던 천재 걸삼십육번이 그걸 가졌을 때는 조금도 부럽거나 시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걸 다른 놈… 특히 걸사번 녀석이 혹시라도 가지게 된다면, 나는 배가 아파 잠도 못 잘 것 같다.

* * *

비걸개 최종 시험이 끝나고 사흘이 지났다.

내일이면 수료식과 임명식을 동시에 진행한다.

최종 시험을 통과한 후보생들 모두가 비걸개로 임명되는 것에는 이변이 없을 터.

단체 수련도 더 이상 없고, 모두가 기쁜 얼굴로 일상을 즐기고 있다.

"멈춰!"

쓰러져 가는 움막들 사이로 그나마 제법 넓은 공터.

우리 후보생들이 가장 자주 모여 정보도 교환하고 기쁨도 나누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소리를 질렀다.

"멈추라고!"

또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이곳에 모인 비걸개 후보생 중 대부분이 동작을 멈추었다.

몇몇은 놀란 얼굴이었으나, 대부분 어이가 없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는 그런 얼굴들이었다.

"멈추라니까!"

다시 한번, 울분을 토해 외쳤다.

아!

눈물은 흘리고 싶지 않았는데, 또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여기저기서 혀를 차는 소리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그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

"제발… 멈춰! 멈추라고!"

그때.

"그만해, 새끼야!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걸십이번이다.

덥석!

내 멱살까지 잡아 흔든다.

"이제 그만 좀 해!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너 때문에 좋은 분위기 다 흐트러지는 거 안 보여?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래? 그만 좀 해, 걸이번 이 새끼야!"

최종 시험 전까지의 우리 비걸개 성적 순위.

걸삼번이 꼴찌, 내가 뒤에서 두 번째, 걸십이번 이 녀석이 뒤에서 세 번째, 그러니까 34등이다.

성질도 더럽고, 입만 열면 욕지거리다.

무공이나 다른 건 괜찮은데, 태도 점수가 많이 깎여서 그런 모양이다.

지금도 여차하면 날 한 대 칠 기세다.

하지만 좋은 놈이다.

총타에서 지원을 받는 우리 비걸개 후보생들은 원칙적으로 구걸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실전 수련을 위해 거리에 나갔을 때는 자급자족, 그러니까 구걸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

아니면 꼬박 굶어야 하고, 그러다 굶어 죽을 수도 있다.

난 하지 않았다.

태어나 지금껏 단 한 번도 구걸해 본 적이 없다.

그때 걸일번과 걸삼번을 비롯한 동료들이 구걸한 밥을 내게 나누어 주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구걸한 밥을 가장 많이 나눠 줬던 녀석이 이 녀석이다.

"그만! 그만 좀 해! 새꺄!"

나를 다그치는 녀석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멈춰! 제발 멈추라고! 엉엉엉."

난 걸십이번이 잡은 멱살을 뿌리치고 한 곳으로 향했다.

엉엉 울며, 그렇게 오열을 토하며 다가간 곳은 걸이십구번이 있는 곳.

그리고…….

털썩.

나는 걸이십구번이 막 지나가려던 자리 바로 앞에 무릎까지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당황한 걸이십구번.

"왜… 내가 왜……?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엉엉엉. 걸음… 엉엉, 멈추라고. 개미… 엉엉. 개미 밟지 말라고. 엉엉엉. 개미… 엉엉. 내 사랑 개미허리… 엉엉엉."

나는 그렇게 한참이나 일렬로 먹이 활동하고 있는 개미들을 손으로 감싸듯 보호하며, 울고 또 울고 마구 울었다.

"뭐 저런 신박하게 미친 새끼가 다 있어. 에잇, 퉤!"

"어휴, 저 새끼 진짜 미쳤네."

내 뒤로 나를 욕하고 탓하는 말들이 연신 들려왔지만.

"내 사랑 개미허리. 엉엉엉. 개미허리. 엉엉엉. 엉엉."

나의 통곡은 멈추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무림으로 나가기 전 첫 번째 별호를 얻을 수 있었다.

광곡개(狂哭丐), 미친 울보라는 뜻이다.

* * *

비걸개 임명식 당일.

어제의 일 때문일까?

아니, 내가 소인국에서 돌아온 이후 연이어 보인 이상 행동 때문일 것이다.

뭐, 그전에도 꼴찌에서 두 번째 성적인 나를 은근히 무시하긴 했지만 말이다.

다들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한다.

"밥 먹었어? 헤헤. 헤헤."

바보, 걸삼번만이 말을 걸어 줬다.

됐다.

오늘 임명식 끝나고, 내일 임무 맡아 떠나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사이다.

구걸한 밥을 나눠 줬던 동료들에게 받은 은혜는 기억하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반드시 갚을 것이고.

"자! 그러면 비걸개 수료식 겸 임명식을 시작하겠다."

시작이다.

"이미 수백 번도 더 말했지만, 임무 중 동료를 만나도 절대 아는 척을 해서는 안 되고… 방주님이 특별히 축하의 전언을… 모두가 그동안 수고를……."

아! 총교두가 원래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부쩍 말이 많다.

그렇게 한참이나 지루했던 일장 연설이 끝나고.

"그럼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비걸개 임명을 시작하겠다."

모두가 잔뜩 긴장하여 촉각을 곤두세웠다.

누가 비걸개들 아니랄까 봐, 이미 걸삼십육번의 타구봉법 초반결 후초식이 이번 임명식의 수석에게 전해진다는 소문이 번졌다.

특히 걸사번, 저 새끼.

저러다 눈알 빠지겠다.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눈알의 실핏줄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몇몇 후보생들도 마찬가지다.

아! 누가 될지는 몰라도 개 부럽네.

누굴까?

누가 수석 수료의 명예와 함께 타구봉법 전반결 후초식을 얻게 될까?

"이번 비걸개 최종 수석 수료생……."

꿀꺽.

어차피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모두가 눈알로 검강을 쏟아낼 것처럼 긴장한 가운데, 드디어 총교두가 수석을 호명했다.

"걸이번,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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