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32화 (132/175)

132화

박민준의 주변으로 알코올의 독한 냄새가 확 번졌다.

“크크크. 강한 인간이라 그런가? 이거 정말 냄새가 죽이는군. 아주 강렬해. 이런 건 나도 처음이야.”

방수열은 자신의 콧속에 밀고 들어오는 술 냄새에 자극을 느끼고 당황했다.

“정말 이런 게 가능하다니? 박민준 씨 괜찮은 겁니까?”

그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박민준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흠~후. 흐음~후.

남의 일 구경하듯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보드카는 연신 히죽이고 있었다.

“정말 강하긴 하군. 아직도 서 있다니. 하지만 이제 곧……. 이제 곧……. 왜 저렇게 멀쩡하지?”

표정이 점점 굳더니, 이내 어리둥절한 눈빛을 띠었다.

심호흡하던 박민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재밌어. 다시 느꼈지만, 정말 신기하게 변한 세상이야. 피와 체액을 술로 만들 수 있다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빙글 돌아보며 말하는 그를 보고, 방수열이 빠르게 물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당연하지. 그냥 저놈의 능력이 어떤지 몸으로 경험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 그러셨군요. 아무튼, 몸에는 문제가 없는 거지요?”

“그래. 근데 아까부터 쓸데없는 걸 자꾸 물어보는군. 내가 겨우 저런 놈에게 당할 것 같아?”

“아니요. 전 그냥 걱정돼서.”

“잘 봐.”

박민준이 행동으로 보여줬다.

핫!

그가 짧게 기합을 내뱉은 순간.

희뿌연 안개 같은 게 박민준의 몸 전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알코올 향기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어떻게?”

놀란 보드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를 내려다본 박민준이 오른발을 들었다.

그대로 발목을 잡고 있던 보드카의 손목을 향해 내리찍었다.

꽈득!

손목부터 잘려나간 오른팔을 보고, 보드카가 눈을 부릅떴다.

아아아아아악!

“my hand!”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자, 상처 부위에서 솟구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걸 싸늘하게 바라본 박민준이 왼발을 살짝 털었다.

여태 붙어있던 보드카의 손이 그의 발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박민준의 점혈 수법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한 뒤라, 이미 몸이 약해져 있던 보드카였다.

피를 너무 흘린 탓에 쇼크 상태가 왔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보드카의 충격적인 결말을 보고, 제시카 로즈와 블랙 존슨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나도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려나? 피를 너무 많이 흘리면 지저분해서 별론데. 이왕이면 고통 없이 한 번에 보내줬으면 좋겠다.’

‘멍청한 놈. 살려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허튼수작을 부리다니. 저자가 네놈에게 당할 정도로 약했으면, 내가 이렇게 많이 불러모았겠냐?’

각자의 생각으로 바쁜 둘에게 박민준이 말했다.

“너희도 저놈처럼 나와 다시 붙어볼 생각인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두 사람이라서,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민준의 얼굴만 바라봤다.

“야! 뭐 해?”

“죄송합니다.”

죽은 보드카의 시체를 살피던 방수열이 황급히 그의 말을 통역했다.

그걸 들은 제시카와 블랙이 빠르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죽고 싶진 않은 모양이군. 저놈처럼 멍청하지도 않고 말이야.”

“물론입니다. 저희는 저 녀석처럼 무모하지 않습니다.”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네?”

“무모하지 않다는 놈이 겨우 저딴 놈들 몇 명 데리고 날 노려?”

“아……. 그건…….”

“겨우 너희 일곱 명으로 진짜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당신이 이렇게까지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면 절대로 이번 일을 꾸미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진작 그렇게 생각했어야지.”

“저희를 죽이실 생각입니까?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흥. 날 죽이러 왔던 주제에. 이제 와 거래를 하자는 건가?”

“네. 전 정말 죽기 싫습니다. 제 동료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렇지? 로즈.”

박민준과 대화를 나누던 그가 옆을 돌아보며, 자신의 말을 거들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제시카 로즈는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뭐라 해도 딱히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네?”

“너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내가 저자였다고 해도, 날 죽이려는 놈들을 살려줄 것 같진 않거든. 바로 죽이고, 배후까지 캐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을 거야.”

“이런 미친. 너 지금 제정신이야?”

“그래.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말짱하지. 그래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거고.”

“넌 왜 그렇게 쿨하냐?”

“이게 나야. 여태 몰랐어?”

“아무튼, 난 살고 싶어. 살려만 준다면 뭐든 할 거라고.”

“그래. 열심히 해봐. 이왕이면 나도 같이 살려달라고 해주면 고맙겠어.”

이젠 통역 일이 익숙해졌는지.

딱히 시키지 않았는데도 두 사람의 대화를 박민준에게 전한 방수열이었다.

피식.

그걸 들은 박민준이 웃었다.

“내가 살려주면 뭐든 하겠다고? 넌 저 말을 믿어?”

“제시카 로즈는 알려진 게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블랙 존슨은 가족이 많습니다. 결혼도 두 번 했고, 자식도 네 명이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너도 내가 저들을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글쎄요. 제가 말하면 그대로 해주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내 행동을 결정하는 건 오로지 내 의지뿐이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조언을 무시하는 그런 벽창호도 아니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서 해봐.”

방수열이 말하기 전.

블랙 존슨과 제시카 로즈를 슬쩍 바라봤다.

그때 잠깐 눈을 마주쳤는데.

딱히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지 않았다.

살고 싶다는 눈빛 뒤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약간의 체념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열망은 오히려, 블랙 존슨보다 체념하듯 말했던 제시카 로즈에게서 더 많이 엿볼 수 있었다.

방수열이 아무것도 못 본 척.

다시 박민준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스폐셜 쓰리라는 명성과 실력은 가짜가 아닙니다. 저들에게 약속을 받아내면 그걸 반드시 지킬 겁니다.”

“그래?”

“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아. 나도 사실 저놈들을 죽이기엔 조금 아까웠거든. 살짝 고민하고 있었어.”

“제 말이 도움이 된 모양이군요.”

“대충 1% 정도.”

“아. 그렇게 조금입니까?”

“전혀 작지 않아. 그게 저놈들을 살렸으니까.”

“네? 1%로 말입니까?”

“그래. 계속 50 대 50이었거든. 이젠 51%가 되었지.”

방수열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들을 죽일지 말지, 그 고민이 반반이었다는 말이구나. 51%가 되었으니. 이젠 살려준다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 방수열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남자와 스폐셜 쓰리라고 불리는 최강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뭔가 해냈다는 기분을 받았다.

“야. 그 이상한 미소는 그만 짓고, 어서 저놈들에게 내 말이나 전해.”

“알겠습니다.”

크크 흠.

그가 목을 가다듬고 통역을 시작했다.

“내가 너희를 살려주면 뭐든 한다고 했지?”

“물론입니다. 로즈는 몰라도 저는 분명, 약속을 지킬 겁니다.”

“좋아. 그럼, 넌 살려주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눈물까지 흘린 블랙 존슨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걸 물끄러미 바라본 제시카 로즈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방수열이 말을 전했다.

“왜 넌 아무 말도 없지? 딱히 살고 싶지 않은 건가?”

“나도 살고 싶은데, 저딴 놈처럼 마구 약속을 할 순 없어.”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모르긴 몰라도, 보통 일은 아니겠지.”

“맞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제시카 로즈가 보기에도 박민준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니. 어차피 오래 살긴 그렇다는 건가?’

이용만 당하다 죽을 거라면, 차라리 깔끔한 죽음이 더 낫다.

물론, 마음에 걸리는 게 있지만, 그건 그녀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살기를 체념한 그녀가 낮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어차피 지금 살아남아도 결국엔 고생만 하다가 죽겠네.”

“그 말은 거절인가?”

대답이 들리진 않았지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였다.

“좋아. 그럼 넌 죽어라. 저놈보다 집을 잘 지킬 것 같았는데. 조금 아쉽긴 하군.”

“그래. 이왕이면 고통 없이 죽여줘…. 가 아니라. 방금 뭐라고 했어? 집을 잘 지켜?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게 뭐가 중요한가?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이면서.”

“아니. 조건을 들어보고 죽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이젠 내가 싫다.”

“아.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제발 좀 말해줘. 궁금해서라도 이대로는 못 죽어. 못 죽는다고.”

금방이라도 죽음을 받아들일 듯 보였던 그녀인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피식 웃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듣고 죽어라. 너와 저놈에게 내 가족과 이 집을 지키라는 말을 할 참이었다.”

“아니. 겨우 그런 일을 시킬 거면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니 뭐니. 왜 그런 건데?”

“나한테는 세상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니까.”

“젠장. 이제 나 못 죽어. 그냥 여기서 경호일 할 테니까. 나 좀 살려줘.”

스르륵.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검을 뽑아 든 박민준이었다.

날카로운 금속음을 듣고, 제시카 로즈의 표정이 더 다급해졌다.

“내가 존슨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니까. 믿고 맡겨봐. 내 능력 알잖아? 세상에서 경호에 제일 특화된 각성 특기라고.”

“나도 알아. 내 기척을 알아차린 사람이 바로 너니까. 그건 인정해주지.”

“그래. 그러니까. 나 좀 살려줘. 이 집에 들어와서 네 가족을 노리는 놈들을 내가 아주 뼈를 발라줄게.”

“좋아. 그럼 그렇게 해.”

대답은 살려주겠다고 해놓고.

여전히 검을 들고 있는 박민준이었다.

그걸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든 제시카가 말했다.

“저기. 그 검은 이제 치워도 되지 않나?”

“이거? 그냥 꺼낸 건데. 그렇게 신경 쓰이나?”

“당연하지. 무서우니까, 좀 넣어줘.”

“검이 없으면 괜찮고? 맨손으로 날 이길 자신이 있나?”

순간.

멍청한 표정이 된 제시카 로즈였다.

‘아. 듣고 보니 그렇네. 저자가 맨 처음 우릴 제압할 때도 맨손이었는데. 검이 있든 없든,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잖아!’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얼굴에 빨간 기운이 살며시 올라온 그녀였다.

블랙 존슨이 그런 제시카 로즈를 놀렸다.

“뭐야? 저 남자를 보면서 왜 얼굴이 빨개지는 건데. 살려준다고 하니까 좀 달라 보이나 봐?”

“닥쳐. 멍청아. 그런 거 아니야.”

“네 취향이긴 하잖아.”

“저 인간의 어디가 내 취향이야?”

“강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말이야.”

동료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였다.

S등급 각성자 7명을 거의 동시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물론, 확실히 존재한다고 답하겠지만.

적어도 과거의 그녀는 절대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더 원이라고 불리는 그 녀석도, 우리 스폐셜 쓰리가 동시에 나서면 죽일 수 있어. 하지만 저자는….’

스폐셜한 세 명이 아니라 삼십 명이 와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진짜 300명은 필요할 것 같은데.’

S등급 헌터 300명이 한 장소에 모인 적이 있기는 한가?

한마디로, 박민준을 죽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없다.

그게 제시카 로즈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가족을 지키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니.

‘완전 내 스타일이긴 하네.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흠칫 놀라서 고개를 빠르게 내저은 그녀였다.

오직 블랙 존슨만이 그녀의 생각을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박민준을 죽이러 왔다가 오히려 코가 꿰인 두 사람은, 뭔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심지어 그에게 호감을 느끼던 제시카 로즈는 몸과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

0