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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46화 (146/175)

146화

게이트가 열리면서 가장 큰 과학의 발전을 이룬 게 바로 양자역학이었다.

지구의 모든 과학자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양자역학이었는데, 그 예시가 될 게이트가 마구 열리기 시작했으니.

양자역학과 관련된 실험을 해오긴 했지만, 그동안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실체조차 흐릿했던 개념은 이제 현실이 되어버렸다.

특히 4차원 양자역학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은 모든 과학자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다른 차원의 괴물들이 게이트를 열고 넘어오고 있으니.

단순히 괴물과 싸워 그들을 쓰러뜨리기보다는, 미리 게이트가 열리지 않도록 막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그걸 제일 먼저 받아들인 게 바로 미국이라고 했다.

우수한 과학자들과 지구 최고의 자본력, 그리고 최강의 기술력을 지닌 게 바로 미국이란 나라였으니까.

‘미국이 오히려 갈랜드 박사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그가 하려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

박민준은 박사가 속한 조직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장소가 몇 개나 더 있는 거지?”

“그건 비밀인데.”

“죽고 싶냐?”

“아니. 사실은 나도 잘 몰라.”

“그럼 아는 것만 말해봐.”

“미국에만 대충 4개 정도 더 있다는 것 같더라.”

더원이 박민준을 데리고 온 이곳 연구소는 미국의 비밀 기지 중 하나였다.

물론 해외에도 많이 존재했고.

“미국에만? 그럼 해외에도 이런 시설이 또 있다는 건가?”

“당연하지. 아마 너희 한국에도 있을걸? 너 설마 모르고 있었어?”

박민준은 정말 몰랐다.

대통령을 친구로 두고 있었지만,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인 한국이잖아? 이런 시설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하지.”

오히려 더원이 박민준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박민준이었다.

‘이젠 이지원을 구해도 저놈을 죽이지 않은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미국의 대통령도 직접 만나봐야겠어.’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암살을 위한 목적이었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버젓이 증거가 뚜렷하게 보이고, 더원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으니.

‘저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다.’

그렇다면 갈랜드 박사 쪽에서 날 속였다는 말이 되는 건데?

‘하지만 그자가 날 대할 때도 진심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뭔가 숨기고 말을 하지 않은 게 있는 느낌이었지만, 그때 상대가 거짓말을 했다면, 박민준도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갈랜드 박사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대화 내용을 방수열에게 알려서 이지원을 구하도록 했겠지.

전동 보드를 멈춰 세운 더원이 뒤를 돌아봤다.

투명화한 박민준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엉뚱한 곳을 향해 말했다.

“다 왔다. 이 문만 넘어서면, 네가 찾는 여자가 갇혀있는 곳이 나온다.”

“알았으니까. 어서 문이나 열어. 그리고 자꾸 그런 행동을 하면, 남들이 보고 널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렇군. 곳곳에 CCTV가 많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지. 나뿐 아니라 너도 말이야.”

“흥. 만약 허튼수작을 부리면 여길 전부 박살 내고 바로 널 죽일 거다.”

“내가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한숨을 내쉰 더원이 문 앞에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마치 감옥 같군.”

“감옥 맞아. 주로 연구대상인 괴물을 가둬두는 곳이지.”

“이런 곳까지 네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건가?”

“당연하지. 내가 바로 더원이니까.”

상대가 저렇게 말하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날 상대하던 놈들이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피식 웃은 박민준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일 첫 번째 방에서 갇혀 있는 이지원 발견했다.

전면이 특수소재 강화유리로 된 감옥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투명화를 풀고 앞으로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이지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박민준을 알아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민준?! 당신이 왜 여기 있어? 설마 저자와 한편이라도 된 거야?”

“뭐라는 거냐? 기껏 구하러 왔더니. 누가 누구랑 한편이라는 거야?”

“날 구하러 왔다고요?”

처음 보자마자 반말을 하더니.

자길 구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 바로 존댓말로 바뀐 그녀였다.

피식 웃은 박민준이 더원을 향해 말했다.

“이걸 내가 부숴버리면 알람이 울리겠지?”

“당연하지. 그냥 유리로 보여도, 보안 장치가 되어있다.”

“그럼 뭐 해. 임마. 어서 이걸 열지 않고.”

“나한테 열쇠가 없는데?”

“뭐?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아니. 저 여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해서 내가 그렇게 한 거잖아.”

“그럼 어서 가서 열쇠 가져와.”

“나 혼자 보내려고?”

“당연히 아니지. 내가 네 뒤를 몰래 따라다닐 거다.”

“그럴 줄 알았다. 아무튼, 열쇠를 가져올 테니까. 날 좀 그만 째려봐라.”

“맞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 네놈이 쓸모가 없었으면, 내가 진작 모가지를 뽑아버렸을 테니까.”

질렸다는 표정을 지은 더원이 자신도 모르게 목을 쓰다듬었다.

‘저놈은 정말 그러고도 남을 인간 같은데. 진짜 죽기 전에 어서 다녀와야겠다.’

열쇠를 얻어내는 건 귀찮고, 은근히 힘든 일이지만,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

그가 서둘러 전동 보드 위에 몸을 실었다.

더원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박민준은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이지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저자를 따라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하지만 그건 저놈을 멀리 보내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실제로 열쇠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이지원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시간이 필요했다.

“저자가 없는 데서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그래. 넌 여기 왜 갇혀있는 거지?”

“무슨 질문이 그래요? 날 구하러 왔다면서, 설마 아무것도 몰라요?”

“갈랜드란 놈에게 들은 게 있긴 하지. 하지만, 네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것 듣고 싶다.”

“알았어요. 그럼….”

그녀 역시 갈랜드 박사의 말을 듣고, 그자의 조직에 합류했다.

게이트가 열리는 걸 영원히 막을 수 있다니.

괴물과 싸우고 쓰러뜨리는 걸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이지원은 당연히 그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갈랜드 박사가 그녀에게 원한 건, 이전에 박사가 박민준에게 원했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조직의 요원들과 힘을 합쳐서 더원과 미국의 수장을 암살해달라는 것이었다.

게이트가 닫히는 걸 방해하는 최대 적을 없애면, 그 뒤엔 마음을 놓고 영구적인 게이트 열림 방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더원을 죽이긴커녕, 그에게 잡혀서 이곳에 갇혔다.

갈랜드 박사가 자신의 조직에서 보내준 사람들 역시 그때 모두 죽거나 사로잡혔다.

이지원의 말을 들은 박민준은 딱히 거짓이라고 느낄 수 없었다.

‘이 아이도 나만큼이나 별로 아는 게 없군. 그냥 이용당한 것뿐이야.’

그녀와 박민준이 다른 점이라면, 갈랜드 박사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박민준은 더원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 또한, 만나긴 하겠지만, 대화를 원해서였을 뿐.

쉽게 그자의 목숨을 끊어놓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더원이 돌아왔는데.

혼자 오지 않았다.

안경을 꼈지만, 미모가 가려지지 않은 여자 연구원과 그와 함께였다.

“저 여자는 누구야? 여기 왜 데려온 건데?”

“열쇠를 가져오라면서? 그래서 데려온 거지.”

“저 여자가 열쇠라고?”

“응. 1등급 연구원의 생체 인식이 있어야 저 문을 열 수 있거든.”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당연하지. 내 여자친구니까.”

대화를 듣고 있던 연구원이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재키 스타일스라고 해요. 우리 자기가 급히 도와달라고 해서 이렇게 왔어요.”

“자기소개는 그만하면 됐으니. 어서 이 문을 열어주겠나?”

“알았어요.”

입을 삐죽인 그녀가 강화유리에 손을 가져가려는데.

사방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박민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날 배신한 건가?”

그가 자길 노려보는 걸 느낀 더원이 크게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내가 아니야.”

재키 스타일스도 애인의 편을 들었다.

“아놀드가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건 누군가 침입했을 때 뜨는 경고라고요.”

“우리 말고 누가 또 여기에 들어왔다는 건가?”

“그건 저도 모르지요. 아무튼, 문부터 열게요. 저리 비켜봐요.”

고개를 끄덕인 박민준이 비켜서고.

그녀가 빠르게 다가와 유리문을 손으로 집었다.

붉은빛이 번쩍이면서 뭔가 감식하는 것 같더니.

삑!

경고음만 뜨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게 왜 이러지?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재키가 손바닥을 옷에 쓱쓱 문지르더니.

다시 유리문을 짚었다.

삑!

다시 경고음이 울리더니.

아악!

빠지지지직!

감전되면서 쓰러진 그녀였다.

“허니! 안 돼!”

당황한 더원이 소리치며 재키에게 다가갔다.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이 멈춘 상황.

“죽었어?! 이런 안 돼!”

당황해서 소리를 빽 지른 더원이었다.

그런 그를 박민준이 옆으로 밀어냈다.

“저리 비켜.”

그리고 쓰러진 재키를 향해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팍! 파박! 팍!

공기 마찰음이 빠르게 여러 번 들리더니.

컥!

거친 숨을 내뱉은 그녀였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다니!

놀란 더원이 눈을 크게 뜨고 박민준을 바라봤다.

“날 볼 시간이 있으면, 네 애인이나 챙겨.”

“고맙습니다.”

“고맙긴. 날 돕다가 저렇게 된 건데. 그나저나, 이젠 조용하게 처리하기엔 틀린 것 같군.”

“그게 무슨?”

쾅!

대답 대신.

검을 꺼내 들고 그대로 내질렀다.

퍽! 소리와 함께.

유리문을 단번에 박살 내버린 박민준이었다.

더원이 그걸 보고 또 놀랐다.

“그건 내가 100번을 넘게 내리쳐야 겨우 깨지는 특수소재인데? 저렇게 한 번에 박살이 난다고?”

이지원도 박민준이 강화유리를 깬 걸 보고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다.

‘내가 아무리 힘을 써도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는데? 한 방에 부쉈어?’

그래서 나올 생각도 못 하고, 박살이 난 문을 바라보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든 말든.

박민준은 담담했다.

“야. 뭐 해? 어서 나와.”

“아…. 알았어요.”

곧이어.

아까와는 다른 경고음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놀드! 너도 나와 함께 가야 한다.”

“네 여자를 구했는데도 내가 아직도 필요한가?”

이지원이 박민준의 애인이라고 오해한 건가?

더원의 말을 듣고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하지 않았다.

그의 오해를 풀어주기보다는.

대신 더원이 자신과 함께 가야 할 이유를 말해줬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 아직 한 명 더 있다. 그러려면 아직 네가 필요해.”

그 말을 듣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더원이었다.

여태 안고 있던 연인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렇게 박민준과 더원이 먼저 통로를 빠져나갔다.

이지원이 곧바로 따라가지 않고 크게 소리쳤다.

“아저씨. 나 말고 갇혀있는 사람들이 저 안에 더 있어요.”

뻔히 그 말을 듣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은 박민준이었다.

“다른 놈들은 구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니 너도 날 따라오든지 아니면 여기 남아서 알아서 그놈들을 구해라.”

“어떻게 그런 말을?”

그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박민준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더원과 함께 이지원의 곁에서 점점 멀어졌다.

잠시 고민한 이지원이 결국, 함께 잡힌 사람들을 구하는 걸 포기하고, 박민준의 뒤를 따랐다.

“나중에 당신들을 구하러 다시 올게요. 미안해요.”

그렇게 소리치며, 애써 자기합리화를 한 그녀였다.

***

비밀 기지 출구 근처.

뭔가를 본 박민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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