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없다.”
뭐가 없다는 걸까?
박민준이 인공호수로 향했다.
“수문아!”
한국에 돌아온 뒤로, 줄곧 훈련했다.
“수문아!”
그가 부르면 곧장 모습을 드러내야 정상인데.
몇 차례나 불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했다.
최근 S등급 헌터 5명을 먹고, 한 번에 부쩍 크기가 커진 수문이었으니.
박민준이 집 담장만 넘어서도 바로 기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녀석이 가진 마력 또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 지금은 녀석의 기를 느낄 수 없는 데다가, 그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빌어먹을. 그놈은 대체 뭘 하느라 이런 일이 일어난 것도 몰랐던 거야?’
눈살을 찌푸린 그가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다.
블랙 존슨이 소파에 앉은 상태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Hey! Where have you been?”
태평하게 거실에서 자기 가족들과 함께 앉아 TV를 보고 있는 그를 향해 박민준이 뭔가를 집어 던졌다.
퍽!
S등급 헌터라서 당연히 막거나 잡아낼 줄 알았는데.
그대로 이마를 얻어맞아 버렸다.
“What the f......”
블랙 존슨이 시퍼렇게 멍이 든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자기 머리를 때린 물건을 뒤늦게 확인하고 집어 들었다.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큰 크기를 가진 금속 물질.
“What’s this? a coin?”
박민준이 말 대신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기계를 목에 붙이라는 시늉을 하자, 그걸 따라 한 블랙 존슨이었다.
그리고.
“아니. 이게 뭐냐고 물었는데. 내가 원숭이도 아니고 자꾸……. 어라? 이거 혹시 내가 한국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래. 실시간 통역기다.”
“이야. 이거 정말 대박인데요? 이런 물건은 아직 미국에도 없는데. 신기하네.”
“감탄은 그만하고 당장 밖으로 나와.”
“뭔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심상치 않은 박민준의 눈빛을 보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그였다.
이상한 분위기를 읽은 박민희가 동생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해도 졌는데 밖에는 왜 나가려고?”
“누나는 신경 쓰지 마, 그냥 둘이서 조용히 일 얘기를 하려고 이러는 것뿐이니까.”
“아. 그렇구나. 알았어. 그럼 빨리 들어와.”
“왜? 무슨 일 있어?”
“이따가 존슨 씨랑 같이 야식 먹기로 했거든. 불족발하고 막걸리.”
“어이가 없네. 뭐 아무튼, 그래. 알았어.”
태연하게 먼저 밖으로 나온 박민준이었다.
뒤를 이어, 천천히 현관문을 나선 블랙 존슨을 보고 그가 눈알을 부라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그의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쳤다.
빡!
“어이쿠! 갑자기 왜 때리는 겁니까?”
평생토록 누구에게 뒤통수를 맞아본 적이 없는 블랙 존슨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한 그를 향해.
대답 대신 블랙 존슨의 목 뒤를 움켜쥔 박민준이었다.
또 놀라서
억! 하고 비명을 지른 그는 휙! 하고 눈앞의 광경이 바뀌는 게 보였다.
‘여기는?’
인공호수 앞에 도착한 박민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집을 지키라고 했더니. 첫날부터 태만이냐? 아니면 내가 널 너무 높게 평가한 건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뭔가 좀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보십시오.”
“수문이가 없어졌어. 네놈이 TV나 보고 있는 동안 외부인이 다녀갔단 말이다.”
“네? 수문이요? 그게 누굽니까? 혹시 숨겨둔 자식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그럴 리가요? 근데 집에는 박민준 씨의 부모님과 누님 말고는 다른 사람이 전혀 없었는데요. 대체 수문 씨는 어디 있다가 납치되었다는 겁니까?”
박민준이 미간을 손가락으로 주물렀다.
“너도 봤잖아? 저기 호수에 사는 내 새끼.”
“아! 그 괴물 말이군요. 그놈이 수문이었습니까? 진작 그렇게 말을 하시지.”
“더는 이런 말 할 시간이 없으니까. 당장은 네 능력 좀 발휘해봐.”
박민준이 자리를 비운 건 겨우 몇 시간이다.
그리고 대범하게 7등급 괴물을 노릴 거라면, 분명 해가 진 뒤에서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지.’
박민준의 눈치를 보던 블랙 존슨이 인공호수를 향해 살짝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달밤에 저게 무슨 미친 짓인가? 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박민준의 눈에는 기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포착되었다.
블랙 존슨을 중심으로 자연에 퍼진 기운이 휘몰아치며, 기하학적인 문양의 띠고 있었으니.
‘마치 사술을 부리던 놈들과 같군.’
그렇게 몇십 초 정도가 흐르고.
번쩍!
블랙 존슨이 안광에 빛을 내며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빛은 곧장 사그라들었다.
“검은 옷을 입은 동양인 네 명이 이곳에서 괴물을 납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 명이 죽고, 한 놈이 살아남았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마치 직접 본 사람처럼.
아주 상세하게 적의 숫자와 외모, 생존 여부까지 박민준에게 알려주었다.
‘역시 쓸모가 있군.’
이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죽이지 않은 거였는데.
역시 잘한 것 같다.
“어디로 가야 놈을 잡을 수 있지?”
“잠시만요. 그것까지 알아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빨리 알아내.”
“알겠습니다.”
블랙 존슨이 다시 각성 능력을 사용하던 도중.
비틀거리더니.
이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왜 그래?”
“마력 고갈 때문에. 갑자기 너무 많은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가지가지 하는군.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지.”
“한국의 지명이나 위치를 몰라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또 제가 직접 안내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
“정말 약해 빠졌네. 그런 실력으로 여태 어떻게 살아남았어?”
몹시 억울하다는 표정의 블랙 존슨이었다.
‘제가 약한 게 아니라 당신이 강한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두둥실.
자신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느꼈기 때문이었다.
“힘들게 말할 필요 없어. 그냥 손가락으로 방향만 가리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네.”
간신히 입을 열고 대답한 그가 정문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걸 본 박민준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블랙 존슨은 그의 옆에 1.5m쯤 떠서 함께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다! 날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니.’
박민준이 강한 사람인 건 진작 알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의 놀람이었다.
무력의 강함과는 달리, 사람의 한계를 초월한 그 무언가처럼 보인다고 할까?
‘그리고 그 말에 가장 적합한 말은……. 그래. 이자는 신화 속의 반신반인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군.’
스폐셜 쓰리라고 불리는 블랙 존슨이었다.
그런 그에게 박민준은 사람이 아니라 신의 자식인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 같은 종족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박민준이 얼마나 작정하고 빠르게 움직였는지.
‘너무 빨라서 손가락질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자꾸 경로를 벗어날 뻔했으니.
눈을 제대로 감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손가락을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서두른 덕분에, 무궁화 마을 외곽지역까지 순식간에 도착해버렸다.
그곳에서 버려진 외제 차 한 대를 발견한 박민준이었다.
멈춰선 그를 향해, 블랙 존슨이 말했다.
“원래는 이곳에 두 대가 있었습니다. 그중 검은색 차량이 사라졌군요.”
“이젠 괜찮아진 모양이군?”
“네 덕분에.”
“그럼 이제 네 발로 직접 뛰어.”
“알겠습니다.”
박민준이 차량을 지나쳐서 움직이려는 걸 보고, 조용히 눈을 빛낸 블랙 존슨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 순간.
쾅! 쾅! 쾅! 쾅!
박민준을 중심으로 연이어 폭발이 일어나며, 지축을 흔드는 네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블랙 존슨은 이곳에 함정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
하지만 그걸 박민준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이야말로 저 사람 같지도 않은 괴물에게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그렇게 박민준이 함정을 건드렸고.
블랙 존슨의 기대처럼 강력한 폭탄이 터졌으니.
‘분명 죽었겠지?’
평소 같으면 기분이 좋아서 크게 웃었을 텐데.
‘지금은 어째서일까? 느낌이 좋지 않다. 웃음이 나오지 않아.’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던 그때.
검은 연기 사이로 움직이는 뭔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설마? 그 폭발에서 살아남았다고?’
그 정도 폭탄이 연이어 터졌으면, S등급 헌터라고 해도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S등급 헌터뿐 아니라, 반인반신이라고 해도,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야 하지 않나?’
눈을 부릅뜬 그의 눈에 매캐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쳐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타난 사람의 형태.
너무나 멀쩡한 모습의 박민준을 보고, 블랙 존슨이 입을 떡 벌렸다.
‘저게 사람이야? 아니면 귀신이야?’
폭발에 휩싸였으면 그을음이라도 묻어야 현실적일 텐데.
너무 말끔하기만 한 박민준 때문에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자길 멍청하게 바라보는 그를 향해.
박민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뭘 멍청하게 서 있어. 어서 안내하지 않고.”
“네? 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렇긴 한데…….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왜? 내가 죽지 않은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뭔가 더 말하려던 박민준이 다시 그에게 명령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추격을 계속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박민준의 엄청난 모습을 보고 난 뒤라서인지.
군기가 바짝 든 초병처럼, 긴장해서 대답하는 블랙 존슨이었다.
그가 슬쩍 박민준의 전신을 훔쳐보고, 서둘러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고 몇십 초 뒤.
박민준의 짜증 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느려빠져서 언제 그놈을 쫓아가? 이러다 너 때문에 놓치겠다.”
“죄송합니다.”
“아까처럼 할 거니까, 넌 뛰지 말고 안내만 해.”
블랙 존슨이 대답하기도 전에 두둥실 그의 몸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마치 총알을 쏜 듯 나아갔다.
‘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이런 짓을 또 벌이다니. 앞으로 저 인간에게는 절대 반항하지 말아야겠다.’
스스로 굳게 다짐한 그가 잠시 한눈을 팔았다.
“뭐 해? 왜 갑자기 왜 가만있어?”
“죄송합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이.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블랙 존슨이 그의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힐끗 노려본 박민준이 잠시 고민하고 말했다.
“계속 놈의 뒤를 추적할 게 아니라, 목적지에 우리가 먼저 가 있자.”
“네? 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목적지를 알려면 아까보다 더 깊이 기억을 읽는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되지.”
“문제는 제가 마력이 고갈되고 이제 막 회복하고 있는 터라,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정말 귀찮게 하는군.”
인상을 찡그린 박민준이 그에게 성큼 다가갔다.
흠칫 놀라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목덜미를 움켜쥐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왔군. 여기서부터 추적을 재시작하자는 건가?’
블랙 존슨이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경고도 없이.
팍!
그의 아랫배와 반대편인 허리에 손바닥을 가져간 박민준이 소리쳤다.
“멍청하게 있지 말고, 어서 능력을 발휘해봐.”
“네? 네. 알겠습니다.”
뭔지 몰라도, 심각한 분위기라.
‘아 놔. 마력 고갈이라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러다 정말 큰일 날 텐데.’
그래. 어차피 반항해서 저놈 손에 죽나.
마력 고갈로 기절해 죽나 마찬가지다.
속으로 연신 투덜거린 그가 각성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경험을 하길 시작했다.
“이…. 이건?! 어떻게 이런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