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60화 (160/175)

160화

내력 대결에 들어가면 승패는 당연히 박민준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양측이 모두 천마 신공을 익힌 이상.

개인의 역량으로 생사가 판가름 나는 상황이 되었으니.

박민준이 더 젊고, 내공을 더 많이 지녔으며, 진기의 운용 또한 결코, 상대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더욱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페이 회장이었다.

무공이란 본디 내공과 외공이 조화를 이뤘을 때 최상의 결과를 이뤄내는 법.

그중 하나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큭!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페이 회장이 결국, 울컥하고 새빨간 피를 토해냈다.

박민준은 상대가 검붉은 색이 아닌 그저 붉은 피를 토해낸 걸 보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끝이 다가오는가? 잠시나마 저 괴물 같은 늙은이에게 당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최후의 승자는 박민준 그 자신이 될 것이다.

마음이 더욱 안정된 그가 결말을 보고자, 내공 운용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젠장. 저 어린놈에게 원천 진기까지 빼앗기기 시작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생명력을 유지해준다는 원천 진기였다.

아무리 페이 노인이 천마 신공을 익히고 있다고 해도, 더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었다.

‘나 혼자 죽을 순 없다. 이렇게 된 이상….’

한때 마도의 정점에 섰던 절대자답게, 그가 생각하는 결말도 사악했다.

“내가 지배자가 되지 못하고 죽는다면 이 세상도 나와 함께 망해야 한다.”

내력 대결 중에 입을 열다니?

죽거나 크게 다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박민준이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이 늙은이가 갑자기 미쳤나? 왜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지?’

천마 신공이라면 이미 박민준도 익혔으니.

딱히 대응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아니. 저자가 다른 수작을 부리기 전에 죽여야겠다.’

박민준이 내상을 입을 걸 각오하고 먼저 손을 거뒀다.

욱!

검붉은 피를 입에서 한 바가지나 쏟아낸 그가 마저 페이 화장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상대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크게 당황한 페이 노인의 얼굴이었다.

뭔가를 꺼내려는 듯.

그가 서둘러 자신의 품속으로 손을 찔러넣었다.

그 전에.

박민준의 주먹이 그의 이마를 강타했다.

펑!

경쾌한 소리와 함께.

페이 회장의 머리통이 터져버렸다.

털썩.

목 아래만 남은 시체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무려 5번의 레벨업 알림창이 떴다.

그걸 확인한 박민준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새삼스럽다는 듯.

자신의 손에 죽은 페이 회장을 시체를 내려다봤다.

“저자가 강한 건 상대하면서 알았지만, 그렇다고 레벨이 한꺼번에 5가 올라?”

7등급 괴물을 죽여야 간신히 눈에 띌 정도로 경험치가 쌓였다.

그런데 겨우 한 명 쓰러뜨렸다고, 이렇게나 많이 오르다니.

‘마지막에 왜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까? 뭔가 굉장한 무기를 숨겨 놨었나?’

호기심이 발동한 그가 회장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건?’

그 안에는 리모컨만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하단에 빨간색 버튼이 있고, 그 위에 0부터 9까지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박민준은 그게 기폭장치라고 생각했다.

‘비밀번호 같은 걸 누르면 폭탄이 터지는 건가? 이 건물 전체가 무너지도록?’

겨우 그 정도로는 내가 죽지 않을 걸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박민준도 그렇지만, 당장 그에게 죽은 페이 노인만 해도 경신법을 펼치기만 하면 건물 꼭대기에서 무사히 탈출할 능력이 있었다.

‘그럼 그것도 아니라는 건데? 대체 이게 뭐지?’

박민준이 손에든 리모컨을 두고 생각에 잠기려던 그때.

“아저씨!”

옥상으로 올라온 이지원이 그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여긴 왜 올라왔어?”

“밑에서 보니까 뭔가 큰 싸움이 난 것 같아서요. 그래서 아저씨를 도우려고 급히 뛰어 올라왔지요.”

숨이 차는지 그녀가 연신 헉헉거리고 있었다.

박민준과 페이 회장의 싸움 때문에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췄다.

그뿐 아니라, 내외부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으니.

“어차피 네가 왔어도 딱히 도움이 안 됐을 텐데. 더는 여기서 볼일이 없으니. 그만 내려가자.”

“기껏 힘들게 올라왔는데, 말 좀 좋게 해주면 안 돼요?”

대꾸도 하지 않고, 먼저 내려가려는 그를 향해.

이지원이 또 목소리를 높였다.

“근데 아저씨.”

“왜?”

“이 머리 없는 시체가 설마 그자인가요?”

박민준이 뒤돌아서며 답했다.

“맞아. 뉴 유니온의 회장 늙은이였지.”

“죽이지 않고 사로잡을 순 없었나요?”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저자가 죽든 말든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지?”

“아저씨의 실력이라면 저자를 죽이지 않고 충분히 살려서 제압할 수 있었을 것 같아서요.”

잠시나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국제적 규모의 조직이었으니.

그 대표를 잡아서 심문하면, 얻어낼 것이 많지 않았을까?

그게 국가조직에 속한 헌터 이지원의 생각이었다.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저자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설마요?”

“그리고 살려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인간이었어.”

“그 정도였다고요?”

이지원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였지만,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난간에서 몸을 훌쩍 던졌다.

그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는 이지원이라서, “위험해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아니. 진짜 너무하네. 계단으로 힘들게 올라왔는데. 나 좀 같이 데리고 가주면 좋잖아? 저렇게 자기 혼자 내려가기야?”

그녀가 투덜거리던 그때.

다시 나타난 박민준이었다.

“나 때문에 올라왔어요?”

“아니.”

“그럼 왜 다시 온 건데요?”

“검을 깜빡했다.”

휙!

그가 허공섭물을 펼치자 시체 옆에 있던 검이 공중에 떠올랐다.

탁.

검을 손에 쥔 그가 이번엔 바로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고, 이지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요? 여기서 뭐 또 할 일이 남았어요?”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이더군.”

“그건 나도 알아요.”

고개를 작게 끄덕인 그가 다시 난간으로 향했다.

“알면 여기 오래 있지 말고 바로 내려와라.”

그 말만 남기고 또 혼자 떠나나 싶었는데.

박민준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빨리 내려가게 도와줄까?”

“네.”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든 이지원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그를 놓칠세라 거의 뛰다시피 박민준에게 다가갔다.

곁에 선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슬쩍 내밀었다.

박민준이 내민 손을 잡으려고 한 거였는데.

허우적.

허공만 휘저었다.

‘뭐야?’

어리둥절한 그를 바라본 순간.

그대로 그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마치 방금 검을 끌어당겼던 것처럼.

허공섭물을 이용해 거리를 두고 이지원을 든 박민준이었다.

순식간에 바닥에 내려서고.

“됐다. 난 이만 가볼 테니. 넌 여기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짓도록 해라.”

“알았어요,”

그가 떠나려다 말고, 뭔가를 이지원에게 보여줬다.

“아! 이걸 너한테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그게 뭔데요?”

“회장 늙은이가 죽기 전에 꺼내려던 물건이다.”

“무슨 기폭장치같이 생겼는데요?”

“너도 전혀 모르는군.”

“네. 저도 처음 보는 거니까요. 근데….”

“왜?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나?”

“아니에요.”

“그럼 이게 뭔지 알아내면 나에게 연락해라.”

“네.”

그녀가 뭔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대놓고 보였지만, 박민준은 이미 그녀의 곁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이렇게 그냥 가버렸네?”

이지원이 혼자가 되길 기다렸다는 듯.

한국 게이트 관리국 요원들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부국장님! 괜찮으십니까? ”

“난 괜찮아요. 위에서 아무 일도 없었거든요.”

다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으면 그걸로 충분히 좋은 일일 텐데.

부하가 듣기에는 그게 불만이라는 것 같았다.

‘부국장님이 왜 심통 난 것 같아 보이는 거지?’

줄곧 밑에 있어서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혹시 뭔가 안 좋은 걸 보셨나?

그가 서둘러 옥상 일을 물었다.

“저 위의 상황은 어떤지요?”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그냥 머리 없는 시체 한 구를 본 게 전부예요.”

“시체요? 그럼, 저기로 시체감식반을 올려보낼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시체는 저기 있으니까요.”

흠칫.

그녀의 말을 듣고 놀란 부하였다.

서둘러 이지원이 가리킨 방향을 돌아봤다.

몸통만 남은 시체가 덩그러니 한쪽 바닥에 놓여 있었다.

“아니.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습니까?”

“아까 보니까, 아저씨가 그것도 챙겨서 갖고 내려오더라고요.”

“아저씨요? 위에 또 누가 있었습니까?”

“됐어요. 그만 질문해요. 누가 보면 내가 부하인 줄 알겠네.”

“죄송합니다.”

“시체는 감식반에 넘기고,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출입을 막고 주변을 봉쇄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뉴 유니온을 세운 장본인이자,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회장을 죽였으니.

이젠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이지원의 생각과는 달리.

박민준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

부산.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박민준이었다.

곧장 해운대로 향해 가장 큰 호텔로 들어섰다.

뉴 유니온의 최고 간부 중 하나가 이곳에서 장기 투숙객으로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텔에서 제일 좋은 객실 앞.

박민준이 눈을 감고 다시 기감을 살폈다.

‘역시 이 건물에서 제일 강한 놈이 이 방에 있다.’

세계적인 조직의 최상급 간부라면 당연히 무력도 강하지 않을까?

바네사 같은 예외가 있긴 했지만, 그건 무척 예외적인 경우였으니.

그가 망설이지 않고, 단단히 잠겨 있는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통째로 뜯겨나간 문 너머로 얼빠진 표정을 지은 중년인이 보였다.

“갑자기 뭐야?”

휙!

박민준이 대답하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남자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

몸을 점혈 당한 중년인을 향해 박민준이 뭔가를 꺼냈다.

죽은 페이 회장의 리모컨이었다.

“이게 뭔지 아나?”

어리둥절.

리모컨을 보고도 시큰둥했던 중년 남자였다.

그는 오히려 상대가 박민준인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게 뭔데? 겨우 그딴 거나 물어보려고 아무 죄 없는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건가? 그 유명한 영웅 박민준이?”

“죄가 없다니? 네놈은 참 뻔뻔하구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그냥 한국에 휴가차 방문했을 뿐이라고.”

“네놈이 말한 휴가라는 게 뉴 유니온의 최고 간부 회의냐?”

“아니. 그걸 어떻게?”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조차도 모르게 뉴 유니온의 일원으로 활약해 온 S등급 헌터 데니스 창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어찌 그걸 알았지? 내가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고?’

미국에서 잡혔던 텍사스 방울뱀처럼.

그 역시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바네사 회장이 자신을 배신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상대가 리모컨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보였지만, 박민준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

끄아아악!

엄청난 비명이 호텔 방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살려달라는 말이 수백 번 반복되었지만, 결국, 박민준이 원하는 얘기는 그에게서 들을 수 없었다.

“넌 정말 이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몰라. 모른다고. 그게 대체 뭔데 나한테 이러는 거야?”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그가 소리쳤지만, 박민준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마저 데니스 창의 입까지 점혈한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