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누군가가 개미지옥(개미귀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면 절대로 구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되네."
"왜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웃을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구하지 말라니?
바위를 부숴라가 잠시 입을 굳게 닫고는 심각한 얼굴을 했다.
"인류가 기록이란 걸 남기기 시작한 후, 개미지옥에 빠져서 살아 나온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어. 그리고 이를 구하려고 했던 사람 모두가 함께 죽었지. 개미지옥에 빠지면 죽는 거야. 그러니 명심하게. 혹시라도 굴 밖으로 나갔다가 누군가가 개미지옥에 빠지면 포기하게."
"그래도……."
"비실대다 쓰러져 동생."
"네, 형님."
"이건 조언이나 충고가 아닐세. 부락의 규율이네. 그걸 떠나… 난 자네를 잃고 싶지 않아."
매사 진지한 바위를 부숴라가 그날따라 더욱 진지한 얼굴로 내게 그리 말했다.
내가 개미지옥에 빠지기 몇 달 전의 대화였다.
* * *
아! X팔.
이렇게 죽는구나.
다리가 빠지고.
허리가 빠지고.
다시 어깨까지 모래에 잠기고 말았다.
그리고 머리마저 곧.
저 멀리 바위를 부숴라 형님과 부락의 전사들이 너무나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을 쏟을 것처럼 슬퍼하면서도 아무도 나서는 이는 없다.
안다.
나서 봐야 함께 죽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괜찮다.
저들을 탓할 수는 없다.
탓하려면 멍청하게 감정만 앞서 움직인 나를 탓해야 하지 않겠나.
나 때문에,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까지 죽게 됐다.
젠장.
모래 속으로 머리가 잠기고 나니 죽음이 실감되었고,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1갑자의 내공도, 혼원귀일신공과 낙백구검, 산백신법도 무용지물이다.
아니, 그냥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무리해서 두꺼비 사냥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녀들이 죽을 일도 없었을 텐데.
아! 행운석은 이럴 때 무슨 도움 같은 거 안 주나?
반응이 없네.
됐다.
끝이다.
개미귀신이 고통 없이 죽여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난 다리 쪽으로 둘렀던 호신강기를 서서히 풀었다.
얇은 발목, 개미허리.
미안해.
다음 생에는, 꼭 좋은 남편이 되어 너희를 지켜 줄게.
난 그렇게 모래 속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며 두 눈을 꼭 감았……. 척!
"비실… 쓰… 잡……."
깊은 모래 속이라 그저 먹먹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분명, 바위를 부숴라의 것이다.
곧 그의 손이 빠르게 모래를 파헤치며 내 오른쪽 손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어떻게든 날 살리겠다는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난 곧바로 풀려고 했던 다리 쪽의 호신강기를 다시 강하게 펼쳤다.
이내, 서서히, 아주 조금씩 모래 밖으로 내 몸이 끌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래에서 나를 끌어 내리려는 개미귀신의 힘도 만만치 않다.
이러다가는 내 몸이 두 동강 나고 말 테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지만. 난 다리 쪽에 집중한 호신강기를 더욱 강화한 후, 족강(足剛)을 발출했다.
쿠웅.
역시나 모래 속이라 그 폭발음이 먹먹하게 들렸다.
하지만 성공이다.
순간이나마 개미귀신이 강하게 잡았던 내 발목을 놓친 것이다.
이내.
타타타타타타탓.
쿠르르르르르르.
나는 빠른 속도로 개미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푸핫! 헉헉헉!"
개미지옥 밖으로 나온 후 제한됐던 숨을 일시에 터뜨렸다.
그런 후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바위를 부숴라 형님은 물론, 부족의 전사들 모두가 손목과 손목을 맞잡아 일렬로 연결한 후 나를 끌어낸 것이다.
수 갑자의 내공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는지 모두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땀을 소나기처럼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다.
바위를 부숴라 형님에게, 또 모두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를 표할 때가 아니다.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를 구해야 한다.
빨리 그녀들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오빠!"
어?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가… 눈물을 휘날리며 달려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를 부술 듯 꽉 끌어안고 오열을 토하는 그녀들.
그녀들까지 살았다.
그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 이제 정말 착하게 살 거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그런 벅찬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세 사람이 인류 최초로 개미지옥에 빠졌다가 살아난 인간일지 모르겠다.
"오빠, 엉엉엉."
"울지 마, 엉엉엉."
나와 얇은 발목 그리고 개미허리는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어야 했다.
* * *
퍽퍽퍽!
쿠르르릉.
퍽퍽퍽!
쿠르르릉.
두 마리의 개미귀신.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아무리 강한 내공을 갖고 있어도 쉬이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문명의 이기를 쓰면 된다.
돌 숲 개미굴 부족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이다.
"어떻습니까? 우리 돌 숲 부족에서 4대에 걸쳐 개발한 개미귀신 척살기(刺殺器)입니다. 하하하!"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를 구한 건 우연히 옆을 지나던 돌 숲 개미굴 부족이었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투석기 모양인데, 그 방향이 땅속으로 향해 있다.
그리고 거대한 창이 척살기에 달려 있었는데, 그 끝에는 분명 돌이 아닌 철로 만든 커다란 촉이 박혀 있었다.
그것이 연속적으로 방아를 찧듯 돌아가며 개미지옥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개미귀신을 공격하는 중이다.
퍽퍽퍽!
쿠르르릉.
퍽퍽퍽!쿠르르릉.
확실히 병기를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는 돌 숲 개미굴 부족이 상당히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돌 숲 개미굴 부족의 최강 전사인 하얀 그림자가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멋지게 웃으며 그리 답했다.
중원 기준으론 엄청난 미남이다.
거의 조각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동생은 괜찮은가?"
바위를 부숴라가 나에게 물었다.
"전 괜찮습니다, 형님. 그런데 어떻게 저를 구할 생각을 하신 거예요? 개미지옥에 빠진 사람을 포기하라고 한 건 형님이시잖아요."
"뭐, 이것도 자네 덕분 아니겠는가? 무공이라면, 무엇보다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자네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이들에겐 합격술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적이 침입하면 그냥 인해전술로 우르르 돌진해 개별적으로 싸우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나는 이들에게 삼재진법을 기반으로 한 합격술을 전수했다.
이는 함께 힘을 합치면 그 힘이 얼마나 극대화될 수 있는지 이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하지만 힘을 합쳐 사람을 구하는 방법은 가르친 적이 없는데.
하나를 가르쳤더니 둘을 깨우친 이들이었고, 결국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다.
고맙다.
정말 이곳은 모든 것이 너무 좋고 사랑스럽다.
이제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를 아내로 맞이해, 토끼 같은 자식들 주렁주렁 낳아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
뭐, 이런 아름다운 세상이 다 있냔 말이다!
"우린 이만 가 봐야겠네, 하얀 그림자 전사."
"네, 바위를 부숴라 전사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개미귀신이 어떻게 됐는지 꼭 알려 주고."
"네, 개미귀신을 잡는 데 성공하면 개미 척살기를 몇 대 만들어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렇게 우리는 돌 숲 개미굴 부족과 작별을……. 뭐지?
"얇은 발목, 개미허리, 가자."
그녀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녀들이 우리 부족이 아닌 돌 숲 개미굴 부족과 함께 있다는 점이었다.
"얇은 발목. 개미허리. 뭐해? 이제 돌아가야 한다니까?"
불안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불안한 마음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녀들을 재촉했다.
그런데…….
아!
X팔!
진짜 뭐냐고?
순간 사람들이, 우리 부족 사람들과 돌 숲 개미굴 부족들 모두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는 결국 가까스로 멈추었던 울음을 다시 터뜨렸고.
뭐냐고?
막 화가 나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이 상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미칠 것 같았다.
"얇은 발목! 개미허리! 지금 왜……."
그때.
바위를 부숴라가 내 뒤로 다가와 어깨를 꽉 잡았다.
"혀, 형님."
결국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위를 부숴라가 그런 나를 착잡한 눈으로 보며, 불안했던 내 예감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자네가 살던 곳과 우리의 전통이 다른 모양이군. 이곳에선… 여인의 목숨을 구해 주면 꼭 그 사람과 혼인해야 하는 전통이 있다네.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는 하얀 그림자의 부인이 될 걸세. 미안하네, 동생."
"안 돼!"
지랄 발광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고, 난… 나는 우리 부족 사람들에게 강제로 끌려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 *
엿 같은 세상이다.
사랑하는 임은 갔다.
삶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나도 여기 뜬다.
중원으로 돌아갈 거다.
언제?
지금.
내 목에 걸린 행운석을 풀어 들었다.
나는 이제 1갑자 반에 달하는 내공을 보유하게 됐다.
그걸 주입해 행운석을 발동시키고, 그렇게 중원으로 돌아갈 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왜?
중원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곳에서 얇은 발목, 개미허리와 사는 게 더 행복하니 돌아갈 시도 자체를 안 한 거다.
하지만 지금은…….
됐다.
빨리 돌아가자.
가부좌를 틀고.
심호흡을 하고.
행운석을 두 손에 꼭 쥐고.
1갑자 반에 달하는 내공을 모두 끌어 올렸다.
구우우우우우우웅.
내 주변의 공기가 요동을 치고, 땅이 은은하게 진동한다.
그리고 난 그 기운을 모두 행운석에 주입하였다.
주입하였다.
주입하였다.
내공을 모조리 주입…….
주입…
주입… X팔.
안 된다.
* * *
이곳에 온 지 1년이 다 됐다.
내 내공은 이제 2갑자가 됐다.
쓸데없다.
부족 사람들은 이제 나 없이도 알아서 수련도 열심히 하고 먹이 활동도 잘하고 있다.
이웃 부족에서 무공을 배우러 유학을 오기도 한다.
천적들은 더 이상 천적이 아니다.
요 며칠 전에는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수천 명이나 초대해 통닭 잔치를 벌였다.
드디어 닭을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개미귀신 투석기와 우리 부족의 합격술이 더해져, 주변의 개미귀신들은 씨가 말랐다.
아직도 먹이 활동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1년 전에 비한다면 사고 사망자가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모두가 나를 굴러들어 온 복덩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
에휴.
삶의 낙이 없다.
우울하다.
"비실 아저씨! 빨리 와서 잡아!"
"알았다. 가고 있어, 이놈들아!"
"비실 아저씨는 매일 느려! 개미한테 잘 말해 봐!"
도대체 개미하고 어떻게 말을 하라는 건지.
나는 지금 바위를 부숴라의 딸 연못의 흰 꽃과 아들 검은 돌 던져와 놀아 주고 있다.
개미를 말처럼 타고 노는 술래잡기 비슷한 거다.
내가 개미귀신에게 죽을 뻔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불타는 머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들었다.
바위를 부숴라의 아버지가 바위를 부숴라를 데리고 첫 먹이 활동에 나섰을 때.
개미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
정말 많이 놀랐다.
바위를 부숴라가 나에게 개미귀신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왜 그렇게 강조했는지, 또 나를 구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마음이 좀 그랬다, 많이.
그래서 원래도 가까웠지만, 지금은 더더욱 가까워졌다.
부족 사람들 모두가 착하고 좋고 친한 사람들이지만,
특히나 바위를 부숴라의 식구들과 나는 이제 그냥 한 가족이다.
그래서 나보다 내공이 월등한 이 꼬맹이 녀석들과도 놀아 주는 것이고.
최소한 이 녀석들과 놀 때면,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다.
"아저씨, 뭐 해! 빨리 와서 잡으라니까! 하하하!"
"알았다, 이 녀석들아! 거기 딱 기다려! 하하하!"
난 커다란 개미를 마치 적토마라도 되는 것처럼 몰며 녀석들을 빠르게 쫓아…….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르르릉.
"적이다! 천적이 침입했다!"
"침입이다!"
쿠르르르릉.
뭐지?
또 어떤 녀석이 겁도 없이 우리 개미굴을 침입한 거지?
오늘 저녁 식사도 고기구이를 배 터지게 먹겠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바위를 부숴라의 부인 무지개 끝자락이 급하게 달려왔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게 뭔가 심상치 않다.
"형수님!"
"비실대다 쓰러져 님. 얼른… 얼른 대피를 해야……."
그녀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마치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
"왜…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천적… 절대 천적……."
절대 천적?
절대 천적이 뭔데?
닭이나 개미귀신보다 무서운 게 있어?
아! 그러고 보니 바위를 부숴라 형님과 얇은 발목, 개미허리에게 들었었는데.
그게 뭐였지?
분명 그냥 천적이 아닌 절대 천적이 있다고 했는데.
"일단 아이들 데리고 피하세요."
난 무지개 끝자락을 뒤로하고 빠르게 개미굴 입구를 향해 달렸다.
* * *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쾅쾅쾅쾅쾅콰콰콰쾅!
쉬리리리리릿!
"으아아아아아아악!"
쉬리리리리릿!
"으아아아아아악!"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개미굴 입구까지 갈 수도 없었다.
이미 개미굴의 3분의 1이 무너져 있다.
닭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크기의 괴수다.
그 괴수가 개미굴을 마구잡이로 부수며 사람과 개미들을 잡아먹고 있다.
쉬리리리리리리릿!
길다.
놈의 혀는 마치 용처럼 크고 강하며 길다.
한번 혀를 내지르고 회수할 때마다 수십 명의 사람과 개미가 놈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가 도착한 후 잠깐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3, 400명의 사람들이 놈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비실대다 쓰러져!"
"형님!"
"도망… 도망가!"
"합격술로 놈을……."
"안 돼! 절대 천적에게는 통하지 않아. 한 명이라도…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해! 우리가 막으며 시간을 벌 테니, 너는 어서 굴 가장 깊숙한 곳으로 도망가! 어서!"
"형님! 싸워 보지도 않고……."
다급하다.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무지개 끝자락과 같은 얼굴이다.
세상의 종말을 마주한 얼굴이다.
"개미핥기에게는… 통하지 않아. 하루에도 몇 개의 부족을 멸족시키는 놈이야. 그러니… 자네라도 꼭 살아 줘. 부탁이야."
말을 마친 바위를 부숴라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잠깐 바라본 후 다시 개미핥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할 때.
척!
내가 그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강렬한 눈으로.
"형님, 삼재진… 삼재진을 펼쳐야 합니다."
바위를 부숴라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가 슬퍼하고 있었고, 낙담하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과 부족의 멸족을 확신하고 있는 그였다.
"형님!"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리라고!
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그러자 바위를 부숴라가 주르르 흐르던 자신의 눈물을 손으로 거칠게 훔쳤다.
그러더니 이내 크게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부족의 전사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부족의 전사들은 삼재진을 펼쳐라!"
"넵!"
"삼재진으로 대항한다!"
"다들 힘내! 삼재진으로 싸우자!"
비 사이로 막 가, 깐 데 또 까 그리고 부족의 모든 전사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절대 천적, 개미핥기를 상대로 목숨을 건 삼재진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바위를 부숴라도 곧바로 삼재진에 합류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던 그때.
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릿!
아! X팔.
개미핥기의 혀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너무 빠르다.
너무 크고, 너무 강하다.
이건, 젠장!
피할 수 없다.
"동생!!"
쾅!
어? 뭐지?
개미핥기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할 건 난데.
바위를 부숴라가 나를 밀쳤다.
그런 후 나 대신 개미핥기의 혀에 붙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안 된다.
죽어도 내가 죽어야지.
형님이 왜 나 대신.
순간, 미칠 것 같았다.
2갑자의 내공을 넘어, 내 분노까지 모두 검에 담아 개미핥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꼭 구한다.
내가 죽더라도.
"형니이이이이임!"
그런데 그때.
번쩍!
뭐지?
* * *
"형니이이이…임?"
2갑자를 넘어 내 분노까지 담은 무지막지한 힘.
그것이 곧 검이 산산이 부서질 듯한 검강이 되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바위를 부숴라를 구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외치며 전속력으로 몸을 날렸…….
없다.
바위를 부숴라도, 거대한 개미핥기도, 무너져 가던 개미굴도, 수많은 부족의 전사들과 수만에 달하는 개미들까지, 번쩍임과 동시에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무지막지한 검강이 향한 건 개미핥기가 아닌…….
어라?
후공마(厚功魔) 안두창?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지?
일단, 검강부터 날리고 보자.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