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당장 내 집으로 와라.”
“네.”
박민준의 호출을 받은 방수열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휴일에 또 무슨 일이지?’
그가 자신을 갑자기 부를 때마다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일본의 총리와 미국의 S등급 헌터를 죽인 후였거나,
스폐셜 쓰리 중 두 명이 박민준에게 사로잡힌 상태였으니까.
과연 이번엔.
불안한 마음을 이끌고, 방수열이 서둘러 그의 집에 도착했는데.
“아……. 이자는 또 누굽니까? 시체를 처리해달라고 절 부른 거였습니까?”
“시체라니? 그놈은 아직 살아있다.”
“그래서 이게 누구인데요? 그것도 말씀해주셔야 제가 대응 계획을 세울 것 아닙니까?”
“최현민이라고 하던데.”
“네? 설마 그 최현민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마 맞을걸? 그 이름을 가진 S등급 헌터 또 있지 않다면 말이지.”
순간 방수열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서 기절할 뻔했는데.
옆에 서 있던 남자의 어깨를 잡고 버틸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한 그가 상대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박민준 씨 집에 이런 남자가 있었나? 목에 통역기를 부착한 걸 보면, 적은 아닌듯싶은데.’
그가 머리를 빠르게 굴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가뜩이나 예민한 상황에서 이처럼 불확실한 존재만큼 위험한 것도 따로 없는 법이니.
방수열은 반드시 상대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가 처음 뵙는 분인 것 같은데.”
이나즈마가 잔뜩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것도 모자라, 아예 박민준을 향해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전 이만 자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그가 별 힘도 들이지 않고, 가볍게 담장을 뛰어넘어 사라지는 걸 보고.
서둘러서 박민준에게 다가간 방수열이었다.
“자리로 돌아가 보겠다니요? 저자는 대체 여기서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냥 우리 집 경비야.”
“무슨 경비가 저렇게 엄청난 기운을 지니고, 말도 안 되게 날렵한 몸놀림을 보입니까? 이름만 알려주십시오.”
“내가 왜?”
“떳떳하다면 저한테 그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나야 당연히 떳떳하지. 그러니까 저놈 이름이 이나즈마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름을 듣고.
눈을 왕 방울만 하게 부릅뜬 방수열이었다.
“이나즈마! 설마 그 이나즈마 말입니까? 유명한 일본의 S등급 헌터를 겨우 집을 지키는 경비로 뒀다고요?”
“아니. 다들 왜 그놈들 이름을 듣고, 자꾸 반복해서 불러? 블랙 존슨도 그렇고 이나즈마가 그렇게 흔해?”
“그럴 리가요? 다들 저처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걸 겁니다.”
“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그놈들이 뭐라고. 경비나 하기 딱 좋은 놈인데.”
“전혀요. 실로 엄청난 존재들이지요. 미국과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S등급 헌터니까요.”
이나즈마의 나이가 어리고, 스폐셜 쓰리라 불리는 블랙 존슨보다 명성이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만큼은 블랙 존슨보다 앞선다는 게 한국 게이트 정보부와 세간의 평가였다.
특히, 방수열은 한국과 일본의 특별한 역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 양국의 A등급 이상 헌터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아오야마 겐조가 죽은 이상. 향후 5년 안에 일본을 넘어서 아시아 탑5 안에 들어갈 사람.’
한중일을 제외하고도, 아시아에 얼마나 많은 나라가 있고, 또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헌터가 존재하는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탑5에 들 수 있다는 건 이나즈마의 실력이 진짜배기란 말이었으니.
‘그런 존재조차 경비에 딱 맞는 인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대체 박민준 씨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 거지?’
7등급 괴물을 때려잡는 박민준의 모습을 지켜봐 온 방수열이었다.
그래서 그가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 블랙 존슨과 이나즈마 사건은 그에게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양과 서양의 탑급 각성자를 동시에 경비원과 경호원으로 쓸 수 있는 개인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바로 내 옆에 있었구나.’
경이롭다는 듯.
자길 바라보는 방수열을 향해.
박민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눈을 왜 그렇게 뜨냐? 너 진짜 그거냐?”
“아닙니다. 전에도 분명히 말씀드렸지만 전 여자를 좋아합니다. 절대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진심을 담아 소리치는 방수열이었다.
“됐고. 저놈이나 데려가서 치료해줘라.”
“됐다니요? 전 진짜 억울합니다.”
“까불지 말고, 그만 저놈 데리고 내 집에서 나가.”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방수열이 쓰러진 최현민에게 다가갔다.
처음에 시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여전히 거의 미동도 없는 상태였다.
“숨이 붙어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진짜 살아있는 게 맞나? 죽은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현민의 코 밑에 검지를 가져갔다.
미약한 콧바람이 느껴졌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그러면 최현민의 상태에 대해 외부에서도 알게 될 텐데.
‘그냥 내 차에 실어야겠군.’
뒷좌석에 그를 욱여넣은 방수열이 박민준에게 인사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자에 대한 건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저놈이 잘 알아듣도록 내가 잘 교육해놨으니까. 깨어나도 별문제 없을 거다.”
“저도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어떻게 당했는지는 몰라도, 반죽음 상태가 된 최현민이었으니.
깨어난다 해도, 감히 박민준을 향한 복수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
한국 게이트 관리국 산하 병원.
직원과 가족들만 이용 가능한 그곳에 의식 없는 환자가 나타났다.
오늘의 응급실 담당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봐요. 시체는 보관실로 바로 보내셔야 합니다. 전 부검하는 의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죽지 않았습니다.”
“네?”
‘내 의사 경력 15년 동안 이런 상태의 환자는 처음이다.’
그가 보기에는 분명, 시체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방할 정도로 몸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환자를 데려온 요원의 말을 듣고 직접 확인해 보니.
미약하게나마 숨통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이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어. 서둘러야겠군.’
그렇게 생각하고, 정밀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너무나 이상했다.
외부에 보이는 상처는 굉장히 심한데, 몸 내부는 거의 멀쩡했다.
“이상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이 정도 타박상이라면 복합 골절은 물론이고, 장기도 여럿 상해야 정상인데. 그런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자가 언제 다시 깨어나겠습니까?”
“당장 24시간 안에 의식을 다시 찾을 겁니다. 각성자이니 회복이 더 빨라서 12시간일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업무를 보던 방수열이 직속 부하에게 보고를 받았다.
그는 최현민을 병원에 데려가서 여태 옆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부장님. 그자가 깨어났습니다.”
“그래? 벌써? 아까는 내일이나 되어야 의식을 되찾을 거라면서?”
“네. S등급 각성자라 그런지 회복이 정말 빠르더군요.”
“다른 문제는 없고?”
“그게…. 몸은 상당히 괜찮은 편인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듯싶습니다.”
부하의 말을 듣고, 짜증이 난 그였다.
“무슨 대답이 그래? 문제가 있다는 거야? 아니면 없다는 거야?”
“의사 말로는 외상에 의한 뇌의 문제는 아니지만, 최현민 스스로 정신이 붕괴한 것 같다고 합니다. 그걸 회복하는 데 몇 달은 또 걸릴 거라더군요.”
“알았어. 아무튼, 죽지도 않고, 몇 달 안에 회복한다는 거잖아?”
“맞습니다.”
“알았어. 그럼 넌 복귀하고, 믿을 만한 녀석들로 최현민의 병실을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그자가 병원에 있다는 게 외부에는 절대 알려지면 안 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S등급 헌터가 원인도 모르게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깨어났는데, 제정신이 아니다?
그건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최현민 본인의 명성뿐 아니라, 한국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비밀로 묻어야 해.’
아마 최현민이 나중에 제정신을 찾아도, 방수열의 지금 결정에 고마워할 것이 분명했다.
겉으로는 후배에 불과한 박민준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정신이상까지 생겼으니.
최현민의 자존심이 정말 강한 걸 생각하면.
이번 일이 외부에 알려질 시엔,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방수열도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가지고, 업무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가서 다행이다.’
***
박민준이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손에는 다른 세상에서 가져온 비급이 들려있었다.
최종 보스였던 천마를 죽이고 얻은 보상.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다른 세상의 시스템하에서는 그가 익힌 정파의 무공과 반대되는 성향이라 익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구로 돌아오고, 기존의 시스템에서 지구의 시스템으로 전환되었으니.
‘천마신공을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하면.
박민준은 다른 세상의 시스템과 지구의 시스템을 공존해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각성한 사람들의 경우.
각성하면서 배운 특기만 지닐 수 있을 뿐.
다른 사람의 특기를 배우거나 몸에 익힐 수 없는 제약이 뚜렷하게 존재했다.
반면에 박민준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기술인 투명화와 정령술을 익힐 수 있었으니.
‘천마신공 또한 기존 무협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나 추가로 배우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다시 비급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실제로 얼마 전.
최현민이란 놈의 마력파를 막으면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천마신공을 아직 익히진 못했지만, 그 비급 안에 담긴 내용을 곤륜파의 무공에 접목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천마역천흡기공이었으니.
타인의 기운을 일부 흡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또한, 그걸 대성하면 천하의 모든 기운을 몸에 받아들이고, 그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도 적혀 있었다.
단순히 내공심법을 통해 기운을 몸에 쌓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였으니.
자신이 원할 때마다 천지간의 기운을 사용해 경신법을 얼마든지 펼친다거나, 방어도 할 수 있다.
또한, 내공의 고갈 없이 검강을 마음껏 펼칠 수도 있을 테니.
‘무적이나 다름없다. 천마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의 존재도 될 수 있다.’
두려운 마음에 계속 천마신공의 비급을 멀리하고 있었는데.
이젠 브레이크 없이 적극적으로 익히길 원하는 박민준이었다.
‘천마신공만 익히면, 천마 그놈이 다시 나타난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다. 물론 절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다만, 이계의 끝판왕이었던 천마의 무공답게.
지금의 박민준도 쉽게 천마신공을 익힐 수는 없었다.
매일같이 밤마다 비급을 읽고 또 읽고.
그렇게 오늘도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어렵긴 어렵군. 과연 천마의 무공이야.’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한 박민준이었다.
그런 그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민준아. 아침부터 또 널 찾는 분이 계시는구나. 깨어있으면 어서 나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