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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41화 (141/175)

141화

20년 전쯤.

대한민국에서 20대 청년이 실종되었다.

당시 뉴스에는 나오지도 못한 일상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갈랜드 박사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양자역학에 지구자기학을 접목한 새로운 학문을 연구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한국의 특정 장소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자기장 신호를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전혀 보지 못한 반응이다! 어쩌면 양자역학 지구자기학이라는 개념을 다른 사람에게 입증할 수 있을지도 몰라.”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찾아왔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실종된 청년은 평범했고, 그가 사라진 장소에는 그 어떤 수상한 점도 없었으니까.

다른 사람 같으면 포기했겠지만, 갈랜드 박사는 어렵게 잡은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한국으로 거처를 옮기고,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날의 일을 철저하게 재현해낼 것이다. 그러면 그 현장이 다시 일어나겠지.”

그는 의지가 넘쳤다.

남은 인생을 모두 이번 일의 성공에 맡기려 했다.

하지만 너무 허무하게도 그날 실종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얼마 뒤.

지구 곳곳에서 다른 차원과 연결된 통로가 열리기 시작했으니.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갈랜드 박사를 뒤늦게 찾아 나선 사람들이었지만, 어느샌가 그도 실종되고 말았다.

***

박민준은 자신 앞에 앉은 노인을 빤히 바라봤다.

자신을 갈랜드라고 소개한 백발의 외국인이 한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러니까. 지구에 게이트가 열리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네.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이론이라.

실제로는 어떨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박민준의 관심이 확 떨어졌다.

“그걸 왜 나한테 찾아와서 말하는 거지? 당신네 나라 대통령에게 가서 알렸어야 맞지 않나?”

“당연히 그리했지요. 하지만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게이트가 닫히지 않길 원하는 듯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왜?”

박민준은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괴물이 나오는 통로를 막을 방법이 있다는데.

그걸 듣고도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고?

“그들에겐 이제 게이트가 권력이고 돈이었으니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겠군.”

게이트가 열린 뒤로, 지구의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또한, 사회,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으니.

이젠 게이트와 관련된 산업의 규모가 그 이전 산업 시대를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정치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도 대중을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공포와 안전이라는 두 가지 채찍과 당근을 포기할 수 없었을 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게이트가 닫혀버리면?

물론, 예전의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권력자도 있겠지만, 적어도 갈랜드가 태어난 나라의 지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박민준이 갈랜드 박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여태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네?”

“당신네 나라 대통령이 게이트가 닫히길 원하지 않았다면, 당신을 죽이는 게 맞지 않나?”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멀쩡히 살아있지.”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고 말을 듣고도.

갈랜드는 흥분하거나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 이유를 말했다.

“죽기 직전에 절 구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그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겠네.”

“지금도 그분과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

잠시 고민하던 갈랜드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지구의 마지막 희망이니까요.”

피식.

박민준이 대놓고 비웃었다.

“마지막 희망? 정말 거창한 인간이군. 무슨 마지막 제다이라도 되나?”

“네? 그분과 제가 하는 일은 결코 영화 같은 게 아닙니다. 지극히 현실적이지요.”

“알았으니까. 그만 꺼져.”

“네? 제 말을 다 듣지 않았습니까? 어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겁니까?”

“솔직히 네놈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네놈이 날 못 믿는다는 것 확실히 알 수 있지.”

“그럼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우리의 동료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

“네. 당신의 친구 말입니다.”

갈랜드의 말을 듣고, 처음 표정의 변화를 보인 박민준이었다.

20년이나 다른 세상에 있다가 이제 겨우 돌아왔고, 그 뒤로 예전 친구들을 단 한 번도 못 만났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현재 믿을 만한 친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

“무슨 개소리야. 내 친구 중에는 널 알고 있을 만한 놈이 없는데.”

“한 분 계시지 않습니까?”

“설마 그놈?”

“네.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정말 어이가 없군. 여태 들은 얘기 중에 제일 개소리야.”

“그럼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갈랜드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통화음이 가는 걸 듣고, 그걸 박민준에게 넘겼다.

“박사님?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통화가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나다. 인마.”

“네?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린데? 설마 박민준.”

“그래. 네놈을 처음 만났을 때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이거였군.”

과거 박민준이 대통령과 처음 대면할 당시.

뭔가를 숨기는 듯한 눈빛 때문에 뒤가 무척 구린 놈이라고 여겼다.

물론 지금은 친구로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비밀을 밝히진 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이런 일 줄이야.

나쁜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군.

살짝 미소 지은 박민준의 귀로 당황한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설마 박사님을 어떻게 한 거냐?”

“어떻게 했으면?”

“그건 절대 안 돼. 그분은 우리 인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야.”

“얼씨구. 어떤 놈은 지구의 마지막 희망이고, 박사란 놈은 인류를 위해 필요한 인간이냐? 정말 거창하네.”

“빈말이 아니야. 그분이 살아계셔야 한다고. 너 이미 박사님을 죽인 건 아니겠지?”

“내가 아무나 막 죽이는 놈인 줄 아냐?”

수화기 너머로 대통령이 안도하며 내뱉은 한숨이 크게 들려왔다.

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근데 그분은 갑자기 왜 널 만난 거지? 나한테 전화는 왜 건 거고?”

“네가 자기 동료라고 먼저 밝혔다. 날 만난 이유는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던데.”

“그렇군. 그럼 박사님 좀 바꿔줘.”

“싫다. 그만 끊어.”

“야!”

뚝.

진짜 전화를 끊어버린 박민준이 스마트폰을 다시 박사에게 건넸다.

“이젠 제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놈이 날 제대로 믿지 못하면서 여기 온 게 문제인 거지.”

“당신을 믿으니까, 제가 이렇게 신분이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겁니다.”

“그래서 정확히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사람을 몇 명 처리해주십시오.”

말이 처리지.

대놓고 누굴 죽여달라고 말한 거였으니.

박사의 말을 듣고, 박민준이 눈알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감히 나에게 살인 청부를 하겠다고? 이런 미친놈 같으니. 당장 내 집에서 꺼져.”

보통 사람은 견디기 힘든 살기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갈랜드 박사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가 억지로 목을 쥐어짜며 말했다.

“당신이 아니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닥쳐라.”

“단순히 살인 임무만이 아닙니다. 그자들의 손에서 구해야 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됐어. 너희들 일에 날 끌어들이지 마.”

“알겠습니다. 이지원 양과 동료들을 구할 유일한 기회가 이렇게 날아가 버렸군요.”

박사의 말을 듣고, 순간 관심이 생긴 박민준이었다.

대통령에 이어 또다시.

그도 아는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누구라고 했지?”

“이지원 양과 제 동료들이라고 했습니다.”

“걔가 요즘 통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어디에 잡혀 있었나?”

최근 해외 파견과 관련해서.

게이트 관리국 국장과 전략실장은 제법 자주 만났다.

하지만 정작 부국장인 이지원은 전혀 만나지 못했다.

단순히, 바빠서 그런 줄 알았는데.

딱히 그녀의 정황을 물어볼 만큼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잡혀 있는 걸 알고도 무시할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이성으로 여겨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어설픈 실력을 지닌 주제에, 한국과 국민을 위해 나름대로 진심으로 노력하는 걸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민준이 다녀온 세상으로 따지자면, 향후 정파의 미래를 책임질 후기지수 중 한 명이라고 보면 될 듯싶었다.

‘그런 녀석을 구하는 일은 제법 가치가 있지.’

마음을 정한 그가 박사에게 물었다.

“녀석들은 전부 암살을 하려다 잡힌 건가?”

“그렇습니다. 제가 구출된 이후로, 그쪽에서 계속 저와 우리 조직의 뒤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아주 가까이 다가왔지요.”

“그래서 역으로 암살하려고 했다는 건가?”

“맞습니다. 그 일에 지원 양을 포함한 많은 동료가 나섰는데. 실패했습니다.”

박민준이 순간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벌써 죽었을 수도 있겠네. 내가 가 봤자, 시체만 찾는 게 전부일 것 같은걸?”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았을 겁니다.”

“그래서 날 찾아올 정도면, 뭔가 엄청난 적들이라는 건가? 무슨 미국이나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것처럼.”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

“지금 우리 조직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여러 각국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습니다.”

“허허. 지금 나랑 장난해?”

“말도 안 될 정도의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 조직에서도 겨우 몇 사람만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어중이떠중이가 전부 알았다가는 너무 놀라서 너희를 배신하고 반대편에 붙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맞습니다. 너무 거대한 적들이라, 항상 목숨을 내놓고 다녀야 하지요.”

중국과 미국이 포함된 여러 나라와 싸운다는 말은 곧, 지구의 거의 모든 나라를 상대한다는 것과 같으니.

그걸 알면, 두려워서라도 조직에서 탈퇴하거나 배신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을까?

“그럼 그 녀석도 모르고 있나?”

“대통령님 말입니까? 그분도 깊게는 모르십니다. 아마 알게 되면 바로 그만두실 분이라서…….”

“하긴 그놈이 제 몸을 아주 끔찍하게 생각하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잔뜩 기대에 부푼 갈랜드 박사였다.

그리고 박민준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차피 뭐가 되었든 간에 슬슬 움직이려고 했었는데. 마침 잘됐어.”

“그렇다면?”

“그래. 순서를 좀 바꾸도록 하지. 너희를 잠시 돕고, 마저 해외 괴물 사냥에 나서겠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죽여야 할 놈들 명단은? 이지원은 어디 갇혀 있지?”

“미국의 워싱턴D.C입니다. 가서 더원과 미국의 대통령을 죽여 주십시오.”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할만한 인물들이었다.

더원은 박민준 이전에 세상에서 제일 강한 S등급 헌터였다.

그냥 강한 정도가 아니라, 독보적일 정도로 더원. 그러니까, 유일한 한 명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앞서 스폐셜 쓰리처럼 손발이 잘 맞는 S등급 여러 명이 힘을 합친 뒤에야 그를 겨우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런 실력자들을 쉽게 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더욱이 임무를 수행할 장소가 바로 적의 심장부였으니.

싸우는 도중에 계속해서 적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터.

더원을 처리한다고 해도, 대통령을 죽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박민준의 신분이 드러나는 즉시.

한국과 미국의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는 엄청난 결과를 몰고 올 것이 분명했으니.

‘이것 참 재밌군.’

그가 지구에 돌아온 뒤로 가장 흥미진진한 일이 될 듯싶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갈랜드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민준 씨께서 준비가 끝나시는 대로 한국의 대통령님께 연락을 주시면, 제 다른 동료가 당신을 모시러 올 겁니다.”

“근데, 내가 성공하면 게이트를 영원히 닫는 일도 바로 시작하는 건가?”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요.”

“좋아. 그럼 서둘러야겠군. 내일 바로 오라고 해.”

“하루면 충분하신 겁니까?”

“당연하지.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냥 오늘 갈 걸 내일로 미룬 것뿐이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로 알고 가보겠습니다.”

***

월요일 아침.

박민준을 미국까지 몰래 데려다줄 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를 본 박민준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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