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어머! 깜짝이야! 누…누구세요?”
장미령은 가족의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제일 먼저 일어났다.
1층 거실을 통과해서 주방으로 향하던 그녀의 눈에 낯선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려는 찰나.
“엄마 왜 그래?”
박민준이 비명을 듣고 방을 뛰쳐나왔다.
아들의 부축을 받은 장미령이 낯선 사내를 손으로 가리켰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
“아~ 저 사람은 경호원인데요.”
“경호원?”
“네. 제가 외국에 자주 나가고 있잖아요. 불안해서 사람 좀 고용했어요.”
그녀는 아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진정되었다.
차분한 눈으로 경호원이라는 남자를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실내에서도 반짝이는 듯한 금발에 2대8 가르마.
명품으로 보이는 선글라스와 몸에 딱 맞아 보기 좋은 남색 정장까지.
‘어딘가 믿음직스럽게 생기긴 했네.’
자길 빤히 살피는 그녀를 향해.
블랙 존슨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싱긋 미소를 날렸다.
“어머! 너무 잘생겼다. 심지어 영화 보디가드에 나온 주인공하고도 비슷한 것 같아. 어쩜 좋아.”
“하하하.”
칭찬인 것 같기는 한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블랙 존슨이 크게 웃음만 터트렸다.
그는 장미령이 자길 알아보고, 팬을 자처하는 줄로만 알았으니.
‘하여간. 이놈의 인기는 어쩔 수가 없는 건가? 잘생긴 건 세계 어디 가서도 먹히긴 하지.’
뒤늦게 소란을 느끼고 방 밖으로 나온 박철수와 박민희였다.
“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외국인은 누구냐? 왜 네 엄마랑 웃으면서 얘기하고 있는 거야?”
상대가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든든한 아들을 믿고 그러는 걸까?
평소와는 다르게 낯선 외국인을 극도로 경계하는 박철수였다.
그런 아버지와는 달리.
박민희는 그를 보자마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내가 저 사람을 어디서 봤지? 잘생기긴 했는데, 영화배우는 아니고…. 아! 미국의 헌터잖아! 스폐셜 쓰리의 블랙 존슨!”
자기 이름을 말하는 걸 듣고, 블랙 존슨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찡긋.
윙크하며 느끼한 미소를 날렸다.
엄청나게 강한 박민준의 가족인 장미령과 박민희에게 점수를 따고, 하루라도 빨리 이런 잡일에서 벗어나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블랙 존슨이었는데.
정작 박민희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뭐야? 저 사람 왜 저래? 아침부터 느끼해 죽겠네.”
한편, 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외국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박민준의 부모였다.
헌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장미령은 그저 유명한 사람이 경호원이 되어서 좋기만 했다.
반면, 박철수는 스폐셜 쓰리의 일인이 자기 집에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아침부터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아들아. 네가 초대했니?”
“초대가 아니라,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일하기로 한 경호원입니다.”
그 얘기를 들은 박철수와 박민희가 거의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살짝 벌렸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부녀관계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과 표정이 똑같았다.
“뭐?! 블랙 존슨이 우리 집 경호원이라고?”
“스폐셜 쓰리가 왜 경호원을 해? 도박이라도 해서 빚을 많이 졌나? 아니면 민준이 네가 강제로 잡아 온 거야?”
단순히 놀라는 데 그친 박철수와는 달리.
박민희는 동생을 추궁했다.
“그런 거 아니야.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서 경호 일을 해주기로 한 거니까. 이상한 상상하지 마.”
“이해관계? 진짜 협박 같은 건 아니라는 말이지?”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가 거짓말을 했지만, 얼굴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이해하고 넘어간 그녀였다.
“그런데 날 평소에 어떻게 생각했길래 그런 질문을 망설이지도 않고 한 거야?”
“뭘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사라졌다가 무지막지하게 강해져서 돌아온 철부지 동생이지.”
“철부지?”
“그럼 아니야? 생긴 것도 그렇고 넌 그냥 볼 때마다 불안해.”
“허. 어이가 없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저 박민준의 눈치를 보며, 뻘쭘하게 서 있는 블랙 존슨이었다.
그런 그를 다정하게 대해준 장미령이었다.
“이쪽으로 와요. 어쨌든 이제부터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서로 편하게 지내도록 해요. 알았죠?”
“여보. 왜 그렇게 친절해? 평소처럼 굴어. 그리고 외국 사람한테 그렇게 한국말을 하면? 그걸 저 사람이 알아듣겠어?”
“각성까지 한 유명한 사람이니까 한국말을 조금은 알아듣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존슨 씨?”
그녀의 시선과 질문을 동시에 받은 블랙 존슨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I’m sorry. lady. I don’t understand what you said.”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장미령이다.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여보, 저분이 지금 뭐라고 한 거예요?”
“당신이 한 말을 못 알아들었대. 그래서 미안하다네.”
“아. 그럼 할 수 없지요. 당신이 좀 말이 통하니까. 아침밥이나 우리하고 같이 먹자고 말해봐요.”
“내가 왜?”
“앞으로 우릴 지켜줄 사람이라잖아요. 근데 그냥 굶기고 우리끼리만 밥을 먹을 거예요?”
“흠. 그건 좀 아니긴 하지. 알았어. 내가 말해볼게.”
블랙 존슨에게 열심히 손짓을 더해가며 자신과 함께 식사하자는 말을 이해시킨 그였다.
“Ok. Thank you. I’m straving.”
“에구.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굶어 죽을 것 같다는 말까지 할까? 그래, 어서 식탁으로 갑시다. come with me.”
그렇게 한 식탁에 모여 앉은 박미준의 가족과 블랙 존슨이었다.
한식이 입에 잘 맞았는지.
그가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외국인이 나보다 밥을 잘 먹네. 아주 밥이 남아나질 않겠어.”
남편의 말을 듣고, 장미령이 그를 타박했다.
“잘 먹으면 좋지요. 뭐. 건강하고 튼튼해야 우릴 제대로 지켜주지 않겠어요?”
“여보. 저 사람은 밥을 먹든 안 먹든 강한 사람이야. 무려 S등급 각성자라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헌터란 말이지.”
“그런데 당신은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혹시 알아듣고 기분 나빠하면 어떻게 하려고?”
“뭘 걱정해. 우리 아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 안 그렇냐?”
아버지의 시선을 받은 박민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요. 저놈이 말을 안 듣고, 이상하게 굴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하세요.”
“그래. 그렇게 하마. 우리 아들만 믿는다.”
부자의 대화를 들은 박민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야. 너 그러다 저 사람이 순간 화가 나서 미쳐 날뛰면 어쩌려고? 무려 스폐셜 쓰리의 일원이잖아.”
“괜찮아. 다른 놈들한테나 강자인 거지. 나한테는 별거 아니니까.”
“진짜?”
“응. 기껏해야 이지원 부국장 정도 되려나? 그 애 정도면 저자랑 실력이 비슷하겠네.”
“그럼 강한 거 아니야?”
“아니. 난 명성에 비해서 저자가 별거 아니란 말이었는데.”
S등급 각성자가 무려 두 명이나 집에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평소보다 더 조용하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그렇게 점심이 지나고.
방수열의 연락을 받은 박민준이었다.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화부터 냈다.
“야. 너 통역할 사람을 보낸다면서 왜 여태 안 보내는 거야?”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가 시킨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딨어? 내가 널 너무 편하게 대해줬나? 다시 불편한 관계가 되어 볼래?”
“아니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해.”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를 끝으로 잠시 대화가 끊겼다.
박민준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방수열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 그리고 사실은 제가 통역할 사람을 보내는 대신 더 좋은 물건을 구했습니다.”
“그게 뭔데?”
“실시간 다중언어 통역기입니다.”
“통역기?”
“네. 영어를 포함해서 20여 개 나라의 언어를 실시간 통역할 수 있도록 최신에 개발된 기계입니다.”
“그런 좋은 물건이 있으면 진작 나한테 줄 것이지. 왜 이제 말하는 건데?”
“저도 개발된 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제 부하 녀석이 알아내서 저한테 말해줬습니다.”
무섭다고 소문난 박민준 밑에서 단순 통역 일을 하기 싫었던 방수열의 부하였다.
그래서 그가 열심히 수소문해서 찾아낸 물건이란 말이었으니.
“그럼 어서 가져와.”
“저도 그러고 싶은데. 개발부서에서 아직 허가를 안 해줬습니다.”
“왜?”
“아직 개발이 덜 끝난 시제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빨라도 오늘 저녁이나 내일은 돼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방수열의 점점 작아지며, 마치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와는 반대로, 박민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렇게 늦는다고?”
“그게 연구소가 서울에 있는 게 아니라서요. 전주에 있어서 다녀오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젠장. 위치 어디야. 내가 직접 갈 테니까. 당장 준비해 놓고 기다리라고 해.”
“직접 다녀오신다고요?”
“그게 더 빨라. 그리고 내가 답답해서 그래. 저놈하고 말이 통해야 뭘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준비해 놓으라고 재촉하겠습니다.”
“그래.”
“지금 연구소 위치하고 담당자 번호를 박민준 씨 번호 넣었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알았어. 그만 끊어.”
“네. 죄송합니다.”
문자를 확인한 박민준이 그대로 집을 나섰다.
***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이나즈마 일행이 무궁화 마을 근처 공터에 도착했다.
마침 해가 진 뒤여서, 그들이 바로 임무 수행을 시작했다.
“적은 최강의 헌터다. 지금부터는 절대 방심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만약에 그자와 마주치게 되면 전투 대신 도피를 선택해야 한다.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사내이니. 이곳까지 유인하도록.”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그들이 차량 주변에 함정을 여러 개 설치했다.
일본의 최신형 기술이 축약된 고성능 폭탄이 담겨 있는 함정이었다.
하나만 작동해도 나머지 것들이 동시에 폭발하도록 만들었으니.
‘이 함정에 제대로 걸리면, 그 어떤 S등급 각성자도 가루가 될 만큼 강력하다. 아무리 그자라고 해도, 절대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그들이 박민준의 집을 향해 몸을 날렸다.
구름이 껴서 달빛마저 거의 비추지 않는 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뒤집어쓴 이나즈마 일행이 담장을 넘었다.
주변을 살핀 이나즈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아무도 없어? 7등급 괴물 새끼가 이곳에 있다는 말이 맞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보안이 이렇게 허술하다니요? 정말 이상하군요.”
“여기까지 온 이상, 확인해 보면 알겠지. 곧장 인공호수로 가서 목표물을 탈취할 것이다. 조용히 내 뒤를 따라오도록.”
“알겠습니다.”
***
박민준이 돌아왔다.
손에는 작은 은색 케이스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 시제품 통역기가 몇 개 들어있었다.
블랙 존슨을 찾아가 물건을 전달하려던 그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