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박민준은 점점 숨이 가늘어지는 더원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그리고 순간.
손가락 끝에 내공을 모으고, 그의 인중을 향해 빠르게 찔렀다.
그걸 본 이지원의 입에서 작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더원을 싫어하긴 했지만, 저렇게 죽는 걸 보는 건 또 다른 감정이었다.
과거 세계 최강 최고 S등급 헌터로서 이지원도 한때 존경해마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니까.
‘저자가 저렇게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더원의 끝은 이렇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대형 괴물이 세상에 등장하면, 그 녀석과 싸우다가 승리와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복잡한 감정으로 더원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래도 한때 동경했던 인간이니. 내가 눈이라도 감겨줘야겠네.’
그렇게 눈을 뜨고 죽은 더원을 향해 그녀가 손을 뻗은 순간.
빠르게 눈을 깜빡이는 시체를 본 이지원이 비명을 질렀다.
꺅!
커억!
더원이 입에서 탁한 소리를 뱉어내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민준을 올려다봤다.
“아까는 내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죽이려고 들더니. 왜 갑자기 변덕을 부려서 살려낸 거지?”
“내가? 난 처음부터 널 죽일 마음이 없었어. 그냥 네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했을 뿐이다.”
“내 행동의 대가? 그게 뭔데?”
“내 허락도 없이, 대통령 놈에게 멋대로 연락한 걸 말하는 거다.”
“그건 내가 진작 설명했잖아. 비행기가 착륙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니까? 그냥 내려서면 미사일에 격추당한다고.”
“그렇다면 그걸 나에게 미리 말했어야지.”
“알았다. 알았어. 이젠 똥 싸러 갈 때도 너한테 미리 보고하고 화장실에 가도록 하겠다.”
이지원은 죽다 살아난 더원을 보며, 정상이 아니라고 여겼다.
‘정말 또라이네. 아저씨가 마음만 먹으면 자길 죽이는 게 일도 아니라는 걸 알 텐데. 대체 뭘 믿고 저렇게 바득바득 말대답을 하는 거지?’
박민준이 그를 무시하고 먼 곳을 응시했다.
그걸 본 더원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스럭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그의 옆에 가서 섰다.
“뭘 보는 건데?”
“헬기.”
“헬기?”
박민준과 같은 방향을 보면서도 더원은 헬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뭘 보고 헬기라고 하는 거지?”
“조금 있으면 네 눈에도 보일 거다.”
“그게 언젠데? 아! 이젠 나도 보인다. 너 근데 저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거냐? 대체 시력이 몇이야? 10쯤 되냐?”
대꾸도 하지 않은 박민준이 이지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생겼지?”
“60대 후반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갈색 머리 아저씨예요. 근데 그건 왜요?”
“저 헬기에 놈이 타고 있는 것 같아서.”
“네? 저 헬리콥터에 누가 타고 있는지 여기서 보인다고요? 아니, 어떻게요?”
이지원의 실력이 그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해도 엄연히 S등급 각성자였다.
하지만 박민준이 보고 있는 헬기는 그런 그녀의 눈에도 점처럼 보일 뿐이었다.
더원도 그녀와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슬쩍 다가가서 하소연했다.
“야. 너도 그렇지. 이 자식이 너무 자신만만해서, 아까는 나만 안 보이는 줄 알았다니까.”
“저리 가요. 언제부터 나랑 친했다고. 그렇게 나한테 살가운 척 굴지 말아요.”
“체. 알았다. 알았어.”
빡!
박민준이 더원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니. 가뜩이나 힘도 없어 죽겠는데. 왜 또 때리는 건데?”
“계속 그렇게 실없이 떠들 거면 그거 도로 내놔.”
더원이 박민준에게 받은 통역기를 손으로 가렸다.
목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치사하게. 줬다 도로 뺏는 게 어디 있냐?”
“여기 있지. 네놈을 부려먹기 위해 통역기를 줬건만. 쓸데없는 말만 계속하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그냥 죽여버릴 걸 그랬나?”
“알았어. 조용히 할게.”
박민준의 마지막 말을 듣고, 바로 꼬리를 내린 더원이었다.
비 맞은 개처럼 구는 그를 무시하고.
박민준이 혼자 몸을 날렸다.
“갑자기 어디 가는데?”
“내가 먼저 가서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너희는 천천히 와라.”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데.
그의 모습은 벌써 보이지도 않았다.
***
미사일 발사를 명령한 톰 베이 대통령이 초조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탁. 탁.
손가락으로 연신 탁자를 두들기며, 다리까지 떨었다.
그렇게 시간 조금 흐르고.
“각하. 미사일 3대 모두 목표물에 제대로 명중했다고 합니다.”
“그래?”
“네. 현재 착륙장 근처에는 생명체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잘됐군. 정말 잘되었어. 하하하.”
크게 웃은 그가 현장에 직접 가보겠다고 말했다.
“각하. 이륙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어서 가봐야지.”
톰 베이 대통령과 최측근 두 명이 함께 헬기에 올라탔다.
백악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몇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도중.
대통령이 뭔가를 보며 감탄했다.
미사일 세 방이 만들어낸 검은 버섯구름이었다.
“정말 장관이지 않나?”
“대단한 위력입니다. 아직도 저렇게 불타고 있다니.”
“그래. 내가 20년 전쯤 중동에서 직접 봤었던 네이탄팜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란 말이지. 세상 참 많이 좋아졌어.”
대통령이 돌연 먼 곳을 응시했다.
새로 임명된 볼트로 국방부 장관이 그런 그에게 상체를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각하께서 직접 중동 전쟁에도 참여하셨다는 말은 익히 들어봤습니다. 저는 그때 개인 사정으로 참전하지 못해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그래. 그때는 나나 자네가 한창 젊을 때였으니까. 우리 미국이 괴물이 아니라 사람과 싸웠던 마지막 전쟁이기도 하고. 정말 추억이군.”
“맞습니다. 추억이지요. 괴물이 아니라 사람과 싸울 때가 저도 정말 그립습니다.”
“이제 곧 그런 날이 올 거야. 얼마 멀지 않았어.”
“네. 각하.”
비밀 연구기지가 습격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대통령이 얼마나 놀랐던가?
게이트를 영구적으로 닫을 수 있는 연구는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몇 년?
아니, 몇 달 뒤에는 반드시 해낼 거란 연구소장의 보고도 있었으니.
하지만 톰 베이 대통령은 조급하게 게이트를 닫을 생각이 없었다.
“상황을 최대한 우리 미국에 유리하게 만들어놓고, 그리고 나서도 뽑아 먹을 걸 다 뽑아 먹은 뒤에 게이트를 닫든지 말든지 해야겠지.”
“맞는 말씀입니다. 각하.”
아니면, 미국과 우방국에만 게이트가 열리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나머지 적국이나 제삼 세계에는 지금 같은 상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그때는 물론 우방국에게 연구 개발비를 일부 부담하도록 해야 할 거야. 부담금을 낼 수 없다면 그땐 나도 어쩔 수 없고. 게이트 열림 방지 보호국 명단에서 빼버리는 수밖에.”
“맞습니다. 무임승차를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부터는 절대 우방국이라고 부를 수가 없지요. 철저하게 응징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이 갑자기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자네는 정말 내 마음에 쏙 드는 말만 하는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충성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자네는 날 실망시키지 말게. 전임자처럼만 안 하면 돼.”
“네. 각하. 전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헬기가 착륙한 곳은 폭발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였다.
폐허가 되어버린 최신형 착륙장 대신 과거 사용하던 군 시설이었다.
앞서 박민준이 타고 온 비행기를 포위했던 병사들이 그곳에서 대통령을 맞이했다.
“각하께서 직접 이곳에 오실 줄을 몰랐습니다.”
“당연히 와 봐야지. 우리 미국이 다시 위대해지는 순간인데.”
최강 최고 레벨을 자랑하던 타국의 S등급 헌터가 죽었으니.
다시 미국이 헌터 최강국의 면모를 자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톰 베이 대통령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상황은 좀 어떠한가?”
“생명체의 반응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각하.”
현장을 책임진 대령의 말을 듣고.
기분이 더욱 좋아진 대통령이었다.
그가 아까보다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어?”
대통령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뚝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저게 뭐지?”
그가 뭔가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이미 박민준이 톰 베이 대통령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를 알아본 대령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적이다! 적이 아직 죽지 않았다. 서둘러 각하를 보호하고, 적을 사살해라.”
“옛 썰.”
아직도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 한 정치인들과는 달리.
그는 군인이라서 그런지 상황 판단이 제일 빨랐다.
대령을 포함한 앞에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대통령을 감싸고 이동하려 했다.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이쪽으로.”
“어? 뭐?”
너무 놀라서 눈만 동그랗게 뜬 대통령이 멍청하게 답했다.
“각하 당장 이동하셔야 합니다. 여긴 위험합니다.”
“아…알겠네.”
그렇게 멀어지려는 대통령을 그냥 두고만 볼 박민준이 아니었다.
그가 날아오는 총알을 무시하고 그대로 대통령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타당! 탕! 탕! 팅! 팅! 팅!
날아온 총알이 그대로 그의 등을 강타했다.
하지만 몸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나가버렸다.
박민준이 막대한 내공을 바탕으로 자신의 온몸에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전혀 모르는 군인들이었다.
“이런 미친! 총알이 통하지 않는다.”
“분명 명중한 걸 봤는데? 왜 멀쩡한 거지?”
“내가 봤어. 총알이 저자의 몸에 맞고 그대로 튕겨 나왔어.”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되면? 지금 이렇게 같이 보고 있잖아.”
군인들이 어쩔 줄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박민준이 대통령을 따라잡았다.
“어딜 도망치려고!”
그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대통령 주변을 호위하던 대령과 군인들이 그 한 수에 날아가 버렸다.
톰 베이 대통령 주변에는 이제 그의 측근 정치인들만 남았다.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몸이 굳어버린 재무부 장관과는 달리.
볼트로 국방부 장관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다 잡은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다가오는 박민준을 향해.
탕! 탕!
6발을 연이어 쐈다.
하지만, 소총도 맨몸으로 막아낸 박민준이었다.
그런 그에게 권총탄은 그저 겁 없이 다가오는 모기보다 못했으니.
총알을 모두 맨손으로 잡아채서 상대에게 돌려주었다.
가슴에 6개의 구멍이 뚫려버린 볼트로 국방부 장관이었다.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더니.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서 연이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한 대통령이었다.
아까 중동 전쟁에 직접 참여했다며 거들먹거리던 때 하고는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겁에 질려있었다.
박민준이 그런 그를 보고.
대놓고 비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바지가 젖어 드는 꼴이라니.
저런 배짱을 가지고 어떻게 미국 같은 나라를 운영해온 거지?
일국의 수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겁쟁이이지 않나?
저런 머저리보다는 차라리 더원이 더 잘하겠는데?
“가까이 오지 마. 더는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박민준이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듯 손을 마구 내저으며 소리치는 톰 베이 대통령이었다.
상대가 뭐라고 떠들어도, 박민준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그때 그가 무시하고 지나쳐온 군인들 사이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