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RWNJ]
리월드 뉴 제너레이션 컴퍼니.
게이트가 열린 뒤 급성장했고, 지금은 세계 10대 기업에 반드시 손꼽히는 굴지의 다국적 회사이다.
바이오 분야를 이끄는 선두 그룹이면서 최근 사업 확장을 위해 양자역학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룹의 회장은 바네사란 이름은 가진 젊은 여성으로, 이제 겨우 20대 후반이었다.
처음엔 회사 안팎의 거의 모두가 그녀의 회사 운영 능력을 의심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그녀가 취임한 뒤로, 시장 점유율과 순이익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 결과 이미 고점이라고 평가받던 RWNJ 주가가 27%나 성장했으며, 지금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또한, 회사 직원의 고용을 적극적으로 늘리면서 사회적으로도 아주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바네사 회장님이야말로 신이 내린 인재야.”
“회장님이 젊으시니. 향후 50년은 더 RWNJ를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어.”
그런 바네사 회장이 먼저 언론사 인터뷰를 요청했다.
“여러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RWNJ 본사로 초대할 테니. 전 세계 언론이라면 누구든 이곳에 오셔서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그것도 겨우 하나의 방송사가 아니라,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방송국을 대부분 불렀다.
기자들은 그녀가 회사 운영의 큰 전환을 발표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성장만 해왔으니.
이젠 그 한계에 다다랐다는 소문도 있었다.
“세상에. 본사를 공개했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리다니.”
“대체 무슨 발표를 하려고 우릴 이렇게 불러모은 걸까?”
“저기 마침 바네사 회장이 나오고 있군.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곧 알 수 있게 되겠지.”
세상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상황에서도, 그걸 즐기기라도 하는 듯.
자신과 가까운 앞줄에 앉은 기자들 몇 명과 눈을 마주치며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연 바네사였다.
“급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들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회장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그녀의 인사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목소리를 높인 한 기자가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눈총을 받았을 텐데.
지금은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는지.
침묵만 맴돌았다.
바네사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지.
그대로 말을 이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을 급히 부른 이유는 바로, 세간에 잘못 알려진 오해를 풀기 위해서입니다.”
“오해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최근 미국의 톰 베이 대통령께서 사망한 일을 두고, 그 배후로 지목된 단체에 대해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웅성웅성.
기자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갑자기 저 얘기를 왜 꺼내는 걸까?”
“설마 RWNJ가 뉴 유니온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가?”
크크 흠.
헛기침해서 다시 기자들을 조용히 시킨 바네사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RWNJ 그룹은 뉴 유니온과 한배를 타고 있습니다.”
“테러조직과 한패라는 말입니까?”
“아니요. 뉴 유니온은 테러조직 따위가 아닙니다. 그들은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 집단일 뿐입니다.”
또한, 저명한 과학자 갈랜드 박사도 뉴 유니온에 속해 있다는 말을 전했다.
“미국 정부에서 공식 발표가 있었는데요? 그걸 정면으로 부정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최근 사업을 확장하면서 뉴 유니온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억울한지 그걸 말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그녀의 뒤로 거대한 스크린 화면이 떴다.
일반인인 기자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복잡하게 생긴 기계 장치 사진과 도면이 펼쳐졌다.
“저게 뭡니까?”
“이건 뉴 유니온과 우리 RWNJ가 공동개발한 양자 필드 형성 억제 장치입니다.”
“양자 필드 형성 억제 장치라니요? 설마 그게 게이트 열리는 걸 막아주는 기계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직은 연구단계에 있지만, 시제품까지 완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시제품이라면? 그게 정말 효과가 있단 겁니까?”
“당연하지요. 그래서 여러분을 이렇게 부른 겁니다. 모두에게 알리고, 이걸 공유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바네사 회장의 말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게이트가 열리는 걸 막아주는 장치를 만드는 데 이미 성공했다니.
그걸 현장에서 들은 모두가 당연히 놀랄 수밖에.
그리고 양자 필드 형성 억제 장치의 개발 성공 소식보다 더 큰 파란을 몰고 온 건 바로.
뉴 유니온과 RWNJ가 그 장치를 만드는 기술을 원하는 국가나 회사 그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유해주겠다는 회장의 충격 발표였다.
“그럼 미국 정부는 왜 뉴 유니온을 대통령 암살 조직이라고 발표한 겁니까?”
“우리가 이번 기술 개발에 성공한 걸 알고 사실을 조작한 겁니다. 뉴 유니온과 RWNJ가 망하면, 그걸 미국에서 독점할 테고요.”
“증거가 있습니까?”
“네. 백악관 근처 착륙장을 폭파한 미사일은 바로 미국에서 스스로 쏜 거라는 걸 우리 RWNJ의 인공위성이 밝혀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기자들 몇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톰 베이 대통령을 죽인 미사일이 미국 내에서 발사된 거였다니. 이보다 더 놀라울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 온 기자가 손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더원 부통령은 미국도 그 기술을 개발 중이며, 완성되면 공유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회장님. 당신 말은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아무리 누명을 씌우려고 해도, 자국의 대통령을 죽일 이유는 없을 텐데요?”
세계 최고 최강 S등급 헌터로 명성이 드높았던 더원이라서. 그의 말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통했다.
그래서 지금 바네사의 발표를 듣고 순간 혹하던 사람들도 순간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그런 기자들을 향해.
바네사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건 우리 기술을 빼앗으려는 그들의 수작입니다. 하지만 전 그들과 다릅니다. 1개월 안에 시제품의 최종 실험까지 마치고, 여러분에게 기술을 공유할 겁니다.”
한 달 뒤에 기술을 공유한다니.
그 장치가 전 세계 국가에서 작동하면, 세상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 희망을 품게 된 사람들은 이제 더원이나 미 정부의 발표가 아니라 바네사 회장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다.
과연 그녀가 기술을 실제로 공유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희망은 그렇게 모두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더원은 크게 당황했다.
그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박민준에게 말했다.
“우리가 놈들에게 먼저 한 방 먹이려고 했었는데. 이렇게나 빠르게 대응하다니.”
“겁도 없이 날 이용하려 들고, 미국도 건드는 놈들인데. 이 정도는 예상했었다.”
“정말?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건데?”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내야지. 그리고, 책임자를 모조리 죽인다.”
“놈들이 게이트 차단 기술을 공유하겠다고 말해버렸는데. 그걸 우리가 건들면 아주 난리가 날 거야.”
그래서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이번엔 경거망동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만약 그런 소식을 접한 뒤에 미국에서 대놓고 행동에 나서면?
미국이 게이트 차단 기술을 독점하려 한다는 바네사의 말을 스스로 뒷받침해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런 더원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박민준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럼 우리가 한 일인 걸 모르게 하면 되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적에게 당하면 그걸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겠어?”
“아! 넌 그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
더원은 박민준이 몸을 투명화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충분히 오랫동안.
‘나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녀석이니. 투명화한 상태에서 놈들을 쓸어버리겠다는 말이구나.’
그렇다면 CCTV에 찍힐 일도 없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절대 알아낼 수 없을 테니.
뉴 유니온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터.
더원은 순간, 박민준이 자신과 같은 편이 된 게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
‘저런 놈이 계속 날 적대하고 죽이려 들었으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사이에.
이지원이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뭔지는 잘 몰라도, 아저씨가 나서면 가능할 것 같긴 한데. 문제가 하나 남아 있잖아요?”
“어떤 문제?”
“뉴 유니온의 본거지와 책임자들을 어떻게 찾아낼 건데요?”
“그건 문제없어.”
“네? 그렇게 혼자만 자신 있어 하지 말고. 나에게 좀 더 설명해줘요.”
“아까 영상에서 회장이라고 떠든 그 여자애를 만나보면 될 테니까.”
“바네사 회장이요? 만나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녀를 만난 뒤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꼬리가 잡힐 텐데요?”
“그때도 보이지 않게 찾아가면 돼.”
“알았어요. 하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도 생각해놔야 해요. 아니면 계속 저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고 말 테니까요.”
박민준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가 더원과 이지원을 동시에 바라봤다.
“방법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야. 내가 그 여자를 만나는 동안. 너희들이 할 일이 따로 있어.”
“그게 뭔데요?”
“제시카 로즈를 찾아내.”
그녀는 더원 암살 시도 이후로 종적을 감췄다.
열심히 추적한 끝에 미 정부에서 내린 결론은 그녀가 아직 미국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거라면 문제없어요. 이미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그 여자를 찾고 있으니까요.”
“그걸로는 부족해. 한국에 가서 추가로 도움을 청해.”
“누구에게요?”
“우리 집에 가면 놀고 있는 놈이 하나 있을 거야. 그놈을 데려가.”
박민준이 말한 건 블랙 존슨이었다.
제시카 로즈와 같은 팀으로 활동하면서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사물과 장소의 기억을 읽는 특기가 추적에서 큰 활약을 보일 터였다.
“아저씨 가족 중에도 능력자가 있어요?”
“내 가족은 아니고, 경호원이야.”
“알았어요. 누군지 몰라도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요.”
“녀석은 분명 그 여자를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렇게 박민준은 RWNJ의 바네사 회장을 혼자서 만나보기로 했다.
더원은 이지원이 한국에서 조력자를 데려오는 대로 합류.
제시카 로즈를 이른 내에 찾아내 생포하고, 뉴 유니온의 본거지를 알아낼 작정이었다.
***
한국. 무궁화 마을.
박민준의 집.
세상이 떠들썩한 것과는 달리.
이곳은 평온하기만 했다.
점심 준비를 하던 장미령이 거실을 향해 소리쳤다.
“존슨 씨. 해물 듬뿍 넣고, 감자 부침개 해줄 테니까. 지금 안 바쁘면 이리 와서 감자 좀 까줄래요?”
소파에 몸을 깊이 묻고.
한참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던 블랙 존슨이었다.
“해물 감자 부침개요? 알겠습니다. 장 여사님.”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한 그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장미령이 건네주는 앞치마를 매고.
왼손에는 감자, 오른손에는 껍질을 까기 위한 수저를 들었다.
그렇게 박박 문질러서 감자를 벗기던 그때.
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장미령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여보, 우리는 지금 바쁘니까. 당신이 누군지 확인해봐요.”
“알았어.”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박철수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가 아저씨. 아니 박민준 씨 집이 맞나요?”
“그런데. 아가씨는 누구신지?”
“저는 이지원이라고 합니다. 박민준 씨께서 보내서 왔어요.”
“그래요? 그럼 어서 들어와요.”
아들이 보냈다고 해서 문을 열어주긴 했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과 이름이었다.
설마 그 유명한 세계 최연소 S등급 헌터 이지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집 안으로 들어온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란 박철수였다.
“아니. 우리 민준이가 보냈다고 하더니. 아가씨는 바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