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드넓은 대지.
그 위에 빼곡히 자라난 나무.
어?
저게 나무야?
생긴 건 꼭 풀처럼 생겼는데……. 허걱!
나무가, 나무가 일천 장(3,000m) 높이까지 자랐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나무가 천지에 깔렸다.
내가 나무라 착각한 열 장(30m), 스무 장(60m) 높이의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 맞았다.
도대체 뭐야?
여긴 어딘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어?
"도망쳐! 도망쳐라! 병아리다!"
뭐지?
저 멀리 열 장, 스무 장 높이의 커다랗고 울창한 잡초 사이에서 다급한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
부우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우웅!
사람들 수십 명이 커다란 잡초들 사이로 튀어나왔는데.
아!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수십 명 모두가 엄청난 고수들이다.
한 번의 도약으로 일백 장(300m)을 날아간다.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엄청난 소리가 그들의 인영과 함께 내 귓가를 무지막지한 속도로 지나간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쿵!
쿵!
쿵!
쿠쿠쿠쿠쿠쿵!
뭔가 땅이 크게 울리는 것 같더니…….
아!
X팔.
이거 진짜 뭐야?
괴수?
병아리다.
스무 장(60m) 높이의 병아리가 잡초들을 헤치며 나타났다.
난 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상황에 너무나 놀라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냥 멍하게, 그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병아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때!
척!
"넌 뭐 하는 녀석이야? 왜 멍하게 서 있어?"
"그, 그게……."
"젠장!"
울퉁불퉁, 마치 양쪽 팔에 커다란 바위라도 심어 놓은 것처럼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는 중년의 사내가 내 뒷덜미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아!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그런데 다시 그때!
쿠쿠쿵!
나 때문에 지체됐나 보다.
조금 전 그 병아리가 나와 중년 근육질 사내의 앞을 앞질러 막아섰다.
저 높은 그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병아리.
"삐악삐악."
안다.
저 눈빛.
나와 근육질 사내를 먹을까 말까 고심 중인 거다.
"제기랄!"
인상을 와락 구기며 한 마디를 뱉는 근육 사내.
"죄, 죄송해요."
"뒤로 물러나 있어."
쭈뼛쭈뼛 내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구우우우우우우우웅.
아!
이 사람, 말로만 듣던 천하제일인 뭐 그런 건가?
대기가 진동한다.
그가 기운을 끌어 올리자 주위로 돌풍이 몰아친다.
근육도 부풀어 올라 터질 듯하고.
내가 아무리 하수라고 해도, 그의 엄청난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내.
쾅!
땅을 강하게 딛고 날아가.
쉬이이이이이익.
주먹을 휘두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정확히 병아리의 머리통을 가격.
허공 스무 장 위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삐아아아아아악! 삐악삐악! 삐악삐악!"
병아리가 기겁하여 괴성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때다. 가자!"
다시 근육 아저씨가 내 뒷덜미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한 번의 도약으로 일백 장을 날아 달리는 신법이라니.
지금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뭔가 싶어 하늘을 봤는데.
아!
X팔.
진짜 뭐냐고?
봉황인가?
아니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어 버린 커다란 물체.
아니, 새.
그것도 아니다.
닭이다.
암탉.
X팔.
병아리 엄만가 보다.
푸다다다닥.
콰쾅!
우리 앞에 착지.
착지만으로도 나와 근육질은 그 날갯짓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조금 전 병아리처럼 나와 근육 아저씨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암탉.
대략 칠십 장(210m) 높이의 체구.
이내, 놈이 누굴 먼저 먹을지 결정했나 보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익!
엄청난 속도로 거대한 머리를 내가 있는 땅으로 내리꽂는다.
부리로 쪼는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땅이 몇 장이나 파이며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어라?
근데 이거 피할 만한데?
닭의 덩치가 커진 만큼 그 움직임도 매우 둔하다.
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내가 그래도 명색이 비걸개 후보 거지로 11년을 살았는데.
혼원귀일신공(混元歸一神功), 낙백구검(落魄九劒), 산백신법(散魄身法).
그중 낙백구검에 딸린 보법(步法) 낙백보(落魄步).
비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 비걸개 후보 거지인 만큼, 방에서도 훌륭한 무공을 우리에게 전수해 줬다.
개방의 자랑인 취팔선보(醉八仙步)에는 조금 못 미칠지 모르지만, 분명 그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는 보법이 바로 낙백보인 것이다.
내 무공이 아무리 떨어진다고 해도, 그건 비걸개 후보 최종 36인에 비한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실제 내 뒤로 천재며 기재며, 신동이라 불렸던 수천 명의 거지가 최종 36인에 들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내 낙백보도 장난 아니란 소리다.
쉬이이이이이이익!
콰콰콰콰쾅!
또 피했다.
요로케, 요로케.
쉬이이이이이익!
콰콰콰콰콰쾅!
닭대가리 새끼, 열라 단순하네. 또 피했다.
"요로케, 요로케. 닭대가리 새끼야!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맞추냐? 하하하!"
내 말귀를 알아들은 것일까?
닭이 더 빠르고 강하며 집요하게 날 계속 공격해 왔다.
쉬이이이이이익!
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요로케! 요로케 피하면 되지롱. 하하! 요로케! 요로케 말이야, 하하하!"
"조심하시오!"
한참 신나서 닭의 공격을 피하고 있을 때, 엄청난 크기의 잡초들 사이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살피니.
아!
아까 도주했던 수십 명이 잡초들 사이에 숨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근육 아저씨도 어느새 그들 틈에 섞여 있고.
"조심하시오! 뒤! 뒤요!"
뒤를 돌아보니, 젠장.
병아리 일곱 마리.
아까 근육 아저씨에게 한 방 먹은 녀석까지 가세해 총 일곱 마리의 병아리가 어미 닭과 함께 나를 노리기 시작했다.
젠장할!
쉬이이익!
콰콰콰쾅!
쾅쾅쾅!
"삐악삐악!"
콰콰쾅!
처음엔 나도 당황했다.
하지만 닭은 닭, 병아리는 병아리일 뿐이다.
총 여덟 마리의 괴수들이 나를 공격했지만, 느리고 단순하다.
나는 요로케, 요로케 낙백보를 밟아 놈들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
"꼭! 꼬고고고고꼭."
"삐악삐악!"
콰콰콰쾅!
쾅쾅쾅!
콰콰콰콰콰콰콰쾅!
할 만하다.
아니, 충분하다.
이게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찌 인간이 되어 닭과 병아리의 밥이 되겠는가.
"요로케, 요로케."
쾅쾅쾅!
"헤헤. 요로케. 또 피했지롱!"
콰콰콰콰콰쾅!
그런데 젠장.
빌어먹을 내공.
걸사번이 5년 치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4년 치다.
그 비천한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때.
"꼭꼭꼭. 꼬꼭."
"삐악삐악."
암탉과 병아리들이 흥미를 잃었는지, 그냥 자리를 떠나 버리고 말았다.
털썩.
휴우, 다행이다.
내공은 바닥을 드러냈고,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근육이 찢어질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기적이야, 기적!"
"허어! 이럴 수가."
고개를 돌려 보니, 그제야 안심한 듯 잡초를 헤치고 나오는 사람들.
하나같이 엄청나게 놀란 얼굴이다.
뭐지?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한 고수들이 분명한데.
내 낙백보를 보고 놀랐을 리는 없고.
저 놀란 얼굴들 뭔데?
"자네……."
조금 전 나를 구해 줬던 근육질 아저씨다.
아마도 무리의 수장인 듯하다.
"자넨 누군가?"
* * *
"떨어진다! 조심해!"
쉬이이이이이이잉.
콰쾅!
일천 장?
이천 장?
아무튼 엄청 높은 하늘에서 수십 장에 달하는 포도 한 송이가 떨어졌다.
땅이 다 진동할 정도다.
"뭉그러진 건 잘라 내고, 멀쩡한 것만 실어. 이봐! 수레는 아직인가?"
"곧 완성됩니다!"
"빨리해! 언제 또 천적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네, 알겠어요."
대략 70명가량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아마 이러한 일들을 오래 해 온 듯하다.
몇 명은 수천 장 위의 포도나무 위로 올라가 포도송이를 자르고 몇몇은 즉석에서 거대한 나뭇가지를 잘라 수레를 만든다.
또 일부는 다른 곳으로 가 옥수수 낱알이나 견과류 등을 주워 온다.
자신의 몸의 몇 배는 무거워 보이는 옥수수 낱알을 가뿐하게 들어 옮기는 괴력의 인간들이다.
신기한 건 이들의 외양이다.
검은 머릿결은 같지만, 피부가 좀 더 검고 눈동자도 미묘하게 다르다.
입은 옷도 이상하다.
남자는 아래의 주요 부위만 가렸는데, 저게 가죽인지 풀인지 모를 것들로 대충 만들어 입었고 여자들도 가슴을 하나 더 가렸다는 것 외에는 다를 게 없다.
심지어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와 도구는 철이 아닌 돌을 깎아 만든 것들이다.
뭐지?
분명 엄청난 괴력을 가진 고수들이 분명한데, 지금 모습을 보면 마치 원시시대의 사람들 같기도 하고.
무림에 저런 고수들이나 문파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무림도, 중원도 아니다.
새외로 온 것 같은데, 그것도 아주 먼 나라인 것 같다.
내가 어쩌다가 이곳으로 왔지?
걸일번은 살아 있을까?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이름이 나태한이라고?"
아까 나를 구해 줬던 근육 아저씨다.
"네."
"신기한 이름이 다 있군."
"그런 아저씨 이름은 뭔데요?"
"바위를 부숴라."
"네? 갑자기 바위는 왜 부숴요?"
"아니, 내 이름이 ‘바위를 부숴라’라고."
미친!
뭐 이딴 이름이 있어?
지금 날 놀리나?
아닌데.
이 인간, 분명 매사 진지한 그런 부류의 인간인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아씨!
내가 먼저 물어봐야 하는데.
"네."
"부족 사람들과 가족들은?"
뭐라고 답하지?
"그게… 기억이 잘……."
"됐네. 얘기하지 않아도 되네. 큰 충격을 받으면 원래 기억을 잃기도 하고 그래.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나. 너무 슬퍼하지 말고 기운 차리게."
"네, 감사합니다."
아마도 그는 내 부족?
아무튼 내가 내 주변 사람들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조금 전 그 닭과 병아리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 저도 뭣 좀 물어봐도 돼요?"
"물론이지."
비걸개의 주요 임무는 탐색이다.
난 그 훈련을 무려 11년 동안 받았다.
중원으로 돌아가려면 일단 이곳에서 생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의 정보를 습득하는 게 먼저다.
"이곳은 어떤 곳……."
난 바위를 부숴라의 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닌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새외?
그가 이곳의 삶에 대해 설명하면 할수록, 난 이곳이 변방이나 새외 심지어 먼 이국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
"그러니까 노루, 멧돼지, 호랑이, 곰……."
"잠깐! 잠깐만요, 바위 아저씨."
"……?"
"아저씨 말대로라면 노루나 멧돼지, 호랑이, 곰은 엄청 클 텐데, 그것들이 우리 인간들을 잡아먹는다고요?"
"아니, 그것들은 우리에게 관심조차 없어. 하지만 그것들이 지나가다 밟아 죽이고, 자다가 뒤척이면서 또 우릴 깔아 죽이고, 재작년엔 호랑이가 노루를 사냥해 뜯어 먹던 중에, 그 고깃덩이가 날아와 열세 명이 깔려 죽는 일이 있었지. 그런 걸 말하는 거야."
아! 젠장.
뭐 이딴 세상이 다 있어?
돌겠네.
"자네 부락에서는 그런 사고가 없었나?"
"아, 아니에요. 있었죠. 예상치 못하는 그런 사고는 언제나 있죠."
"그렇지, 이곳이나 자네가 살던 곳이나 다 비슷하겠지. 아! 자네가 살던 곳에도 절대 천적이 있겠군."
"절대 천적이요? 이곳의 절대 천적은 뭔데요?"
"우리의 절대 천적은……."
"바위를 부숴라 전사님! 좀 도와주세요."
내 또래의 청년이 달려오며 근육 아저씨를 불렀다.
"불타는 머리, 왜? 무슨 일인데?"
하아!
쟤는 이름이 불타는 머리야?
진짜 적응 안 되네.
그런데 머리가 까만색인데 왜 불타는 머리지?
근육 아저씨, 그러니까 바위를 부숴라는 내가 그런 생각하는 걸 어찌 알았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해 주었다.
"아! 오해하지 말게. 이 친구가 지금은 검은 머리지만, 막 태어났을 때는 머리에 붉은빛이 돌아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네."
"아, 그렇군요."
"뭔가? 뭘 도와줘?"
바위를 부숴라가 다시 불타는 머리에게 물었다.
"호두를 주워 왔는데, 도대체 부수지를 못하겠어요."
"알았네, 금방 가지."
"네."
"다녀오겠네. 자넨 이곳에서 쉬고 있게. 일단 우리 부락에 함께 머물며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자고."
"네, 감사합니다."
바위를 부숴라가 호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부우우우우우우.
콰콰콰콰쾅!
부우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괴력이다.
괴력이란 말도 부족할 신력이다.
원래의 인간도 주먹으로 부수기 힘든 그 호두를, 그냥 계속 수십 번, 계속해서 내리친다.
분명 호두의 약한 부위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지만, 무식해도 저렇게 무식할 수 없다.
그런데…….
쩌저적!
호두가, 그 단단한 호두가.
금이 갔다.
곧 이곳의 인간 한 명이 간신히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뚫렸다.
와!
미친.
저 정도의 힘을 발휘하려면 도대체 내공이 몇 갑자여야 하는 거야?
돌겠다.
정말 여긴 어디야?
나 돌아갈래.
* * *
"바로 저 앞이네. 저곳이 우리 부락일세."
즉석에서 만든 수레 네 대에 포도 반 송이, 옥수수 낱알 열댓 개, 호두 부스러기 등을 싣고 이들과 함께 왔다. 그들의 부락, 그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탓!
아!
젠장.
개미다.
아니, 개미 떼다.
사람 두 배 크기의 개미들이 수천 마리?
그것들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엿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