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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이번 여행기-5화 (4/174)

5화

"당장 가겠네!"

바위를 부숴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개미굴 입구를 향해 몸을 날렸……. 척!

내가 그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

바위를 부숴라도 많이 놀랐는지, 식은땀까지 흘리며 급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난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그에게 말했다.

"형님, 얇은 발목하고 개미허리를… 꼭… 꼭……."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바위를 부숴라도 내 진심을 본 모양이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손목을 잡아챈 내 손을 마주 잡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신법(身法)과 보법(步法)은 다르다.

적을 마주하여 적의 공격을 피하고 또 좋은 자리를 점해 최적의 공격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게 바로 보법이다.

이곳 사람들은 보법은커녕 무공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그래서 보법에선 아무리 형편없는 내공일지언정, 내가 이들보다 월등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신법은 다르다.

신법은 말 그대로 달리는 속도다.

비록 바위를 부숴라는 신법의 기초조차 익히지 못했지만, 그가 10갑자의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려 달리면, 나는 그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됐다.

난 잠시 그가 사라진 방향을 지켜보다가, 곧 개방에서 사사한 산백신법(散魄身法)을 전력으로 펼쳐 뒤를 쫓았다.

* * *

쾅!

쿠르르르르르르릉.

콰콰콰콰쾅!

타타타타타타타탓!

"으아아아아악!"

"공격! 공격해! 이러다 굴이 모두 무너진다!"

"끄아악! 살려 줘!"

"공격! 공격하라!"

인간의 수백 수천 배 크기에 달하는 괴수.

두꺼비.

그것이 개미굴의 입구를 이미 수십 장이나 부수고 무너뜨렸다.

그의 앞발에 사람과 개미들이 깔려 죽고, 무너진 개미굴의 흙더미 속에 시체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괴수 두꺼비는 연신 긴 혀를 날름거리며 끝도 없이 사람들과 개미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이곳은, 지옥이다.

쉬이이이이익.

콰콰콰쾅!

괴수 두꺼비가 앞발로 한 걸음 다가서자 굴이 무너지고, 이에 다시 사람들이 깔리고 피하며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그때 괴수 두꺼비의 공격을 피하려다가 개미굴 벽에 강하게 부딪혀 쓰러진 두 여인.

"얇은 발목! 개미허리!"

"오빠!"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가 두꺼비와 싸우느라 엉망이 된 몰골로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달려와 안겼다.

하지만 이는 잠시.

"오빠! 이곳은 위험해. 피해 있어."

"너희는? 안 돼! 절대로… 절대로 너희만 이곳에 두고 갈 수 없어."

"오빠! 우리도 부족의 일원이야. 싸워야 해. 이건 우리 부족 사람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지켜야 하는 의무라고."

"그럼 나도! 나도 싸울 거야."

"오빠는 다친 몸이잖아. 족장님께서 오빠에게 부족의 모든 의무에 대한 면제권을 줬잖아. 그러니 오빠는 피해 있어. 제발!"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가 오열을 하며 그렇게 나에게 외쳤다.

그런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폭포수처럼 계속 쏟아졌다.

어찌, 어떻게 너희 둘을 두고 나만 도망간다는 말이냐?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오빠, 제발… 제발 부탁이야."

하지만 그녀들의 간절한 부탁.

아니,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개미굴 밖과 다른 막힌 공간.

닭과 병아리가 쪼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른 두꺼비의 혀 놀림.

이제 고작 5년 치가 된 내공과 일류도 못 되는 무공 따위로 내가 저런 무지막지한 괴수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제발… 제발 살아야 해. 둘 다."

세상천지 이렇게 못난 놈도 없을 거다.

결국 나는 물러나야 했고,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는 눈물을 쏟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 다시 괴수 두꺼비를 향해 돌진하였다.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는 용감히 싸웠다.

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편견을 가졌던 것일까?

4갑자의 내공.

다른 부족의 장정들 못지않게, 정말 열심히 또 용맹하게 두꺼비를 향해 계속 돌진하는 그녀들이다.

쾅!

콰콰콰쾅!

쿠르르르르르릉.

샤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끄아아악!"

두꺼비가 한 번 혀를 날름거릴 때마다, 사람들과 개미들이 적게는 몇 명에서 많게는 열몇 명씩 놈의 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개미굴은 계속 무너지고 있고.

"막아라! 막아! 돌격!"

수백의 사람들과 수천의 개미들은 계속 그런 두꺼비의 진격을 막기 위해 돌진하고 있다.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괴수 두꺼비와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픈 상황에서도 의문이 들었다.

인간들과 개미들.

두꺼비를 상대로 싸우는 방법이 똑같다.

아니, 딱 하나다.

그냥 돌진, 돌격이다.

다른 게 없다.

인해전술.

오직 앞으로 전진, 그리고 또 전진.

오히려 그 때문에 사상자가 더 늘어나고 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저렇게 싸우는지.

그나마 다행인 건, 바위를 부숴라와 또 다른 두 명.

세 명의 인간들이 괴수 두꺼비를 상대로 잘 싸워 주고 있어서 더 큰 피해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비실대다 쓰러져 님, 끄윽."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한 사람이 크게 다친 상태로 작은 굴에 숨어 있었다.

"이쪽으로… 굴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이곳이 안전합니다."

서둘러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둘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얕고 작은 개미굴이었다.

그런데 첫날 잔치 때 이 사람을 본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개미 등에 올라타입니다."

"아, 네. 많이 다치셨습니까?"

"두꺼비 혀 공격을 피하다가 무너지는 돌덩이에 깔리며 갈비뼈가 몇 대 부러진 것 같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는데, 싸울 수가 없어서……."

그는 매우 처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괴로워했다.

몸도 몸이지만, 부족 사람들과 함께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괴로움이었다.

난 시선을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괴수 두꺼비는 인간과 개미의 공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만찬을 즐기면서 계속해 개미굴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어느새 열두 명의 원로들까지 현장에 도착해 괴수 두꺼비를 공격하고 있었다.

씨앗 껍질 까 족장도 선두에 나서서 목이 터져라 부족 사람들과 개미들을 독려하며 지휘했다.

하지만 확실히 두꺼비에게 가장 강한 타격을 주고 있는 건 세 사람이었다.

바위를 부숴라와 또 다른 두 명.

그중 한 명의 움직임은 너무나 빨라 눈으로 좇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신법과 보법이란 걸 익히지 않았음에도 저런 움직임을 선보이는 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였다.

그가 바로 두꺼비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두꺼비의 눈을 현혹한 덕분에 사상자가 절반 이상 줄지 않았을까 싶었다.

"개미 등에 올라타 님, 혹 저기 빠르게 움직이는 분은 누군지 아십니까?"

"우리 부족의 최강 전사 세 명 중 한 분이시며, 우리 부락은 물론 인근 부락을 통틀어서도 가장 빠른 전사, 비 사이로 막 가 님이십니다."

"아! 그렇군요."

또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비 사이로 막 가처럼 빠르지도 않고, 바위를 부숴라처럼 강하지도 않다.

하지만 두꺼비를 가장 집요하게 괴롭히고 또 실질적 타격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가 두꺼비를 공격할 때마다, 바위를 부숴라가 괴력으로 두꺼비의 이곳저곳을 강타할 때보다 두꺼비가 더 괴로워하는 것 같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두꺼비의 왼쪽 옆구리 쪽만 계속 공격하고 있다.

"개미 등에 올라타 님, 저분은……."

"바위를 부숴라 님, 비 사이로 막 가 님과 더불어 우리 부족의 최강 전사 중 한 분이신 깐 데 또 까 님이세요."

"아, 네. 깐 데 또 까."

아이씨.

조금 전에 마구 흘러내리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괜찮다.

사실 그들의 이상한 이름 때문에 울음이 끊긴 건 아니다.

일단 족장, 원로들과 더불어 다시 수백 명에 달하는 부족 사람들이 새로이 도착했다.

개미들도 수천 마리가 더 투입되었다.

먼저 싸우던 사람들, 그러니까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 등의 사람들은 후미로 빠져 일단 안전한 상태다.

그리고 끔찍했던 상황이 조금씩 진정되고 있다.

부족의 최강 전사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두꺼비가 지치거나 다쳤나?

아니다.

두꺼비의 배가 부른 모양이다.

두꺼비가 슬금슬금, 혀를 날름거리지만 더 이상 사람들과 개미들을 잡아먹지 않으며 그렇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러고는 곧…….

엉기적.

쿵!

엉기적.

쿵!

두꺼비가 거대한 몸을 엉기적거리며 저 먼 곳으로 천천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와아아아아!"

"와아! 두꺼비를 물리쳤다!"

"와아아아! 이겼다!"

잠깐의 환호가 있었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꺼비 배 속으로 사라진 사람이 수십 명.

두꺼비의 앞발과 몸에 깔리고 끼어 죽은 자가 다시 수십 명.

무너진 굴에 의해 죽은 자가 또 수십 명이었다.

죽은 개미들의 수는 일일이 다 셀 수도 없었다.

"자! 다들 힘내고, 무너진 굴을 보수하여라. 개미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개미를 도와 빨리 굴을 보수하라!"

큰 목소리로 사람들을 다독이며 지휘하는 족장 씨앗 껍질 까.

그의 주름진 얼굴 사이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빠."

"오빠, 흑흑흑."

그리고 나는 살아 돌아온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를 부술 듯 끌어안고 한참이나 울어야 했다.

* * *

두꺼비 습격 사건이 있고 난 뒤 며칠이 지났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기리며 눈물을 흘리고 애도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람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 아니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내가 살던 곳과 조금은 달랐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이들은 아마도 사람의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음… 그대로 흘려보낸다고나 할까.

뭐, 그렇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인간과 개미들은 다시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다.

하지만 내 마음만큼은 평온하지 못했다.

"작년에 230명이 죽었다고?"

"응, 오빠. 재작년엔 700명이 넘게 죽었어."

이제는 거의 내 개미굴에 와서 살다시피 하는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가 나의 이런저런 질문에 상세히 답을 해 주고 있다.

"슬프지 않아?"

"슬프지.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 있겠어?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친구를 잃고, 또 아내와 남편을 잃었는데."

얇은 발목에 이어 개미허리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 부족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야. 재작년에 계곡 개미굴 부족은 절대 천적이 침입해 전멸했어. 휴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그 부족 말고도 여러 부족이 하루 사이에 멸족하고, 우리 부족만 다행히 그 화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어. 그래서 우리가 오빠도 만날 수 있었던 거고."

절대 천적?

내가 이곳에 온 첫날에도 바위를 부숴라가 절대 천적에 대해 말을 하다가 만 것 같은데.

뭐지?

"절대 천적이 뭐야?"

"오빠는 몰라? 오빠가 살던 곳에는 절대 천적이 없었어?"

"응, 있긴 있는데. 이곳에서의 절대 천적과 내가 살던 곳의 절대 천적이 같은 것인지 궁금해서."

"아, 그렇구나. 이곳에서 절대 천적은……."

그때 밖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돌 숲 개미굴 부족이 왔다! 다들 나와 봐! 돌 숲 개미굴 사람들이 우리를 도우려고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왔어!"

"어머, 오빠. 돌 숲 개미굴 사람들이 왔대. 어서 나가 보자."

"그래, 오빠. 빨리 나가자."

"어? 돌 숲 개미굴 부족? 아… 먼저 나가 있어. 난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알았어. 빨리 와야 해. 그들이 만든 무기는 언제나 최고거든."

"응, 그래."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가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아니다.

돌 숲 사람들이 만든 무기가 얼마나 좋은 것일지는 몰라도, 결국 돌로 만든 무기다.

돌로 만든 몽둥이 따위로 두꺼비나 닭, 쥐 같은 괴수들과 싸울 수는 없다.

요 며칠 내 마음이 계속 심란한 이유다.

어찌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을까?

이들에게 받은 게 너무 많다.

평생 거지로 살았던 나에게, 이들은 정말 그 무엇도 아낌없이 나눠 주었고 또 지금도 계속 나눠 주고 있다.

나도 보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확실한 보답, 아니 내가 받은 것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보답을 가지고 있다.

무공이다.

만약 내가 이들에게 무공을 전수한다면 아마 이들의 생존율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아질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커다란 짐승들이라면 모를까.

며칠 전 개미굴을 습격했던 두꺼비나, 내가 이곳에 처음 와 맞닥뜨린 닭 따위는 더 이상 인간을 죽이지 못하게 될 거다.

그걸 넘어 인간이 그들을 사냥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내가 살던 세상에서 보지 않았던가?

내가 살던 세상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힘이란 것을 얻었을 때 어떤 끔찍한 짓거리들을 하는지.

그렇다.

내가 염려하는 건 단 하나.

이들에게 무공을 전수했을 때.

이곳의 인간들에게 새로운 천적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고, 인간이 인간의 절대 천적이 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난 지금 이들에게 무공을 전수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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