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과연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남자에게도 경호원이 필요할까?
그 대상이 세계 최고 최강의 타이틀을 자랑하던 미국의 S등급 헌터 더원이라면?
비각성자가 생각하기에는 인력의 낭비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더원 본인과 미국의 대통령은 생각이 달랐다.
“인류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그걸 뒤집을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항상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빌런이 아닌 오직 괴물만을 상대할 것이니. 경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각성자도 사람이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 더원 또한 외부의 불확실한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인류 최후의 무기로서 8등급 괴물과 싸울 유일한 존재니까.”
그렇게 더원 주변에는 총 50명의 경호원이 항시 대기 중이었다.
그 구성원은 모두 각성자였고, 더원 본인조차 그들을 뚫을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들 전원을 홀로 상대하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들은 날 보호함으로써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수호자들입니다.”
***
더원의 경호에 대해 한참을 말한 제시카 로즈였다.
그녀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민준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아니. 여태 내가 한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거예요? 전원 각성자로 구성된 경호원이 무려 50명이라니까요.”
물론 그들이 동시에 더원을 경호하는 건 아니었다.
10명에서 15명씩 조를 나눠서 교대 근무를 했다.
“나도 들었어.”
“그러니까요. 경호원의 숫자와 구성이 제일 약해 보일 때를 노려서 치고 빠지자는 게 내 계획이에요.”
제시카의 말은 무척이나 합리적이었지만, 박민준은 여전히 그녀가 세운 계획에 관심이 없었다.
“넌 그냥 그놈이 어디 있는지나 말해주면 돼. 나머진 내가 혼자 알아서 할 거니까.”
“절대로 실패하면 안 돼요. 기회는 딱 한 번뿐이라고요.”
“그렇겠지. 하지만 내가 직접 나선 이상 실패하지 않는다.”
더원을 죽이든 실패하든 간에 다음 타깃을 노리는 일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세계 최강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암살하기는커녕, 만나는 일조차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제시카 로즈는 너무 자신만만한 박민준을 보며, 조직의 선택에 대해 속으로 크게 불평했다.
‘내가 직접 겪어봐서 이자가 강한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이건 자신감이 너무 과하잖아?’
암살에 실패하는 건 둘째치고, 그자에게 잡혀있는 동료들의 행방도 알아내야 한다.
임무의 어려움이 몇 배가 된다는 말이었으니.
‘나라도 따로 계획을 세워야겠다. 정 일이 잘못되면 저자를 미끼로 나 혼자 임무를 수행해서 성공해야 해.’
그녀가 슬그머니 딴 계획을 세우는 사이.
박민준은 이나즈마와 은밀히 대화 중이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때?”
“이타쿠라 청장님께서 보낸 자료와 저 여자가 알려준 내용이 절반 정도만 일치합니다.”
“나도 알아.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오차가 있을 수 있지.”
“그래서 너무 불안합니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당신과 한국뿐 아니라 내 조국 일본에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나 혼자 움직일 건데. 네가 왜 불안해?”
“네? 저도 동행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당연하지. 넌 일본어 자료해독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런 말을 들으면 상당히 기분이 나빠야 정상인데.
이나즈마는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전 여기서 당신이 임무에 성공하고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가 너 혼자 남아서 놀라고 두고 가는 게 아니야.”
“네? 그러면 여기서 저 혼자 뭘 합니까?”
“저놈들을 감시해.”
“감시요? 이들은 박민준 씨하고 같은 편인 게 아니었습니까?”
“누가 같은 편이야? 너보다 더 못 믿는 게 바로 저 녀석들인데.”
“그럼 적이나 마찬가지인 거 아닙니까?”
피식.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
대놓고 비웃은 박민준이었다.
“일본에도 적의 적은 나와 같은 편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아! 무슨 말인지 이제 잘 알았습니다. 그럼 저를 믿고 다녀오십시오.”
“좋았어. 그럼 다녀오마.”
그렇게 혼자 떠나겠다던 박민준이 슬쩍 제시카 로즈에게 다가왔다.
“왜요? 나한테 작별인사라도 하고 가려고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도 나와 함께 가야겠다.”
“단독 임무를 수행하겠다면서요?”
“아니. 길 안내 겸 운전해줄 사람이 필요해.”
천하의 스폐셜 쓰리에게 운전사나 하라니.
제시카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자길 빤히 바라보는 박민준이 눈에 들어왔으니.
하긴. 저 인간이 나와 블랙에게 경호원도 하라고 했는데, 운전사를 시키지 못할 이유도 없지.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는지.
그녀가 반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직접 운전하면 되잖아요. 차도 저기 저렇게 미리 준비해서 제공해줬는데.”
“나 면허 없다. 미국에 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 길을 몰라.”
“지금 나 놀리는 건가요?”
S등급 헌터 다섯 명을 상대로 혼자 이겨버리고.
이젠 전 지구 최강 S등급 헌터를 죽이러 가겠다는 사람이 자동차 하나 운전을 못 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그녀를 향해, 박민준이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너하고 농담이나 할 사람으로 보였나?”
“아니요. 근데 그 나이 먹도록 뭐 했어요? 한국은 미국보다 운전면허 따는 게 엄청 쉽다던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앞장서.”
“나보고 운전하라고요?”
“그게 싫으면 난 여기서 임무를 종료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제멋대로 구는 그를 향해 말없이 눈으로 욕한 그녀였다.
‘재수 없는 새끼. 아쉬운 게 우리 쪽이니. 어쩔 수 없이 저자의 말대로 해야겠네. 아. 짜증 나.’
결국, 운전석에 앉은 제시카 로즈였다.
그녀가 시동을 걸며 말했다.
“당신 혼자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난 더원이 있는 곳 근처까지만 데려가 줄 거예요.”
“그래. 그 정도면 네 할 일을 다 하는 거다.”
치.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가 거칠게 차를 몰았다.
한편, 박민준이 그녀를 굳이 꼭 집어서 운전시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뻔히 딴 수작을 부릴 생각하는 게 보이는데, 내가 널 두고 어딜 가겠냐? 이제부터 죽으면 너 혼자 죽고 살면 다 같이 사는 거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혼자 계획을 수정하고 있는 제시카 로즈였다.
‘이렇게 된 이상. 저 인간을 데려다주고, 난 나대로 따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여야겠다.’
박민준이 더원을 죽이기 위해 소란을 피운다면, 분명 자신이 활동하는 게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었으니.
그 틈을 노리고 동료들이라도 구출해낼 생각이었다.
박민준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암살 계획에 반대했다.
그리고 동료를 구하는 임무가 있다는 걸 듣고, 이번 일을 자원했다.
‘확실히 죽일 수 있다면 모를까. 더원 같은 인간은 최대한 안 거드는 게 상책이야.’
그렇게 그녀가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중심부.
세계 대중영화를 이끄는 성지. 할리우드 근처가 바로 더원의 집이 있었다.
무려 시가 3,300억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성을 방불케 하는 규모의 저택이었다.
전용 헬기장이 두 개나 있는 건 물론이고, 저택 뒤쪽엔 비행기 활주로 겸 레이싱 전용 도로도 있었다.
그런 더원의 저택이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장소에 차를 세운 제시카 로즈였다.
그녀 또한 스폐셜 쓰리로서 엄청난 인기와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거대한 선글라스를 끼고, 짙게 선텐한 차창까지 올려놓은 상태였다.
“네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냐?”
“여기선 당신만 빼고 모두 내 팬일걸요? 내가 선글라스를 벗고 지금 차에서 내리면 1분 안에 1000명이 모인 다에 내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어요.”
이미 해가 진 뒤인 걸 감안하면,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유명해서 좋겠다.”
제시카가 대놓고 자길 비꼬는 그를 노려보기 위해 몸을 뒤로 돌렸는데.
“어머? 금방도 그 인간 목소리가 들렸는데. 어디 갔지? 대체 언제 내린 거야?”
“나 아직 안 내렸다.”
투명화한 박민준이 그제야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갑자기 들린 그의 목소리와 함께 혼자 열리는 문을 보고, 아주 잠깐 놀란 그녀였다.
‘저자를 처음 죽이러 간 그날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었어.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거였잖아!’
중얼거리며, 선글라스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그녀를 두고.
박민준이 더원의 집으로 향했다.
***
더원의 저택 입구에는 경호원들의 숙소가 있었다.
각성자로 구성된 50명을 제외하고도, 저택만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용병이 20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저택을 둘러싼 담장에서 기관단총이나 화염방사기를 들고 순찰하는 게 주 임무였다.
평소 같으면 4m 높이의 담장 따윈 그냥 넘어버릴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가 그 위로 끝도 없이 뻗어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민준이 눈에 내공을 모으자, 일렁이는 뭔가가 담장 위로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걸려도 상관없지만, 굳이 통로가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지.’
제시카 로즈가 알려준 진입로는 정문에서 왼쪽으로 70m를 벗어난 지역이었다.
하지만 박민준은 그쪽으로도 가지 않았다.
‘이 집을 지키는 놈들도 그곳을 알고 있는 것 같군. 다른 곳보다 경비의 숫자가 오히려 더 많다.’
담장 너머라,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인기척을 느끼고 그걸 알아낸 박민준이었다.
그래서 대신 이타쿠라 청장에게 받은 자료에 나온 담장 쪽으로 향했다.
장미 가시넝쿨이 가득한 그 담장의 하단에 뜬금없이 작은 숫자 패드가 부착된 게 보였다.
수풀에 가려진 데다 튀어나온 돌 밑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서 몸을 잔뜩 낮추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았다.
06010423
8자리 숫자를 누르자 스르륵.
비밀통로가 열렸다.
그걸 본 박민준이 이타쿠라의 정보에 감탄했다.
이 비밀통로가 있다는 건, 지금의 집 주인이 된 더원조차 모르는 사실이었다.
처음 집을 설계한 사람이 긴급 대피용 비밀통로를 만들었고, 그걸 아는 전 주인이 죽고 난 뒤에 더원이 이사 온 거였으니까.
‘집주인이란 녀석이나 스폐셜 쓰리가 속한 조직도 모르는 정보를 일본에서는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방수열에게 물어봤어도 알고 있었으려나?
당장이라도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테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번 임무에 대해 방수열은 물론이고,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냥 며칠 출장을 다녀오겠다면서 집을 나섰을 뿐이었다.
‘말해봤자 걱정만 하겠지.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아무튼, 열린 통로에 박민준이 들어가자마자.
스르륵.
저절로 문이 닫혔다.
엄청나게 큰 저택인 만큼.
길고 긴 통로를 걸어서야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따로 비밀번호를 누를 필요도 없이.
그냥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다.
정작 비밀통로를 통과할 땐 침착했던 박민준이었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실내를 보고 살짝 당황해버렸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