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움찔.
박민준의 말을 듣고, 페이 회장이 깜짝 놀랐다.
‘천마의 무공이라니?’
그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네놈이야말로 진짜 정체가 뭐냐?”
대답하는 대신.
박민준이 상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넌 천마가 아니야. 애초에 그놈은 죽었으니. 천마일 리도 없겠지만 말이지.”
“무슨 소리를? 죽긴 누가 죽어? 내가 바로 14대 천마다.”
“와. 네가 진짜 천마라고? 이걸 믿어 말아?”
뭔가 이상하다는 듯.
회장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박민준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서로 얼굴을 거듭 확인했지만, 딱히 기억나는 건 없었다.
“눈매가 조금 닮긴 했지만, 적어도 넌 내가 아는 그놈이 아니야. 근데 천마라는 게 대대로 내려오는 자리였나? 14대라니?”
스윽!
자신을 천마라고 주장하는 노인이 들고 있던 지팡이 치켜들었다.
박민준은 그게 무슨 특별한 무기인가 싶어서 쳐다봤지만, 그저 평범한 나무 재질일 뿐이었다.
“고수는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 하지만 그건 다 개소리야. 내가 지금 증명해 보이도록 하지.”
그의 말을 듣고, 회장 노인이 피식 비웃었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네놈은 아직 절대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나의 승리다.”
“거 참. 늙어서 성격이 왜 그리 급해? 그런 말은 날 이기고 나서 하든지.”
이번엔 박민준이 먼저 몸을 날렸다.
그걸 본 페이 회장의 지팡이에서 검붉은 색의 검강이 길게 솟구쳐 올라왔다.
그 길이가 무려 5m.
상대의 강함을 보고,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표정의 박민준이었다.
“그런 거대한 검강이라니. 정말 대단하긴 하군. 하지만 겨우 그걸로는 그 녀석을 자청할 순 없지.”
다른 차원에서 만났던 천마는 저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놈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박민준을 농락했었다.
‘그렇다면 저 노인은 천마의 무공을 익혔지만, 아직 극성은 아니란 말인데. 어디서 그놈의 무공을 배운 거지?’
생각하는 와중에도 그의 검에서 백색의 검강이 생겨났다.
그 크기가 무려 5m.
노인의 것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그걸 상대도 느꼈는지.
회장 노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왜? 네가 하는 걸 난 못할 줄 알았냐?”
역시나 대답이 없는 적을 향해 박민준이 자신의 백색 검강을 밀어 넣었다.
인간들이 만든 결과물이 격돌했는데.
콰콰콰쾅!
천둥이 치고, 동시에 산사태가 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여파 또한 대단했다.
조종사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옥상에 착륙해있던 헬리콥터가 균형을 잃고, 빌딩에서 밀려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쾅! 쾅!
검강과 검강이 격돌할 때마다.
바닥에 하나둘씩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그게 누적되어서 빌딩 전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니.
삐! 삐! 삐~
“본 건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건물 안에 계신 분들은 모두 신속하게 밖으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관리사무소에서 대피하라는 긴급 방송이 반복되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자연재해와 같은 격돌에서도 결코 물러섬이 없는 두 남자였다.
다만, 박민준의 표정에는 아직 여유가 남아있었다.
‘내가 아직 비급에 적힌 천마 신공을 익히진 못했지만, 그걸 공부한 덕분에 저자의 공격을 미리 읽어낼 수 있었다.’
만약 천마의 무공을 그가 미리 알지 못했다면, 이렇게까지 여유를 부리지 못했으리라.
지금쯤 둘 중 한 명은 바닥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렸을 테고, 그건 아마도 박민준이었을 가능성이 더 컸다.
검강의 크기는 동일했지만, 어째서인지 노인의 검강이 더 밀도가 높았다.
그의 공격 또한 일전에 박민준이 상대한 천마보다 위력은 약했지만, 초식의 정밀함은 더 뛰어났다.
‘저 늙은이는 결코 가짜 천마 따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뉴 유니온의 페이 회장은?
무공으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지만, 나이를 먹은 건 극복하진 못했는지.
계속된 공방으로 잔뜩 지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입으로 거친 숨을 크게 몰아쉰 그가 훌쩍 뒤로 몸을 날렸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성취를 보일 수 있단 말이냐?”
무려 100살 가까이 나이를 먹는 동안에 꾸준히 천마신공을 수련해온 페이 회장이었다.
천마 신교의 금역인 조사동에서 폐관 수련을 하던 도중,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
마침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던 터라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으니.
그가 새로 마주한 세상은 거대한 강철 새가 하늘을 날고, 우마가 아닌 마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이상한 곳이었다.
공기는 탁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작은 상자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다.
그렇게 지구에서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일궈왔다.
박민준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가 결말을 보려는 듯.
지팡이를 버리고, 두 손에 모든 기를 끌어모았다.
그 모습을 본 박민준은 감히 상대를 경시하지 못했다.
‘저건! 천지역전의 초식이다.’
천마 신공을 대성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저자가 어찌 저걸 쓰겠다는 거지?
박민준의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페이 노인의 주변으로 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걸 빨아들이겠다는 듯.
기를 마구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을 뒤집어 바꿔버리겠다는 광오한 초식 명처럼.
노인이 양손을 움직일 때마다 기의 파동으로 태풍이 불고, 공간이 일그러졌다.
‘저건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굳이 멍청하게 저런 것과 싸울 필요도 없지.’
상대의 내공이 무한은 아닐 테니.
우선은 자리를 피하고, 지치면 그때 다시 돌아와 목을 벨 생각이었다.
박민준으로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 거였다.
하지만 그런 그를 상대하던 페이 노인은 상대가 꽁무니를 빼는 모습을 보고,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난 남은 목숨을 바쳐서 끝을 보려고 마음을 먹었건만, 저놈은 어찌 저 정도 고수가 되어서 대결을 피한단 말인가?’
그가 바랐던 건, 박민준과의 동귀어진이었다.
어차피 패배가 짙으니.
원천 진기의 일부까지 끌어써서 적과 함께 죽겠다는 작정이었는데.
상대가 저렇게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버렸으니.
닭 쫓던 개 신세처럼.
그저 처량한 눈빛만 남기고 스스로 자멸해 버리는 듯 보였다.
잠시 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있는 노인 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박민준이었다.
숨을 쉬지 않는 듯.
페이 회장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목을 벨 필요도 없이 그대로 그냥 죽은 건가?”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검을 들었다.
‘목을 베고, 깨끗하게 끝을 본다.’
그가 상대의 목덜미를 향해 검을 내려치는 순간.
페이 노인의 몸이 흐릿해졌다.
“이형환위?!”
덥석.
박민준의 두 팔을 움켜쥔 회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치사한 늙은이가 죽은 척하다니!”
“네놈이 무인의 자존심이 없는 녀석이라면 나 또한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내로남불이라….
원래 내가 하면 모든 게 정당하고, 남이 하면 더럽고 치사한 법이었다.
내공도 바닥나고, 몸도 말라비틀어져서 깡마른 노인이건만.
박민준은 그의 손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내 내공이 줄어들다니? 설마?”
“역시 이것마저 알고 있구나. 그래. 이게 바로 천마역천흡기공이다.”
“빌어먹을.”
“네놈의 젊고 싱싱한 내공을 내가 전부 빨아먹어 주마. 으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접근하지 않고 멀리서 검을 던져서 목을 쳐버리는 건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박민준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자신의 내공을 보며, 위급함을 느꼈다.
점점 혈색이 좋아지는 노인과는 반대로 박민준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무슨 방법이….’
천마역천흡기공의 구결이라면 박민준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 그걸 응용해서 조금이나마 괴물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도 했었다.
하지만 상대는 오리지널 천마역천흡기공을 펼치고 있었으니.
‘과연 통할까?’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박민준이 천마 신공의 비급에 적혀있던 구결을 반복하며, 상대의 역천흡기공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가 중얼거리는 걸 듣고, 페이 회장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내공을 운용 중이라, 그가 차마 입을 열지는 못했다.
대신 거칠게 흔들리는 눈빛만큼이나 요동치는 페이 노인의 마음이었다.
‘정확한 구결을 알고 있지 않은가? 이건 내 아들 녀석에게만 전수했는데? 어찌?’
그렇다.
박민준이 죽인 천마는 페이 노인의 아들이었다.
무림의 최강자를 자처하던 부자가 박민준 한 사람과 차원을 달리해서 싸우다니.
그런 사실을 모르는 페이 노인은 박민준의 행동에 불안함을 느끼고 내공 운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한편, 박민준은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한 천마 신공 습득에 한발 더 나아간 걸 느끼고 있었다.
‘나 혼자 비급을 가지고 배우려 했던 것과는 다르다. 지금은 온전히 천마 신공을 느낄 수 있다.’
박민준이 천마연천흡기공을 당하면서, 그 기운을 자신의 내부에서 마주한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확실한 천마 신공의 족집게 과외 선생님을 만난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깜빡이는 알림창이 보였다.
- 신규 스킬 : 천마 신공 획득.
아! 드디어!
여태 박민준의 손목을 잡고 내공을 흡수하던 페이 노인이었다.
‘어린놈이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내공을 가졌군. 하지만 오히려 더 좋다. 모두 내 것이 될 터이니.’
그렇게 점점 차오르는 자신의 단전을 느끼며 흡족해하던 그였는데.
‘뭐지? 방금 뭐가 달라진 거지?’
박민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는 걸 보고,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내 몸으로 저놈의 내공이 더는 들어오지 않는다?’
분명 최대한으로 내공을 운용해서 천마역천흡기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생선처럼 변할 때까지.
상대의 내공을 모두 빨아먹어야 멈추는 극악의 무공이거늘.
‘어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페이 회장이 더는 고민할 수 없었다.
단순히 박민준에게서 흡수하던 내공의 흐름이 멈춘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내공이 역으로 상대에게 빨려 나가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불가능하다. 저놈이 구결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야.’
천마 신공을 오래 익히고, 막대한 내공을 쌓은 뒤.
구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게 바로 천마역천흡기공이었다.
그런데 어찌 저 어린놈이?
우리 천마 가문의 핏줄도 분명 아니거늘.
극도로 당황한 노인과는 달리.
박민준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좋았어! 내공이 빨려 나가는 걸 막았다. 거기다 이미 빼앗긴 내 것을 도로 되찾기 시작했다.’
그가 기뻐하는 것도 잠시.
페이 회장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래도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노릇.
그가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내공 운용에 집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서로의 내공을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며 시간만 자꾸 흘렀다.
시스템으로 익힌 박민준의 천마 신공과 페이 노인이 정식으로 익힌 천마 신공 사이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지원을 이끌고 나타난 이지원이 크게 당황했다.
그와 만나기로 했던 빌딩에서 사람들이 탈출하고 있었으니.
“무슨 일이지? 저 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