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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57화 (157/175)

157화

“뉴 유니온의 회장은 각성자가 아닙니다.”

이번에도 박민준을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나 더원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일반인이면서 S등급 각성자를 압도할 정도로 강하다는 건가? 그건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사실이야. 이자가 스스로 기억을 왜곡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블랙 존슨은 그저 기억을 읽는 것일 뿐.

그걸 조작할 순 없다.

더원은 아직 그의 능력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블랙 존슨의 말을 계속 부정했다.

“거짓말을 할 거면 그럴싸한 말을 했어야지. 어떻게 일반인이 S등급 각성자 세 명을 손가락 하나로 제압할 수 있겠어?”

“가능하다.”

박민준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더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너도 저 터무니 없는 말을 믿는 거냐?”

이지원도 블랙 존슨의 능력을 모르고 있는 터라.

더원의 말을 거들었다.

“저도 선배님의 말을 믿을 수 없어요.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고요. 뭔가 오류가 있는 게 분명해요.”

자신의 말을 믿든 안 믿든 간에.

블랙 존슨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박민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받은 그가 블랙 존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네사란 여자에게 얻은 정보와 네가 지금 한 말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박민준이 블랙 존슨의 말에 놀라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앞서 바네사가 거래를 대가로 준 정보와 다른 게 없었으니.

그가 더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넌 남아서 여기를 찾아오는 적들을 처리해라.”

“놈들이 여길 계속 올까? 벌써 3명이나 사로잡혔는데?”

그 말에 블랙 존슨이 대신 답했다.

“적어도 몇 명은 반드시 더 찾아올 겁니다. 회장이란 자가 겨우 3일의 기한밖에 주지 않고 일을 처리하라고 명령내렸거든요.”

“그렇군. 그나저나 너 언제부터 그런 능력을 가졌던 거지? 왜 난 여태 몰랐던 거야?”

미국을 대표하는 S등급 헌터로서 더원과 블랙 존슨은 상당히 오랜 기간 안면이 있었다.

5번이 넘게 협동작전을 펼친 적이 있을 정도로, 서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단 한 번도 저런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박민준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꼭꼭 숨겨온 능력을 바로 개방해버렸다.

‘정말 알 수가 없군. 박민준 저놈이 블랙 존슨의 주인이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더원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블랙 존슨의 무력이 최상급은 아니었지만, 그가 쌓아온 명성은 정말 대단했다.

미국 대통령조차 그에게 함부로 명령을 내리지 못했었는데.

한 나라의 정부도 아닌 저놈에게만 충성한다고?

‘약점이라도 잡혔나?’

그렇다면 말이 된다.

무슨 약점인지 모르겠지만,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때 세계 최강 최고 레벨을 자랑한 자신 또한 박민준의 말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이거 남 말이나 할 때가 아니었군. 지금의 나도 저놈의 부하처럼 행동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물론 박민준이 그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해줬고, 뉴 유니온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는 중이긴 했다.

애써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한 더원을 홀로 남겨두고.

박민준과 이지원이 한국으로 향했다.

블랙 존슨은 그들을 따라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저는 제시카 로즈를 찾을 때까지 미국에 남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더는 네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으니까.”

“감사합니다.”

충분히 기분 나빠할 수 있는 그의 말이었지만, 블랙 존슨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가족과 마찬가지였던 동료를 마음 놓고 찾을 수 있게 된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

뉴 유니온의 회장실.

와장창.

적막 속에서 찻잔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회장님 제가 바로 치우겠습니다. 헉! 저게 뭐지?”

그걸 듣고 놀라서 뛰어 들어온 사람이 순간 흠칫 놀랐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회장의 몸 주변 가득히.

붉은색의 수증기 같은 게 넘실거리고 있었으니.

감히 그쪽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도로 나가지도 못한 비서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눈치만 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회장의 몸을 둘러싼 혈기가 점점 짙어지더니.

그 범위가 급격하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내, 비서가 서 있는 자리까지 번지더니.

붉은 기운이 그의 몸에 닿은 부위부터 말라비틀어지는 모습이었다.

꽈드드드득!

순식간에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미라처럼 변한 비서였다.

아악!

비명과 함께.

쿵!

그의 몸이 더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이미 숨이 끊어졌는지.

움직임이 더는 없었다.

비서의 몸에서 도로 빠져나온 혈기가 회장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원래 하나였다는 듯.

그의 몸속으로 모두 빨려들어 갔다.

번쩍.

눈을 뜬 회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운기조식만 한 게 없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운하다는 얼굴로 기지개를 켜다가, 바닥에 떨어져 깨진 찻잔과 말라비틀어져 죽은 비서 발견했다.

쯧쯧.

작게 혀를 찬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누구 아무나 들어와서 저 지저분한 것들을 당장 치우도록 해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자네. 어디서 뭐 하고 있었나?”

“어르신 대신 잠시 보고를 받느라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 사이에 저 녀석이 멋대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 덕분에 오랜만에 포식할 수 있었어. 제법 영혼이 맑은 아이였던 건가?”

“네. 제가 직접 고른 녀석이었습니다. 어리지만 재능이 남달랐지요.”

“내가 괜히 잡아먹었군.”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만족하셨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사람이야 더 구하면 그만이지요.”

고개를 끄덕인 회장이 방을 나가고.

혼자 남은 남자가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깨진 찻잔과 시체가 동시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

한국에 돌아온 박민준은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곧장 강남으로 향했다.

그를 그곳까지 태워준 이지원은 게이트 관리국에 가봐야 한다면서 사과의 말을 건넸다.

“저와 게이트 관리국이 나서서 도우면 좋을 텐데. 미안해요. 이렇게 아저씨 혼자 가게 해서.”

“됐다. 너희들이 곁에 있어 봤자, 도움은커녕 괜히 방해만 될 뿐이다.”

분하긴 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사람을 모아서 이곳으로 돌아오도록 할게요.”

“마음대로. 대신 날 귀찮게 하거나,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다. 다들 알아서 살아남도록 해라.”

“그건 당연하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하고, 차를 돌려 떠났다.

혼자 남은 박민준이 고개를 쳐들었다.

60층은 족히 될 법한 고층건물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 RWNJ KOREA -

바네사가 회장인 RWNJ의 한국지부 본사 건물이었다.

박민준도 이전에 몇 번이나 앞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바네사의 말로는 뉴 유니온의 최고 총수가 거의 항상 이곳에서 머문다고 했다.

“이렇게 대놓고 있었는데. 내가 이걸 몰랐다니.”

다른 차원에서 무공을 배운 덕분에 감각이 그 누구보다 예민한 박민준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는 아무런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말인즉.

‘회장이란 늙은이가 반박귀진에 달한 고수이거나, 이 건물에 기운을 숨겨주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는 거겠지.’

둘 중 뭐가 되더라도, 박민준은 딱히 상관없었다.

상대가 전설이라 불리는 반박귀진을 성취했다고 해도 박민준 또한, 반박귀진을 이룬 상태였으니.

‘거기다 난 한국에 돌아와 베타 시스템까지 가지게 되었다. 놈과 싸운다면 내가 더 유리하다. 반드시 이긴다.’

그리고 상대가 천마가 아닌 이상.

박민준은 자신이 질 거란 생각을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았다.

벽을 타고 꼭대기로 올라갈까?

아니면 정문으로?

잠시 고민한 그가 정문을 택했다.

어차피 상대가 엄청난 무공을 지닌 자라면, 벽을 타고 올라가는 순간, 박민준의 기척을 느낄 수 있을 테니.

굳이 내공을 소모해가며 뜨거운 햇빛을 맞을 필요는 없단 계산이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밖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맹한 기운이 꼭대기 층에서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반박귀진이 아니라 그냥 건물에 특수한 장치가 있었던 모양이군.’

근데 상대의 기척을 느낀 뒤로 박민준의 표정이 시큰둥해졌다.

‘강하긴 하지만, 내 기대 이하다. 이 정도라면 겨우 더원 녀석이 혼자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서 블랙 존슨이 말했던 것과는 달리.

뉴 유니온의 회장으로 추정되는 기운에 대한 박민준의 평가는 야박했다.

물론 비각성자로서 한때 세계 최강 헌터로 군림한 더원과 동급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박민준을 긴장하게 만들 수조차 없었으니.

‘아쉽지만 오늘도 그냥 몸이나 푼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가볍게 회장과 간부들만 찾아내 죽이기로 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그런 그의 앞을 막아선 건물 관리 직원들이었다.

모두가 정장을 입고 출입하는 건물에서 그 혼자 무척이나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니.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 박민준 씨?”

그를 수상하게 여기며, 다가온 직원들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박민준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날 알고 있나?”

“당연하지요. 박민준 씨는 우리 한국의 자랑이시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 레벨을 가진 최강의 S등급 헌터.”

“그럼, 말이 좀 통하겠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이 건물 꼭대기 층에 좀 올라가 보고 싶은데.”

“혹시 사전에 지부장님과 약속이라도 하고 오신 겁니까?”

“그건 아닌데. 아무하고도 약속 따윈 하지 않았어.”

“아…. 그건 좀 곤란한데요. 아무리 박민준 씨라고 해도 그렇게 막 올려보내면 저희 모두 여기서 잘릴 겁니다.”

“그래? 그건 좀 그렇네. 우선은 알았어.”

처음 박민준이 이 건물에 들어설 때만 해도 자신을 막아서는 적을 향해 거침없이 손을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듯이.

로비엔 그냥 평범한 일반인들뿐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만났던 간부급 인사는커녕 각성자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굳이 한국에서 내 이미지를 스스로 깎을 필요는 없지.’

그가 건물 밖으로 도로 나가는 척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투명화하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갑자기 멋대로 문이 열리고, 혼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경호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갑자기 왜 저래?”

“고장인가 봐. 내가 유지보수팀에 연락할게.”

“그나저나 아까 박민준 봤어?”

“나도 같이 있었잖아.”

“그랬나? 아무튼, 그 사람. 내 생각보다 별로 강해 보이지가 않던데. 소문이 모두 거짓이려나?”

“너 그런 말 두 번 다시 하지 마.”

“너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아! 맞다. 네 동생이 오산대학교에 다닌다고 했었지. 그럼 그 오산역에 괴물이 나타난 일 때문에?”

“그래. 그러니 절대로 그딴 소리 꺼내지도 마. 그 아구창을 날려버릴 테니까.”

띵!

꼭대기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다.

박민준 엘리베이터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그를 향해 다가왔다.

‘아직 투명화를 풀지 않은 상태인데? 날 감지했다는 건가? 그렇다면 얘기가 좀 다르지. 아주 재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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