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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45화 (145/175)

145화

“이지원 때문에 날 찾아온 거겠지? 그 여자를 풀어줄 테니. 대신 날 죽이지 마.”

더원의 말을 듣고, 박민준이 피식 웃었다.

“눈치가 빠르군. 그리고 제법 똑똑해.”

“당연하지. 머리가 나쁘면 나처럼 강해질 수 없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작게 고개를 끄덕인 박민준이었다.

실제로 고수가 되려면 타고난 몸과 함께 뛰어난 두뇌,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 줄 무공이나 기연이 필수였다.

그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절대자라 불릴 정도의 고수가 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너, 이름이 뭐지?”

“내 이름? 설마 내 이름이 더원이라는 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그건 그냥 각성하고 얻은 콜네임이지. 난 진짜 네 본명이 뭐냐고 물어본 거였다.”

박민준은 당분간 그를 죽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이지원을 되찾을 때까지는.

“아. 내 본명. 내 진짜 이름이 궁금한 걸 보면, 날 죽일 마음은 없어진 모양이지?”

“닥치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근데 너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말하는 거냐? 내가 목이 좀 아픈데 더 가까이 와주면 안 되나?”

“거절한다. 지금 이 거리가 딱 좋아.”

키가 무려 190cm가 넘는 더원이었다.

보통 체격인 박민준은 그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계속 올려다봐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대화를 나눈 거였으니.

그걸 대놓고 말할 순 없었던 박민준이 대충 둘러댔다.

한숨을 내쉰 더원이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다.

“아놀드 폴 잭슨이 내 본명이다. 아무에게나 알려주는 건 아니니까. 소문내지는 마.”

“좋아. 아놀드.”

방금 소문내지 말라고 했거늘.

금방 본명을 불러버린 상대를 보며, 또 한숨을 내쉰 더원이었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너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능력도 있냐?”

저놈이 일부러 나 열받으라고 저러는 건가?

어째 본명을 부리지 말라니까.

그걸 듣고 나서 더 부르는 것 같네.

“그런 건 없는데. 아무튼, 아놀드. 그럼 이제 이지원이 있는 곳으로 날 안내해.”

“아니. 그럴 순 없어.”

자꾸 본명을 부르는 박민준 때문인가?

그의 목소리가 상당히 퉁명스럽게 변했다.

그런 더원을 보며, 박민준도 싸늘해졌다.

“그렇게 금방 말을 바꾸겠다는 건가? 좋아. 내 손에 빨리 죽고 싶다면 나도 할 수 없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상대가 비릿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걸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은 더원이었다.

그가 두 손을 내저으며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언제 말을 바꿔. 그냥 그 한국인 여자애만 풀어주면 되는 거잖아? 넌 그걸 원하는 거잖아?”

“그래. 하지만 이지원이 갇혀 있는 곳을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 내가 데려가겠다.”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더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박민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너 다른 목적이 있어서 날 찾아온 거였나?”

박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가 침묵할수록 더욱 이상하게 생각되는 더원이었다.

“넌 분명, 그 조직하고는 아무 연관도 없을 텐데? 그새 놈들과 합류했나?”

미국과 더원은 아주 당연하게도, 세계 최고 레벨 S등급 헌터가 된 박민준의 뒷조사를 아주 철저하게 끝마쳤다.

그가 최근에 다른 차원에 갔다가 돌아왔고, 동안이지만 40살이 넘었으며,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조카와 한집에 사는 가족을 제외하면 딱히 친구라고 부를 만한 지인도 주변에 없었다.

그리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단체와도 전혀 연결고리가 없었으니.

‘당연히 이지원 한 명을 구하려고 저자가 여기저기 정보를 캐내다가 여기까지 온 게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고 이지원만 풀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자꾸 고집을 부리다니.

‘정말 그 조직과 한패라도 되는 건가? 흠. 알 수가 없군.’

잔뜩 의심하는 더원의 눈길을 마주하며, 박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난 이지원만 구하면 된다. 대체 그녀를 왜 잡아간 거지?”

정말 모른다는 듯 묻는 박민준을 보며, 더원도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눈빛을 보니. 정말 제대로 모르고 날 찾아온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저놈이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지금 상황은 박민준이 일부러 끌어낸 거였다.

그는 처음부터 갈랜드 박사와 그의 조직을 믿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달라고 찾아오는 놈들치고, 숨기는 게 없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모두 뒤가 구리거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

더원을 직접 만나고 난 뒤에 그런 그의 생각이 더 강해졌다.

‘눈빛만 보면 오히려 갈랜드란 놈보다 더원 저놈이 더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더원을 곧바로 죽이지 않은 거였다.

그의 말을 듣고, 박민준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말이다.

“좋아. 아무튼, 나에게 결정권이 없으니. 널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하지.”

앞장서는 더원을 따라나선 박민준이었다.

***

제시카 로즈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왜 저렇게 조용하지?’

더원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면, 분명 소란이 일어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경비를 서는 용병들에게서 변화를 엿볼 수가 없었다.

내부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담장만 지키고 있었으니.

‘아무리 더원이라고 해도 그 인간을 절대 당해낼 수 없을 텐데. 진짜 뭐지?’

성공했든 실패했든.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하잖아?

결국, 한참을 고민한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이미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는지.

자신의 붉은 색 머리를 둥글게 말아서 올리고, 그 위에 모자를 썼다.

최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가며, 더원의 집 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박민준에게 알려줬던 담장을 통과했는데.

10명이 넘는 각성자와 경비 용병들이 그곳을 미리 지키고 있었다.

“무단 침입자다!”

“오늘은 특별한 행사 날이니. 저자를 생포하지 말고 바로 사살해라.”

“알겠습니다.”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서둘러 몸을 숨긴 그녀였다.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젠장. 내가 올 걸 어떻게 알고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아니면 그냥 내가 재수가 없는 건가?”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을 느끼고, 그녀가 도로 담장 너머로 도망치려고 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으니. 우선 정체를 들키지 않게 몸을 빼자.’

너무나 유명한 자신의 무기도 꺼내 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냥 주변에 보이는 돌멩이 몇 개를 주워들었다.

총알이 떨어졌는지.

적이 탄창을 가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시카 로즈였다.

손에 든 돌멩이를 상대에게 강하고 빠르게 던지고 담장을 향해 몸을 날리려던 그때.

엄청난 기운이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뭐야? 갑자기?’

그걸 느낀 제시카 로즈는 어설프게 대할 마음을 바로 버렸다.

서둘러 검을 뽑은 그녀가 마력을 가득 담았다.

쾅!

억지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피해가 컸다.

유난히 가는 그녀의 검날이 그대로 부러졌다.

마력을 잔뜩 머금고 있었는데?

‘설마 더원이 직접 나선 건가? 그자가 아니면 이렇게 강한 놈이 또 있을 리가 없잖아?’

스폐셜 쓰리의 일원이고, 또 그중에 제일 강한 게 바로 제시카 로즈였다.

어지간한 S등급이 나서도 이길 정도의 무력을 자랑하는 그녀였는데.

이렇게 적의 한 방에 크게 당해버렸으니.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입에서 피까지 토한 제시카 로즈가 상대를 확인할 틈도 없이.

서둘러 담장을 넘었다.

도망치는 그녀를 따라나선 더원의 경비 용병과 경호팀이었다.

“침입자가 도망친다.”

“따라가서 반드시 죽여라.”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나고.

남아 있던 경호팀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어차피 남의 일도 아니고. 모두가 날 지키려고 하는 건데. 우연히라도 봤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런데 왜 갑자기 밖에 나오신 겁니까? 이곳의 소란이 건물 안까지는 들리지 않았을 텐데요?”

“그냥 바람 좀 쐬려고.”

“그러셨군요.”

“그리고 나 드라이브할 거니까. 차 좀 준비해줘.”

“오토바이 말고 차를 타신다고요?”

경호팀을 하는 동안.

그는 더원이 오토바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평소에 협찬받은 최고급 승용차나 스포츠카들이 차고에서 먼지만 쌓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차를 타겠다고?

“그래. 오늘은 오토바이가 별로 안 끌리네. 오랜만에 차 좀 몰아봐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차로 가져올까요?”

“대충 아무거나 가져와.”

잠시 후.

빨간색 오픈 스포츠카를 몰고 집을 나선 더원이었다.

한참을 달리던 그가 LA에서 인적이 드문 외곽으로 빠지더니.

깊은 산중에 차를 세웠다.

건물은커녕, 도로도 비포장인 곳에 뭐가 있다는 건지?

다른 사람 같으면 더원의 의도를 의심했겠지만.

박민준은 달랐다.

투명화한 상태로 보조석에 타고 있던 박민준이 훌쩍 뛰어 차에서 내렸다.

그걸 아직 모르는 더원이 뒤늦게 보조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착했으니. 어서 내려.”

“벌써 내렸다.”

“야. 유령하고 말하는 것 같으니까. 그만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될까?”

“그럴 순 없지.”

“왜? 나도 어쩌지 못하는 너를 누가 어떻게 할까 봐 그래?”

“내가 여기 온 것 자체가 비밀이야.”

“아. 그 4개국 협약 때문에 그러는구나.”

딱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박민준은 계속 그와 대화만 나눌 생각은 없었다.

“쓸데없이 입 놀리지 말고, 어서 계속 안내해.”

“알았다. 알았어.”

알겠다고 해놓고.

아무것도 없는 절벽 아래로 걸어간 더원이었다.

그가 유난히 매끈해 보이는 돌벽에 손을 올렸다.

순간.

붉은빛이 작게 번쩍이더니.

드르륵.

절벽 아래에서 기계음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트럭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입구였다.

더원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이 저절로 닫히기 시작했다.

그가 입구에 잔뜩 준비된 전동 보드 중 하나를 타고, 이동했다.

“그 상태로는 보드도 못 타겠지? 내가 천천히 갈 테니까. 알아서 잘 따라와.”

“딱히 상관없어. 난 신경 쓰지 말고 평소와 같은 속도를 내도록 해.”

“그럼 그렇게 하지.”

아직 투명화한 상태인 박민준은 경신법을 펼쳐서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동하는 동안.

내부를 살핀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미국 기술은 알아줘야 하나? 정말 만화에나 나올법한 비밀 기지를 잘도 지어놨군.’

밖에서 봤을 때도 거대한 절벽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시설의 규모가 실로 거대했다.

안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지.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수천 명은 넘게 보였다.

그리고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의 숫자도 수백이 넘는 듯했다.

‘용병이 아니라, 군인들이 지키는 걸 보면, 확실히 국가 기관이겠군.’

내부를 확인하면 할수록.

박민준의 의구심이 점점 커져만 갔다.

‘갈랜드 박사가 말한 것하고는 좀 다른데?’

지구에 열리는 게이트를 영구적으로 폐쇄하는 것이 박사가 속한 조직의 목표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과 더원이 속한 그룹은 그걸 막으려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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