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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61화 (161/175)

161화

미국 샌프란시스코.

노을이 지는 금문교를 배경으로 화장품 CF 촬영이 한창이었다.

한때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로 지금까지 유명한 장소였지만, 그보다 더 관심을 받는 건 따로 있었다.

그리스가 자랑하는 S등급 헌터 엘리자베스 아테네가 이곳에 와 있었다.

촬영 스태프는 물론이고, 그녀의 팬으로 금문교 주변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으니.

그런 모습들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오히려 더 도도하게 자세를 취하며 카메라를 응시한 그녀였다.

감독도 만족스러웠는지.

활짝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금 자세가 정말 좋았습니다. 엘리자베스 님은 지금 고대 여신 보입니다. 아니 여신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감사해요. 그런데 촬영은 이제 다 끝난 건가요? 날이 더워서 그런가? 저도 조금 지치네요.”

“네. 워낙 잘해주셔서 이번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것참 다행이군요.”

촬영이 마무리되어갈 무렵.

검은색 세단 수십 대가 나타났다.

그 위로 헬리콥터도 여럿 보였다.

“무슨 일이지?”

“엘리자베스 아테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온 것 같은데?”

“어디 괴물이라도 나타났나?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세계 최강 사나이.

바로 더원이었다.

“더원이다!”

“저분이 여길 왜 온 거지?”

“정말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막 촬영을 마친 엘리자베스였다.

싱글 웃으며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그녀였는데.

더원을 발견하고 순간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촬영도 있나 보죠?”

“지금 촬영 말고 다른 일정은 따로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저자가 여길 왜 온 거지?”

“누굴? 아! 더원 님이 이곳에 오시다니.”

촬영에 집중하느라 뒤늦게 더원을 보고 신이 난 스태프들과는 달리. 엘리자베스는 점점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더원과 그의 수행원들이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오랜만이네. 여전히 아름답구나.”

“고마워. 근데 좀 비켜줄래. 이젠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눌 사이는 아니잖아?”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

“아니. 좀 피곤해서 빨리 들어가 쉬려고.”

“그렇군. 난 또 오랜만에 만났는데. 네가 나한테 인사도 없이 왜 도망치는가 했지. 잘못한 것도 없을 텐데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잘못을 해?”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정색하는 그녀를 향해.

더원이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날 따라와.”

“거절한다면?”

“나하고 한판 붙어야겠지. 그러고 싶나?”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원의 명성이 예전보다 덜하다고 해도, 내가 혼자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하지만 뭘 어떻게 알고 자신을 잡으러 온 걸까?

‘내가 뉴 유니온의 최고위 간부라는 건 회장과 같은 간부들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인데?’

그녀가 도망칠 궁리를 하는 동안.

주변을 향해 손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인 더원이었다.

“이 친구가 오랜만에 미국에 왔다고 하길래, 인사차 방문한 겁니다. 별일 아니니. 모두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의 영웅 더원의 말이었으니.

사람들이 바로 수긍하고 자리를 떠났다.

일부 남아서 사진을 찍던 자들은 요원과 더원의 수행원들이 전부 쫓아냈다.

CF 촬영 스텝들도 장비를 챙겨 모두 떠나고.

이젠 더원 일행과 엘리자베스만 남았다.

주위를 살핀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그대로 강물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잡아라!”

요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녀를 추격하려 들었다.

“모두 가만있어. 내가 직접 잡겠다.”

“알겠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막 강물을 향해 몸을 던진 순간.

덥석.

그녀의 발목을 잡아채는 데 성공한 더원이었다.

“나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그가 팔을 높게 들어 상대를 거꾸로 잡고 흔들었다.

“이거 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정말 몰라서 묻나?”

“몰라. 모른다고.”

“그럼 내가 말해주지. 뉴 유니온의 최상급 간부인 널 체포하겠다. 네 혐의는 미 대통령 암살과 국가 교란죄이다.”

***

박민준은 뉴 유니온의 페이 회장을 죽인 후.

자신이 알고 있는 놈들의 정보를 더원과 이지원에게 공유했다.

일본에는 자신의 부하가 된 국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한국과 미국, 일본에 있는 뉴 유니온의 간부급을 모두 사로잡았으면 좋았겠지만,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일이 더 많았다.

박민준과 더원이 직접 나선 건 100%의 체포 성공률을 보였지만 나머진 놓치거나 오히려 반대로 요원들이 살해당하고 있었으니.

최상급 간부들은 모두가 알아주는 실력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미국의 워싱턴 DC.

대통령 집무실.

박민준이 이곳을 찾아왔다.

그의 곁에는 블랙 존슨도 함께했다.

동료 제시카 로즈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잡는 데 실패했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동안 잡아들인 뉴 유니온의 간부가 모두 이곳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지금 내가 서 있는 발밑에 바로,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고 은밀한 감옥이 있다.”

라는 더원의 말처럼,

이곳은 S등급 각성자들조차 탈옥할 수 없는 최첨단 시스템을 자랑했다.

박민준이 더원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로 향했다.

그는 뉴 유니온을 완전히 와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더원이나 이지원 등이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은 바로 작은 리모컨 하나 때문이었다.

박민준이 잡은 간부들은 리모컨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 더원이 잡은 자들을 심문하고, 블랙 존슨에게 그들의 기억을 읽어보게 했으니.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전혀 저 물건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여태 헛수고한 건가?”

“아직 한 명이 남았으니. 마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만약 저 여자도 모른다고 하면, 이 일에 대해서는 그냥 잊어버리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뉴 유니온이라는 거대 조직을 지배했던 페이 회장이다.

그런 자가 죽으면서 만지려고 했던 리모컨이었으니.

‘뭔가 엄청난 비밀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착각이었나?’

최초 정보 제공자인 바네사 또한 전혀 모르는 물건이라고 했다.

“그 늙은이가 죽었다니. 다행이네요. 하지만 그게 뭔지는 나도 몰라요.”

그래서 블랙 존슨에게 리모컨을 건네고 관련된 뭔가를 읽어내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한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S등급 각성자의 스킬이 이 작은 물건에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페이 회장의 시체도 확인시켰는데, 역시나 기억을 읽어내지 못했다.

“네 능력도 만능은 아니구나.”

“죄송합니다. 저도 이런 적은 거의 처음입니다.”

그렇게 박민준이 혼자 생각에 잠긴 동안.

엘리자베스 아테네에게 능력을 사용한 블랙 존슨이었다.

상대의 기억을 읽어내는 데 성공한 그가 이마를 잔뜩 일그러뜨렸다.

블랙 존슨이 심각한 얼굴로 박민준에게 다가가 말했다.

“정말 큰 일입니다.”

“뭔데 그래? 자세히 말해봐.”

“그 리모컨은 지구 종말을 일으키는 물건입니다.”

“지구 종말? 겨우 이딴 걸로 그게 가능해?”

“네. 그건 세계 곳곳에 숨겨둔 게이트 발생 장치를 동시에 작동시키는 리모컨이니까요.”

리모컨을 작동하면, 인공위성들이 신호를 받고, 전 세계에 숨겨놓은 기계가 작동할 거란 말이었다.

“그거 아직 미완성이지 않나?”

“그래서 더 위험한 겁니다. 게이트를 강제로 열 수는 있는데, 다시 닫을 수가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그래? 그럼 내가 그놈을 잘 죽인 거였네.”

박민준의 말을 듣고.

블랙 존슨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자가 이걸 작동했다면, 아마 최대 출력으로 게이트가 열리고, 장치가 폭주해서 지구가 끝장났을 겁니다.”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면, 그 안에서 상급 괴물들이 나올 확률도 높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게이트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 있을 거란 말이었으니.

그 안에서 어떤 괴물이 끊임없이 나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근데 그 기계들을 어디 숨겨 놨는지 누가 또 알아? 그놈을 잡아야 찾아내서 박살을 낼 텐데.”

“그나마 다행인 건, 엘리자베스 아테네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저 여자만 알고 있는 거지?”

“회장의 연인이었으니까요. 제가 살핀 그녀의 기억으로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박민준은 그냥 그러나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더원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뭐? 엘리자베스가 그 늙은이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그래. 근데 그게 뭐라고 네가 놀라는 거지?”

“음…. 아무것도 아니야. 난 그냥….”

“너 설마 저 여자하고도 사귀었었냐?”

“사귄 것까지는 아니고, 썸만 탔었다고 해 두지.”

더 깊은 관계였던 것 같지만, 그걸 놀릴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숨겨놓은 장치가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지만, 그걸 빨리 찾아내서 없애야만 했다.

혹시 기계가 있는 곳에 지진이 일어나거나, 게이트가 열리기라도 하면, 그에 영향을 받고 스스로 작동할지도 몰랐으니까.

블랙 존슨이 밤을 새워가며 엘리자베스 아테네의 기억을 읽어냈다.

그리고 알아낸 장소가 무려 서른 군데가 넘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강대국이라 일컫는 나라에 숨겨두었으니.

더 놀라운 점은, 추후 뉴 유니온이 공개하기로 했던 게이트 차단 장치가 바로, 그것과 같은 종류라는 것이었다.

“뭐야? 그럼 게이트가 열리는 걸 막아주는 장치라고 해놓고, 오히려 열리게 하려고 했다는 거잖아?”

“맞아. 완전히 미친놈이라고 볼 수 있지.”

“그래서 그놈이 얻는 게 뭐지? 인류가 망하면 자기도 끝장나는 거잖아?”

박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장치가 미완성이라서 그렇지. 완성만 되면 게이트를 열고 닫는 걸 이 리모컨 하나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거잖아.”

“그렇구나. 그 늙은이의 손가락 하나에 전 세계가 놀아날 뻔했어.”

박민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페이 회장은 미완성된 기계를 모두 작동시키려고 했다.

어차피 자기가 죽으면 세상도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박민준을 우러러봤다.

‘저자가 아니었으면, 그 늙은이가 우릴 얼마나 농락했을까?’

리모컨을 작동해 기계로 게이트가 열리는 걸 막아주고, 그 대가로 모든 나라를 지배했을 것이다.

만약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나라가 생기면, 기계 작동을 멈추는 걸로 협박하거나, 오히려 거대한 게이트를 마구 열고, 그 안에서 나온 괴물에게 시민들이 엄청나게 죽었을 터.

더원도 다른 사람들처럼 잠시나마 박민준을 보며 존경을 표했다.

‘저놈이 지구를 구했구나. 한때는 내가 아니면 안 될 줄 알았는데. 저런 놈이 하나쯤 있으니까, 왠지 마음이 편하네.’

박민준이 그런 더원의 시선을 받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그딴 눈으로 바라보는 건데?”

“내가 뭐? 그리고 넌 말을 그따위로밖에 못하냐? 나 말고도 모두 감동한 것 같은데.”

“감동은 무슨. 이럴 시간에 기계나 찾아서 제거해야지.”

“그건 네 말이 맞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곳부터 가보자.”

그렇게 뉴 유니온의 회장이 세계 곳곳에 숨겨놓은 장치를 제거하기 위해 박민준 일행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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