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비위가 좋은 더원이지만, 순간 헛구역질을 할뻔했다.
“대체 이게 다 뭐야? 악마라도 다녀갔나?”
박민준의 옷이 다 찢겨서 사라졌고, 나체 상태로 다리를 꼬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 주변에는 피부조직으로 보이는 덩어리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고 진득한 액체가 떨어져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까지 났다.
그가 공포영화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흔적이었다.
더욱이 이곳에서 작게나마 게이트가 열리는 걸 분명히 봤으니.
그 안에서 악마 같은 게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악마는 어디 있지? 혹시 저놈에게 들어갔나?”
더원이 혼자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었는지.
스르륵.
박민준이 그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자신의 몸을 먼저 살피더니.
주변을 마저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이건 악마가 아니라 탈태환골이란 거다.”
“탈…. 뭐?”
“이건 그냥 내가 더 강해지고, 건강해진 증거물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런 엄청난 폭발이 있었는데, 죽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거기다 상처를 입긴커녕, 이전보다 더 건강해지다니.
더원은 그의 말을 듣고도 의심의 눈빛을 지우지 않았다.
“너 눈을 왜 그따위로 뜨는 거냐? 기껏 고생해서 상황을 혼자 정리했건만. 너 죽을래?”
“아니. 그런데 네가 맞구나.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너밖에 없지.”
박민준의 말투를 듣고, 더원이 그제야 안심한다는 얼굴이었다.
“미친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 폭발에서 상처 하나 없다니?”
“운이 좋았다.”
“운? 이걸 운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건가? 소형 핵폭탄을 맞고 살아남은 수준인데?”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아까 그가 밑에서 바라본 옥상의 상황은 그야말로 지구 종말의 시작과도 같았으니.
오죽하면 무신론자인 그가 게이트에서 악마가 튀어나온 게 아닌지를 의심했을까?
“그런데 여긴 왜 다시 올라온 거냐?”
“그냥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 궁금하기도 하고, 혼자 있을 네가 아주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말꼬리를 흐리는 더원을 보며 피식 웃은 박민준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특수부대 요원들과 더원의 수행원들이 우르르 옥상으로 올라왔다.
박민준이 뭔가 몸을 가릴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걸 보고.
사람들이 작게 웅성거렸다.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하게 깨끗한 신체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남성들은 부럽다며 바라보았고, 여성들은 황홀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스 조각상인 줄 알았네.”
“그러게 무슨 남자 몸이 저렇게 잘 빠졌지.”
“전신 박피 시술이라도 받은 것 같네.”
“그러게 어디서 받았는지 물어볼까? 저 정도라면 나도 하고 싶은데.”
더원이 그런 그들을 한심하다고 바라봤다.
대장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여기 놀러 왔나? 어서 주변을 수색하고, 이상한 점이 있는지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군인들이 꼼꼼하고 빠르게 수색을 마쳤다.
“옥상엔 수상한 것이 없습니다.”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은 없었나?”
“네. 옥상에 설치한 카메라를 확인했는데, 괴물은 나오지 않은 거로 확인되었습니다.”
원래는 기계 장치의 해체 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설치한 카메라였다.
폭발 당시에 급히 철수하느라, 장비를 전부 챙겨서 내려가지 못했었다.
“그 덕분에 게이트를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
“각하 말씀이 맞습니다.”
기계 장치를 해체했던 전문가들도 하나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민망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크나큰 재앙을 불러올 뻔했으니.
“우리가 제대로 해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치가 폭주한 거였다.”
“만약 저분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반경 수 km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겨우 그 정도가 아닙니다. 폭발로 수십 km 안에 있는 건물이 모두 무너졌을 겁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영향을 받은 게이트가 더욱 커져서 역대 최악의 괴물이 그 안에서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그걸 혼자 수습해준 박민준에 대한 찬양이 뒤섞였다.
더원의 수행원에게 옷을 건네받은 박민준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전문가들이 먼저 박민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됐어. 너희 감사를 받자고 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렇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이 주변에 있던 많은 목숨을 구하신 건 분명한 일이지요.”
“그건 그렇고 저 기계 장치에 대해서는 뭘 좀 알아낸 게 있나?”
박민준이 가리킨 방향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기계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폭발 때문에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주변으로 날아가 버렸으니.
‘여기 있었으면 저 조각이 온몸에 박혀서 꼼짝없이 죽었겠군.’
‘저자는 대체 어떻게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있는 거지?’
‘기계도 기계지만, 언젠가는 저 사람을 꼭 연구해보고 싶군.’
그걸 보면서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교수 중 한 명이 조심히 손을 들고 말했다.
“장치가 결국 폭발하긴 했지만, 그대로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더원이 끼어들면서 그의 정체를 물었다.
아까도 그가 혼자 손을 들고 말한 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누구지? 내가 보기엔 당신이 여기서 제일 똑똑하고 실력이 좋은 것 같은데.”
“제 이름은 프랭크입니다. MIT에서 교수를 하면서, 신소재 관련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프랭크 교수. 그래서 당신의 의견은? 남은 장치를 무사히 해체할 수 있다는 건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왜 폭발했는지. 그리고 그걸 막을 방법까지는 알아냈습니다.”
“그게 뭐지?”
더원의 질문에 프랭크 교수가 답하려는데.
박민준이 먼저 답했다.
“에너지를 저장하는 금속이 문제였던 거겠지?”
“맞습니다.”
“그게 전원을 차단한 뒤에도 미리 머금고 있던 전류를 발산한 것처럼 보였거든.”
“정말 대단하시군요.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저야 직접 기계 앞에서 확인했지만, 당신은 멀리 떨어져 계셨는데?”
교수의 질문에 그가 검을 들어 보였다.
“내 검도 비슷한 성질을 가졌거든.”
“그게 설마 전기를 흡수한다는 겁니까?”
“아니. 이 녀석은 전기 대신 마력을 탐한다. 그리고 그걸 머금고 있다가 도로 발산하지.”
프랭크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런 금속들이 갑자기 나타나다니. 참으로 놀랍군요. 제가 평생을 바쳐서 연구해온 것들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놀라울 것도 없어. 지금은 게이트 열리는 세상이지 않나?”
“그 말이 맞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더원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는 거잖아?”
“맞습니다. 각하.”
“그럼 인제 그만 철수하지. 더는 볼일도 없는데, 여기서 종일 있을 것도 아니잖아?”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떠나려는데.
프랭크 교수와 일부 전문가들이 머뭇거렸다.
“왜 그래? 안 내려갈 거야?”
“우리는 여기 더 남아서 기계 장치의 잔해를 살펴볼 생각입니다.”
“그러든지. 어차피 나 대신 군인들이 남아서 여길 지키긴 할 거야.”
“알겠습니다.”
더원과 수행원들이 먼저 내려갔다.
군인들도 이곳을 지킬 소수만 남겨놓고 모두 철수했다.
박민준도 그들을 따라 내려가려고 했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낀 걸까?
그가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눈을 가늘게 뜨고, 박살 난 장치를 살피고 있는 전문가들을 잠시 살폈다.
탈태환골하면서 예민했던 그의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군인들이 확인했을 때도 다른 존재를 찾아낼 수 없었는데. 이 찜찜함은 뭐지?’
군인 중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별일 아니야. 그냥 좀 더 살펴보고 내려가려고.”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보십시오.”
박민준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장치 조각을 줍고 있는 프랭크 교수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깜짝 놀란 그가 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아이고. 놀라라.”
박민준이 그의 눈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입으로는 놀랐다고 말했는데.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하군.’
실은 아까 기계 장치에 대해 말할 때부터 교수에게 이질적인 뭔가를 느낀 박민준이었다.
“잠시 따로 봤으면 좋겠는데.”
“무슨 일이신지?”
“따라오면 알 거다.”
“네.”
프랭크 교수가 박민준을 따라나섰다.
여태 주워든 기계 장치의 조각들이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걸 본 박민준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무겁지 않나? 그건 저기 있는 군인들에게 주는 게 어때?”
“네? 그냥 들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마음대로 해.”
그렇게 옥상 구석으로 향한 두 사람이었다.
경계를 서는 군인들이 가끔 왔다 갔다 할 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박민준이 돌연, 프랭크 교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대체 왜?”
놀라서 눈을 부릅뜬 그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보인 박민준이었다.
“다른 놈들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한테는 어림도 없지.”
“대체 무슨 말인지?”
“너 정체가 뭐냐? 언제 그 안에 들어간 거지?”
“왜 이러십니까? 전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그래? 말하지 않겠다면 하는 수 없지. 그럼 그냥 죽어라.”
박민준이 손에 힘을 주자, 프랭크 교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형형한 빛을 발하면서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어리둥절하고 두려운 표정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싸늘하게 바뀌었다.
“인간 주제에 날 알아보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프랭크 교수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목소리가 달라졌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인 느낌이었고, 약간의 울림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박민준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사악함도 담겨 있었다.
“설마 신인가? 그렇다면 악신이겠지?”
“역시 제법이야. 내 존재를 비슷하게 맞혔군.”
“신은 아니라는 건가? 그럼 뭐지?”
“여기서는 다들 나를 베타라고 부르던데. 그걸로 충분히 설명되려나?”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이 바로 지구를 이렇게 만든 시스템이구나.”
박민준은 이와 비슷한 존재를 만난 적이 있었다.
바로 그가 다녀온 무림 배경의 세상이었는데.
그때는 자신을 알파라고 소개했었고, 또한 세상의 신이라고도 말했었다.
반면, 베타 시스템은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민준은 오히려 알파보다 베타를 보며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놈보다 더 강하다.’
실제로 알파 시스템은 자신의 힘으로 천마를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계에서 박민준을 데려와 그와 대적하도록 만들었다.
박민준에게 천마를 처리하라는 미션을 주고, 그 대가로 다시 지구에 돌려보내 준다는 거래를 했으니.
‘알파란 놈이 천마신공을 익히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 지금 저놈은 지금의 나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박민준이 천마신공을 익히고, 장치가 파괴되면서 나온 에너지 일부를 흡수해서 탈태환골까지 이룬 걸 생각하면.
베타가 얼마나 강하고 위험한지를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박민준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당장 눈앞의 베타와 싸울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동안.
베타가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내가 너란 존재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어.”
“그게 뭐냐?”
“나에 대해 어떻게 알았지? 이 몸은 그냥 평범한 인간처럼 보여야 정상이거든. 그런데 다른 걸 알아냈단 말이지?”
박민준은 그의 호기심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이 궁금했던 걸 그에게 되물었다.
“너야말로 목적이 뭐냐? 왜 날 속이고 접근한 거지? 그럴 이유가 따로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