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66화 (166/175)

166화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서 상대의 공격을 버티는 데 성공한 박민준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데군데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지만, 다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이번엔 나도 죽는 줄 알았다. 헬파이어라더니.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어.’

지옥의 불길이 정말 뜨겁고 악랄했다.

박민준의 내공이 조금이라도 모자랐다면, 그리고 천마 신공을 익히지 못했다면, 그대로 타 죽을 뻔했을 정도였다.

베타는 상대가 자신의 최고라 볼 수 있는 공격 마법을 막아낸 걸 보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법 없이 헬파이어를 견뎌내는 존재가 있다니? 이건 말도 안 돼.’

베타는 박민준과 싸울 마음이 사라졌다.

최소한 지금은 그와 결말을 볼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오늘은 이만하는 게 좋겠군. 다음에 좀 더 확실하게. 내 방식대로 끝을 봐야겠다.’

박민준을 잠시 노려본 베타가 옥상에서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후~우

후~우

시야를 가리던 불길이 완전히 사그라들자마자.

작게 숨을 몰아쉬며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린 박민준이었다.

옥상 그 어디에서도 상대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완전히 끝장냈어야 하는 건데.’

베타가 얼마나 황급히 도망을 쳤는지.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녀석의 잘려나간 팔만 발견할 수 있었다.

삼매진화.

화르르.

베타가 남긴 팔이 불길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새까맣게 타서,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다음에 만나면 숨통을 끊어놓겠다. 그리고 저 꼴로 만들어주겠다.’

그가 자신이 당한 걸 고스란히 돌려주겠다고 의지를 다지던 그때.

우당탕!

옥상 입구 쪽에 소란이 일었다.

뒤늦게 이곳에 다시 문제가 생긴 걸 안 더원이었다.

그가 수행원을 이끌고 박민준에게 다가갔다.

“야! 무슨 일이야? 여기서 무슨 싸움이 났다고 보고하던데? 일반인인 프랭크 교수하고 대체 왜 그런 거야??”

“내가 일반인하고 싸웠겠냐?”

“그럼 뭔데? 교수가 정체를 숨긴 빌런이라도 되었던 거야?”

“아니. 겨우 그런 존재 따위가 아니었다.”

“베타.”

“뭐? 베타?”

“지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시스템의 운영자를 내가 방금 만났다.”

“그게 사실이야? 교수가 정말 운영자였어? 그런데 시스템을 운영하는 분 정도 되면 신이라는 거잖아?”

“신은 무슨. 그냥 미친 외계인 같더라.”

베타가 신이라는 말을 듣고 그걸 부정했으니.

박민준은 그가 고도의 능력을 가진 이쪽 세상의 외계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 그 말을 들은 더원이 팔을 배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티 같은 걸 말하는 거야? 팔다리가 짧고 배가 불뚝 튀어나오고 눈이 주먹만 한 그런 거?”

더원의 과장된 말과 행동 때문에 살짝 웃음이 터진 박민준이었다.

하지만 상대에 대해 떠올리고 나니.

입꼬리가 다시 내려갔다.

“그런 모습이 아니야. 녀석의 진짜 모습은 모르겠지만, 프랭크 교수처럼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어.”

“사람으로 변신한다는 거야?”

“아니. 녀석이 우리 인간의 몸에 들어간단 말이었어.”

“그건 더 싫은데. 완전 에일리언이잖아.”

“누가 미국인 아니랄까 봐. 자꾸 영화 얘기야? 좀 더 진지할 순 없는 거냐?”

“나 완전 진지한데. 우선 외계인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야 하잖아. 그래야 그놈을 찾아내지.”

박민준이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놈을 알아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 거야.”

“왜?”

“겉으로 볼 때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까. 오직 내 직감으로만 녀석을 구별해낼 수 있단 말이지.”

“젠장.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너만 하지 말고, 나도 좀 가르쳐 줘라.”

“간단해. 그냥 인간과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거야.”

“장난하냐?”

더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박민준도 딱히 그에게 더 해줄 말이 없었다.

그는 그냥 자신의 직감에 의존해서 프랭크 교수 안에 베타란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뿐이었으니까.

그걸 남에게 설명할 순 있어도 억지로 느끼게 하진 못했다.

“그래서 그 외계인인지 뭔지 하는 베타는 지금 어디 있어?”

말을 하는 동시에.

더원이 자신의 상태창을 살폈다.

시스템 운영자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죽는다면 상태창 또한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멀쩡히 열리는 창을 보고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하고 똑같은데?”

“그놈은 나와 싸우다가 도망쳤다.”

“도망? 설마 너 시스템하고 싸워서 이긴 거냐? 진짜?”

“글쎄다. 녀석에게 타격을 주긴 했지만, 중간에 놓쳤으니. 그걸 이겼다고 해야 하나?”

“당연히 이긴 거지. 놈이 결국 너한테 쫄아서 튄 거잖아! 세상에. 네 녀석이 강한 건 익히 알았지만, 시스템을 쫓아낼 줄이야.”

박민준을 바라보는 더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구 전체를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베타 시스템이었다.

평범한 사람을 각성시켜서 헌터나 빌런으로 만들고, 게이트를 열어서 괴물이 나오도록 하는 신적인 존재인데.

‘그런 놈과 싸우다가 스스로 도망치게 만들다니. 저거 진짜 사람이 맞는 건가? 혹시 저놈도?’

더원의 눈빛을 받고, 박민준이 피식 웃었다.

“너 왜 눈을 그렇게 뜨냐?”

“너도 혹시 외계인이냐? 사람이 아닌 거였어?”

“미친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어떤 인간이 시스템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겠냐?”

“이긴 게 아니야. 그냥 우위를 점했던 것뿐이라고.”

“그게 그거지. 끝까지 싸웠으면 질 것 같으니까. 녀석이 도망친 거잖아.”

박민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야. 녀석의 팔을 잘라내긴 했지만, 나도 내력이 고갈된 상태였거든.”

“그래?”

“어. 거기서 더 싸웠으면 그땐 내가 불리했을 거다.”

아무리 박민준이라고 해도, 내력이 없이는 각성자보다 좀 더 강한 수준일 뿐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거였지만, 시스템을 자처한 베타와 싸우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한 게 사실이었으니.

‘놈이 놀라서 도망쳤지만, 다음엔 그런 요행을 바랄 수 없어. 그러니 나도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사실 박민준은 천마 신공을 익힌 뒤로 조금 안이해져 있었다.

다른 세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천마란 존재를 지구에서 다시 마주했었으니.

그리고 그를 이겨낸 순간, 더는 강해질 필요가 없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베타란 놈이 알파와는 다르게 나와 인류를 적대한 이상, 더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

더욱 강해져서 놈을 완전히 죽여야만 자신과 지구가 다시 평온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박민준이었다.

과연 운영자란 놈을 죽이면 시스템이 사라지고, 게이트도 더는 열리지 않게 되는 걸까?

박민준이 알기론 운영자와 개발자는 엄연히 달랐다.

만약 시스템을 개발한 놈이 베타의 뒤에 또 있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

사실 박민준이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뭐가 되었든 간에, 내 의지에 반하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그냥 박살 내면 그만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걸 막는다면, 그 존재와 싸워 이기거나 끝을 맞이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강해진 이상, 패배는 생각하지 않겠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낼 것이다.’

과거 자신이 다른 차원에 갔을 때, 절대 이기지 못할 존재였던 천마를 쓰러뜨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이길 거라고 거듭 다짐했다.

***

더원과 길고 긴 대화를 마친 박민준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대통령을 만났다.

박민준이 봤을 때 그는 뉴 유니온에 가입한 회원이었지만, 사실상 그들에게 이용당했을 뿐.

‘핵심적인 구성원은 아니었다. 페이란 놈이 회장이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으니.’

자신을 멍청하다는 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받고.

대통령의 얼굴일 빨갛게 달아올랐다.

“야.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차라리 뭐라고 말을 해라. 그렇게 계속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 거냐?”

“멍청한 놈. 최고 권력자라는 놈이 남에게 속아서 이용이나 당하다니.”

“젠장. 미안하다.”

“그걸 왜 나한테 사과해? 그런 말은 국민에게나 해라.”

“너도 대한민국 사람이잖아. 물론 날 뽑아주진 않았겠지만.”

“그건 그렇지.”

대통령이 그와 대화를 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날 만나자고 한 거냐? 무슨 큰일이라도 또 생긴 거야?”

“어. 내가 미국에 갔을 때 시스템 운영자란 놈을 만났거든.”

“시스템 운영자? 인터넷 회사 같은 걸 말하는 거냐?”

“그게 아니야. 이 멍청아. 내가 베타라 불리는 시스템을 만났다고.”

“아…. 너도 농담할 줄 아는 녀석이었구나. 방금은 진짜 웃겼다.”

하하하….

크게 웃던 대통령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심각한 표정의 박민준을 보며, 그도 덩달아 얼굴이 굳었다.

“진짜구나.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놈하고 한 판 붙었지 뭐.”

“왜?”

“인류가 개발한 장치 때문에.”

“게이트가 열리는 걸 막아주는 그 기계 장치 말이지?”

“그래. 맞아. 게이트가 열리지 않으면 놈도 더는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을 테니까.”

“그건 정말 큰 일이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야.”

“너도 그걸 아는구나.”

“당연하지. 내가 괜히 대통령이 된 줄 알아?”

“그냥 된 줄 알았지.”

“농담하지 마. 지금 지구가 망하게 생겼는데 농담할 때냐?”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린 박민준이 그에게 면박하듯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망한 것 같은데. 괴물이 튀어나오고 사람이 죽는 게 정상은 아니잖아?”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베타란 분이 개입한 이상 지구가 더 위험해진다는 건 사실이잖아.”

박민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더니.

어서 대답하라며,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대통령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원하고 얘기를 나눠봤는데,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그게 뭔데?”

“한국에 돈이 얼마나 있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미국이 곧 전 세계에 그 기술을 공유할 거다.”

“진짜? 지난번 발표에서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었나? 몇 년 걸릴지 모른다고 들었는데.”

뉴 유니온과 관련한 발표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페이 회장이 죽고, 새로 발견된 놈의 기계 장치가 있었으니.

해체와는 별개로.

그걸 통해 기계 장치의 개발과 완성을 훨씬 앞당길 수가 있게 되었다.

“자세한 건 더원하고 직접 통화해봐.”

“알았어, 아무튼 게이트 차단 장치를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만들어낼 생각이라 이거지.”

“그래. 그리고 그 일은 선진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해야 해.”

그 말을 듣고, 대통령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득은 괴물이 그 안에서 나오는 걸 막는 것밖에 없지 않나?

“왜?”

“그래야 베타란 놈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게 시스템 운영자를 잡는 일에 무슨 도움이 되는 건데?”

그의 질문이 타당했다는 듯.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길게 배운 녀석들은 확실히 다르더라. 소위 박사나 교수란 놈들은 말이지.”

“어? 뭔데, 좀 자세히 말해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