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강력한 미국을 더욱 위대하게.
현 미국의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건 슬로건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기 이전부터 미국은 지구 최강국가였다.
경제, 사회, 문화 그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그리고 괴물이 쏟아지는 지금도 미국은 단일 세력 최강을 자랑하는 나라임이 분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각성자 등록.
세계에서 가장 많은 S등급 헌터 보유.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레벨을 지닌 역대 최강 S등급 헌터 더원을 보유했었다.
마지막이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린 이유는 당연하게도.
한국의 박민준에게 그 타이틀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누가 나서서 알릴 것도 없이.
베타 시스템을 통해 세상의 모든 각성자에게 알림이 떴으니.
“앞으로 세계 최강 최고 레벨의 S등급 헌터는 박민준이다.”
“이젠 미국의 더원이 최고가 아니라고.”
따지고 보면, 다른 부분에서는 압도적이라서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 최고의 나라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 톰 베이는 생각이 달랐다.
“헌터 최강국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박민준이란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한다.”
그래서 박민준을 7등급 괴물과 상대하도록 꾸몄고, 실제로 그 혼자 싸웠다.
다른 S등급 헌터 같으면 죽어도 진작 죽었을 텐데.
“어떻게 된 인간이지? 대체 7등급 괴물을 몇이나 혼자 처리할 수 있냔 말이다.”
보란 듯이 혼자 사냥에 성공해버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
무려 3번을 연이어 대성공했으니.
박민준을 궁지에 몰아넣고, 그를 죽이려던 계략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결론은 하나.
“박민준을 암살한다. 물론 그 배후에 미국은 없다. 제삼 세계나 미국과 적대적인 나라가 한 일처럼 꾸며야 한다.”
“각하. 죄송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뭐야?”
“7등급 괴물도 혼자 죽일 수 있는 각성자인데, 무슨 수로 그자를 은밀하게 처리하고 다른 나라에 그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내. 그러라고 자네들을 여기 앉혀 놓은 거잖아. 정 안되면 핵이라도 쏘든가.”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럼 방법을 찾아 당장. 아니면 정말 버튼을 눌러버릴 테니까.”
그렇게 한창 박민준을 향한 계략을 세우던 그때.
똑똑.
백악관 내의 작전 회의실 문을 거칠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워낙 긴급한 일이라서 말입니다.”
“빨리 말해.”
“방금 더원의 무전을 받았습니다. 제트기를 타고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답니다.”
“그래? 근데 그게 뭐 그리 긴급한 일이야?”
평소에도 제멋대로 구는 더원이었다.
제트기를 타고 오든, 끌고 오든 간에 긴급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부하의 말을 듣고, 톰 베이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만 했다.
“그 비행기에 한국의 S등급 헌터 두 명이 타고 있답니다.”
“누구? 설마?”
“네. 한국 게이트 관리국의 부국장 이지원과 박민준이라고 했습니다.”
“뭐야? 죄수와 그자를 왜 이곳으로 데려오는 건데? 설마 더원이 잡힌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무전을 하면서도 농담을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래? 아무튼, 알았어. 이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나가봐.”
“아. 그리고. 더원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반드시 대통령님께 전하라고….”
“내가 됐다고 하지 않았나?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 넌 어서 나가.”
“알겠습니다.”
직원이 억지로 나가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빌어먹을. 더원이 분명히 전하라고 했는데. 박민준을 상대로 그 어떤 수작도 부리지 말아 달라. 지금 상황이 좋으니 그와 좋게 대화로 잘 해결하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걸 전하지 못했다.
찜찜하긴 했지만, 미국 내에서, 그것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수도 워싱턴 D.C의 백악관에서 딱히 문제는 없을 거라고 여긴 직원이었다.
하지만 그가 나중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 지금 당장 대통령 앞으로 돌아가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원의 말을 전했을 것이 분명했다.
한편, 더원의 말이 전달된 이후.
작전 회의실 내부에 침묵만 맴돌았다.
그걸 먼저 깨뜨린 사람은 역시나 대통령 톰 베이였다.
“왜 다들 아무 말도 없어. 놈이 스스로 우릴 찾아왔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으니.”
“이런 머저리들 같으니. 그럴싸한 계획 하나도 제대로 세우지 못할 거면 당장 짐 싸서 나가. 내 옆에서 일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요즘 따라 유난히 대통령이 말을 심하게 한다고 느끼는 회의 참석자들이었다.
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입이 있어도 감히 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결국, 대통령이 혼자 결단을 내렸다.
“비행기가 도착하고 놈을 확인하는 즉시, 총공격을 펼친다. 아예 비행기까지 통째로 날려버려. 가루로 만들어 버리라고.”
“하지만 거기엔 아군인 더원과 한국의 부국장인 이지원도 타고 있을 텐데요?”
“그래서?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버리겠다고?”
“더원은 미국의 큰 자산입니다. 그가 없으면 고등급 괴물이 나올 때 무슨 수로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S등급 헌터도 많잖아? 그놈들을 모아서 잘 해결하면 돼.”
대통령은 더원을 희생해서라도, 박민준을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한다고 결정 내렸다.
그런 극단적인 톰 베이의 결정을 듣고.
회의 참석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더원을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건 우리 미국의 방식이 절대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쾅!
대통령이 탁자를 강하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모두 닥쳐. 이번 일이 외부에 알려져서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은폐하면 될 것 아니야? 아니면 정보를 조작하든지. 내가 이런 것까지 설명해 줘야 하나?”
“아닙니다.”
어쩐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톰 베이 대통령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작전을 실행하기로 했다.
***
비행기에서 내리던 박민준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가 바로 뒤에 서 있던 더원을 돌아봤다.
“너.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지?”
“개수작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저길 봐. 곳곳에 숨어있는 무장병력이 너무 많잖아?”
“아. 여긴 백악관 근처 착륙장이잖아. 저 정도 병력은 당연히 상주하고 있어야지.”
“그런가?”
“그래.”
이지원도 그의 말을 거들었다.
“아저씨가 너무 예민하신 것 같아요. 여긴 특별한 장소니까, 저자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그렇다면. 알겠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이 타고 온 비행기 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뭔가 날아오는 걸 본 박민준이었다.
‘저건?’
이전에 그가 필리핀에서 봤었던 미국의 최신형 미사일이었다.
그때는 단 한 발이었는데도 주변에 난리가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5발이 날아오고 있었으니.
그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더원은 뒤늦게 미사일이 오는 걸 발견하고, 놀라서 눈만 동그랗게 떴다.
“젠장. 나까지 죽이려는 건가?”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도, 미사일의 효력 범위 안이라는 걸 더원은 잘 알고 있었다.
셋 중 실력이 제일 떨어지는 이지원은 아직도 미사일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원의 말을 듣고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죽이다니요?”
대답을 듣는 대신.
그녀는 자기 팔목을 움켜쥐는 손길을 먼저 느꼈다.
박민준이 오른손으로 이지원을 손목을 낚아채고, 뒤이어 왼손으로 더원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악!
더원은 우악스러운 박민준의 손에 비명을 질렀다.
‘설마 내가 배신한 줄 알고, 내 목을 먼저 분지르려고?!’
어차피 미사일에 맞아 죽을 텐데.
굳이 그렇게 먼저 날 죽이고 싶나?
정말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죽음을 기다렸는데.
휙!
더원이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걸 볼 수 있었다.
너무 빨리 획획 바뀌어서.
S등급 각성자인 그조차 사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멈춰 섰는데.
착륙장이 점처럼 보였다.
“이게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의 혼잣말은 곧이어 터진 미사일 폭발음에 묻혔다.
쾅! 쾅! 쾅!
거의 동시에 3발의 굉음이 들렸다.
깜짝 놀란 더원과 이지원이 입을 떡 벌렸다.
마치 핵미사일이라도 터진 것처럼 작은 버섯구름이 하늘로 치솟는 걸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지켜봤다.
저걸 그대로 맞았다면?
아마 시체는커녕 뼛가루도 제대로 못 남기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더원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
“대통령 그 개새끼가 정말 나까지 죽이려고 했구나. 이럴까 봐 내가 미리 연락해서 그렇게 신신당부한 건데.”
뻑! 악!
순간 허공에 욕설을 내뱉던 그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서둘러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는 모습이었다.
“아니. 날 왜 때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박민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더원을 향해 손만 내저었다.
몸을 점혈 당한 그가 온몸에 강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목이 터지라 소리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악! 나한테 대체 왜 이래? 왜 이러는 거냐고?”
“이유를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저기 저걸 보고도. 그리고 방금 네가 직접 말까지 했잖아.”
“내가 뭐? 착륙하면서 어차피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해. 그래서 겸사겸사 무전을 했던 것뿐이라고.”
“우리가 오는 걸 미리 알았으니. 당연히 저럴 수 있다는 것도 예상했어야지.”
“아니. 내가 좋게 대화로 잘 해결하라고 말해놨다니까. 그보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했던 건데. 응?”
“똑똑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멍청하군.”
더원이 다른 사람보다 확실히 강하긴 했다.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박민준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사지가 뒤틀리는 상황에서도 서로 대화하는 둘을 보며, 이지원이 몰래 혀를 내둘렀다.
‘정말 지독한 사람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고문하는 아저씨나, 그걸 겪으면서도 바락바락 대드는 더원이나 말이야.’
하지만 대답하는 것도 잠시뿐.
결국, 나중엔 비명만 질러댄 더원이었다.
그의 눈에 흰자만 보일 무렵.
박민준이 다시 손을 내저었다.
몸의 고통이 사라지고.
더원이 거짓말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개새끼. 너 죽고 나 살자.”
그 나름대로 기습을 한다고 한 거였는데.
결과는 참혹했다.
꽈드득.
박민준을 향해 내민 오른팔이 절대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움직였으니.
팔이 부러진 더원이 그대로 박치기를 시도했다.
“역시 넌 강단이 있군. 다른 놈들과는 좀 달라.”
싸늘하게 웃은 박민준이 그의 머리통을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빠악!
소리와 함께.
머리를 얻어맞은 더원이 뒤로 날아가 버렸다.
놀란 이지원이 박민준을 바라봤다.
“설마 저자를 죽인 건가요?”
“아니. 저렇게 움직이고 있잖아.”
꿈틀꿈틀.
박민준의 말처럼.
더원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몸을 작게 떨고 있었다.
“저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저자가 살아있어야 질문이라도 할 텐데. 대체 왜 그랬어요?”
이지원과 대화하는 대신.
쓰러진 그에게 조용히 다가간 박민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